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트 - 이재균 최정우 송희정 오대석 김보나 이원준 이서현
[시놉시스]
1964 중국 베이징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는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의 자결 장면을 연기하는
중국 배우 '송 릴링'의 우아한 자태에 매료된다.
어느 날, 송의 편지를 받고 찾아간 르네에게
송은 충격적인 비밀을 고백하며 마음을 전한다.
송과의 만남이 지속될수록 르네는
미처 몰랐던 남성성과 우월감을 드러내며
자신이 꿈꿔왔던 순종적이고 '완벽한' 애인에게 빠져드는데...
1986 프랑스 법정
오랜 시간 뒤, 프랑스에서 재회한 두 사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송과의 사랑을 선택한 르네는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고,
그토록 외면해왔던 진실 앞에서
혼란과 환멸에 괴로워하는데....
(+) 트윗 감상
저번에 3열 앉았을 때는 객석에 가려서 르네가 마지막에 입는 가운이 어느 시점부터 무대에 놓여져 있었는지 안 보였는데 오늘은 좀 더 뒷자리니까 보였으면 좋겠다 까먹지 말고 살피라고 적어두기
가운이 무대 중앙에 떨어진 시점은 송이 재판에 나서면서 마담 버터플라이의 번데기를 벗어던진 순간. 송이 버터플라이이길 거부하고 자신의 모습으로 나아가려고 한 순간의 시작의 흔적이 르네가 그의 환상을 지키기 위해 덮어쓰는 허상이 되는 구나.
정우배우의 송에게서 헤드윅을 보았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자유를 위해 자신에게 아름답고 순종적인 동양 여인을 바라는 르네를 위해 그것을 연기했고, 그럼에도 그가 송 릴링 그 자체를 사랑하고 인정하길 바라는 세상의 유일한 단 한 존재가 되길 바라며 르네에게 온전한 자신을 보이나 거부당한 동양도, 서양도, 공산당도, 르네도 그 어디에도 내가 나인 곳은 없는가 맨발로 걸어나가는 송에게서 진짜 자신을 오롯이 사랑하는 곳은 없어 하염없이 외롭고 아픈 한 사람,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 존재가 보여 가슴이 아렸다. 그렇지만 르네가 환상만을 바라는 이라는 걸 알고 그에게 자신은 다시는 버터플라이를 연기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떠난 것이 송이기에, 세상도 다른 이도 모두 송 릴링이라는 존재를 오롯이 바라보지 않아도 송 자신이 그를 그대로 그 자체로 알고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송 릴링은 완전하다는 걸 정우송은 알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송이 벗어던진 번데기를 뒤집어쓰고, 몇십년을 송이 연기한 마담 버터플라이가 되어 르네가 죽은 그 시체 위로 정우송은 그 과거를 보며 이별을 말하고, 하늘을 보며 그 것을 날려보냈다고 생각해.
재균배우는 배우 특유의 번뜩이는 눈빛이 나를 할퀼 것 같은 어떤 무서운 날 것의 바람처럼 다가와서 나에게는 항상 어떤 두려움을 선사하는 사람인데 그게 사실 배우가 숨기지 않고 터트리는 생명력이라는 걸 역으로 이번에 가장 강렬하게 느꼈다. 모두를 찌르고 홀로 서있을 수 있을 것 같은 날선 생명력이 스스로의 환상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알게 된 자신을 찔러 없애고 환상 속 껍데기를 뒤집어쓰며 오롯이 사라졌다. 이렇게나 텅 빈 바로 그 껍데기라니.. 번데기라니. 되새길수록 대단하다는 마음이 찬다.
내가 사랑했던 1986년 극본의 김광보 연출의 엠 버터플라이와 완전히 선을 긋고, 2017년 극본의 이 버터플라이가 좋다라고 마음과 머리 양쪽이 동의하는 결론을 내렸다. 암전의 음악은 음악을 쓰는 걸 떠나서 음악 자체가 별로라 여전히 싫었지만,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극도 난 좋아.
재균르네와 정우송 모두 타인이 바라는 자신을 연기하고 있었는데, 재균르네가 모범적인 아들, 귀엽고 다루기 쉬운 남편, 도발적인 의견을 낼 수 있는 부하, 아내 몰래 현지 여인과 두집 살림을 하는 환상을 이뤄주는 동료를 연기하면서 그 안에서 송이 요구한 가녀린 동양 여성을 지켜줄 수 있는 강인하고 사랑을 아는 서양 남성이라는 역할은 그의 심연에 있던 그가 열망하던 자신과 정확히 일치하였기 때문에 그 역할을 연기하며 살아간 순간을 겪어본 뒤, 살아남기 위해 가녀린 동양 여성을 연기하던 걸 그만 두고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경계적인 존재인 송 릴링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르네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것을 거부하고 가장 아름다웠던 연극 속에 남기 위해 자신이 사랑한 존재로 분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진실로 강렬했다. 중블 5열에서 극을 보았는데 르네와 송의 마지막 접촉부터 르네의 자결씬이 거울에 비치는 것을 보며 허상의 허상이 깨지고 허상 속에 남길 원한 존재는 흔적없이 사라지고 허상을 연기하지 않겠다 걸어나간 존재는 그 무대를 벗어나 그 존재 자체로 서있는 대비가 바로 이 엠 버터플라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 그 자체구나 감히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아름다운 이야기였어.
이 이야기 속 모든 인물이 타인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모습을 연기하다가 본심을 보여준다는 게 좋다. 친도, 뚤롱도, 아녜스도, 마끄도 여자 르네도 모두 자신을 위해 르네나 송에게 아둔한 모습, 혹은 협조적인 모습, 적당한 무관심이나 성애적 호기심을 보이다 그들이 진짜 속마음을 보이면 특히나 르네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거나 사라져버린다. 르네가 원하는 건 그가 완벽한 여인에게 사랑받는 환상 속 세상이라 진짜 존재들은 그 세계에 머물 수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르네는 진실을 알고 있는 자신마저 세상에서 퇴장시켜 버리는 것까지, 너무 근사해.
극 전체로 너무 멋진 날이었지만 개인적인 사심으로 보나아녜스가 책상을 내려치려다가 말 때의 그 흐름 사이의 모든 움직임이 정말 너무너무 근사해서 눈 앞에서 흐르는 장면인데 느린 화면으로 보이는 것만 같았던 순간이 너무 좋았다. 서로 적당히 화목한 부부를 연기하며 사는 것마저 하지 않겠다는 르네에게 쏟아내려던 분노를 겨우 저런 남자를 위해 강렬한 분노로 나를 쏟아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팔을 거두고 냉소적으로 르네를 바라보게 되는 모습. 정말 이전의 르네를 휘두른 정상성의 신이 아닐 수 없는 절제력을 움직임으로 완벽히 보여주셨어.
균르네가 대사관 파티에 다녀온 아녜스가 벗어서 다리를 올린 티테이블 위에 놓으려던 귀걸이 두짝을 자신이 먼저 받아 올려두던 장면과 송에게 왈츠를 배우다 발을 밟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무릎을 꿇고 송의 발에 입을 맞추듯 호호 불던 장면이 갑자기 연이어 떠올랐다. 아녜스의 순진한 연하 남편과 송의 순정적인 연인을 그렇게나 본능적으로 수행하던 이가 자신이 그 역할의 수행을 원치 않을 때 보이는 면모가 더 소스라치게 차가웠던 것이 앞선 행동들의 사랑스러움을 더 가혹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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