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후기

20190911 연극 오펀스 밤공

by All's 2020. 6. 22.

 

 

캐스트 - 정경순 최유하 최수진

 




일단 여배 오펀스 추천한다는 거 깔고 시작한다. 구 악어 현 레드앤블루가 미투 조롱 캐스팅 면피용으로 올리는 젠더 프리 캐스팅이라해도 난 지금 이 시도가 너무 좋다. 참 마초적인 이야기인 오펀스를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보는 거 진짜 아이러니가 있다. 그냥 여배 캐스팅으로 참으로 마초적인 극인 오펀스를 보는 상황 자체가 여성 관객인 나에게 뭔가 격려가 되는 부분이 있다.

 

1막은 내내 좀 묘한 기분으로 봤다. 필립들 매달리고 하는 거 여배가 연기하기 좋을까 걱정을 보기 전에 많이 했는데 괜히 걱정했구나, 수진배우에게 좀 죄송했던 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고 그 뒤에 느낀 건 묘함이었다. 여배 오펀스 본 많은 분들이 후기에 쓴 얘기인데 남배에게는 흔한 표정과 행동을 연기하는 여배우를 보는 기분 정말 묘하다. 나중에 경순 해롤드가 유하트릿에게 하는 대사 빼고는 계속 남성형 호칭을 쓰는 부분이 있고 옷이나 뭐 행동 지시사항도 디폴트는 남자역이라는 걸 깔고 가는데 (일례로 트릿은 자기를 트릿 형님이라고 하고 필립이 트릿을 부르는 호칭 역시 형임) 배우들 성별 자체는 눈으로 보면 남장을 했대도 여자니까 그런 부분을 처음에는 왜 안 바꿨을까? 왜지?하고 겉돌게 느꼈었는데 또 그런 호칭의 문제를 빼면 내가 그들의 성별을 이미 확고하게 인식하고 있어서 그렇지 하는 행동들이나 표정들이 이걸 여성 배우가 한다고 해서 이상하지만은 않다는 게 정말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나는 어느 정도나 틀에 갇혀있던 걸까. 노력한다고 했지만 진짜 알을 깨지고 드러난 밖을 보는 건 이렇게 다르구나 잔잔하게 계속 충격을 받았다. 1막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부분은 정경순 해롤드가 총을 꺼내서 겨눌 때의 자연스러운 에티튜드. 남성 배우가 아닌 여성 배우도 그런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게, 체구가 작은 여성도 충분히 우아하면서 절제된 폭력성을 보일 수 있다는 게 강하게 와닿는게 새롭고 그게 새로운 내가 창피하고.. 복잡했다. 젠더프리 캐스팅을 응원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표를 잡고 객석에 앉아있었지만... 내 응원과 격려의 깊이나 세계의 폭이 얼마나 미천했는지 다시 되돌아봤다. 부끄럽지만 감사한 부끄러움을 내내 느꼈다.

오펀스라는 극, 좋은 이야기지만 초연 때 이 극을 처음 보고 감동받고 나오면서도, 그리고 재연을 보는 중에도 이 이야기는 교육에 대한 시선이 너무 기성세대 친화적이고 일견 미생이 생각나고 하면서 속으로 메생이짓을 했었다. 해롤드로 대표되는 진짜 어른이 하는 제대로 된 교육을 잘 받아들일 줄 아는 트릿에 대한 태도가 내 반골 기질에 너무 세상에 순응하는 것에 대한 긍정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서. 그런데 2막 말미에 경순해롤드가 '넌 잘해왔어 딸..'이라고 하는 순간에 아... 이 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여성 캐스트로 공연을 봐야한다. 훅하고 머리와 가슴이 울렸다. 보호를 명목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대상은 오롯이 가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폭력적 논리에 편입되는 걸로 그 자체도 피해자가 된다는 메시지가 그 폭력의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여성이었다는 걸로 이중으로 전복되는 걸 느꼈고 그 순간이 주는 아픔이 눈물나게 아파서 너무 아렸다. 초연 때 이 공연을 보면서 좋다고 느끼면서도 아무리 진짜 어른을, 그냥 말만 어른이 아닌 진짜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기성 세대의 책임을 이야기하는 극이라고 생각이 되어도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 내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라고 마음의 거리를 벌려놓았던 부분이 완전히 허물어지더라. 보호와 사랑을 이유로 행해지는 학대와 폭력의 모습에서 오늘 난 여성 할례까지의 이야기까지 생각이 닿았다. 여성 배우들이 마초적이며 남성적이라 쉽게 말할 수 있는 역을 맡고 있는 상황 자체가 가진 아이러니가 그런 부분까지 내 감상을 뻗게 했다.

대본은 거의 바뀐 게 없고 연출도 거의 비슷한데 배우가 그들의 성별이 달라진 것 만으로 상상도 못한 너비와 깊이로 난 이 이야기를 더더욱 가슴 깊이 아파할 수 있었고, 성별이 달라진 것 만으로 이야기의 폭이 확장되고 세상이 달라지고 길이 열렸다. 관극 퀄리티 객관적으로 평하는 기분으로 아주 솔직해지면, 아쉬운 게 없다기에는 경순해롤드와 수진필립이 한 쪽은 오랜만에, 한쪽은 (기억이 맞다면) 처음으로 연극을 하시는 거라 그런지 대사 치는 볼륨이 작은 것과 유하배우 칼 잘 못 다루는 거 아쉬웠지만 디테일이 전체에서 주는 큰 감동을 못 오게 막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특히 유하트릿은 칼 다루는 거 빼고 연기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유하트릿 보는데 격려를 받고 위로 받기를 두려워하고 거부하던 사춘기의 내가 떠올라서 그 순간에 극 자체에 조금은 갖고 있던 거리감이 크게 부서졌다. 두려워서 호의와 격려를 제대로 삼켜내지 못 하는 그 끔찍함을 너무 잘 보여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수진필립 너무 사랑스럽고 강단있고ㅠㅠ 전에 사찬에서 처음 봤을 때 파르르 흔들리는 와중에도 생의 열망이 충만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분인데 그때의 생명력이 필립으로 발화한 거 너무 좋게 인상적이라 어떻게 표현을 잘 못 하겠다. 수진필립의 필립 성별을 떠난 그냥 아이이고, 그게 너무 좋다. 배우가 그대로 연기하면 여자아이처럼 느껴지고 그게 너무 가혹하게 나에게 또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했던 내 편협함이 깨졌다. 물론 여자아이로 보이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닌데, '여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여배우도 충분히 연기할 수 있는 건데 나란 사람이 얼마나 편협한지 연기로 그걸 깨주셨다. 아... 오늘 여배 페어로 오펀스 본 거 정말.. 내 안의 어떤 장벽에 균열을 줬다. 다른 배우들이 도전하신다면 또 그거대로 감동적이겠지만 일단 지금의 이 쉽지 않은 도전을 하셨고 해내는 중인 세분과 이 결정을 시도한 이들에게 그 이유가 그냥 잘 팔릴 거라고 생각해서라도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주관적으로는 너무.. 좋은 관극이었어.

배우의 성별이 달라진 것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원래 오펀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혹은 어떤 부분을 크게 싫어했을 사람에게도 높은 확률로 좋은 울림을, 혹은 하나의 계기를 선사할 시간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오펀스 여배 캐스트를 봐주세요. 여성의 이야기를 갈망하는 것과 함께 여성인 배우들을 여성 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로 보는 걸 같이 해내야한다는 걸 관극 자체로 느꼈고.. 내내 부끄러웠는데 그게 너무 감사하다. 나의 부족함을 깨달았지만 그게 수치스럽기보다는 어떤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았다는 게 힘이 된다. 처음의 부끄러움이 격려와 함께 성취할 과제로 하나의 미션으로 다가와서 조금 뿌듯하기도 해. 정말.. 이렇게 뭉클한 자극은 처음이야.

 

 

 

 

더보기

 

 

(+) 트위터 단상


이 마초적인 이야기를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보는 거 진짜 아이러니가 있다. 그냥 지금 상황 자체가 나에게 뭔가 격려가 되는 부분도 있고.. 1막은 내내 좀 묘한 기분으로 보고 있다.

필립들 매달리고 하는 거 걱정을 보기 전에 많이 했는데 괜히 걱정했구나 수진배우에게 좀 죄송하고 , 많은 분들이 하신 얘기지만 남배에게는 흔한 표정과 행동을 연기하는 여배우를 보는 기분 정말 묘하다.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왜지?하고 겉도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호칭의 문제를 빼면 내가 그들의 성별을 이미 확고하게 인식하고 있어서 그렇지 하는 행동들이나 표정들이 이걸 여성 배우가 한다고 해서 이상하지만은 않다는 게 정말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나는 어느 정도나 틀에 갇혀있던 걸까. 노력한다고 했지만 진짜 알을 깨지고 드러난 밖을 보는 건 이렇게 다르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부분은 정경순 해롤드가 총을 꺼내서 겨눌 때의 자연스러운 에티튜드. 남성 배우가 아닌 여성 배우도 그런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게, 체구가 작은 여성도 충분히 우아하면서 절제된 폭력성을 보일 수 있다는 게 강하게 와닿는게 새롭고 그게 새로운 내가 창피하고.. 복잡해

젠더프리 캐스팅을 응원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표를 잡고 객석에 앉아있지만... 내 응원과 격려의 깊이나 세계의 폭에 대해서 다시 되돌아보고 있다. 부끄럽지만 감사한 부끄러움이야.

이 이야기는 교육에 대한 시선이 너무 기성세대 친화적이고 일견 미생이 생각나고 하면서 속으로 메생이짓하고 있었는데 경순해롤드가 넌 잘해왔어 딸..하는 순간에 아... 이 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여성 캐스트로 공연을 봐주세요.

보호를 명목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대상은 오롯이 가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폭력적 논리에 편입되는 걸로 그 자체도 피해자가 된다는 메시지가 그 폭력의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여성이 되는 것으로 이중으로 전복되는 순간이 주는 아픔이 눈물나게 아팠다.

초연 때 이 공연을 보면서 좋다고 느끼면서도 아무리 진짜 어른을, 그냥 말만 어른이 아닌 진짜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기성 세대의 책임을 이야기하는 극이라고 생각이 되어도 나도 모르게 그들의 이야기라고 마음의 거리를 벌려놓았던 부분이 완전히 허물어지는 순간을 만났다.

보호와 사랑을 이유로 행해지는 학대와 폭력의 모습에서 오늘 난 여성 할례까지의 이야기에 닿았다. 여성 배우들이 마초적이며 남성적이라 쉽게 말할 수 있는 역을 맡고 있는 상황 자체가 가진 아이러니가 그런 부분까지 내 감상을 뻗게 했다. 대본은 거의 바뀐 게 없고 연출도 거의 비슷한데 배우가 그들의 성별이 달라진 것 만으로 상상도 못한 너비와 깊이로 난 이 이야기를 더더욱 가슴 깊이 아파할 수 있었다. 성별이 달라진 것 만으로 이야기의 폭이 확장되고 세상이 달라지고 길이 열렸다.

아주 솔직해지면 아쉬운 게 없다기에는 경순해롤드와 수진필립이 한 쪽은 오랜만에, 한쪽은 (기억이 맞다면) 처음으로 연극을 하시는 거라 그런지 대사 치는 볼륨이 조금 작은 게 아쉬웠지만 목소리보다 큰 감동을 몸짓과 에티튜드로 전달받았고, 유하트릿은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조금 낯설 부분, 혹은 배우 개인의 연기 스타일이 안 맞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하기에는 진짜... 지금의 여성 캐스트가 주는 감동이 너무 크다. 다른 배우들이 도전하신다면 또 그거대로 감동적이겠지만 일단 지금의 이 쉽지 않은 도전을 하셨고 해내는 중인 세분과 이 결정을 시도한 이들에게 그 이유가 그냥 잘 팔릴 거라고 생각해서라도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너무.. 좋은 관극이었다. 원래 오펀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혹은 어떤 부분을 크게 싫어했을 사람에게도 높은 확률로 좋은 울림을, 혹은 하나의 계기를 선사할 시간이 되실 겁니다. 오펀스 여배 캐스트를 봐주세요.

수진필립 너무 사랑스럽고 강단있고ㅠㅠ 전에 사찬에서 처음 봤을 때 파르르 흔들리는 와중에도 생의 열망이 충만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분인데 그때의 생명력이 필립으로 발화한 거 너무 좋게 인상적이라 어떻게 표현을 잘 못 하겠다. 수진필립의 필립 성별을 떠난 그냥 아이이고, 그게 너무 좋다 배우가 그대로 연기하면 여자아이처럼 느껴지고 그게 너무 가혹하게 나에게 또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했던 내 편협함이 깨졌다. 물론 여자아이로 보이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닌데, '여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여배우도 충분히 연기할 수 있는 건데 나란 사람이 얼마나 편협한지 연기로 그걸 깨주셨어.

아... 오늘 여배 페어로 오펀스 본 거 정말.. 내 안의 어떤 장벽에 균열을 줬다. 여성의 이야기를 갈망하는 것과 함께 여성인 배우들을 여성 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로 보는 걸 같이 해내야한다는 걸 관극 자체로 느꼈고.. 내내 부끄러웠는데 그게 너무 감사해.

나의 부족함을 깨달았지만 그게 수치스럽기보다는 어떤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았다는 게 힘이 된다. 처음의 부끄러움이 격려와 함께 성취할 과제로 하나의 미션으로 다가와서 지금은 조금 뿌듯하기도 하다. 여배 페어 오펀스를 봐주세요 세상 사람들ㅠ 정말.. 이렇게 뭉클한 자극은 처음이에요.

유하트릿 보는데 격려를 받고 위로 받기를 두려워하고 거부하던 사춘기의 내가 떠올라서 그 순간에 극 자체에 조금은 갖고 있던 거리감이 크게 부서졌다. 아 진짜 오늘은 왜 이렇게 설명이 안 될까. 두려워서 호의와 격려를 제대로 삼켜내지 못 하는 그 끔찍함을 너무 잘 보여주셔서 감사했는데ㅠㅠ

초연 때 자첫자막 하면서는 세상을 열어주는 진짜 어른, 진짜 교육자, 혹은 보호자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하는 극이었고 그것도 참 좋은 메시지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만난 이야기의 특별한 울림은 정말... 더욱 저에게는 좋은 메시지네요. 열려야할 세상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그려집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