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후기

20210429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by All's 2022. 11. 29.


캐스트 - 조승우 김지현 이훈진 서영주 



꾸준히 올라오고 무지막지 유명한 맨 오브 라만차를 드디어 보았다.

배우의 길을 걸을 꿈이나 운명을 가진 이들이 이 극을 보고 그 꿈을 꾸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었을 이야기. 꿈도 희망도 없이 자기들끼리 물고 뜯고 타인을 뜯어먹고 사는 죄수들 속에서 제대로 당연하게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꿈꾸며 이야기하는 시인이자 극작가가 그들로 극을 꾸미는 이야기 그 자체라서, 배우로서 혹은 창작자로서 세상을 위해 이야기하는 꿈을 꾸는 영혼이 이 극을 본다면 당연히 이 극을 보고 뮤지컬을 꿈꾸게 되겠구나 그저 알 수 밖에 없었다. 그보다 한참 전에 잡아놓은 관극이었지만 본진인 전동석의 코로나 확진 소식을 들은 다음 날 관극을 해야 해서, 멘탈이 너무 깨져서 공연을 과연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취소할 생각도 하다가, 동배우가 언젠가 하고 싶다고 했던 극이니까 미리 보고 싶다는 실례되는 마음으로 보러 간 거라, 역시 실례되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걸 보면서 이런 부분들을 보면서 언젠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을까,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 이야기를 사랑하고 공연을 사랑하며 또 그 무대 위에 서는 이라면 꿈꾸지 않는 게 불가능할 이야기구나라고 내내 외람된 감상을 겸하게 하는, 그만큼 좋은 이야기였다. 오디컴퍼니의 극 중에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이야기의 힘을 믿는 선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무서우리만치 공통점을 느껴서 속절없이 눈물이 나는 부분들도 계속 있었고, 오디 버전의 스위니 토드가 나의 좁은 판단 기준으로는 부족한 프로덕션이라 여겨서 한동안 오디극을 불매까지 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뚝심있게 올리는 곳이고 이 극을 본 사람들, 특히 공연계 종사자들이라면 오디 컴퍼니가 주창하는 미션의 순수성을 믿을 수 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드디어 이 극을 보면서 하게 되었다.

직접 보기 전에 토막토막으로 알고 있던 스포들로 공연을 보기 전에 극이 불호일까봐 걱정한 부분은, 결국 꿈 타령을 하는 한 '늙은 남자'의 이야기에 감화된 '젊은 여성'이라는 구도로 느껴져 맨스플레인을 미화하는 거 아닐까 생각을 하며 불쾌해질까봐, 그리고 알돈자가 당하는 성폭행씬 자체가 보는 나에게 고통이 될까봐였는데, 후자는 솔직히 결국 고개를 내리고 보게될 만큼 괴로운 게 맞았지만 전자의 불쾌함은 느끼지 않을 이야기였어서 앞선 걱정이 부끄러웠고 또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1막 끝나고 이야기의 힘을 믿고 특히나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면 극중극으로 그저 그 믿음과 신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만으로 가치있다는 걸 말하는 이 극을 무대를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울리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은 했는데, 2막을 보면서 거울의 기사를 보면서 자신이 세상에 맞서는 기사가 아니라 한 늙은 미치광이 노인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좌절하고 알돈자를 둘시네아로서 숭배하는 것마저 하지 못 하고 무너진 알론조까지의 이야기가 이미 지어진 부분이라서 더 뒷 이야기가 없다는 세르반테스의 말에 그럼 이 변론은 실패했다는 죄수들의 말에 세르반이 다시 즉흥극으로 이야기를 잇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진짜 이야기와 삶의 희망에 대한 지치지 않는 꿈이 완성되어가는 걸 느꼈고 그게 맨 오브 라만차가 명작이라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지점의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을 했다.

거울의 기사로 분한 닥터 까라스코와 그의 동료들로 인해 알론조가 무너진 부분까지는 종교 재판에 기소되어 지하 감옥에 끌려들어간 시점까지의 세르반테스였겠지. 극 중 극 속 알론조가 첫 마지막의 좌절 전까지 환상 속에서 이룰 수 없어도 포기하지 않을 꿈을 이야기하던 꿋꿋함은 친구들의 죽음 등을 겪으면서 인간은 왜 사는 가를 통해 그들이 죽어갔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때까지 얼마나 고결하게 생을 이어갔는가와 그렇게 삶을 이어가는 존재 하나하나가 고결하다고 믿고, 그렇기에 그 모든 존재들이 생을 공정하게 살아내야하는 곳으로 세상이 갈 수 있게 세상에 만연한 적에게 투쟁하고 싶었지만 그저 맞는 일을 했을 뿐인데 신성모독죄로 종교 재판에 회부되면서 죽을 위기에 놓인 세르반테스 본인에 대한 회의감이 거울의 기사들로 인해 무너진 그의 현실이었다는 걸로 다가오는 좌절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세상의 좌절과 신념의 또다른 좌절이 알돈자의 고통이었겠지. 처음 극중극을 시작한 이유도 변론이었으니 그 순간까지는 그렇게 자신이 무너진 이유를 알려주는 것 말고 더 뒤의 이야기가 없었겠지. 하지만 처음에 그를 죽이려고 했고 그저 흥미를 위해 세르반테스의 변론 겸 극 중 극에 참여했던 감옥 속 죄수들이 이미 지어진 부분 이후의 이야기, 아마도 희망이 있을 더 뒤의 미래를 요구한 그 시점부터 세르반테스의 삶도 이야기도 바뀔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게 진짜 이 이야기가 숭고해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의 이야기로 이미 마음의 변화를 겪는 이들이 생긴 그 순간부터가 그를 절망에서 건져낼 희망 그 자체였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어지는 즉흥극에서 알돈자는 알론조를 찾아가 자신이 둘시네아임을 말할 수 있는 거고, 알론조의 육신이 스러졌어도 그가 돈키호테로서 알돈자라는 한 사람을 자신이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인 둘시네아임을 온전히 깨닫게 했기에 알론조는 갔어도 돈키호테는 죽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게 이야기는 바뀔 수 밖에 없었네. 사람들이 그 뒤의 이야기, 희망을 꿈꾸었기 때문에 돈키호테는 알론조의 육신과 무결하게 이미 그의 신념을 공유하는 알돈자와 그리고 산초에게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액자 하나를 넘어 지하 감옥 속 죄수들에게 돈키호테가 살아 숨쉬게 되었지. 세르반테스가 희망을 보고 즉흥극을 짜내어 진짜 결말이 쓰여지는 순간부터 이 이야기의 관객이자 독자들은 참혹한 세상에서 태어난 거 자체가 불행이었던 알돈자에서 존재 자체로 고귀한 둘시네아가 되어 그저 그 존재만으로 소중한 그들을 믿어준 돈키호테의 뜻처럼 스스로의 존엄을 깨닫고 그들이 그 존엄을 영위해 마땅한 세상을 희망하고 꿈꾸며 살아가게 될 것이기에 맨 오브 라만차라는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정말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감옥의 죄수들에게 스스로의 존엄에 대한 각성을 준 뒤, 아마도 죽음으로 결론이 날 종교 재판을 받기 위해 한 걸음씩 감옥 밖으로 걸어나가는 세르반테스의 발걸음과 그를 보내며 임파서블 드림을 부르는 죄수들의 모습이 성경 속 십자가를 지러가는 예수와 그의 신도들과 완전히 겹쳐져서 보였는데, 예수가 비록 십자가에 묶여 죽음을 당했어도 다시 부활하며 대신 세상의 죄를 씻은 것처럼 세르반테스가 재판의 결과로 죽는다 해도 그가 죽음을 앞두고 벌인 극으로 구원한 이들의 정신과 삶이 있기에 설혹 그의 육신의 삶은 그렇게 끝나도, 그의 의지는 영원히 살아 이어지며 남겨졌으며 새로 태어난 이들이 그렇게 삶도 자신도 생을 이어감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의 반향은 끝이 없음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것마저 느껴졌다.

이 메시지 자체도 아름답고 그 것을 전해준 방식이 바로 극 속 무대이기에, 맨 오브 라만차가 무대라는 존재가 이를 통해 한 사람, 혹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감동을 줄 수 있기에 가치있다는 것까지 보여주는 이야기이기에 무대를,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매료될 수 밖에 없다는 것까지 다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공연 자체에 정말 큰 감동을 받았고 솜과 더불어 이 이야기만으로도 오디컴퍼니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했고 나 역시 뭉클한 마음이 솟았지만, 그럼에도 노새끌이들의 윤간 연출을 비롯해서 무어인 넘버의 창녀 묘사나 그때의 전반적인 수위같은 부분은.. 진짜 오디극 보면서 이런 부분의 선정성에 대해서는 가장 대표적인 지킬을 비롯해서 꾸준히 얘기하는 부분인데 역시 또 아쉽기는 했다. 2막에 더 크게 닥쳐올 알돈자의 시련을 알고 봄에도 1막 역시 괴롭기는 그지없는데 희롱과 추행을 당하는 부분 자체도 괴롭지만 정말 아픈 건 거기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내가 선택해서 나를 파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속이는 알돈자와 감옥 속 죄수 여인이 교차되며 세르반테스가 말하는 꿈이 둘시네아, 알돈자를 넘어 그녀에게 말하는 것인지 흔들리고 혼란함을 보여주는 균열들이었다. 꿈을 꿔도 되는 것인지 세상에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건지 누구보다 믿지 않는 척 하지만 사실 믿고 싶은 영혼이 너무 와닿더라고. 그래도 1막 정도로 끝냈으면 극에서 인물이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보여주고 있구나 정도였을텐데, 2막은 그걸 넘어서는 포르노적 연출이 보여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유괴 넘버 씬 수위가 전보다 줄은 거라고 해도 더 작정하고 갈아엎어야 할 것 같아. 유괴 넘버는 그저 알돈자를 노새끌이들이 점점 둘러싸고 압박하다가 암전되는 수준이면 될 것 같다. 그게 줄어든 시간만큼 알론조를 찾아오기 전에 알돈자의 깨달음을 넣든, 극적 효과를 위해서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설명적이 될지라도 알돈자가 왜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말하게 되었는지 계기를 확실히 말로라도 설명할 수 있게 추가되는 게 바뀌어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극의 이야기 구조가 정말 맘에 들었지만, 아무리 즉흥극으로 급히 이어진 결말이고 세르반이 알돈자 역의 죄수와도 이야기를 나눈다 해도 알돈자가 알론조를 찾아오기 전에 그녀가 돈키호테로 인해 자신의 삶이 완전히 변했다고 그를 다시 각성시키기 전까지 이야기 속 시간에서는 절망에 빠져있었던 걸로 끝났기에 그 사이에 알돈자가 돌봄의 자비를 베풀려다가 그녀는 치유를 나눌 수 있는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대해지지 않고 노새끌이들의 성적 노리개로 휘둘려짐에 큰 절망과 상처를 받았음에도 그녀가 이전과 달리 자신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았다 여긴 순간을 넣어주지 않아서 알돈자의 방문도 간절한 설득도 이야기 자체를 넘어 배우가 노력해서 여백을 메꿔내야하는 게 아쉬웠다. 넣어야 할 부분은 없고 굳이 그렇게까지 보여주지 않아도 될 부분은 과하게 길고 자극적이었어. 크리에이티브팀이 전부 남자라서 유괴씬 전보다 약해졌다는 게 이런 걸까 싶어서 공연 상세 정보를 보니 협력 연출 안정하 연출이 여성분이시긴 하던데.. 여성 연출의 노력으로 그게 줄어든 거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지금 시대에 과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수위였다. 굳이 알돈자의 입과 손을 묶고 그녀를 희롱하고 폭행하며 끌고 들어가는 장면을 그렇게 상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1막에 이미 알돈자는 노새끌이들에게 끊임없이 희롱당하고 있기도 하고, 이 땅의 여성 관객은 남자 떼거지가 한 여자를 밀폐된 장소에서 둘러싸는 것만으로도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에 대한 예상을 할 수 있는 삶을 지배하는 공포를 모두 공유하는데 굳이 그렇게나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성 관객들은 그런 공포심을 모르니까 풀어내야 한다고 보기에는 어차피 남자라서 강간에 대한 공포심이 없어서 알돈자가 그런 일을 당하는 걸 아 슬픈 남일로 (슬프다고나 여기면 다행) 여길테니 더더욱 그렇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일 이유가 없다. 앞에 포르노적 연출이라고 썼는데 그거 진심으로 좀 흥분하며 볼 사람들 꽤 많을 것 같아서 그 부분은 진짜 꼭 반드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어인 집시들의 안무 등도.. 그나마 이 극은 8세인 지킬보다는 높은 14세 이상 관람가이긴 한데,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15세 베드신 수위도 올라갔다고 해도 연인이 하는 배드신이 그런 거지 창녀가 나와서 유혹을 위해 야한 춤을 추고 동료와 성적인 행위를 하고 직접 가슴에 손을 얹게 하고 등등을 15세로 허락해주지는 않을 거잖아. 지금 수위가 굳이 중학생 이상이 봐도 된다 싶은 선정성은 아니라고 본다.

뭐 불호 부분 얘기도 썼지만 극은 정말 좋았다. 배우들도 좀 무시무시하게 잘했고 괴로운 부분이 있었지만 좋은 이야기를 주파수가 잘 맞는 배우들로 만나서 굉장히 좋았다. 정말 많이. 

원래 호감 갖고 계신 본사 배우들은 말해뭐해고,(따로 안 쓴 앙상블 제외한 모든 배우들ㅇㅇ 다 찰떡같이 딱 재미와 진지함 오가게 잘하셨어) 처음 뵌 분들인 단영 안토니아, 훈진산초, 인배 까라스코는 처음 만났는데 너무 좋았고 조성지 배우 피렐리로 뵈었을 때는 개그 욕심이 과하다 여겼는데 이번에는 딱 좋아서 진짜 배우들이 다 좋았다. 그리고 특히 훈진산초가 세르반테스가 무대를 통해 변론을 할 거라고 하며 분장을 준비하기 직전이었나 눈을 빛내는 그 순간에, 꿈을 쫓는 자와 그 꿈을 쫓는 자를 쫓으며 역시 꿈을 믿는 이의 순간이 화살처럼 마음에 박혀서 그 순간부터 바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 게 있어서 정말 그게 너무 좋았다.

위에 주파수가 잘 맞는 배우들로 만났다고 써놨는데, 조승우 세르반테스와 김지현 알돈자에 대한 이야기이고, 두분 다 내 맘을 흔드는데 그 방식이 달라서 따로 또 같이 좋았다. 잘하는 것과 잘 맞는 건 다른데 조지현은 잘하는데 심지어 나랑 잘 맞는 배우들임. 그리고 심지어 이 극에서는 그 두 분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과 연기하는 인물 자체가 닮아있어서 더더욱 좋다. 지현배우의 연기를 볼 때는 인물의 마음이 내 마음처럼 속을 파고들어서 마치 나같아서 울리는 감동을 받고, 승우배우의 연기를 볼 때는 그의 굳건한 심지가 나의 이상과 닮아있어 동경으로 벅차는 감동을 받는데, 그게 너무나 알돈자와 세르반테스 그 자체로 나에게 다가와서 정말 원래도 주파수가 잘 맞는 분들인데 너무나도 무서우리만치 역할 자체로 그들의 결이 나에게 딱 맞아서 정말 좋더라.

좋은 부분이 거의 전체라 해도 될 정도로 많았지만 특히 지현돈자가 돈키호테가 쓰러진 적들을 돌보러 간다는 것을 말리는 이유가 다면적이었던 게 정말 좋았다. 그저 승리에 취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패배해 쓰러진 적들을 돌보는 자비까지가 기사도라며 노새끌이들을 만나러 가겠다는 돈키호테를 말리는 지현돈자의 가장 큰 목적은 돈키호테가 그 곳에 찾아가면 변을 당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겠지만 또 그의 자비에 대한 이야기로도 감동을 받아 자기 역시 그렇게 한 발 더 나아가 선을 베푸는 존재가 될 기회를 얻고 싶다는 희망도 있었을텐데, 그걸 진짜 너무 잘 표현해내셔서 그 뒤에 알돈자에게 이어질 가혹한 폭행을 미리 알면서도 그 순간이 너무.. 돈키호테를 위해서 희생하면서 또 스스로를 타인을 위할 수 있는 자라고 믿으려고 존중하기도 하는 지현돈자의 순간이 너무 뭉클하고 아름다워서 알돈자가 꿈꿨던 둘시네아를 난 그 순간 이미 만났다. 비록 그때 알돈자를 그렇게 혼자 보내는 돈키호테의 선택이 희망 찬 꿈에 빠져서 가혹하기도 한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는 선구자들의 패착 그 자체라, 꿈을 전한 자는 안전한데 꿈을 쫓고 실제로 행하려는 수행자들은 오히려 잔혹하게 현실에 유린당하는 고통스러운 폭력으로 연결되었던 거는 너무 가혹했지만, 앞에 이미 썼듯이 알돈자가 그렇게 꿈꾸기 시작하고 자신이 존중받아 마땅하고 남을 도울 수도 있는 인간임을 자각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건 정말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세르반테스가 구석에 홀로 있던 여자 죄수에게 다가가서 그녀가 꼭 이 역을 해야한다고 한 이유를 분위기 그 자체로 표현해 내신 것도 너무 좋았고. 떠들석하게 모여서 세르반의 연극을 구경하는 사람들과 떨어져서 그런 웃음이 자신의 방호벽을 깨뜨리게 두지 않겠다는 듯 어둠 속에 숨어있던 그녀가 사실 누구보다 희망이 절실하기에 꿈꾸는 것 자체를 두려워할 인물임을 세르반테스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다가가는 설정일텐데, 그냥 그게 너무 와닿았고, 날선 보호막 속에 여린 희망을 세르반테스가 다가오기 전까지 나타내고, 함께 하겠냐는 세르반의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사실 변화를 꿈꾸는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해내는 게 진짜 그냥 너무 좋더라. 의도는 다 같게 알돈자배우들이 표현하겠지만 (이번 알돈자 캐스팅 배우 모두를 원래 좋아함) 난 지현배우의 표현법과 연기가 정말 좋아서 특히나 좋았다.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럽게 나에게 흘러들어와서 머릿속으로 설명하지 않고 그냥 느끼게 해주는 분이야.

조세르반이 정말 근소하게 그동안 봤던 조배우의 무대 필모 중 가장 좋아했던 헤드윅보다도 좋았는데 뭐랄까 이 극에 대한 감동이 그냥 조세르반 그 자체로 와서 어디가 어떻게 좋았다고 오히려 잘 못 쓰겠기도 하다. 그냥 너무 잘하고 그의 세르반테스가 숭고했어. 그리고 그의 세르반이 조승우라는 배우가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의 어떤 원형이라는 생각을 했다. 학생 때 했을 때는 산초 역을 하셨다고 하니까 실제로 공연을 한 건 지킬과 헤드윅이 더 먼저일텐데 세르반테스를 보면서 이전에 봤던 지킬과 헤드윅, 특히 지킬이 재정립되는 기분을 느낄 정도로 너무 좋더라. 세르반테스가 써낸 극 안에 웃음과 비극이 같이 녹아있고 그러면서도 굽히고 싶지 않은 한줄기 신념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는 그런 모든 게, 무대 위 조승우의 연기의 핵심 그 자체였는데, 나는 10주년 지킬부터 지킬을 봐서 이미 지킬이라는 극이 재미는 있지만 좀 낡고, 지킬 배우의 매력 잔치가 된 이후의 시점에서 만났는데 (아무리 꾸준히 사랑받는 극이어도 자체적 메시지는 시효성을 다했고 그저 배우들 필모를 반짝이게 하고 제작사도 말은 삐까뻔쩍하게 해도 돈 벌려고 올리는 극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대극장 지킬, 중소극장 쓰릴미임) 그래서 너무 재밌게 조지킬을 봤으면서도 극 자체로는 거식한 게 좀 있었는데, 아직 숭고하고 메시지를 잃지 않은 라만차를 보면서 오디컴퍼니가 주창하는 미션을 느끼고 나니까 내면의 분리된 자아로 자기 자신과 선과 악의 갈등을 벌이다가 스스로를 죽이면서까지 악을 잠재우고자 하는 헨리 지킬의 이야기를 담은 지킬 앤 하이드 역시 극이 올라오던 초반에는 이야기 자체로 통쾌하나 파괴적인 악을 이겨내고 선을 택하기 위해 자신까지 희생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우리 그렇게 삶을 살아가야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아주 선한 메시지가 있었던 극이었겠네 싶어졌다. 그래서 조승우의 세르반테스를 통해 좋아하는 배우의 이전 필모가 가졌어야 할 진정한 가치를 다시 느낀 것까지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라만차를 봐온 분들 마음에는 어떨 지 모르겠지만, 난 2021년에 만난 라만차에서 살아있는 숭고함을 느껴서 위에 쓴 괴로움 때문에(2막 유괴씬은 결국 고개 숙이고 봤어. 지현돈자 보려고 했던 건데 1막부터 누적된 괴로움이 터져서 너무 힘들더라고) 이렇게 좋다고 잔뜩 써놓고도 자둘은 못 하겠는데, 이 극은 숭고함은 지키고 괴로움은 덜어서 계속 다시 만나게 되면 좋겠고 그렇다.

정말 우아한 극이었어.

 

 

 

 

더보기

 


(+) 트윗 감상

배우의 길을 걸을 꿈이나 운명을 가진 이들이 이 극을 보고 그 꿈을 꾸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었을 이야기.

꿈도 희망도 없이 자기들끼리 물고 뜯고 타인을 뜯어먹고 사는 죄수들 속에서 제대로 당연하게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꿈꾸며 이야기하는 시인이자 극작가가 그들로 극을 꾸미는 이야기에서 배우로서 세상을 위해 이야기하는 꿈을 꾸는 영혼은 당연하고 이 극이 왜 수많은 이들이 뮤지컬을 꿈꾸게 했는지 그저 알 수 밖에 없었던 1막의 시간들.

2막에 더 크게 닥쳐올 알돈자의 시련을 알고 봄에도 1막 역시 괴롭기는 그지없는데 희롱과 추행을 당하는 부분 자체도 괴롭지만 정말 아픈 건 거기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내가 선택해서 나를 파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속이는 알돈자와 감옥 속 죄수 여인이 교차되며 세르반테스가 말하는 꿈이 둘시네아, 알돈자를 넘어 그녀에게 말하는 것인지 흔들리고 혼란함을 보여주는 균열들. 꿈을 꿔도 되는 것인지 세상에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건지 누구보다 믿지 않는 척 하지만 사실 믿고 싶은 영혼을 안다.

동배우 확진으로 멘탈이 너무 깨져서 공연을 과연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취소할 생각도 하다가, 동배우가 언젠가 하고 싶다고 하셨던 극이니까 미리 보고 싶다는 실례되는 마음으로 보러 간 거라, 역시 실례되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걸 보면서 이런 부분들을 보면서 언젠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을까,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 이야기를 사랑하고 공연을 사랑하며 또 그 무대 위에 서는 이라면 꿈꾸지 않는 게 불가능할 이야기구나라고 내내 외람된 감상을 겸하게 하는, 그만큼 좋은 이야기였다. 오디컴퍼니의 극 중에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이야기의 힘을 믿는 선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무서우리만치 공통점을 느껴서 속절없이 눈물이 나는 부분들도 계속 있었고, 여러 번 티를 냈지만 오디 버전의 스위니 토드가 나의 좁은 판단 기준으로는 부족한 프로덕션이라 여겨서 한동안 오디극을 불매까지 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뚝심있게 올리는 곳이고 그 극을 본 사람들, 특히 공연계 종사자들이 오디 컴퍼니가 주창하는 미션의 순수성을 믿을 수 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드디어 이 극을 보면서 하게 되었기도 합니다.
 
직접 보기 전에 토막토막으로 알고 있던 스포들로 공연을 보기 전에 극이 불호일까봐 걱정한 부분은, 결국 꿈 타령을 하는 한 '늙은 남자'의 이야기에 감화된 '젊은 여성'이라는 구도로 느껴져 맨스플레인을 미화하는 거 아닐까 생각을 하며 불쾌해질까봐, 그리고 알돈자가 당하는 성폭행씬 자체가 보는 나에게 고통이 될까봐였는데, 후자는 솔직히 결국 고개를 내리고 보게될 만큼 괴로운 게 맞았지만 전자의 불쾌함은 느끼지 않을 이야기였어서 앞선 걱정이 부끄러웠고 또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1막 끝나고 이야기의 힘을 믿고 특히나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면 극중극으로 그저 그 믿음과 신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만으로 가치있다는 걸 말하는 이 극을 무대를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울리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은 했는데, 2막을 보면서 거울의 기사를 보면서 자신이 세상에 맞서는 기사가 아니라 한 늙은 미치광이 노인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좌절하고 알돈자를 둘시네아로서 숭배하는 것마저 하지 못 하고 무너진 알론조까지의 이야기가 이미 지어진 부분이라서 더 뒷 이야기가 없다는 세르반테스의 말에 그럼 이 변론은 실패했다는 죄수들의 말에 세르반이 다시 즉흥극으로 이야기를 잇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진짜 이야기와 삶의 희망에 대한 지치지 않는 꿈이 완성되어가는 걸 느꼈고 그게 맨 오브 라만차가 명작이라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지점의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을 했다.

거울의 기사로 분한 닥터 까라스코와 그의 동료들로 인해 알론조가 무너진 부분까지는 종교 재판에 기소되어 지하 감옥에 끌려들어간 시점까지의 세르반테스였겠지. 극중극 속 알론조가 첫 마지막의 좌절 전까지 환상 속에서 이룰 수 없어도 포기하지 않을 꿈을 이야기하던 꿋꿋함은 친구들의 죽음 등을 겪으면서 인간은 왜 사는 가를 통해 그들이 죽어갔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때까지 얼마나 고결하게 생을 이어갔는가와 그렇게 삶을 이어가는 존재 하나하나가 고결하다고 믿고, 그렇기에 그 모든 존재들이 생을 공정하게 살아내야하는 곳으로 세상이 갈 수 있게 세상에 만연한 적에게 투쟁하고 싶었지만 그저 맞는 일을 했을 뿐인데 신성모독죄로 종교 재판에 회부되면서 죽을 위기에 놓인 세르반테스 본인에 대한 회의감이 거울의 기사들로 인해 무너진 그의 현실이었을 것이다. 처음 극중극을 시작한 이유도 변론이었으니 그 순간까지는 그렇게 자신이 무너진 이유를 알려주는 것 말고 더 뒤의 이야기가 없었겠지. 하지만 처음에 그를 죽이려고 했고 그저 흥미를 위해 세르반테스의 변론 겸 극중극에 참여했던 감옥 속 죄수들이 이미 지어진 부분 이후의 이야기, 아마도 희망이 있을 더 뒤의 미래를 요구한 그 시점부터 세르반테스의 삶도 이야기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이야기로 이미 마음의 변화를 겪는 이들이 생겼고 그 순간부터가 그를 절망에서 건져낼 희망 그 자체였으니까. 그렇기때문에 이어지는 즉흥극에서 알돈자는 알론조를 찾아가 자신이 둘시네아임을 말할 수 있는 거고, 알론조의 육신이 스러졌어도 그가 돈키호테로서 알돈자라는 한 사람을 자신이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인 둘시네아임을 온전히 깨닫게 했기에 알론조는 갔어도 돈키호테는 죽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게 이야기는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그 뒤의 이야기, 희망을 꿈꾸었기 때문에 돈키호테는 이미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진짜 결말이 쓰여지는 순간부터 이 이야기의 관객이자 독자들은 참혹한 세상에서 태어난 거 자체가 불행이었던 알돈자에서 존재 자체로 고귀한 둘시네아가 되어 그저 그 존재만으로 소중한 그들을 믿어준 돈키호테의 뜻처럼 스스로의 존엄을 깨닫고 그들이 그 존엄을 영위해 마땅한 세상을 희망하고 꿈꾸며 살아가게 될 것이기에 맨 오브 라만차라는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정말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감옥의 죄수들에게 스스로의 존엄에 대한 각성을 준 뒤, 아마도 죽음으로 결론이 날 종교 재판을 받기 위해 한 걸음씩 감옥 밖으로 걸어나가는 세르반테스의 발걸음과 그를 보내며 임파서블 드림을 부르는 죄수들의 모습이 성경 속 십자가를 지러가는 예수와 그의 신도들과 완전히 겹쳐져서 보였는데, 예수가 비록 십자가에 묶여 죽음을 당했어도 다시 부활하며 대신 세상의 죄를 씻은 것처럼 세르반테스가 재판의 결과로 죽는다해도 그가 죽음을 앞두고 벌인 극중극으로 구원한 이들의 정신과 삶이 있기에 설혹 그의 육신의 삶은 그렇게 끝나도, 그의 의지는 영원히 살아 이어지며 남겨졌으며 새로 태어난 이들이 그렇게 삶도 자신도 생을 이어감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의 반향은 끝이 없음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것마저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것을 전해준 방식이 바로 극 속 무대이기에, 맨 오브 라만차가 무대라는 존재가 이를 통해 한 사람, 혹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감동을 줄 수 있기에 가치있다는 것까지 보여주는 이야기이기에 무대를,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매료될 수 밖에 없다는 것까지 다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공연 자체에 정말 큰 감동을 받았고 솜과 더불어 이 이야기만으로도 오디컴퍼니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했고 나 역시 뭉클한 마음이 솟았지만, 그럼에도 노새끌이들의 윤간 연출을 비롯해서 무어인 넘버의 창녀 묘사나 그때의 전반적인 수위같은 부분은.. 진짜 오디극 보면서 이런 부분의 선정성에 대해서는 가장 대표적인 지킬을 비롯해서 꾸준히 얘기하는 부분인데 역시 또 아쉽기는 했다. 지금 아무리 유괴 넘버 씬 수위가 전보다 줄은 거라고 해도 더 작정하고 갈아엎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극의 이야기 구조가 정말 맘에 들었지만, 아무리 즉흥극으로 급히 이어진 결말이라고 해도 알돈자가 알론조를 찾아오기 전에 그녀가 돈키호테로 인해 자신의 삶이 완전히 변했다고 그를 다시 각성시키기 전에 그저 정말에 빠져있었던 걸로 끝났기에 그 사이에 알돈자가 돌봄의 자비를 베풀려다가 그녀는 치유를 나눌 수 있는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대해지지 않고 노새끌이들의 성적 노리개로 휘둘려짐에 큰 절망과 상처를 받았음에도 결국 그녀가 이전과 달리 자신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았다 여긴 순간을 넣어주지 않아서 알돈자의 방문도 간절한 설득도 이야기 자체를 넘어 배우가 노력해서 여백을 메꿔내야하는 건 아쉬웠는데, 유괴 넘버는 그저 알돈자를 노새끌이들이 점점 둘러싸고 압박하다가 암전되고, 그게 줄어든 시간만큼 알론조를 찾아오기 전에 알돈자의 깨달음을 넣든, 극적 효과를 위해서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설명적이 될지라도 알돈자가 왜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말하게 되었는지 계기를 확실히 말로라도 설명할 수 있게 추가되는 게 바뀌어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에이티브팀이 전부 남자라서 유괴씬 전보다 약해졌다는 게 이런 걸까 싶어서 공연 상세 정보를 보니 협력 연출 안정하 연출이 여성분이시긴 하던데.. 여성 연출의 노력으로 그게 줄어든 거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지금 시대에 과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수위라 그건 진짜.. 바뀌면 좋겠다. 굳이 알돈자의 입과 손을 묶고 그녀를 희롱하고 폭행하며 끌고 들어가는 장면을 그렇게 상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1막에 이미 알돈자는 노새끌이들에게 끊임없이 희롱당하고 있기도 하고, 이 땅의 여성 관객은 남자 떼거지가 한 여자를 밀폐된 장소에서 둘러싸는 것만으로도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에 대한 예상을 할 수 있는 삶을 지배하는 공포를 모두 공유하는데 굳이 그렇게나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남성 관객들은 그런 공포심을 모르니까 풀어내야 한다고 보기에는 어차피 남자라서 강간에 대한 공포심이 없어서 알돈자가 그런 일을 당하는 걸 아 슬픈 남일로 (슬프다고나 여기면 다행) 여길테니 더더욱 그렇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일 이유가 없다. 그 부분은 진짜 꼭 반드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어인 집시들의 안무 등도..그나마 이 극은 8세인 지킬보다는 높은 14세 이상 관람가이긴 한데, 굳이 중학생 이상이 봐도 된다 싶은 선정성은 아니라고 본다.

뭐 불호 부분 얘기도 썼지만 극은 정말 좋았고요. 배우들도 좀 무시무시하게 잘했고 괴로운 부분이 있었지만 좋은 이야기를 주파수가 잘 맞는 배우들로 만나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정말 많이요.

원래 호감 갖고 계신 본사분들은 말해뭐해고, 처음 뵌 분들인 단영 안토니아, 훈진산초, 인배 까라스코(는 이쇼에서 뵌 듯도 한데 극으로 본 게 아니니까ㅇㅇ)는 처음 만났는데 너무 좋았고 조성지 배우 피렐리로 뵈었을 때는 개그 욕심이 과하다 여겼는데 이번에는 딱 좋아서 진짜 배우들이 다 좋았다.

그리고 특히 훈진산초가 세르반테스가 무대를 통해 변론을 할 거라고 하며 분장을 준비하기 직전이었나 눈을 빛내는 그 순간에, 꿈을 쫓는 자와 그 꿈을 쫓는 자를 쫓으며 역시 꿈을 믿는 이의 순간이 화살처럼 마음에 박혀서 그 순간부터 바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 게 있어서 정말 그게 너무 좋았다

위에 주파수가 잘 맞는 배우들로 만났다고 써놨는데, 조승우 세르반테스와 김지현 알돈자에 대한 이야기이고, 두분 다 내 맘을 흔드는데 그 방식이 달라서 따로 또 같이 좋았다. 잘하는 것과 잘 맞는 건 다른데 두 분은 잘하시는데 심지어 나랑 잘 맞아. 그리고 심지어 이 극에서는 두 분이 내 마음을 움직이시는 방식과 인물 자체가 닮아있어서 더더욱 좋았다. 지현배우의 연기를 볼 때는 인물의 마음이 내 마음처럼 속을 파고들어서 마치 나같아서 울리는 감동을 받고, 승우배우의 연기를 볼 때는 그의 굳건한 심지가 나의 이상과 닮아있어 동경으로 벅차는 감동을 받는데, 그게 너무나 알돈자와 세르반테스 그 자체로 나에게 다가와서 정말 원래도 주파수가 잘 맞는 분들인데 너무나도 무서우리만치 역할 자체로 그들의 결이 나에게 딱 맞아서 정말 좋았다.

공연을 보면서 장면 단위로도 좋았던 부분을 쓰고 싶긴 했는데 아무래도 관극 직후가 아니라 그 부분들은 많이 휘발되었고, 그래도 다른 걸 몰라도 지현돈자가 돈키호테가 쓰러진 적들을 돌보러 간다는 것을 말리는 이유가 다면적이라는 게 드러난 부분은 써야지 싶어서 그거는 남기려한다.

그저 승리에 취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패배해 쓰러진 적들을 돌보는 자비까지가 기사도라며 노새끌이들을 만나러 가겠다는 돈키호테를 말리는 지현돈자의 가장 큰 목적은 돈키호테가 그 곳에 찾아가면 변을 당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겠지만 또 그의 자비에 대한 이야기로도 감동을 받아 자기 역시 그렇게 한 발 더 나아가 선을 베푸는 존재가 될 기회를 얻고 싶다는 희망도 있었을텐데, 그걸 진짜 너무 잘 표현해내셔서 그 뒤에 알돈자에게 이어질 가혹한 폭행을 미리 알면서도 그 순간이 너무.. 돈키호테를 위해서 희생하면서 또 스스로를 타인을 위할 수 있는 자라고 믿으려고 존중하기도 하는 지현돈자의 순간이 너무 뭉클하고 아름다웠다. 비록 그때 알돈자를 그렇게 혼자 보내는 돈키호테의 선택이 희망 찬 꿈에 빠져서 가혹하기도 한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는 선구자들의 패착 그 자체라, 꿈을 전한 자는 안전한데 꿈을 쫓고 실제로 행하려는 수행자들은 오히려 잔혹하게 현실에 유린당하는 고통스러운 폭력으로 연결되었던 거는 너무 가혹했지만, 앞에 이미 썼듯이 알돈자가 그렇게 꿈꾸기 시작하고 자신이 존중받아 마땅하고 남을 도울 수도 있는 인간임을 자각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건 정말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아 그리고 이것도 써야지. 세르반테스가 구석에 홀로 있던 여자 죄수에게 다가가서 그녀가 꼭 이 역을 해야한다고 한 이유를 분위기 그 자체로 표현해 내신 것도 너무 좋았다. 떠들석하게 모여서 세르반의 연극을 구경하는 사람들과 떨어져서 그런 웃음이 자신의 방호벽을 깨뜨리게 두지 않겠다는 듯 어둠 속에 숨어있던 그녀가 사실 누구보다 희망이 절실하기에 꿈꾸는 것 자체를 두려워할 인물임을 세르반테스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다가가는 설정일텐데, 그냥 그게 너무 와닿았고, 날선 보호막 속에 여린 희망을 세르반테스가 다가오기 전까지 나타내고, 함께 하겠냐는 세르반의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사실 변화를 꿈꾸는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해내는 게 진짜 그냥 너무 좋다. 난 지현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아.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럽게 나에게 흘러들어와서 머릿속으로 설명하지 않고 그냥 느끼게 된다.

조세르반이 정말 근소하게 그동안 봤던 조배우의 무대 필모 중 가장 좋아했던 헤드윅보다도 좋았는데 뭐랄까 이 극에 대한 감동이 그냥 조세르반 그 자체로 와서 어디가 어떻게 좋았다고 오히려 잘 못 쓰겠기도 하다. 그냥 너무 잘하고 그의 세르반테스가 숭고했다.

 

 

 

 

 

'공연 >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527 뮤지컬 드라큘라  (0) 2022.11.30
20210521 뮤지컬 포미니츠  (0) 2022.11.30
20210520 뮤지컬 포미니츠  (0) 2022.11.30
20210512 뮤지컬 팬텀 낮공  (0) 2022.11.30
210505 뮤지컬 팬텀 낮공  (0) 2022.11.30
20210425 연극 관부연락선 낮공  (0) 2022.11.29
20210415 뮤지컬 팬텀  (0) 2022.11.29
20210414 뮤지컬 팬텀 낮공  (0) 2022.11.29
20210409 뮤지컬 팬텀 낮공  (0) 2022.11.29
20210407 뮤지컬 팬텀 밤공  (0) 2022.11.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