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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10520 뮤지컬 포미니츠

by All's 2022. 11. 30.





캐스트 - 김선영 김환희 정상윤 홍지희 조재철(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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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바

아무리 힘들고 괴롭고 아파도 네 인생을 변기통 속에 처박아 버리지 마.

시놉시스 보고 이거 이렇고 이런 내용인 거 아니야?하고 예단 했다가 스스로의 좁고 부족한 상상력에 창피해하기 그만 해야 하는데 또 그래버렸고, 그래서 부끄러움을 넘어서는 울림을 얻은 공연이었다. 나쁜 습관은 고쳐야하지만 부끄러움을 줄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난 게 너무 좋다.

시놉시스를 읽고 재능을 가진 자, 그걸 알아본 자, 그를 질투하는 사람의 구도가 있는 재능을 가진 자에 대한 이야기인데 내가 멋진 연기를 보는 것 이외에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의심했는데 내 맘대로 의미만 통하게 받아적어놓은 인생을 변기통에 버려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고, 한나를 구하지 못 했던 과거의 아픔이 덧씌워져 있을 지라도 크뤼거에게 제니와 그녀의 재능이 그저 과거의 아픔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의 자극제가 아니라 이번에는 누군가의 인생을 구할 수 있게 크뤼거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였고 실마리라 간절했다고 다가와서 많이 울었다

간절히 지키고 싶었던 존재를 지키지 못한 상처를 가진 존재였던 제니와 크뤼거가 먼저 그럼에도 살아가며 사랑한 이를 기억하고 간직했던 크뤼거의 진심어린 고백과 함께 서로 살아갈 이유를 찾고 인정하는 순간이 너무 벅차고 아름다웠다. 굳이 상처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도 그냥 살아있는 존재는 자기 삶을 아끼고 살아가면 된다고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고 지금의 시간들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고 희망도 꿈도 없는 것 같아도 그냥 내 삶을 존중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크뤼거와 제니와 스스로에게 말해줄 때 약간은 뮈체에게 기울어있던 비탄이 모두 씻겨내려지는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렇게 자신이 살아가도 된다고 자신의 마음을 찾은 제니의 4분. 음악을 모르기에 음악적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지 머리로는 알 수 없지만 그냥 그 모든 소리와 몸짓과 무대가 너무나 사랑하는 나의 일부이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망친 존재이기도 해 증오하기도 했던 피아노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가는 제니를 만나는 4분으로 다가온 제니의 콩쿠르 결선 연주로 고통과 증오로 받아들이지 못 했던 나 자신과 협업을 하며 완전해지는 제니와 함께, 네모난 틀로 계속 머리 위를 맴돌던 삶을 삐걱이게 만들던 괴로운 시선을 자신의 아래로 끌어내려 하나되는 제니와 함께 숨쉬며 그냥.. 모든 게 완전해지는 순간을 만났다. 바라던 것을 이루지 못 해서, 혹은 이룰 수 없어서, 혹은 바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나와 내 삶이 삐걱이며 틀어져버렸고 모든 게 끝난 거라는 절망 속에 살 필요없다고 마침내 오롯이 자신이 되어가는 제니가 말해줬다.

김선영과 김환희가 존재하며 함께 무대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그걸 보았다는 점에서 나는 행운아다. 앞서 말한 모든 걸 무대 위 연주와 객석 아래 '브라바'라는 짧고 진심어린 환호로 완벽하게 만들어낸 두 사람이 있었고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게 행운이었다.

배우가 무대 바깥 객석에서 연기하는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데(누군가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 한 볼 수 없는 위치의 연출이 싫어서) 그게 유의미하고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순간들은 원래 좋아하지 않는 것의 배로 사랑하게 되는데 제니의 연주와 인사 후, 그 숨막힐 듯한 정적 속에서 크리거의 '브라바'라는 짧은 경탄이 나와 같은 객석의 위치의 방향에서 왼쪽 귀로 흘러들어왔을 때 나는 콩쿨의 관객이 되었고 나는 극 속에 들어가고 제니와 크뤼거는 나의 세계로 나오며 그들은 세상에 자신을 말하고 나는 그들에게 박수칠 수 있었다. 너무나 고맙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앞서 써둔 대사와 그로부터 이어진 마지막 연주까지긴 했지만 극 내내 이어지고 흘러가며 완성된 뮈체를 그려낸 방식과 시선도 참 좋았다. 질투를 다루는 극에서 질투하는 존재를 다루는 흔한 방식처럼 파멸로 끝내는 게 아니라 인정받지 못 했다는 절망에 비뚤어진 인물을 과하지 않게 보다듬고, 그래서 그 인물이 스스로 자신을 그릇된 선망과 질투를 벗어나는 과정 역시 보여줘서 뮈체처럼 아무 것도 없는데 왜 꿈을 갖게 되는 건지 절망하기도 하는 존재이기도 한 나에게 큰 위로가 왔다. 음악을 꿈꾸게 되고 그 목표를 자기 자신이 아니라 크뤼거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실현하고 싶었던 20년 동안의 집착을 지녔기에 끊임없이 제니와 크뤼거를 방해하던 뮈체가 개운한 표정으로 우산을 펴고 걸어나갈 때 잘하지 못 해도 그냥 계속 사랑해도 되는 거고 그로서 행복하면 된다는 걸 마음에 품은 순간이 보여 나 역시 평온해졌다.

살리에르 이후에 질투를 연기하는 상윤 배우를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본 건데(어쩌다 보니 상윤 배우 자체를 굉장히 오랜만에 본 것이기도.) 중년의 실제 나이와 다르게 음악으로 자기 삶을 바꾸고 싶다는 꿈에 사로잡힌 마음 속 소년에 붙들렸던 이가 마침내 자기를 인정하고 집착과 질투의 굴레를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질투로 인해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지지 않은 이로 만나는 게 새삼 새로웠고 또 그걸 잘 해내시는 능력에 역시 여전히 잘하시는 구나 감탄하고.

선영배우와 환희배우에 대해서도 열심히 써놔야하는데 머리에 스턴 걸린 것처럼 묘사가 잘 되지 않아서 답답하다. 막공주라서 또 볼 수도 없으니까 내가 기록을 해놔야 나중에 다시 되새기기라도 하는데ㅠㅠ

못난 머리는 김선영 다이애나와 김환희 나탈리가 있는 넥을 주세요 연뮤신님이라는 생각 말고는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네ㅠㅠ 근데 진짜 넥.. 여왕다이애나 환희나탈리 이거 나와야 하는데.. 오늘 포미니츠에서 현수배우가 계셔서가 아니라 느꼈다고요 그냥 이건 넥이야 다이애나랑 나탈리라고요ㅠ

환희배우 킹키부츠 로렌으로 처음 봤고 이제야 두번째로 만나는 거라 너무 잘한다고 기억은 했었지만 역시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거 티가 더 확 나려면 분량이 많아야하고 인물이 더 풍성해야 하고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등장한 순간부터 저 사람을 저렇게 방어적이고 자학적으로 만든 게 뭘까 인물에 대한 궁금증에 몰입도를 바로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그걸 필요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거니까. 제니를 괴롭힌 과거를 가십적인 이유로 만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을 알고 싶게 하는 생생한 호기심을 일깨우는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사실 받은 감동의 크기에 비해서는 크뤼거와 제니의 등장 분량 자체나 서사적 비중이 내가 처음에 기대했거나 바랐던 거에 비해서는 좀 적기는 해서 극이 완벽하다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배우들이 잘하는 것과 별개로 뮈체랑 소장 비중은 줄어야하지 않나 했다. 특히 마지막 콩쿨 전 소장과 -아마도?- 위원회 사람들 간의 설왕설래 장면 넘버 너무 길지 않나 싶음) 좋았던 순간이 너무 압도적으로 좋았고, 있어야 할 장면이 없다고 느낀 건 또 아니어서.. 그리고 공연 시간이 긴 것도 아니고해서 그래서 이 극 그거 나빠 소리는 안 나오기도 하고 여튼 결국 너무 좋았으니까로 마음이 간다.

이게 배우의 역량인지 극의 힘인지 보려면 더블 캐슷을 보면 되는 거고 수하배우는 렌트에서 너무 좋았고 선경배우는 (공연을 그렇게 오래 하셨는데 내가 못 봄ㅠ) 매체 연기 볼 때도 늘 좋게 보던 분이라 또 보고 싶기까지 한데... 하 내일 원래 쉬려고 했고 돈도 좀 고민이고.. 고민된다ㅠ

......(=) 아래와 같고.. 캐슷 피아니스트 빼고 완전 다르고 B구역 1열 떠 있었고 카드사가 30퍼 할인 했어요. 저는 나약한 덕후입니다.



레슨에서 크뤼거에게 점점 의지하기 시작하고 장난도 치는 제니를 보면서 진짜 어른과 보호자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 보여서 오펀스 생각이 많이 났다. 자신을 위한다는 핑계로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머리를 깨는 인간이 아니라 진짜 사랑과 가르침을 주는 진짜 보호자 혹은 어른을 바라는 갈망.

오펀스를 초연 때 보면서 세상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고자 하는 진짜 어른에 대한 갈망을 느꼈지만 결국 남자 어른이라 저 가르침이 온전히 내 몫이 될 수 있다 무의식 중에 믿지 못 했던 걸 재연 여배 페어를 보면서 내가 나를 이끌어줄 진짜 어른을 너무나 갈망했었던 때가 드물게 제니와 크뤼거가 웃고 장난을 치는 그 순간에 굳이 가르침까지는 아닐 수 있지만 그저 청소년인 자기 나이대에 맞게 칭얼거릴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기에 그런 장난을 쳤겠지라는 게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는데.. 그래서 그 순간이 너무 예쁜데 또 너무 슬펐다.

내가 뮈체라는 역이 재능이 없는 사람의 심정을 투영하고 또 결말부의 방향성으로 그 해소감이 좋다고 느낀 거와는 별개로 분량이 너무 많다고 느낀 게 역할과 연기하는 배우의 성별이 남성이어서인지 이야기적으로 정말 과하다고 여겨서인지 고민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의 독일 여성 교도소의 교도관이 반드시 남성이었던 게 아니라면 재연이 올라올 때 뮈체의 성별을 여성으로 바꿔서 올리면 지금과 다른 느낌을 받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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