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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51220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밤공

by All's 2025. 12. 21.

2025년 12월 20일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캐스팅 보드
휴마윤 역 - 최재림
바불 역 - 이승주



2025년 12월 20일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캐스팅 보드
휴마윤 역 - 최재림
바불 역 - 이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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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내가 아름다움을 죽였어.

1648년 인도. 16년 만에 타지마할이 세상에 공개되는 첫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황실의 말단 근위병인 휴마윤과 바불이
타지마할을 등지고 보초를 서있다.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되는 두 근위병들에게도
생각지 못했던 임무가 주어진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고,
그 여파는 그들의 삶, 우정, 아름다움,
그리고 의무에 대한 관념을 영원히 바꿔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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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2017년 이 극을 봤던 여름에는 하루가 지나고 극을 점점 곱씹으면서 극 속 휴마윤과 광우병 파동 집회 새벽에 물대포에 겁 먹고 집으로 도망친 아침의 나를 연결짓고 나서야 부끄럽고 가슴이 아팠는데 2025년의 겨울의 지금은 보는 내내 점점 마음이 짓눌렸다. 그냥 잠시 눈을 감은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름다움을, 고통을, 죄책감과 부조리를 모두 알면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것을 온당하다 여기기 위해 스스로를 모른다고 느끼지 못 한다고 당연하다고 속이고 눈을 감아도 그렇게 살아남는 것이 살아남는 게 아님을 말했어.

본대에서 떨어져나가 바불과 함께 만든 백단향 뗏목 위에서 보낸 사흘, 그렇게 그를 새로운 세상에 끌어내준 이와 함께 보았던 수백만 마리의 새의 날갯짓을 영원히 잊지 못 할 이가 죽고 싶지 않아 부조리한 세상의 보초를 서고 칼을 휘두르는 세상이 지금과 다르지 않잖아. 너무 같잖아. 바불에게 휴마윤이 가장자리의 사람들이 자기들을 밀어내고 꼭대기에 올라서지 못 하게 하려면이라는 말을 소리칠 때의 휴마윤이 너무나 살아있는 지금의 사람이라서 무서웠다. 

'우리가 편하려면 저들이 고통 받아도 괜찮아.', '우리가 더 높이 살아가려면 저 밑바닥이 존재해야 해.', '새벽 배송하는 사람들 그들이 선택한 거잖아.', '비정규직? 그 사람들이 애초에 정규직이 되었어야지.', '인력 감축 무자비하게 하고 승진하는 거? 그거 기회를 얻은 거야. 넌 그걸 자랑스러워 해야 해.' 등으로.. 타지마할의 근위병이 그냥 이 세상에서 잘 살아남지 못 한 이들이 무능력한 거고 난 더 잘 해내서 안정된 자리를 얻는 승리자가 된 거니까 그리고 그렇게 승리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왕이, 부조리가, 폭력이, 착취가 필요한 거야 등으로 휴마윤의 말들이 머릿속에서 바뀌어서 아우성쳤다.

그러니까.. 알면서도 눈 감고 살아간다는 게 진실을 알고 있든, 정말 모르고 있든 그렇게 살아가는 게 너무 너무 예전의 나이기도 하고 지금의 나이기도 해서 고통스러웠다. 이전에는 모르고 쉽게 말하던 나였고, 지금은 부조리를 알면서도 겁이 나서 앞에 나서지 못 하는 나였다. 아무리 살아가면서 결국 진짜 아름다움, 진리를 실은 잊지 못 하는 고통을 겪고 있더라도 부조리한 세상의 보초병이길 포기하지 못 하고 있다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만으로 용서받을 수는 없는 거라는 게 겁이 나. 그러니 바불처럼 달려나갈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를 결심하는 건.. 아직 쉽지 않아서 지금의 고통이 그냥 생각이라도 깨어있다는 자기 위안에 머무를 것마저 두렵다.


지금 연출이 2막에서 피웅덩이를 확고하게 구현하지 않는 대신 타지마할을 향해 뒤돌아선 바불과 휴마의 발 아래로 서서히 물이 차오르는 것으로 아름다움의 완성과 함께 피바다가 펼쳐질 것을 그려내는 것이 좋았어도, 어두운 조명과 붉은 옷감들로 이건 2만명의 4만개의 손을 잘라낸 피바다라는 걸 암시하는 것 만으로는 이전의 연출에 비해서 아무래도 시각적인 충격이 덜 하고, 나중에 휴마윤이 바불의 핏물을 씻겨주는 장면의 무거움 역시 약해진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배우들이 말로 피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말에 흠칫 하며 저게 다 피였다고?라며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도 다른 종류의 충격 요법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더 커진 무대에서 청소 시키기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서 한 선택이지 않을까 싶은 맘이 더 컸다. 말로는 피를 씻겨준다고 하지만 이미 물에서 뒹굴면서 칠하고 나왔던 피마저 깨끗해진 배우들이 새삼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입어도 뒤집어쓴 피들을 씻어내도 진짜 마음에 남은 상처와 고통을 지워낼 수는 없는 것이라는 게 나에게는 덜 와닿더라. 마지막 장에서 휴마윤이 바불과 정글에서 보낸 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들의 날갯짓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2층 무대 위에서 바불이 앉아있고 새의 그림자가 조명으로 덮쳐왔던 이전의 연출과 달리, 휴마윤의 등 뒤에 떨쳐낼 수 없는 유령처럼 서있던 바불이 걸어나와 함께 무대 위를 거닐며 붉고 보랏빛의 물안개가 객석에서부터 무대까지 뻗쳐오는 걸로 새떼를 형상화한 것도 그렇고 연출 자체가 관객의 상상력을 좀 더 자극하는 방향이고, 그것이 현재의 극장 규모에도 잘 맞고 좋았기는한데 나는 상상력이 아무래도 부족한 쪽이기도 하고, 오늘 너무나 좋게 잘 보긴 했지만 지금의 극장 규모가 너무 크다 싶기도 해서 예전이 좀 더 그립다.

휴마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건 내가 바불처럼 혁명의 주창자가 될 수 없는 인간형이기 때문이지만 휴마윤에 나를 비출 수 있을 만큼 재림휴마윤이 와닿았듯이 승주바불이 새하얗게 빛이 나서 그가 말하는 모든 상상과 꿈과 아름다움과 죄책감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승주배우를 봐온 역들을 떠올려보면 새로운 길이나 평등을 주창하는 쪽보다 세상의 권위에 편입되고 싶은 인물들 쪽이었어서 길에서 빗겨나있다는 쪽에서는 같아도 그걸 원하는 쪽이라는 게 색달랐기도 한데 그 역시 아름다우셨고.. 환상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그가 환상이 된 잔상이 깊었어.

재림배우의 휴마윤은 여전히 좋은데, 8년이 지난 세월의 쌓임이 느껴져서 더 좋았다. 근위병 생활을 이제 막 하게 된 느낌이 아니라고 해야하나 견디고 살아가는 것에 좀 더 익숙하고 지긋지긋한 느낌이 나더라. 오히려 이 배우는 휴마윤을 제외하면 방랑자 특유의 찬바람을 담은 역을 많이 하셨는데 그 찬바람이 꼿꼿하고 곧은 몸짓과 각 잡힌 행동들 속에 가려져있다가 바불과의 시간에서 잠시 비져나오지만 결국 이 세상에서 떠밀려나가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으로 소거되어 지치고 낡은 홀로 견디고 서있는 자의 텅 빈 껍데기로 어둠 속에 사라짐이 여전하면서 깊었다. 그리웠던 눈빛이었다.

기억의 오류일 수 있지만 그래도 승주바불ㅋㅋㅋ 초연 때 상이바불에 비하면 청소를 열심히 도와주는 편이었는데 재림휴마윤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청소를 잘해서 청소 기여도는 역시 재림 쪽이 훨씬 크더라. 전에는 대걸레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옷으로만 밀어야 하는데도 착착 잘해서 와- 함 ㅎㅎ

내 자리는  C열 오른쪽으로 살짝 치우친 엘아센 자리였는데 바닥이 보이는 열로는 여기가 아슬아슬했을 것 같아서 괜찮았다. 타지마할을 향해 뒤돌아섰을 때 물이 차오르는 연출을 더 앞 열이었으면 못 봤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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