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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60324 뮤지컬 thrill me

by All's 2016. 3. 25.

 

캐스트 - 정욱진(나), 정동화(그), 이광호(피아니스트)
공연장 - 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올 시즌 내가 봤거나 보게 될 쓰릴미에서 오늘만큼 재밌을 수 있을 날이 또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자문자답하게 될 만큼 재밌었던 공연이었다. 넘버 가사 어느 한 구절도 비는 구석없이 완전히 의미를 담았고 스피디하고 알차고 아주 좋았다.

쓰릴미라는 극이 배우에게 이렇게 온전히 휘둘리는 걸 짧은 관극 인생에서 진짜 처음 본 것 같다. 서로의 인물을 어쩜 이렇게 딱 맞춰놓을 수 있지? 오늘 쓰릴미 정말정말 재밌었다. 정말 돌아가는 모든 일들을 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나와 그런 나를 자신을 위해 이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는 그의 몸부림. 원래 평소에 좋아하던 노선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서사가 잘 맞고 인물들이 팽팽하게 극을 꾸려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진짜 좋았다.

오늘 만난 동화리차드는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매몰된 실은 조금 똘똘한 범재 정도의 인물.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고 범죄나 살인, 네이슨과의 동성애적 관계 역시 특별한 '나'라는 자아도취에 빠지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 리차드를 굉장히 좋아하고 귀여워하는 욱진네이슨은 그런 리차드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그를 따르는 척하고 수동적인 듯 굴지만, 사실 이 관계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이 리차드가 아니라 네이슨이라는 건 리차드와 네이슨 모두 알고 있는 사실.

리차드는 네이슨에게 은근히 휘둘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계의 키를 쥐어 자신의 뜻대로 넷을 움직이기 위해 일부러 넷을 떠났다가 돌아왔지만, 그 모든 게 넷의 눈에는 훤히 보였고, 넷은 리차드를 정말 예뻐하니까 그 반항아닌 반항도 귀엽게 봐주고 넘긴 것 같았다. 사실 마음대로 학교를 옮겼다가 1년 만에 리차드가 네이슨을 다시 찾아온 것도 그가 모르는 사이 넷이 뒤에서 리차드가 잘 지낼 수 없게 몰아놓은 것도 있을 것 같을 정도로 그를 손바닥 안에 휘두르는 넷이었다. 그렇지만 떠나있는 동안 생각보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돌아온 리차드는 처음부터 살인, 혹은 첫 살인 이후 동생을 죽이고 유일하게 특별하고 사랑받는 내가 되는 플랜을 세웠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유능하고 영민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네이슨을 이용하기 위해 그 앞의 수많은 범죄들을 저지른 것 같았다.

네이슨은 그렇게 자신을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리고, 큰 선심이라도 쓰는 듯 계약서를 쓰겠다며 뻗대는 리차드가 하는 짓이 귀여워서 장단을 맞춰주었는데 리차드와 하게 되는 범죄들이 모럴에 상처를 주기에는 이 쪽은 정말 그런 쪽에 가책을 느낄 수 없는 싸이코 패스, 혹은 소시오패스 느낌. 범죄를 말리거나 조심하자고 하는 이유는 혹시 들통났을 때 귀찮아지는 것이 싫어서. 그런 네이슨의 속내까지는 몰랐을 지언정 리차드는 일단 네이슨과 함께 살인을 하는 것이 최종 플랜이었기에 쓰릴 미 전까지 최선을 다해서 네이슨을 약올리고 달아오르게 한 뒤 관계 뒤 경계가 풀어진 네이슨을 드디어 원하는 대로 살인을 공모하게 만드는 덫을 놓는 거에 성공했다. 그전까지 팽팽하게 맞서기는 했으나 네이슨에게 더 확실하게 쏠려있던 힘의 균형은 그렇게 더 플랜을 시작으로 웨이 투 파까지는 잠시 리차드에게 기울었고, 한 번 고삐를 놓쳤다가 순식간에 원치 않는 일까지 발을 뺄 수 없을 만큼 휘말려 가는 것에 당황하고 휘청이는 힘의 균형의 붕괴가 짜릿했다.

하지만 네이슨은 그렇게 승리감에 도취되어 자신을 휘두르려 하는 리차드를 제어하기 위해 그렇게 자신을 그가 휘두를 수 없게 유괴 살인 공모자이라는 사슬에 매이게 두지 않고, 안경을 떨어트림으로서(사실 이때까지는 떨어트린 척만 하고 나중에 가져다 놓았을 지도) 그가 자수하는 방향으로 몰아 그 핑계로 더이상 자신을 휘두를 수 없게 힘의 방향을 되돌리려 했다. 아무리 사랑하고 예뻐하는 존재일지라도 그 존재가 자신을 휘두르게 두는 걸 용납하지는 않는 포식자의 잔혹함과 비틀린 애정, 손 안에 놀려고 하지 않고 지나치게 엇나가려는 리차드를 감옥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라도 잠재우려는 단호함 또한 진짜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그런 네이슨의의 깊은 꿍꿍이는 모른 채 그의 영민함과 자신을 향한 애정만을 알고 있던 리차드는 완벽했다 믿었던 계획이 무너져가는 것에 놀라고 당황해 결국 자신의 마지막 계획을 취소하고 네이슨을 떠나는 것으로 자기 몸을 보호하려고 했지만, 애초에 자신을 가지기 위해 네이슨이 평소에 얼마나 스스로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리차드가 믿고 싶은 모습을 연기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상황에서 그런 리차드의 선택은 그가 정말 자신을 떠날 것을 확신한 리차드에게 분노한 네이슨이 리차드를 철저히 무너트릴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비틀렸을 지언 정 집요하리만치 리차드를 아끼고 그에게 관대한 네이슨은 결국 자신에게 매달리는 리차드의 모습에 그를 혼자 가둬두는 것으로 징벌하는 대신 함께 갇히는 것으로 그 분노의 방향을 틀었고, 그런 네이슨에게 라이플에서 자신이 십수년에 걸쳐 속아왔음을 깨닫고 무너지는 리차드와 그렇게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이며 그를 몰아가는 네이슨의 모습이 주는 파괴력에 정말 오랜만에 라이플에서 그 긴장감에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그렇게 팽팽했던 라이플이었는데 그 라이플 이후에는 또 리차드가 온전히 네이슨의 기억 속의 리차드로 등장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그저 네이슨의 이야기로 완결된 것까지 완전했다.

오늘의 쓰릴미는 이 극을 여는 시작과 끝이 네이슨의 가석방 심의라는 것에서 드러나는 그의 과거 회상이라는 것을 인물이 가지는 압도감과 장악력으로도 표현했는데, 그렇게 네이슨이 리차드의 머리 꼭대기 위에 서있는 욱진넷의 인물 해석에 맞추기 위해 극 안에서의 존재감이 최종적으로 네이슨을 이기지 않기 위해 자신이 가진 인물의 힘을 조절하는 동화리차드의 절제도 좋았고, 그렇게 차려진 밥상을 완전하게 챙겨먹어서 이 극이 네이슨의 이야기라는 걸 확고하게 만들어낸 욱진네이슨의 패기도 좋았다. 그리고 순정노선의 네이슨이라는 것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 하나를 오늘 욱진넷이 깨줘서 또 신선하고 좋았다. 싸패이지만 순정인 네이슨은 이런 식일수도 있구나. 싶었다. 리차드를 정말 아끼고 예뻐하지만 그 사랑의 방식과 타고난 감정의 온도가 조금도 아가페적일 수 없는 모든 게 자기 위주인 차갑고 지독한 애정이라니. 아.. 정말 재밌었다ㅜ

사실 오늘의 욱진넷도 동화리차드 둘 다 인물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는 내가 딱히 좋아하지 않는 방식의 표정 구사나 몸짓 등이 조금씩은 있었는데, 둘이 잡아서 보여주는 인물이 꼼꼼하고 서로 아주 잘 들어맞고 넘버와 대사 속에서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다 꼼꼼히 챙겨서 맥락에 맞게 의미를 부여했기에 취향에 안 맞는 부분을 정말 쿨하게 스킵할 수 있을 만큼 재밌었다. 네이슨이 결국 언제나 우위에 서 있었을 지언정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팽팽하게 벌이는 기싸움에 극이 늘어지지 않고 스피디하게 진행되었는데 심지어 얼개도 완전했으니 어떻게 재미없을 수가 있겠나.

둘의 노래와 연기력을 오늘의 즐거움을 좀 미뤄놓고 생각하자면 둘 다 노선이 확고한 만큼이나 직접적으로 그 생각들을 표현하기에 취향이 아닌 사람들 눈에는 과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고, 나도 연기 스타일 자체까지 모두 오늘 내 취향이었다고 싶지는 않지만 생각하는 거 제대로 표현 못 해서 이도저도 아닌 극을 내놓을 바에야 강력하고 확실하게 메시지를 전해주는 게 더 좋았고, 또 이 둘이 서로 애절하고 달달한 노선이 아니기에 스킨쉽이나 애교가 많다해도 감정적으로 과잉되는 건 또 없어서 극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노래는 동화배우 특유의 고음에서 생기는 바이브레이션이 싫다면 그의 리차드가 싫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으나 욱진네이슨 목소리가 담백하고 발성이 깔끔해서 또 둘의 목소리합이 좋아서 이번에 왜 본페어인지 알아서 납득이 되기도 했다.

연출이 너무 변화가 없고 그래서 미치도록 지루하기에 이번 시즌 쓰릴미를 보면서 내가 새로운 인물들이 전달하는 다른 노선들을 살펴보는 것 말고 극 자체에서오는 긴장감과 팽팽함에 재미를 느끼지는 못할 거라고 자첫 때 생각했는데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뒤통수를 쳐줘서 오늘의 두 배우에게 정말 고마웠다.

피아노는 오늘의 피아노도 그렇게 잘 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 사이에 연습이 되었든 아니든 저번 원피보다는 오늘의 광호 피아니스트가 미스터치도 적고(없지 않음. 적을 뿐) 멜로디 자체도 뭉개지 않고 유려하게 구사하는 부분이 조금이지만 더 있어서 그나마 또 조금 더 나았다.

시즌같은 거 따지지 않고 내가 본 인물들이 잡았던 쓰릴미 내의 캐릭터성을 따졌을 때 가장 내 취향의 네이슨과 리차드는 영민하나 사랑에 무너져 절절한 성우네이슨과 이달 11일에 보았던 참으로 싸하고 고고하고 이기적인 병근리차드였지만, 원래 취향 밖의 해석이라도 이렇게만 잘 해내면 어떻게 재미가 없을 수 있겠나. 계속 하는 말이지만 오늘의 쓰릴미는 정말정말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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