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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6 영화 서울의 봄 (용산 CGV 4관)

by All's 2023. 12. 24.



어마어마하게 특별한 선의를 가진 것도 아닌, 그저 당연한 원칙을 지키려는 이들이 당연함을 당연하게 할 수 없었던 현실. 그때의 현실을 보며 지금을 생각했다. 영화적으로도 깔끔하게 잘 만든 영화였는데 보다가 그냥 막막하고 눈물이 났다. 다시 이때와 같은 잃어버린 몇 십년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에서 흩날리는 눈을 보는데 새벽에 퇴근하면서 보았던 눈발과 비슷해서 지금과 그 시절이 다르지 않구나 같은 생각이 들면서 목이 메였다. 이대로 과거를 반복할 것인가.

김성수 감독의 영화를 비트와 아수라 정도만 봤을텐데 최근 작이라 기억에 남아있는 아수라가 애초에 그런 걸 의도한 작품이라고 해도 정돈되지 못한과 않음을 오가는 정신없음이 내 취향이 아니었고, 특히나 카체이싱 씬이 그러했었는데 이번 작품은 소재와 내용을 고려하여 정말 최대한 절제하며 정돈하여 깔끔하고 묵직하게 이야기를 그려낸 것이 영화 자체로도 맘에 들었다. 현실에 대한 갑갑함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만드는 원동력인 부분이 크겠지만, 영화 자체가 잘 만들어져서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몰랐던 사람에게도 1212 군사 쿠데타의 끔찍함과 그로 인한 몇 십년의 독재 정치의 잔재가 시작부터 잘못 되었다는 걸 되새기게도, 새롭게 깨닫는 것에 가해자의 입장이 아닌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걸 잘 해낸 점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영화 자체로 잘 정돈되었고 군더더기없이 너무 잘 만들었고 그 와중에 캐릭터를 굉장히 잘 살려놓아서 아마 남의 나라 역사였다면 마음 아파하면서도 영화적 즐거움도 느꼈을 것 같은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1212 당일 편을 보기도 했었어서 영화 속 상황으로 아팠던 역사와 시절을 만나는데 결말을 이미 정말 다 알고 있음에도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슬프고, 역사에 증명된 악인들이 영화적 상황적인 부분에서 개인의 카리스마나 매력을 보일 때 실제 역사에서도 저런 악마적인 능력으로 역사를 후퇴시키고 쿠데타를 통해 군부 독재를 이어갔겠지를 생각하며 매력을 느껴서 괴롭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너무나 눈물이 나는 서글픈 역사이지만 짧은 등장 시간에도 무고하거나 선량한 이들이 왜 그대로 살 수 없나를 이미지와 연기 모두로 잘 전달해낸 전수지 배우와 정해인 배우가 인상 깊었다. 전수지 배우는 두개의 방이라는 연극에서 보고 계속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 분인데 두 개의 방에서 테러조직에 납치된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는 주인공 역할이셨는데 이번에는 쿠데타에 끝까지 저항하는 군인의 아내라니 왜 이렇게 아픈 역을 또 하시나 싶으시면서도 짧은 등장 분량에도 너무 좋은 임팩트를 주셔서 좋았다. 정해인 배우는 설강화로 인해 실망한 배우라 피하고 있었고 서울의 봄에 나오는 걸 몰랐는데 특유의 맑은 인상과 오진호 소령 역이 정말 잘 어울리고 또 해내서.. 설강화 같은 선택을 다시는 안 하겠다는 어떤 뒤늦은 시그널이길 바라보기도 했다.

서울의 봄 같은 작품에서 전두환이나 노태우에서 이름을 바꿨으나 누구나 그 인물인 것을 아는 악인의 역을 맡는다는 건, 특히 전두광을 맡는다는 건 영화 속에서 캐릭터로서의 카리스마와 설득력을 주는 것과 역사적 인물이 배우 자신의 매력으로 미화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정말 힘들었을 것 같은데 황정민 배우의 그 노력이 많이 느껴졌다. 정말 고생하셨겠다 거의 전두광을 보는 모든 순간이 화가 났던 만큼, 그리고 전두광이 혹여나 실패의 가능성이 보일 때 불안함을 보이는 순간에 조금도 안쓰럽지 않았던 만큼 대단하다 느꼈다.

정우성이라는 배우를 한 사람이자 연예인으로 매력을 느끼기는 해도, 모든 영화에서 노력한다는 건 느껴져도 타고난 발음이 좋은 사람이 아닌 지라 배우로서 좋게 평가하지는 않는데 이번에는 발음이 굉장히 전보다 잘 들려서 그저 경력이 오래 되었다고 하던 대로 살지 않는구나 좋았다. 이태신이라는 역이 현실을 파악할 줄 모르는 답답한 FM이 아니라 그저 당연함을 수호하는 이라는 걸 과장되지 않게 살려내서 배우로서의 정우성을 다시 보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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