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후기

20160402 뮤지컬 헤드윅 심야 공연

by All's 2016. 4. 3.


캐스트 - 조승우(헤드윅) 서문탁(이츠학) The Angry Inch(이준 서영도 조삼희 신석철 고경천)
공연장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진짜 내가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를 찾는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공연이었다.

헤드윅은 어릴 때 영화로 한 번 보고 리버뷰 버전은 못 봤기에 공연으로 만나는 헤드윅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공연으로 만난 헤드윅은, 흐릿하게 남아있던 영화 속 이야기와 다른 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내가 느꼈던 흐릿하지만 뭉클했던 어떤 기분이 아닌 더 많은 어떤 이야기, 혹은 메시지를 좀 더 뚜렷하게 주었고, 공연 보는 동안이랑 끝난 직후에는 걍 좋네-했는데 오히려 공연이 끝나고 기억과 감정을 곱씹을 수록 더 많은 감상을 주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고 처음부터 중후반부까지는 조드윅 오늘은 평소보다 애드립이 많은 편이 아니라던데도 개그가 많아서 영화로 접해서 익숙했던 넘버들이 나오는 중간에 '아 영화에서 이랬던 장면 사이에 이런 이야기를 하네. 근데 딴 얘기 진짜 많긴 하다ㅋㅋ 뭐 재미없지는 않다.' 이런 느낌 정도로 보고 있었다.

중간중간 뭉클한 다른 순간들도 있었지만 Hedwig`s Lament와 exquisite corps 사이의 어느 순간부터 뭔가 나에게 전해지는 공기가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의 감상이 이 날의 공연이 가슴 깊이 남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적당히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아있던 영화 속 헤드윅의 마지막의 인상은 '자유롭다.'정도였다. 지금보다도 꽤 어릴 때라서 이해도가 지금보다도 영 못한 게 컸던 것도 있겠지만, 또 이상한 게 이츠학이 여자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고 그걸 바라보는 헤드윅은 기억에 남았지만 그거에 앞선 헤드윅과 토미의 마지막이 머릿 속에 하나도 남아있지가 않았기에 앞선 순간부터의 이야기가 더 크고 좀 더 다르게 와닿았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헤드윅이 왜 내 이것까지 사랑해주지 않냐며 분노했던 건 기억나는데 그 뒤가 기억 속에서 싹 사라져있다. 그랬다가 이츠학이 다시 드랙퀸이 된 다음부터로 기억이 댕강 잘려있는 그런 상황. 나중에 영화도 다시 봐야겠다.)

오늘 공연에서 exquisite corps 전 독백으로 전하는 헤드윅과 토미의 첫 이별 전의 이야기와 가발과 옷을 모두 벗어던진 헤드윅으로의 연결과 그 모습 자체가 홀로 자기 자신으로 선다는 것의 무게처럼 다가왔다. 윅 인 더 박스에서 이름을 잃고, 루터에게도 버림받고, 트레일러에 홀로 남게 된 외로웠던 헤드윅이 가발과 메이크업, 여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뽐내는 순간, 그 누구보다 헤드윅이 아름다워졌던 만큼 가발과 드레스를 모두 벗은 날 것의 그 사람이 더 서글펐다.

그 모든 탈의가 왜 있는 그대로의 날 사랑해주지 않는 거냐며 토미에게 하던 이야기가 자기 스스로에게 한 것이었구나, 앞선 장면의 의미가 다르게 되돌아온 순간이었고 자유를 찾겠다며 헤드윅으로 다시 태어나 오히려 헤드윅 속에 갇혀있던 미치도록 외로웠던 소년 한셀이 뛰쳐나온 것 같아서 더 저릿했다. 자유를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로 자신의 이름을 잃고 그대로의 아름다움도 지키지 못 했던 한 가엾은, 자신이 가진 반쪽이 사랑받아도 될 지 믿어주지 못 했던 가엾은 사람이 다시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분장도 의상도 없이 어머니에게도, 남편에게도, 자신의 반쪽이라고 믿었던 첫사랑에게도 버림받았다고 절망하며 모든 껍질을 벗어 던졌던 사람이 자신이 버림받았다 여겼던 토미의 노래 속에서 설혹 그를 평생 품지는 않을 지라도 그 사람이 얼마나 그 자체를 사랑했고 아꼈음을 뒤늦게라도 알게 되는 과정이 신선했고 또 아름다웠다.

바로 그 위키드 리틀 타운 리프라이즈를 기점으로, 내면도 외면도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을 시작으로 모든 것의 경계선에 서있던 헤드윅이라는 존재가 토미를 위로하고 키웠고, 지친 그가 자신에게 기대려 했던 것이라는 이야기가 사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한 게 아니었던 헤드윅을 사랑했던 토미가 그를 위로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뒤집히는데, 좋았다. 굉장히.
그리고 그렇게 날 것의 모습으로, 당신을 아꼈다는 고백을 전해받은 헤드윅이 루터가 과거 한셀에게 강요한 잔인한 희생을 이츠학에게 물려주었던 과거를 딛고 진짜 자신을 찾으라며 이츠학에게 가발을 건네주는 것이 주는 무게와 메시지를 받으면서 그와 함께 진짜 자신을 찾게 되는 이야기의 완성까지도 좋았고 뭉클했다.

소울메이트라는 예전 시트콤을 참 많이 좋아했어서 이 날의 공연을 보기 전까지 헤드윅하면 떠올랐고 좋아했던 곡이 the origin of love 였는데 이제 헤드윅하면 위키드 리틀 타운이 떠오를 것 같다.

이 날의 공연을 보고 나서 얻은 소득은 내가 왜 조승우라는 배우를 뮤지컬 배우로서 좋아하는가 뒤늦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있다.
난 사실 노래에 신경쓰지 않는 타입이 절대 아니다. 노래를 잘하던가, 아니면 목소리가 좋던가 둘 중에 하나는 해줘야 극장 사이즈 구분없이 안 피하고 배우 보는 편인데 베르테르부터 헤드윅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목 상태가 영 좋지는 않은 조승우를 내가 왜 굳이 뮤지컬 배우로서 좋아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궁금했는데 어제 깨달았다.

난 자신이 공연하는 인물의 모든 행동과 대사, 독백, 노래 그 어느 구석에서도 조금의 빈틈도 없는 자기 해석을 꼭꼭 박아넣어서 자신이 극을 통해 만난 이야기를 남김없이 전하는 그의 치열함이 좋았던 거였다. 세상의 어느 배우가 그렇게 하지 않겠냐만, 그렇게 자신이 만든 극의 어느 한 구석 스스로 납득하지 않은 곳이 없을 듯 꽉 쥐고 극을 흔드는 조승우라는 배우의 자기 확신과 그렇게 전해주는 이야기가 특히나 내 마음에 직구로 확 꽂히는 그게 있는 것 같다.

좋게 보면 친절한 거고, 안 좋게 보면 설교에 가까울 수 있는 꽉 막힌 캐릭터 해석과 그 해석에 대한 조금의 오독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연기가 사실 재밌는 구석은 없는데,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거 자체가 부럽달까. 사이비 교주한테 빠지면 답도 없는 것처럼(그가 사이비 교주같이 무논리를 관철시킨다는 건 아니다ㅎㅎ) 내가 가는 길이 맞다는 그 강렬한 믿음 자체가 나에게 없는 부분이고, 그런 믿음이 개인적으로 부럽고, 그 만큼 확신에 차 있을 만큼 빈 구석 없이 붙들어놓는 집중력이 극 안의 서사와 인물이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게 극을 즐기는 입장에서 좋아서 내가 이 사람을 뮤지컬 배우로서 노래가 한참 아쉬운데도 좋구나 깨달았다. (일단 그 무대뽀로 밀어붙이는 인물해석이 취향과 엇나가지 않았으니 아직 싸우지 않은 거겠지만 또 그게 안 맞는 순간이 생기면 절대 안 보게 될 것도 같고..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어서...)

여튼 헤드윅은 참 좋았다.
오래 전 영화를 참으로 좋아했지만 공연으로서도 이 극이 왜 그렇게나 많이 사랑을 받았고, 조드윅이 주는 울림이 무엇인지 느꼈던 순간.
좋았다 참 많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