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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60323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밤공

by All's 2016. 3. 24.

 


캐스트 - 박영수(윤동주), 김도빈(송몽규), 조풍래(강처중), 김용한(정병욱), 하선진(이선화) 외 서울예술단 단원
공연장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캐스팅 보드가 선화 개인 말고 따로 없어서 예매 사이트 상세 정보 캡쳐!

윤동주의 시는 학교에서 교과서에 있는 정도 밖에 잘 모른다.
역사를 잘 모른다는 걸 고백하는 건 늘 부끄럽지만 그래도 원래 아는 척을 할 수 없으니 쓰게 되는 부끄러움.
게다가 「별 헤는 밤」이라는 시는 윤동주의 시를 읽고 들어본 것 중에서 가장 좋아함에도 사실 그 의미를 잘 몰랐었다.
어렸을 때 컴퓨터에 기본으로 깔려있는 한글 타자 연습에서 참 고운 말들이 많아 뜻도 생각지 않고 무작정 좋아하던 게 이어졌었는데, 오늘 윤동주, 별을 쏘다를 보면서 「별 헤는 밤」이라는 시를 이제야 좀 제대로 듣고야 만 것 같았다.

윤동주, 달을 쏘다를 기다리는 서예단 팬들이 많아서 참 궁금했던 극이라 요즘 관극을 줄이고 싶었고, 최근 보았던 서예단의 극인 잃어버린 얼굴 1894와 뿌리깊은 나무가 크게 취향이 아님에도 보고 온 건데 왜 많은 이들이 기다렸는 지 참으로 알 것 같았다. 1막에서 2막이 한참 지날 때까지는 극 자체의 구성이나 그런 건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그다지 재밌지도 않네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다섯 손가락을 살짝 넘게 서예단 공연들을 보다보니 연출이 달라진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같이 끌고 가는 스타일의 유사성이 지겹기도 하고, 시를 쓴다는 것이라는 넘버는 또 너무 뿌리깊은 나무의 넘버 중 합창 넘버와 비슷한 구석이 있기도 해서 아무리 같은 집단에서 만드는 공연이지만 너무 매너리즘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잃어버린 얼굴을 보면서 가졌던 아쉬움이자 짜증이 좀 날 뻔 했었다. 게다가 좀 만들어진 지 오래되기도 해서 약간 올드하게 지루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다른 생각을 해가며 집중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메시지는 좋은 것 같지만 내 취향 아니야 하고 보내버릴 것이라 생각했던 극이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오'부터 모든 한 마디들이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서 마음을 치기 시작했다. 너무 뻔하다 생각했던 극의 이야기와 그 속의 윤동주가 나라를 사랑하나 사랑도 하고프고, 맞서 싸우고 싶지만 사실은 겁이 나고, 행복해지고 싶으나 행복이 부끄럽고, 살아있는 자신이 부끄러우나 살아있고 싶고 나의 사람들, 나의 세상, 나의 조국을 지키고 싶은 그 시절의 수많았을 젊은이들의 고뇌와 슬픔을 같이 가지고 살던 한 청년이 그냥 한 사람이 아님에, 오직 한 사람이 아님에 눈물이 났다.

잃어버린 얼굴처럼 다각도로 보여주려다가 애매한 끝을 내는 건가라고 극을 끝까지 보지도 않고서 가졌던 색안경은 한 청년이자 시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 그 시절 젊은이, 그 시대의 사람들, 또한 그걸 넘어선 지금의 우리의 번뇌와 슬픔을 온전히 올곧게 참으로 성실히 그려놓은 그 아름다움에 무너져 내렸다. 지금도 끝나지 않고 다른 형태와 주제로 반복되는 아픔을 그려놓은, 윤동주 달을 쏘다만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게 참으로 좋았다.

그 시대는 독립 운동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혹은 어떻게 하느냐가 부끄러움이었다면 요즘 우리 시대의 부끄러움은 다른 이야기겠지.
촌스럽고 어거지로 주입되던 옛 사람들, 혹은 웃어른들의 고뇌와 상처와 고통과 부끄러움이 그때만 있던 것이 아니며 전해지는 것이고, 그렇게 그 아픔을 공감의 감정으로 전달받은 게 참으로 좋은 시간이었다.

극 자체로 생각하면 바람의 나라 무휼편이 그러했듯이 재관람도 다르고 다관람을 할수록 더욱더 좋아질 것이지만 첫 관람으로는 조금 지루하고 심심한 극이었다.
허나 위에 쓴 것과 같이 처음에 지루한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극의 이야기가 모여서 전달되는 큰 메시지가 있는 극이라는 건 참으로 근사하지 않은가. 다관람을 할수록 더 좋아지겠지만 한 번만 보고 싶은 사람들도 한 번을 보고 나중에 그때 볼 걸 그랬다..하고 후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윤동주를 나에게 전해준 서울예술단의 배우들 중 주인공인 박영수배우는 좋았다가 싸웠다가 좋았다가 그냥 그랬다가를 반복하는 배우인데 오늘의 그는 정말 너무나 좋았다.
처음 쓰릴미에서 네이슨으로 만났을 때 이후로 사실 발음을 잘 알아듣느냐 아니냐의 편차로도 극 속 역할의 호불호과 내 안에서 자주 잘렸었는데 이번 윤동주에서는 곧은 몸짓과 처연한 눈빛, 허약해진 몸과 단단해진 눈빛을 오가는 것을 비롯해, 그냥 그의 윤동주가 주는 설득력이 참으로 좋았다.

내가 보았던 영수 배우의 역할 중 가장 좋아했던 배역이 바람의 나라 무휼편의 괴유이었고, 그 다음이 잃얼의 고종황제였는데 왜 윤동주가 인생 배역이라는 말을 듣는 지 그냥 알았다.
외피부터 연기까지 극에서 전하고자 하는 동주 그 자체. 오늘의 영수배우는 정말 대단하고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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