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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60414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by All's 2016. 4. 15.

 



캐스트 - 손진환(윌리 로먼), 예수정(린다 로먼), 이승주(비프 로먼), 박용우(해피 로먼), 이문수(찰리), 이형훈(버나드), 이화정(여자-윌리 정부), 이남희(벤), 유승락(하워드), 최주연(미스 포사이드), 민경은(스텔라-웨이터)
공연장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 트윗 감상

첫공이라 다들 조심하는 건지, 아님 의도된 리듬인 지 알 수 없으나, 다소 분절되고 늘어지던 1막과 달리 2막은 점점 끝을 향해 치달아가는 결말만큼 쫀쫀하게 극이 짜여지기 시작해서 실제 러닝타임에 비해 훨씬 짧은 체감 시간 안에 끝에 다다랐다. 1막이 배우들의 합이 조금 아쉬웠던 것 대신 극본 자체의 깔끔함을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면 2막이야말로 극과 배우들이 제대로 어우러지기 시작했다라는 기분이었고, 마지막 커튼콜에 다다를 쯤에는 그 완성도에 놀랐으니 아마 뒷 회차로 갈수록, 당장 내일만해도 극이 전달하는 묵직함이 남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첫공을 본 소감으로는 한 두 배우를 제외하면 극 자체의 무게에 조금 눌려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이미 그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는 분들이기에 아쉽기도하면서 기대가 되기도 하는 묘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섰다. 몸 사리지 않고, 겁 먹지 말고, 고민하지 말고 자기 알맹이를 믿고 몸을 던지기 시작하면 오늘만해도 이렇게 좋았으니 얼마나 좋겠어 싶은 그런 기분.

조금 돌려서 말했지만, 그냥 솔직히 말하면 진환배우님께서 조금 더 막무가내로 연기해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었다. 이런 걸 따지는 건 좀 못된 것 같지만.. 주연을 해낼 수 있을 에너지를 가진 배우와 그걸 아직 갖추지 못한 배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진환배우님의 오늘의 윌리는 주연으로서 제 몫을 분명히 해냈지만, 엠나비에서 극의 1/10의 도 안 되는 분량으로 나올 때도 자기만의 서사를 무리하지 않고 툭 던져놓던 그 분의 힘에 매번 감탄했던 입장에서는 왠지 힘이랄지, 긴장이랄지, 그런 약간은 아쉬운 기운이 느껴져서 조금 그게 그랬다. 훨씬 더 근사할 걸 아는 분인데 남들이 이게 이 분의 100%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싶음? 그 어깨 위에 얹혀진 듯한 애매한 무게가 평생을 허상 속을 헤매고 다닌 외롭고 진정으로 하찮은 윌리와 또 잘 어울리기는 했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지라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비슷하지만 또 다른 느낌으로 배우 본인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 건 승주배우. 뭐랄까, 참으로 좋아하는 이 배우에 대해서 그가 가진 외모와 분위기와 폭발력이라는 어마어마한 메리트가 매너리즘을 만들어낼 수 있는 패널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 엠나비의 르네, 유리동물원의 톰, 나는형제다의 형, 그리고 오늘의 비프 로먼까지. 사실은 하찮은 자신을 자의든, 타의든 인정하지 못 해서 빛나는 순간을 잃고 비극에 젖게 되는 이 인물들. 전부 다른 면과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배우 자체도 다르게 표현하는 면이 있지만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진 속성들, 그것에 대한 고민이 조금 된다. 찬란했다가 무너지든, 그냥 겉보기에는 괜찮으나 속은 하찮든.. 결국은 평범, 혹은 그 이하의 내피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지만 그 속과 진실을 들여다보기 전, 그저 무대에 등장한 배우 자체와 그 극 속 인물들이 그라는 배우와 인물과 마주치자마자 실재의 지질함을 상상할 수 없게 하는 우아한 청춘을 간직한 듯한 승주배우만의 고아한 외모와 분위기가 실제로 그가 지금처럼 젊은 동안 계속 무너지는 청춘을, 아님을 상상하고 싶지 않고 거부하고 싶게 만들 꿈같은 아름다움이라는 틀 속에 혹시 가두게 되지는 않을까..라는 어쩌면 너무나 의미없을, 하지만 한 배우를 오래 지켜보고 싶은 마음으로는 하게 되는 걱정을 불러 일으켰다. 타고남 자체가 저버릴 지 모르나 아름다운 청춘같은 인물이 지질함과 잔혹함을 본인의 힘으로 끌고갈 연기력도 가지고 있는데 누가 그 역에 그를 쓰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정말 잘 해내고 있고, 늘 잘 해낼 것일지라도 그게 과연 좋기만 한 걸까. 필연적으로 닥칠 수 밖에 없는 시간의 흐름이 그에게서 그 하얗고 우아한 청춘의 아름다움 대신 다른 걸 그려넣었을 때 그 다른 그림을 사람들이 보려고 할까. 혹은 그려넣을 수 있을까. 그런 어마어마하게 실례일수도 있는 생각을 했다. 만약 오늘의 비프 이후에 그가 한동안 지금의 고유한 메리트에 부합하는 역을 하지 않는다면, 아마 그를 통해 100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제작진에게는 비극이겠지만 그게 이승주라는 배우 개인에게는 비극이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사람이 잘하고 어울리는 걸 소화해낼 수 있는 동안 하는 건 나쁜 게 아니고, 어쩌면 그런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는 건 특권에 가까울 수 있지만.. 아직 어리고 걱정이 많은 내 마음은 오늘의 비프를 보며 그런 과한 걱정을.. 했다.

극 자체와 꼭 상관없는 배우 이야기를 잔뜩 했지만, 극에 집중할 수 없어서 배우만 본 게 아니라 차갑고 냉소적이며 가슴을 후벼파는 잔인한 극의 적재적소에 배우들을 매우 잘 배치했기에 배우들이 생생하게 보여서 극과 배우에 대한 생각을 모두 할 수 있을만큼 잘 짜여진 극이었다. (스포) 주변을 꽉 애워싼 아파트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찬란했던 거짓 과거에 집착하는 윌리 로먼 그 자체를 상징하는 2층 주택을 무대 자체로 조여들 때의 숨막히는 잔혹함을 상징했다면, 정말 열어젖히기 전까지는 그 흔적도 찾기 힘들만큼 견고하게 숨겨져있다가 역시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들어진 윌리의 과거 보스턴 호텔의 문은 그 티없음으로 이 장면이 윌리의 머릿 속 회상 그 자체임을 드러냈다. 검증된 고전은 시대를 타지 않는 통찰력있는 메시지를 가진 대신 그 이야기를 연출하는 방식이 너무 새로우면 이야기와 연출이 겉돌고, 너무 고민이 없으면 지루해서 또 이야기가 와닿지 않는데, 한태숙 연출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2016년의 관객이 이 극본의 시대 배경을 그대로 만나면서도 촌스럽지 않다 여길 수 있는 적정선에서 그 이야기가 전하는 현 시대까지도 이어지는 비극을 잔혹하게 그려냈기에 그 말하려는 바를 나의 미흡한 이해력으로도 잘 전달받을 수 있었다.

찬란하게 펼쳐질 것이라고 믿었던 자신과 가족의 미래가 사실 아무 알맹이도 없고, 뿌리박아 결실을 맺을 시작이 될 씨앗조차 없을 허상 위에 세워진 허세 덩어리라는 것을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 아들들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 어느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진실을 마주하지 못했던 나약한 인간이었던 윌리. 그리고 바로 그 윌리의 모습을 통해 진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돌아보지 못 하고 인정하지 못 할 때, 내가 사실 중요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 하는 것이 진짜 자신을 버리게 만들 수 있음을 잔인하리만치 냉소적으로 그려내서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위대할 수 없고, 그 위대한 사람이 자신일 수 없지만 사실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고 싶은 인간의 나약함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지 알려준 극이었고, 꾸밈없이 있는 그래도 그 이야기를 전하기에 더 절절하게 와닿았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 좋은 사람의 외피를 만들어 보이고 싶었기에 사는 동안 가정에서 진실은 소거되었고, 온전한 형태일 때는 금방 사라지고 할부가 끝나기도 전에 망가진 온갖 싸구려 물품들처럼 생을 다하기도 전에 망가져버린 가엾은 사람의 죽음이 뼈아픈 진실을 마주한 비프가 진짜 자신을 낱낱이 내보이고 어쩌면 생의 처음으로 가엾은 아비와 자신을 함께 끌어안으면서 전한 진실의 잔혹함에 대한 회피 그 자체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렸다. 1막에서 느낀 미묘한 루즈함이 마음에 걸려서 기립은 하지 않았지만, 며칠 안가 기립 인증 후기들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다.

오피도 1열도 아닌 어중간한 앞열이었고, 대극장 고전 연극답게 단관과 초대권 관객 등 관크를 예상할 수 있을 분위기의 관람객들이 꽤나 곳곳에 있었는데 어르신 몇 분의 기침을 제외하면 나의 걱정이 부끄러울만큼 객석의 관객 대부분이 극에 사로잡혔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첫 공연이 만들어낸 힘이 이만큼이라니 감탄스러울 정도였고, 통장과의 타협으로 자첫자막 할 예정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몇 주 뒤 또 관극해 이 극이 농익은 순간의 일부이고 싶던 만족스러운 관극이었다.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냥 꼭 보셨으면 좋겠다. 어려울 것이 걱정된다면 위키백과에 나온 정도의 해설을 읽고 결말을 알고 봐도 좋을 것 같을 만큼 결과보다 과정이 근사한 극이었다. 매우 매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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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 커뮤 감상

캐스트 - 손진환(윌리 로먼), 예수정(린다 로먼), 이승주(비프 로먼), 박용우(해피 로먼), 이문수(찰리), 이형훈(버나드),
이화정(여자-윌리 정부), 이남희(벤), 유승락(하워드), 최주연(미스 포사이드), 민경은(스텔라-웨이터)

딱히 스포 여부 상관없이 봐도 문제 없을 것 같은 극이었지만 자첫자막인데 줄거리 상세 설명을 제끼고 감상에 가까운 후기를 남길 예정이라 홈페이지 줄거리를 띡 던져놓고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마지막 엔딩과 그와 관련된 스포를 수기로 적어놓겠습니다.

<줄거리>
삼십년 넘게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윌리는 그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 자기 자신이 먼저 매력적으로 보여야만 한다. 하지만 그와 그의 아내는 하루하루가 지날 수록 늙어가고 있다. 그리고 집을 떠나 자신들의 길을 펼치고 있어야 할 두 아들은 냉혹한 현실에 허덕이며 그를 절망시킨다. 윌리는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그는 벼랑 끝에서 과거로 피신한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성공과 부를 바라보며 기회가 넘쳤던 그때 그 시절로...

<그리고 이건 스포>
현실, 진실, 진짜 자신을 볼 수 없으며, 보고 싶지도 않아하고 반짝이던 옛 시절에 매몰된 늙은 세일즈맨 윌리 로먼의 이야기로, 그가 마지막 희망이자 자신이 믿는 옛 영광의 상징과 같은 장남 비프가 윌리가 믿고 싶어하는 비프란 없고 진짜 비프는 얼마나 볼품없고 가짜인지 털어놓고 진짜가 되자고 이야기함에도 결국 평생을 바쳐서 만들고자 했던 자신의 욕망 속 영광의 자신, 허상이고 허풍이나 믿고 싶은 스스로의 상을 버리지 못해서 비프를 빛나게 만들 사업 자금을 만들어주겠다는 변명과 함께 자살하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였어.

극 자체와 꼭 상관없는 배우 이야기를 뒤에 잔뜩 할 예정인데 극에 집중할 수 없어서 배우만 본 게 아니라 차갑고 냉소적이며 가슴을 후벼파는 잔인한 극의 적재적소에 배우들을 매우 잘 배치했기에 배우들이 생생하게 보여서 극과 배우에 대한 생각을 모두 할 수 있을만큼 잘 짜여진 극이었어서 오히려 그렇게 되었어. 그래서 일단 배우 관련 딴 얘기 전에 극 얘기만 하자면, 무대가 아주 직관적이고 매우 근사했어. 중심부에는 로먼 부부의 2층 주택이 놓여져있고, 그 주변을 벽톨처럼 생긴 아파트가 둘러싼 구조인데 보기에도 깔끔하고 이용도도 아주 깔끔합니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찬란했던 거짓 과거에 집착하는 윌리 로먼 그 자체를 상징하는 2층 주택을 1막 마지막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아파트들이 가운데로 모아지면서 무대 자체로 조여들 때의 숨막히는 잔혹함도 아주 좋았고, 정말 열어젖히기 전까지는 그 흔적도 찾기 힘들만큼 견고하게 숨겨져있다가 역시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들어진 윌리의 과거 보스턴 호텔의 문은 그 티없음으로 이 장면이 윌리의 머릿 속 회상 그 자체임을 드러내는 등 모양도 활용도도 좋았어.

한태숙 연출이야 워낙 잘 하시는 분 맞다만 고전극을 올릴 때 생길 수 있는 원형 유지와 현대적 리듬 사이의 정도를 적절히 잘 유지해서 좋았어. 검증된 고전은 시대를 타지 않는 통찰력있는 메시지를 가진 대신 그 이야기를 연출하는 방식이 너무 새로우면 이야기와 연출이 겉돌고, 너무 고민이 없으면 지루해서 또 이야기가 와닿지 않잖아. 근데 이 극은 딱 2016년의 관객이 이 극본의 시대 배경을 그대로 만나면서도 촌스럽지 않다 여길 수 있는 적정선이었고, 그래서 그 이야기가 전하는, 극이 씌여진 시점은 물론 현 시대까지도 이어지는 비극이 낯설지 않으면서 옛스러운 느낌으로 생생하게 그려졌기에 그 말하려는 바를 고전을 잘 모르며 미흡히기도 한 내 이해력으로도 잘 전달받을 수 있었어.

찬란하게 펼쳐질 것이라고 믿었던 자신과 가족의 미래가 사실 아무 알맹이도 없고, 뿌리박아 결실을 맺을 시작이 될 씨앗, 근본조차 없을 허상 위에 세워진 허세 덩어리라는 것을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 아들들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 어느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진실을 마주하지 못했던 나약한 인간이었던 윌리의 일대기는 잔인하더라. 바로 그 윌리의 모습을 통해 진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돌아보지 못 하고 인정하지 못 할 때, 내가 사실 중요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 하는 것이 진짜 자신을 버리게 만들 수 있음을 잔인하리만치 냉소적으로 그려내서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팠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위대할 수 없고, 그 위대한 사람이 자신일 수 없지만 사실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고 싶은 인간의 나약함이 잘 드러났고,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지를 알려준 극이었고,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그 이야기를 전하기에 더 절절했어.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 좋은 사람의 외피를 만들어 보이고 싶었기에 사는 동안 가정에서 진실은 소거되었고, 온전한 형태일 때는 금방 사라지고 할부가 끝나기도 전에 망가진 온갖 싸구려 물품들처럼 생을 다하기도 전에 망가져버린 가엾은 사람의 죽음이 뼈아픈 진실을 마주한 비프가 진짜 자신을 낱낱이 내보이고 어쩌면 생의 처음으로 가엾은 아비와 자신을 함께 끌어안으면서 전한 진실의 잔혹함에 대한 회피 그 자체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리더라. 1막과 2막 중 1막에 미묘한 루즈함이 마음에 걸려서 기립은 하지 않았지만, 며칠 안가 기립 인증 후기들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을 만큼 여운이 좋아.

오피는 목 아플까봐, 1열은 오피 사람들 머리에 가릴까봐 3열로 갔는데 시야는 딱 좋았어. 표정이 궁금해서 더 가까이 가고 싶기도 했지만 베스트 뷰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튼 1열도 아닌 3열, 어중간한 앞열이다보니 대극장 고전 연극답게 단관과 초대권 관객 등 관크를 예상할 수 있을 분위기의 관람객들이 꽤나 곳곳에 있었는데 어르신 몇 분의 기침을 제외하면 나의 걱정이 부끄러울만큼 객석의 관객 대부분이 극에 사로잡혔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첫 공연이 만들어낸 힘이 이만큼이라니 감탄스러울 정도였고, 통장과의 타협으로 자첫자막 할 예정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몇 주 뒤 또 관극해 이 극이 농익은 순간의 일부이고 싶던 만족스러운 관극이었으니 한태숙 연출의 지난 작품들과 세계대전 치뤘고 보기 싫은 배우들 나오는 거 아닌 상황인데 이 극을 볼까말까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냥 보는 거 추천. 난 한 번 보고 말 건데 이해 못 할까봐 위키백과에 나온 정도의 해설도 좀 읽었고 그래서 결말을 알고 봤지만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극이었어서 영향을 받지 않았고, 사실 나처럼 고전 이해 못할까봐 걱정될 수준의 이해력을 가진 횐님들 안 계실 거잖아요? 그냥 뭐 다른 거 안 보고 그냥 가서 훅 봐도 이해 잘 될 거라고 생각해. 극본이며 연출이며 다 명료했고 꼬는 거 없이 깔끔해서 좋았어.

이제 극 얘기 대충 끝냈으니 앞에 쓴 배우 얘기해야지...

첫공이라 다들 조심하는 건지, 아님 의도된 리듬인 지 알 수 없으나, 1막인 2막에 비해 다소 분절되고 늘어져. 대신 2막은 점점 끝을 향해 치달아가는 결말만큼 쫀쫀하게 극이 짜여지기 시작해서 실제 러닝타임에 비해 훨씬 짧은 체감 시간 안에 끝에 다다랐다.(1막 60분 2막 95분) 1막이 배우들의 합이 조금 아쉬웠던 것 대신 극본 자체의 깔끔함을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면 2막이야말로 극과 배우들이 제대로 어우러지기 시작했다라는 기분이었고, 마지막 커튼콜에 다다를 쯤에는 그 완성도에 놀랐으니 아마 뒷 회차로 갈수록, 당장 내일만해도 극이 전달하는 묵직함이 남달라질 것 같아. 사실 첫공을 본 소감으로는 한 두 배우를 제외하면 극 자체의 무게에 조금 눌려있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 좀 본인 쪼를 너무 그대로 가지고 가는 배우들도 있어서 이미 안면이 익은 배우들 중 식상함을 선사한 인물들도 있다만 그래서 연기를 못 하냐 하면.. 주요 인물들은 차남빼고 일정 수준 이상이고 단역들은 거슬리나 못 볼 수준은 아니었어.

극이 주는 무게에 눌린 것 같던 분은 원래 참 잘하고 좋다고 생각한 분이라 아쉽기도 하면서 나중에 잘하시겠지하고 기대가 되기도 했어. 그게 바로 오늘의 히어로인 윌리 로먼 역의 손진환배우님인 게 함정아닌 함정이지만ㅋㅋ 진환쌤이 조금 더 막무가내로 연기해주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런 걸 따지는 건 좀 못된 것 같지만.. 주연을 해낼 수 있을 에너지를 가진 배우와 그걸 아직 갖추지 못한 배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진환쌤의 오늘 주연으로서 제 몫을 분명히 해내셨지만, 내가 그 분을 처음 봤던 엠나비를 시작으로 몇 번을 무대에서 만날 때 적게 나올 때도 자기만의 서사를 무리하지 않고 툭 던져놓던 자체의 힘에 매번 감탄했던 입장에서는 왠지 힘이랄지, 긴장이랄지, 그런 약간은 아쉬운 기운이 느껴져서 조금 그게 그랬어.

훨씬 더 근사할 걸 아는 분인데 남들이 이게 이 분의 100%라 생각하면서 괜찮다고 생각할 거라 생각하니 아쉬운 그런 기분? 지금 그 어깨 위에 한태숙 연출,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아서 밀러 작의 주역이라니 등이 얹혀진 듯한 애매한 무게가 평생을 허상 속을 헤매고 다닌 외롭고 진정으로 하찮은 윌리와 또 잘 어울리기는 했는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지라 좀 걱정 부담 떨치고 멍석 깔린 김에 자기 판 벌리셨으면 좋겠다 그랬음.

이제 진짜 극 감상과는 상관없는 딴 얘기로 넘어가면, 오늘 이승주 배우를 보는데 기분이 참 묘하고 괜히 걱정도 되고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왜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랬어.
난 이승주 배우를 참 좋아해. 작년 6월 초 그의 엠버터플라이 막공을 본 뒤에 나 진짜 뭔가 나중에 대배우가 될 사람의 과거에 있는 걸지도 몰라,라고 생각할만큼 그 특유의 쪼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큰 에너지를 받을 만큼 기대하고 지켜보는 배우임. 그런데 뭐랄까, 참으로 좋아하는 이 배우에 대해서 그가 가진 외모와 분위기와 폭발력이라는 어마어마한 메리트가 매너리즘을 만들어낼 수 있는 패널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오늘 들었어.

엠나비의 르네, 유리동물원의 톰, 나는형제다의 형, 그리고 오늘의 비프 로먼까지. 사실은 하찮은 자신을 자의든, 타의든 인정하지 못 해서 빛나는 순간을 잃고 비극에 젖게 되는 인물들의 반복 같아서 보는 내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엄밀히 따지면 전부 다른 면과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고, 배우 자체도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열심히 연기하고 구분이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진 속성이 현재의 본인과 너무 잘 어울려서 본인 앞길 막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

찬란했다가 무너지든, 그냥 겉보기에는 괜찮으나 속은 하찮든.. 결국은 평범, 혹은 그 이하의 내피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지만 그 속과 진실을 들여다보기 전, 그저 무대에 등장한 배우 자체와 그 극 속 인물들이 그라는 배우와 인물과 마주치자마자 실재의 지질함을 상상할 수 없게 하는 우아한 청춘을 간직한 듯한 배우 개인의 고아한 외모와 분위기가 실제로 그가 지금처럼 젊은 동안에는 계속 무너지는 청춘을, 아님을 상상하고 싶지 않고 거부하고 싶게 만들 꿈같은 아름다움이라는 틀 속에 혹시 가두게 되지는 않을까..라는 어쩌면 너무나 의미없을, 하지만 한 배우를 오래 지켜보고 싶은 마음으로는 하게 되는 걱정을 불러 일으키더라고.

생긴 거 어울리고 연기력도 나쁘지 않고, 연극배우 치고 팬덤도 있는데 기왕 위에 쓴 것 같은 역할이 극에 있을 때 누가 그 역에 그를 쓰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서 지금처럼 비슷한 역을 줄줄이 맡게 되는 걸거고, 그게 이름 있는 극들이니 필모로는 나쁜 게 아닐테고, 결과물로 볼 때 본인이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은 몰라도 결과적으로 그게 과연 좋기만 한 걸까. 계속 이래도 되나 생각했어. 필연적으로 시간이 흐르면 30대 중반인 현재까지는 간직하고 있는 젊은 이승주의 아름다움은 시들고 다른 분위기가 생길텐데, 그 다른 분위기의 그림을 사람들이 보려고 할까. 혹은 이렇게 비슷한 인물 위주로 가는데 다른 이미지를 스스로의 속에 그려넣을 수는 있을까. 그런 어마어마하게 실례일수도 있고 쓸모도 없는 생각이 극을 보는 내내 들었어. 만약 오늘의 비프 이후에 그가 한동안 지금의 고유한 메리트에 부합하는 역을 하지 않는다면, 아마 그를 통해 예상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제작진에게는 비극이겠지만 그게 이승주라는 배우 개인에게는 비극이 아니지 않을까 싶더라고. 사람이 잘하고 어울리는 걸 소화해낼 수 있는 동안 하는 건 나쁜 게 아니고, 어쩌면 그런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는 건 특권에 가까울 수 있지만.. 이승주 배우가 최소한 차차차기작까지는 지금 같은 역은 안 했으면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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