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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40310 뮤지컬 여기, 피화당 낮공

by All's 2024. 3. 11.




캐스트 -  정인지 조풍래 정다예 백예은 류찬열

 

 

 

[줄거리]

병자호란이 끝난 17세기 후반의 조선,
전쟁통에 청나라에 끌려갔던 여인들은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들을 맞는 건 정절을 잃었다며 손가락질하는 가족들 뿐. 

‘가은비’ 역시 사대부 가문의 명예를 이유로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같은 처지의 ‘매화’, 몸종 ‘계화’와 함께 
사람들을 피해 산 속 동굴에 숨어들어 
그 곳을 ‘피화당’이라 이름 붙이고 살아간다. 

‘피화당’의 여자들은 생계를 위해 이야기를 써서 내다 팔고 
저잣거리에서 익명의 작가가 쓴 이야기는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한편, 선비 ‘후량’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자 
저잣거리에 벽보를 붙이지만 아무도 그의 글을 읽어주지 않는다. 
모두가 이름 없는 작가 선생의 글을 읽는 것을 본 후량은 
작가에게 자신의 글을 부탁하기로 결심하고 
소설 속 단서로 작가 선생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 트윗 감상

깔끔하고 뭉클했던 90분 간의 시간을 준 좋은 공연이었다. 박씨전을 소재로 한 이야기! 여성 영웅 소재 이야기 볼 거야의 마음으로 보게 된 극이었는데, 글을 쓰는, 글을 쓰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빠지는 창작자의 자기 연민 함정에 빠진 극이 아니라 좋았다.

원래는 스스로의 삶의 고단함을 잊고 작게 돈을 벌어보는 일이었던 글을 통해 사회를 고발하고 상처를 극복하는 힘을 얻게 되는 가은비, 매화, 계화를 만나면서 고향에 돌아왔으나 목숨을 위협받고 가족에게 버림받는 상처 말고도, 공녀로 끌려가서 살아간 순간 동안의 일 자체로 인하여 얻은 트라우마로도 고통받았을 공녀들의 아픔까지 생각할 수 있었고, 실제 조선시대 속 공녀와 환향녀들도 박씨전 속 여인들처럼 그 이야기를 통한 대리만족으로라도 깊은 상처에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어릴 때 교과서로 배울 때 전쟁의 패배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배울 때보다 더 큰 울림을 얻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도 맞았겠지만, 피화당 속 여인들이 그 시대 속 고통받던 여인임을 눈 앞에서 보는 건, 박씨전 속 이야기 속 여인들의 승리와 외침으로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일어설 힘을 얻는 걸 보는 건 아름다웠어
 
공연 시간이 90분이라 짧은 편이라서 실제로 이야기가 훅훅 진행되었고, 피화당 여인들이 만난 배경이나 그들을 쫓는 위협에 대한 부분 등이 더 와닿게 추가되면 좋겠다 싶기도 했는데 창작 초연으로서 너무 욕심 내느라 오히려 군더더기가 많이 붙을 수 있는 부분을 과감하게 정리한 결심이기도 해서 또 그게 마냥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금 쫓기는 세 사람, 가은비와 매화와 계화의 상황과 그들에게 아버지를 위한 이야기를 의뢰한 후량의 상황이 진행될 때 박씨의 이야기를 통해 후량이 공녀로 끌려갔다 돌아오고도 고초를 겪는 여인들의 삶을 알아가면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현실을 깨닫지만 그런 후량이 완전히 각성하여 이 세상을 바꾼다는 식이 아니라 조금 더 용기를 내게 되는 정도고, 완전한 성장을 이루는 건 세 여인인 부분이 맘에 드는데 이렇게 덜어내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어ㅠㅠ 여성 인물이 메인이라고 하더라도 남성 인물의 비중이 필요 이상으로 과하다 느끼게 하는 극들이 적지 않은데 피화당에서는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음에도 돌아가지 못 한 채 숨어서 글을 쓰는 가은비, 아이의 출세를 위해서 자결할 것을 강요받았던 매화, 세상의 그릇된 시선으로 현재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 하던 계화의 변모에 확실히 집중하고 있어서 보는 내내 그들의 고초가 안타까운 것과 별개로 맘이 편했다.

극 자체의 무대와 연출도 최소한의 것으로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부분들이 있었는데 탈을 통하여 박씨의 박색을 표현하는 게 탈을 벗으면 살이 풀린 게 되는 게 비유적으로도 좋고 시각적으로도 이해가 편했고, 부채에 천을 붙여서 부채춤을 추는 장면이 동양화 특유의 색감과 울림 그 자체로 너울 치는 게 너무 아름다웠다. 산과 동굴을 겹겹이 표현한 무대를 오고 가는 게 공간 분리가 되면서도 이어지는 동선이 납득이 가던 것도 맘에 들었다. 공간의 기능이 확실해서 이야기를 쓰고 숨지 않고 살아갈 것을 마음 먹은 가은비가 동굴 속 무대 안에서만 거닐지 않고 마침내 무대의 단 아래, 세상 밖으로 툭 걸음을 내딛을 때 울림이 있었어ㅠ

내 취향적 기준으로 넘버가 조금 심심한 편이고, 후기 초반에 쓴대로 이야기가 좀 더 풍성해지면 좋겠기는 한데 그런 부분은 다음 상연이 올라오는 동안 충분히 좋아질 수 있으니까 싶고 아주 소소하게 신경쓰이는 건ㅋㅋ 인물들이 글을 쓸 때 먹물을 묻히지 않고 바로 붓으로 쓰던 건데 극적 허용에 내가 관대해져야 할 부분 같긴 하다 이건ㅋㅋㅋ

아무래도 난설을 봤었기 때문에 인지가은비를 보면서 초희가 떠올랐는데, 초희는 뜨겁게 시작하여 세상에 스러지다가 날아가버리는 인물이라 가슴이 시렸다면 가은비는 세상의 고초에 지치고 무너져있던 사람이 점점 스스로의 가치와 힘을 알아가다 마침내 바로 서고 걸어나가게 되는 인물이라 그 결이 다름이 신기했고 그걸 다 이리 잘 해내다니 인지배우 새삼 또 멋지네라고 생각했다ㅠㅠ 박씨전 속 박씨에 대해 호랑이 같다는 묘사가 있는데 인지가은비 흐름이 잠들어있던 호랑이가 깨어나 달려나가는 것 같았어. 촛불처럼 흔들리던 존재가 마침내 동굴 밖 태양으로 다시 빛나리.

다예배우를 본 게 히드클리프는 앙상블, 아가사는 낸시, 맥베스 레퀴엠도 앙상블에 가까운 역이라 연기를 길게 보지는 못 했었는데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상처를 감추기 위해 강한 척 하지만 가족에게 버림받았고 아이를 만날 수 없는 아픔을 잘 전해주셔서 좋더라ㅎㅎ

백예은계화ㅠㅠ 필모를 보니 마타하리 앙상블 하셨던데 그때 만나긴 했겠지만 기억으로는 역시 오늘 자첫이신 분인데 너무 귀엽고 연기도 잘하시고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사람을 이제야 인식하게 되다니!했다ㅠㅠ 계화가 귀여움과 안쓰러움과 성장을 다 보여주는 인물인데 예은계화가 너무 잘해서 계화라는 인물의 멋짐을 전달받지 않는 게 불가능했어ㅠ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왔어도 소꿉친구를 만나면 반갑고 기쁜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소녀의 천진함이 너무 예쁜데 그런 계화가 세상의 시선이 주는 상처에 주눅 들고 아파하는 게 너무 안타깝다가 이야기 속에서라도 지금과 다르게 살고 싶다고 붓을 들고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하고, 그리고 그렇게 계화-매화-가은비를 통해 완성한 이야기 속에서 청나라 장수 용울대와 용골대로 비유되는 자신들을 습격하는 폭력을 자기 손으로 처단한 뒤 맞서 싸우며 일어서며 스스로의 강함을 천명하며 단단하게 일어서는데 감동 받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ㅠ

풍래후량 꽤 오랜만에 보는 거 같은데 여전히 잘생겼고, 여전히 노래도 깨끗하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강한 이목구비와 달리 감성이 섬세한 부분이 역할하고 잘 맞아서 이야기를 다정하게 전달받을 수 있어서 좋았네. 최후량이라는  인물, 피화당의 여인들이 세상에 버림받은 것과 달리 양자로 들어왔는데 후사가 생겼는데도 자신을 파적하지 않은 아버지 최명길에 대한 감사를 가진, 버림받지 않았으나 아주 양지에 있지도 않은 중간자적 인물이었는데 그런 이가 박씨전을 통해 용기를 내게 되는 과정이 잘 와닿았다. 강아지에게 다정한 형님같은 도련님인 것도 좋았어 ㅎㅎ

류찬열배우 역시 자첫 배우였고ㅎㅎ 류강아지가 정말 귀여웠는데 배우 본체가 연기를 잘하고 귀여운 포인트를 잘 살려서 계화랑 강아지의 이야기로 힐링과 감동을 너무 자연스럽고 행복하게 볼 수 있었어ㅠㅠ

근데 피화당은 진짜 이야기 구조랑 인물 관계나 구조가 깔끔해서 다시 올 때 시간 좀 늘리고 이야기 조금 더 보충하고 넘버 지금 아주 확 꽂히지는 않는 부분에 디테일을 잡거나 편곡이나 추가로 힘을 더 줘서 좋아질 거 기대된다. 이야기 구조 자체가 노답이다 싶으면 막막한데 기본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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