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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40320 연극 엠. 버터플라이

by All's 2024. 3. 22.




캐스트 - 배수빈 정재환 송희정 오대석 김보나 이원준 이서현

 

[시놉시스]

1964 중국 베이징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는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의 자결 장면을 연기하는
중국 배우 '송 릴링'의 우아한 자태에 매료된다.

어느 날, 송의 편지를 받고 찾아간 르네에게
송은 충격적인 비밀을 고백하며 마음을 전한다.
송과의 만남이 지속될수록 르네는
미처 몰랐던 남성성과 우월감을 드러내며
자신이 꿈꿔왔던 순종적이고 '완벽한' 애인에게 빠져드는데...

1986 프랑스 법정
오랜 시간 뒤, 프랑스에서 재회한 두 사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송과의 사랑을 선택한 르네는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고,
그토록 외면해왔던 진실 앞에서
혼란과 환멸에 괴로워하는데....

(+) 트윗 감상

[공연 전]

광보 나비와 다르다는 것 만으로 이 극을 평가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연뮤신님(동연나비 때 그걸 너무 실패해서 큰 걱정 중)
무대 전체가 동그란 새장의 절반 형태구나 동선을 좌우로 나눠쓰지 않을 구조라 벌써 신기한 상태

[종료 후]

프리뷰 기간이나 가뜩이나 다들 긴장 상태일텐데ㅋㅋ 재환송이랑 배르네 둘 다 손이 야무지지 못 한 타입인지 소품 참사가 계속 있고ㅋㅋㅋ 송은 가발이 버겁고 르네는 옷 단추 잘못 잠그고 웃긴 상황이 소소하게 있었어서 꽤 웃었다ㅋㅋㅌ 담배 케이스에서 둘다 못 꺼낼 때는 정말ㅠㅠㅠㅠ

각오를 단단히 하고 본 거라 광보나비와 갈라놓고 보는 거 자체는 성공한 것 같은데 그런 의미로 부새롬나비이자 새 나비는 응 2020년대의 나비이구나 하는 중 찬찬히 정리해보자 맘에서!

여자 르네가 똘똘이론(꼬맹이론)을 펼치는 장면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 부분이 씬이 완전히 달라졌더라ㅠ 송을 차지했다는 확신을 갖기에는 자신이 남자인 송에게 속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같은 서양인 여성인 르네와 바람을 피우려고 한다는 게 선명해졌는데 그래서 르네 역시 동양 남자와 진짜 사랑을 갖자니 그거까지는 할 수 없다는 맘으로 남자 르네에게 서로 대체물로 쓰자는 뉘앙스로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거고, 공원에서 여자 르네와 그녀의 중국어 교사의 섹스에서 그 남자의 행위가 송이 자신에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에 도리어 버튼이 눌려서 외도를 시도하려는 첫날 남자 르네가 도망가서 다시 송을 찾는 씬이 되었던데, 자신의 남성다움을 확인하고 싶어서 적극적인 서양인 여성인 르네와도 바람을 피우는 중에 그녀가 사실 남근을 똘똘이라 말하며 비웃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에 헬가와 마찬가지로 여성 르네 역시 그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에 자신에게 순종적인 송에게 찾아간 예전 버전의 찌질함과 결국 같은 맥락이라서 나쁜 개작이라고 할 건 없는데 내가 그 뭣도 아닌 달린 거 가지고 잘난 척하는 남자놈들 너무 웃기다는 르네의 비웃음에 큰 대리만족을 느꼈던터라 그게 개취로 제일 아쉽다ㅠ

이번 엠나비 무대 새장에 무대 안쪽으로 커튼이 쳐져있으면 르네가 자신만의 연극을 시작한다고 하면서 직접 손으로 무대의 막을 열고, 분장을 마친 마지막에는 그 커튼을 무대 앞쪽으로 닫은 뒤 자신의 환상 속에서 마지막 끝을 맞이하는데 객관적으로 좋고, 내가 보기에도 좋았는데 르네가 송이 남자인 걸 몰랐다고 비웃는 호사가들의 장면에서 좌우로 공간이 나뉘지 않고 안쪽 무대에서 르네에게도 아예 샴페인 잔이 건네지며 완전히 섞여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등을 비롯해서 극 전체에서 이건 르네가 만들어낸 극이자 환상이라는 것보다 살아움직이는 인간 르네 갈리마르와 송 릴링의 현실을 더 강하게 보여주는 거라는 게 진짜 단적으로 확인되는 것이기도 해서 그 나비 이 나비 다른 거야 다르다고 싫어하면 안 된다 맘을 먹었다 해도 한 못난 인간의 지독한 환상 속의 극 안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렸던 고인물이라 르네 만의 환상에 그가 갇히고, 나는 연극에서 쫓겨난 이방인이 된다는 게 아무래도 좀 이렇게나 다르구나로 강하게 다가오긴 했다ㅠ 아니 송만 쫓아내지 왜 나도 쫓아내요(생떼)

.라고 생떼는 썼지만 좋은 연출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극 전체가 도대체 어떻게 몇 십년을 같이 살았는데 르네가 송이 남자인 걸 모를 수 있었나에서 르네는 자기 환상 속에서조차 완전히 세상을 다 거머쥔 적 없는 루저라는 걸 르네가 입으로 말하는 것과 진짜 눈에 보이는 상황의 간극을 통해 굉장히 투명하게 보여줘서 르네라는 인물의 비겁함과 나약함과 찌질함이 잘 보이더라고. 재판장 장면 동안 르네가 커튼 뒤에 숨어있는 것과 마지막 송의 퇴장은 반원 무대 내적 구조물 속의 그 어떤 문도 아니라 아예 무대 왼쪽이라 송이 영원히 르네의 환상 속에서 나간다는 게 선명한 것도 좋다
 
나는 오롯이 르네의 환상극 그 안에서 제국주의 및 인종 차별과 남녀 차별 속의 경계를 오가던 실제 사람과 르네의 환상속 그 사람을 유유히 오가던 송 릴링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아마 이번 버전을 자둘을 한다해도 예전의 송과 예전 각본의 엠나비를 영영 더 사랑하긴 할텐데 내 개취와 관계없이 이 버전의 엠 버터플라이 속 송 릴링이 더 살아있는 현실 속의 존재로 그 사람의 욕망이나 현실이 선명하게 보이는 점이 좋다고 느꼈다. 재판씬에서 송이 서양인들 앞에서 그들을 비웃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고초를 겪고 있는 걸로 장면의 색이 달라져서 동양인과 동양에 대한 서양의 폭력과 차별이 더 선명했다. 간첩으로 재판을 받는 중인 사람에게 심문을 가장하여 성생활에 대해 자기 입으로 터놓으라고 성폭행을 판사가 가하고 있는 거잖아. 직접적인 단어들과 괴로워하면서 울분을 토해내는 송의 모습이 동양인을 진짜 사람 취급하지 않는, 같은 맘으로 동양 남자를 진짜 남성으로 보지 않는 그저 그들앞의 구경거리 원숭이 취급을 하는 현실 그 자체로 송의 진술과 완전히 같게 펼쳐지는데 그렇지만 송은 남자잖아라고 맘이 멀어지는 것보다 나도 동양인이라 이입이 되었다. 작가는 곱씹고 깨닫게 하는 것보다 눈으로 보고 느끼라고 송을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사람에 가깝게 만들었구나 했다

예전 버전과 달라진 점을 그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며 좋게 보려고 일부러 노력하는 것도 있긴 한데, 극 초반 나비부인과 르네와 송의 상황을 대비하는 구성 부분이 오히려 자첫러가 아니라 내용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느껴진 점은 불호였다. 송 릴링 배우가 무대에 나와서 초초상을 연기하며 진행되던 장면이 르네의 독백으로 바뀌었고 송의 첫 등장은 대사관에서의 공연 때로 바뀌었던데 속도감을 주고 러닝타임을 줄이려는 의도인가 싶은데 프리뷰 기간 특유의 산만함과 합쳐지니 말이 귀에 들어와서 소화되기도 전에 훅훅 달려나가는터라 정신이 너무 없었다ㅠ 그리고 배우들 성량 자체가 딱히 작다 싶지도 않은데 소리가 너무 안으로 돌아서 소리 자체도 좀 잘 안 들려서 무대에 마이크를 달아주거나 이미 있는 거면 볼륨을 키워주거나 했으면 좋겠기도 하다. 2015년에도 이렇게 소리가 먹혔나 기억 안 나지만 그랬다면 예전에는 극 초반부는 나비부인을 짧지만 시연에 가깝게 진행했기에 더 느긋하게 말도 전달되어서 찬찬히 내용이 소화거 되었기에 그걸 몰랐던 거 아닐까 싶다. 지금은 볼륨도 작고 속도도 너무 빠르니 뭐라도 좀 해결을 해줘야 할 것 같아. 대사 치는 속도를 좀 천천히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러닝타임 지키는 건 소중하지만 트윗 써놓은 시간들 보니 120분 안에 그럼에도 빠듯하게 끝난 것 같은데 솔직히 배우들 대사 타이밍이 딱 맞지 않고 어긋나거나 어휴 숨 좀 돌립시다 싶은 부분이 은근 많았던 터라 러닝타임 10분 늘려놓고 좀 느긋하게 달려주면 좋겠어ㅠ
 
대사들의 어미 자체가 합니다에서 해요체로 바뀌었던데 아마 타래 내내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감 부여의 맥락이겠지? 2017 동연나비 때는 바뀐 거 하나하나 성질 박박 내면서 이건 나의 엠나비가 아닌 수준이 아니라 틀린 엠나비라고 빼곡하게 분노했던 거에 대해서 물론 나빠진 점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내가 광보나비와 다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싫어하는 것과 정말 별로인 것 구분을 못 한 부분도 분명히 있었을텐데 그 당시의 내가 같은 오리지널 대본을 두고 나온 결과물이기에(연출가 뿐 아니라 번역가도 달라졌긴 하지만) 이건 안 맞는 거라고 선을 적절히 긋는 걸 실패했던터라 원 극작가가 새롭게 개작한 버전으로 2024년에 올라온다는 공연에 이건 극작자가 바꾼 거겠지로 열심히 선 긋기를 하고 있는데 같은 대사의 어미가 달라지는 부분들이 오히려 좀 더 크게 미련을 불러일으키더라. 아예 빠진 것보다ㅠ

'봐라 이 병신아'보다
'당신은 햄버거가 햄버거인 것처럼 현실입니다'와
'후회스럽습니다. 내 버터플라이만큼'
이 더 그립다는.. 그런 얘기ㅠ

그래도 이런 부분들이 배우들이 조금 템포 조절을 통해서 휘리릭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덜어지면 좀 고인물 관객에게도 덜 부대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대사나 장면의 변화들은 극작가가 바꿨다니까로 자체 커버를 열심히 쳤는데 응 바뀌었어도 역시 재밌는 희곡 새 것도 여기저기 좋은 연출 하면서도 조금만 더 천천히 씹어서 뱉어주세요 숨 가쁘다 숨 가빠는 내내 들던 마음이라서ㅠ 후기를 조금 검색해보니 재환릴링 위주로 나오는 얘기 같고 나도 재환송이 더 맘이 급하다고는 생각했다만 사실 배르네도 급하긴 급하다 느껴서 그냥 전체적으로 숨을 길게 쉬어줘요 함

뭐 그렇다고 둘의 연기에 불만이나 그런 건 없었다. 아 이 배우들로 좋아하던 그 연출이면 어떨까 생각을 했는데 난 그거 배우들 호 뜰 때 하는 생각이라서ㅎㅎ 배르네는 사람 자체가 못나게 태어난 게 아닌데 소심하고 겁이 많고, 흔히 말하는 '남자답지' 못 한 성향에 스스로는 모르는, 혹은 거부하는 동성애자 성향 등으로 세상이 말하는 남자다움을 사회 생활과 성애 활동 어느 쪽으로도 주도적으로 하지 못 하는 게 그를 더 주눅들고 찌질하게 살게 한 것 같은 르네였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낮아서 세상의 여자는 다 무서워서 자기보다 바짝 낮게 엎드려 살고 그를 숭배할 동양 여성을 꿈꿨을 게 굉장히 이해되었고, 남자답지 못 하다는 거에 열등감이 있고 머리는 또 굳은 사람이니 남자가 어떻게 여자를 안 좋아할 수 있어 싶은데다가 아마도 아네스와의 사이에 아이가 안 생기는 걸로 생식능력에 대한 두려움까지 있으니 동성애자 성향을 절대 인정하지 못 하는데 그런 사람 앞에 여잔지 남잔지 모호하다가 사실 여자인데 남자인 척 키워진 거라는 동양인이 나타나 별볼일 없는 그를 특별하다고 추켜세워주니 스스로도 남자겠구나 생각한 사람을 그냥 여자로 인식한 뒤 그 안에 기꺼이 갇히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바뀐 버전에서 송이 자신의 경극단은 남자가 여자 역을 맡는 전통을 고수하는 편이라고 했을 때 아 마드모아젤 송이 아니라 무슈 송이구나 하면서도 르네가 송을 다시 찾는 건 동양여성에 대한 환상을 채우고 싶어 그냥 여자 느낌을 내는 남자인 송에게 대리만족을 위해서 찾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은 마치 여자같으니까라는 핑계로 남자를 찾아가는 걸 합리화하는 것처럼 해서 실은 르네가 자신의 동성애자 성향을 무의식 중에 거부해서 그렇지 최소 바이 최대 게이이고, 송도 르네가 동성애자인 줄 알고 무슈로 다가가려다가 르네가 갑자기 발길을 끊자 여자인 척하는 걸로 작전을 변경한  걸로 이야기가 다가왔는데 배르네 개인의 분위기인지 궁금한 상태다

재환송은 내가 보아온 이전의 상연들하고 이번 상연에서 송 캐릭터 자체가 달라진 부분이 큰 만큼 지금의 감상이 이 극본 버전의 송인지 재환송 자체에 대한 감상인지 경계가 애매하다 싶다. 실제 살아있는 인물이라는 현실감이 많이 더해진 2017년 개작 송릴링은 '나'로 사는 게 가능한 가능성에 매달리는 존재이고 끊임없이 부정 당하는 존재라 안타깝게 다가왔다. 실제 쉬 페이푸는 어땠을지 몰라도 이 이야기 속의 송 릴링은 예술가로서 살아가고 싶고 한 사람으로 사랑도 받고 싶고, 그저 자기 자체로 살아가고 싶었던 한 동양인이 그 어느 것도 이루지 못 하고 자신이 속했거나 발 붙인 곳, 마음을 준 사람 모두에게 그저 부정 당하다 르네의 환상을 채워주지 않을 존재라며 떠밀려나가버려서 하필 이번에는 노출신이 전라 형태로(살색 속옷 입은 것 같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느라 신발에 양말까지 다 벗었다가 전부 다 입을 수 없어 맨발로 걸어나가니 너무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ㅠ

그래도 여성이 아닌 송을 여자라고 믿는 르네와 그가 사랑하는 '동양 여성'을 자랑하는 형태로 의미도 모르면서 이국의 것을 즐기는 서양인들 앞에서 그들의 재롱 거리로 이색 유희로나 펼쳐지는 공연을 하며 사는 삶을 사는 건 이 송이 원했던 진짜 '나'로 사는 일이 아니니 그 쫓겨남의 순간은 처량해도 스스로가 양성애자임을 인정하고 그냥 인간 '송 릴링'을 받아들일 의지도 능력도 없는 르네의 곁에 송이 머무르지 않게 된 건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을 했다. 엠나비를 보면서 해피엔딩이라는 글자를 쓰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쓰면서도 참 아이러니하네.

분명히 엠나비를 보고 나온 건 맞는데 이 이질적인 상쾌함은 뭔가 싶었는데.. 방금 전 트윗을 쓰면서 알았네. 그냥 낯선 대본과 연출과 대본으로 보느라 거리감을 느낀 걸 떠나서 나 2024 엠나비를 그럴 만한 결과적 해피엔딩으로 느낀 거였어. 아니 근데.. 그럴 만.. 해. 르네 갈리마르라는 인물의 행태가 아무리 비겁하고 찌질하고 한심하다고 할 지라도 자기 인생과 존재를 환상에 바쳐버릴 정도로 미친 사랑을 한 연극 속 '캐릭터'로서 내가 그 인물의 사랑과, 그런 지질하나 절절한 사랑의 대상으로  '진짜' 자신도 살고 싶었으나 부정 당한 송 릴링의 사랑을 안타깝다 몰입했기에 극 속 르네와 마지막 선택과 송의 '버터플라이, 버터플라이'에 내 마음이 무너졌던 건데, 3월 20일의 나는 저런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정말 있다면의 시선으로 본 거고, 그런 기준으로면 2024년의 나는 르네에게 조금의 이입과 동정도 없으니 그의 죽음이 안타까울 수가 없고 너무나 못난 르네라는 존재와 그의 사랑하고 사랑받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가짜 사랑에서 원치 않았다해도 벗어난 송 릴링에게 오히려 진짜 자신으로 살 기회가 주어진 겁니다하고 축하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슬플 수가 있겠어. 공연 전 읽은 부새롬 연출의 인터뷰에서 근본적으로 사랑이야기라는 얘기가 있었어서 지독한 오독을 해버린 건 아닌가 걱정도 되는데 2015년의 나와 2024년의 나 사이에 9년 동안 더 쌓여버린 백인/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자신을 백인 남성으로 완성시켜 줄 동양 여성에 대한 집착으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인물에게 '그 비겁함까지 정말 현실적이군요 거짓을 깨닫고도 각성하지 않을 자 그렇게 도태 속에 죽음을 맞으십시오'하는 사람으로 날 변하게 한 거고 이제 이 극은 나한테 '슬픈'이 아니라 '거짓' 사랑 이야기가 된 거고 그냥 이제 나에게는 그런 걸 인정하고 그렇게 볼래

재환송 얘기하려다가 나를 되돌아보기로 빠진 걸 강제로 다시 방향 틀어서, 공연으로는 자첫이고 예전에 대학로에서 본체를 스친 적이 있는데 그때 타어둠 속 프로필 사진보다 실물이 중성적인 느낌이 있네했던 기억이 무대 위에서 아 역시 그 느낌이 맞았어 싶게 시각적 이미지가 좋았다 골격이 강하면서도 콧대 같은 곳은 고운 일부 포인트가 중성적인 부분이 송릴링이 르네가 그렇게 믿고 싶은 거지 그 자체로 완전히 여자처럼 보인 건 아니라는 설정과 잘 맞아서 시각적인 설득력이 있었고, 목소리를 재판정씬 전후로 큰 차이없게 연기하는 게 디렉션일 것 같은데 음색이 미성인데 고음이 아니라 역시 중성적이라 경계가 흐린 게 좋았다. 르네와 친동무를 대할 때 본인이 우위에 있다고 여길 때와 아닐 때 태도의 변화와 르네가 옷을 벗기는 걸 포기했을 때 "임신했어요, 임신..했어요. 임신, 했어요!"라고 할 때 그를 붙잡고 싶어 던진 충동적 발화, 그 발언이 준 가능성 곱씹기, 작전이 섰고 결심이 끝나 펼쳐지는 연기의 단계가 잘 보인 부분 등이 특히 좋았는데 소리 볼륨이 작은 거랑 공연 극 초반이긴 하지만 티나게 잔실수가 보인 점 등은 좀 아쉬웠어ㅠ 부채 커튼에 걸렸을 때, 흰가발 흘러내리는 거 버거워하는 거 티났을 때, 담배 케이스 못 열 때까지는 그냥 웃었는데 차 따를 때 찻잔 쓰러뜨리기까지 가니까 아 이건 한 회차에 잔실수가 너무 많군요 싶어서ㅠ  배르네도 처음에 조끼 단추 잘못 채우고 송네 집 소파 팔걸이에 앉고 참사가 좀 계속이라 또 뭐 실수날까봐 긴장하게 되더라고ㅠ 배재환 둘다 모두 본공연 기간에는 안 그러시길 바라본다ㅠ
 
세월이 지나니 정말 기억이 흐려지는 구나. 광보나비에서 꼬맹이라고 하던 걸 동연나비에서 똘똘이라 바꾼 게 싫다고 깠었는데 이젠 싫었던 그 단어가 기억에 남아서 이렇게 잘못 써뒀어ㅠㅠ

내가 2017년에 동연나비 자첫하고 진짜 하루 날밤을 새어가면서 구리다고 깠던 인간이라 이런 말하기 양심없다 싶지만.. 이번 엠나비는 2017년 개작 대본이라는 걸 생각하면 지금 연출이 극을 나쁘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차라리 데이비드 헨리 황에게 책임을 지워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새롬연출의 인터뷰에서 그럼에도 사랑이야기라고 한 부분은 난 맞다고 생각하고 이걸로 광보나비와 비교하는 게 의미없는 게, 2014년에 광보연출 관대에서 송이 르네를 사랑했다를 단호히 얘기함..

https://youtu.be/aLvWuQyInsM?si=i6YkvUD9Y--Ih-GH&t=1440

24분 쯤에 송이 왜 프랑스에서 스파이 행각을 계속 했는지에 대한 늘송에 대한 질문에 대한 부가답변으로 광보연출이 한 대답이고, 나는 2014년 저 관대 날에는 난 엠나비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극이 더 크고 르네와 송의 관계는 권력 갈등이라고 보는데 싶어서 시무룩했다가 2015년 엠나비를 계속 보다가 어느 순간 아 이건 사랑이야기가 맞구나. 사랑을 통해 제국주의, 오리엔탈리즘, 남성 우월주의 등등을 비판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다각도로 보이고 마음이 움직이는 거구나 했어서 2024년 엠 버터플라이가 사랑만 강조했다고 느끼지도 않지만 사랑을 강조했다는 게 극을 망쳤다고 생각 안 함.

그리고 지금 버전이 오리엔탈리즘과 남성우월주의외에 젠더에 대한 부분을 더 강조한 거고, 존재에 관한 인정으로 포커싱이 옮겨간 거지 단순 사랑이야기가 된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함. 극 중에 송이 르네에게 남자로 자신을 어필했다가 스파이 행각을 위해 사실 여자라고 속이기 시작하면서 르네에게 견문을 넓히시라고 새 시각을 열어줄 친구처럼 다가가다가 여자라고 속이기 시작한 뒤에는 순종적인 동양 여자로 르네의 비위를 맞출 말들을 해나가는 게 기존의 동서양과 성별로 인한 차별적 상황이 너무 명확히 남아있는 거에 애초에 남자로 다가갔다가 여자인 척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송이 부정하는 한 단계가 추가된건데 그러니 송이 재판 이후에 르네에게 나를 그대로 봐달라고 하는 건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받아달라는 젠더 정체성 어필이 되는 건데 이게 사회적인 문제가 아닐 수 있나.

그냥.. 2017년 개작 대본을 쓴 데이비드 헨리 황이 1986년 대본을 썼을 때보다 지금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고, 동양인에 대한 서양인의 폭력적 행태를 더 드러내고 싶었던 거고 그러니 이전의 텍스트보다 개인의 면면들이 더 드러나게 만든 거겠지 싶을 뿐이다.

나는 1986년 대본 기반의, 김광보 연출 버전을 가장 사랑하겠지만 그렇다고 2017년 대본의 이야기가 무조건 별로라고 하는 건 정말 아닌 것 같아.. 같은 1986년 대본 기반인데 2017년에 올라온 김동연 연출 버전을 내가 전에 보던 거랑 다르다고 너무 지독하게 싫어하고 욕했던 게 고인물의 투정이었다 생각 안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동연나비에 대해서는 내가 최대한 평을 안 하려는 편인데 내가 정말 쓰면서 기억난 건데 광보나비 번역까지는 소녀르네가 '꼬맹이'라고 남성성기 말하던 거 '똘똘이'라고 바꾼 거 극 안에서마저 남자 꺼 작은 거랑 비교하는 게 싫냐고 깠던 건 후회하지 않는데 그런 종류의 부족함이나 꺼림칙함이 아니라 그냥 현재 버전의 대본 자체가 이전과 달라서 생기는 차이를 연출력의 문제로 넘기는 건 솔직히 내가 2017년 엠나비에 했던 짓인데.. 그냥 예전이 그리운 사람의 화풀이라고 본다.

송과 남자 르네만 배우에 대해 따로 썼지만 아녜스, 친동무, 마크, 뚤롱, 여자 르네 배우들도 다 좋았어ㅇㅇ 원래 대석배우야 늘 좋았던 분이지만 날카로운 이미지의 배우가 캐스팅 되어서 르네의 의견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고 판사로서 송을 괴롭히는 걸 보는데 그런 부분들이 르네의 환상 속 연극과 실제 르네와 송이 겪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흐리게 해서 관객에게 자기들이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펼치려고 하는 르네와 송이라는 인물을 역으로 더 잘 드러나게 하는데, 그게 이번 상연의 포인트가 아닐까 싶었던 걸 동일한 역에 캐스팅된 배우의 이미지 변화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났다. 

위에 말한 포인트가 인물들의 행위와 분위기로 잘 드러난 건 마크. 이전 버전들에서는 프랑스로 돌아오기 전의 르네의 상상 속 마크와 프랑스에서의 마크의 간극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는데 이번 상연의 원준마끄는 르네의 상상 속 인물일 때는 르네가 자기 입으로는 말하지 못 하는 욕망을 부추길 때 굉장히 적극적이었는데 프랑스에서 정말 존재하는 인물로 마끄가 나타났을 때는 르네의 이야기에 적당히 대꾸만 해주다가 정말 진절머리가 나서 아 내가 이런 찐따를 왜 상대했지라는 느낌으로 나가버리는데 르네의 송에 대한 집착이 무의미하고 하찮은 헛된 거라는 게 나타나서 좋았다.

보나아녜스는 르네에게 적당히 무심하면서도 자신이 적당히 잘 살기 위해 선택한 그가 그 겉치레마저 유지할 수 없게 무능해짐에 질려하는 걸 잘 보여주셔서 좋았어 아녜스에게도 르네가 쇼윈도용이었음이 보여서 르네를 많이 사랑하지 않아서 맘이 덜 아팠다ㅠ 근데 왜 르네 아내의 이름이 헬가에서 아녜스가 된 걸까. 위키를 찾아보니 Agnes가 순결한이라는 뜻이고 Helga는 성스러운, 신성한이 어원이라는 건데.. 이번 상연에서 르네의 양복을 아내가 전부 다 입혀주는 게 아니라 마지막 넥타이만 정리해주는 거랑, 송이  부부관계가 적기 때문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거라는 말과 관계가 있는 걸까? 헬가 시절의 르네의 아내는 그를 죄고 지배하는 면모가 좀 더 컸고, 아녜스는 르네와 더 먼 존재라는 그런 의도일까 생각해보다가 이건 너무 과잉해석 같다고 일단 관뒀는데 궁금한 지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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