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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30408 뮤지컬 실비아, 살다 낮공

by All's 2023. 4. 8.



캐스트 - 이수정 고은영 이규현 김수정 장두환 고쥬니

 

(+) 트윗 감상


늘 몸이 시리게 추운 게 몸이 추운 건지 맘이 추운 건지 가끔 궁금했는데 세상이 너무 시려서 그런 거였다는 걸 말해주는 공연이었다.

실비아 프로필 사진이랑 기억하는 실물이랑 뭔가 매칭이 안 되어서 수정배우 처음 만나는 줄 알았는데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서 너무너무 좋게 봤던 바로 그 수정배우셨다ㅠ 그때 알로하에서 처음 뵙는 배우분들 중에 제일 좋아서 나중에 더 길게 연기하는 역으로도 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꼭 그렇게 되었고 너무너무 좋았다. 수정실비아가 보여주는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이 이상해지는, 그렇게 사는 게 잘못된 거라고 당연하게 말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이상하지 않다고 버텨내기에는 자꾸만 무너지던, 외롭던, 아팠던, 그래서 힘들었지만 결국 살아낸 사람의 여정도 마지막 미소도 다 너무 좋았다. 그리고 알로하 때도 노래 너무 잘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문득 노래하는 목소리에서 너무 좋아하는 지현배우와 닮은 부분이 있으시구나 느껴서ㅠ 고음에서 맑고 다정하게 뻗는 그런 어떤 소리의 색이 그래서 또 울컥하고ㅠ 앞으로도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다ㅠ

극을 보다가 어느 순간 잠깐 프리다 생각이 났다. 이 극의 실존인물인 실비아 플라스가 프리다처럼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지만, 세상이 너무 춥고 잘못한 건 내가 아닌 걸 내가 죽어버리면 아무도 모르고 묻혀버릴 게 신경도 쓰이지 않을 만큼 그냥 모든 게 다 지쳐버린 그런 마음을 너무 알아서, 이 극 속의 실비아와 실재했던 실비아의 마음이 얼마나 닮아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버텨낼 수 없었던 마음을 알겠지만 그럼에도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나 자체를 오롯이 담은 시와 소설을 남겨두었고 그 존재들이 주목받고 이렇게 그녀의 이름과 삶에 대해 내가 접할 수 있게 된 것도, 비록 세번째 비상정차가 그만 이루어지고 말아 그 이후의 삶은 영영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 그녀의 삶과 마음이 어땠는지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살아갔던 그 시간들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버티고 살았던 순간들이 대단했다고 이렇게 많이 늦게나마 전해질 지 알 수 없지만 말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실비아는 잠시 숨을 멈추고, 다시 눈을 뜰 수 있다면 나를 밀어내기만 하고 짓누르기만 하는 세상에 그럼에도 내가 있어도 된다는 어떤 허락이 아닐까 생각했던 걸까. 아무리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해도 내가 살아오고 있는 곳이기에, 아무리 나는 닮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도 나의 부모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고 떨칠 수 없고 온전히 미워할 수도 없는 세상의 도덕률과 엄마의 원하지 않았던 헌신과 사랑의 탈을 쓴 아빠의 억압에 고통받아본 적 없는 여성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공연 상세 정보에 트리거에 대한 주의 문구가 진중하고 깊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소재 자체가 괴로울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다루는 방식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는 나라는 사람에게는 거북함이나 두려움 없이 한 사람의 삶의 여정을 따라갈 수 있었던 극이라 다행이었고 또 기쁘기도 했다. 자극적인 걸 좋아하거나 기대했던 사람들이 있다면 오히려 시시하게 여길 수 있을 작품이지 않을까? 난 그래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말이지만 소재 자체가 자극적이라 어쩔 수 없다며 과도하게 자극적인 연출이 그저 오락적 즐거움 이상의 기능을 못 한다고 여길 때가 있는 지라 실비아의 삶 속의 불행들을 그녀를 때리는 방식으로 그려놓지 않은 극이라 정말 좋았다. 

원치 않아도 세상에 태어나 버리면 강제로 태워지고 달려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기차 여행에서 기쁨도 이별도 슬픔도 분노도 고독도 다 실비아, 혹은 빅토리아의 목소리를 통해서 말하게 하는 부분이 좋았다. 특히 테드의 변을 길게 다루지 않는 부분이 정말 정말.

보통 백합을 잘 먹지 않는 편임에도 은영빅토리아의 눈빛이 너무 일렁여서 설레였는데 그쪽이 아니었구나 뒤에 감격에 차면서도 약간 아쉬운 나에게는ㅋㅋ 백합 쪽으로는 흥미로운 경험도 했는데 그럼에도 실비아와 빅토리아의 관계에 대한 설정 약간의 아쉬움을 넘은 뭉클함이 더욱 컸다. 처음 실비아와 만났을 때 테드와 마주치게 하고 싶어하지 않아 하는 게 너무 느껴지고 전화기를 받게 하는 것도 배신의 시절을 조금이라도 빨리 맞아 더 오랜 세월 힘들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빅토리아가 너의 불행을 최대한 피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결국 근데 돌아간다면 난 그 모든 일들을 다시 겪을 것이라 말할 때 과거로 돌아가 실비아의 삶을 다시 바라보면서 그 모든 순간 확신과 불안 사이에서 흔들릴 지라도 진심을 다해 살아낸 실비아 자신에 대해 스스로 진짜 진심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기에 그런 말을 하는 구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다시 살아가달라고 말할 수 있었겠지. 이제 진짜 너무나 아니까. 모든 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지금 조금만 더 견디고 살아간다면 그 헛되지 않을 삶을 바로 실비아 스스로가 만들어갈 현재가 될 미래라는 기회가 생긴다는 알고 있으니까. 서로에게 친구라고 말한 두 여성 인물의 끌어안음에 눈물짓지 않은 적 한 번도 없지만(그런 작품이 일단 적은 건... 다른 의미로 눈물나지만ㅠ) 실비아와 빅토리아가 서로를 안아줄 때 과거와 현재가 만나 서로에게 전하는 위로와 감사에는 정말 눈물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가 아프면서도 고통스럽지만 진솔한 것처럼 연출이 과하지 않고 좋았는데 장치를 많이 쓸 수 없는 한계를 멀티 역의 두 배우가 소품이자 세트이자 배우라는 멀티 이상의 멀티롤을 수행하는 걸로 극을 이끌어가면서도 그런 부분들이 번잡스럽게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세트가 너무 심심한데 하면서 극을 보는데 스크린의 사용이나 배우의 멀티롤 사용이나 모든 게 오히려 과잉이 없어서 배우에게 집중하게 되고 작은 조명 변화도 쉬이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유의미했다.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그리면서도 그저 그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고 그 감정이 그럴 수 밖에 없기에 그렇게 그리는 연출이었고 근데 그게 극 자체가 말하는 '나 자신' 그대로의 살아있는 언어로 시와 소설을 쓴 실비아 다운 과한 꾸밈없는, 그렇기 때문에 진솔한 이야기와 너무 잘 어울렸다.

난 넘버도 정말 너무 좋았다ㅠ 배우들이 다들 노래도 잘하시고 표현 자체도 잘하셨어서 잘 부름의 영향이 없지야 않겠지만 배우가 노래를 잘해서 좋은 거랑 노래가 좋아서 배우가 잘 부르는 것도 잘 느껴지는 건 다르지ㅎㅎ 좋았다 정말ㅜ 극 자체로도ㅠ 받게 된 마음의 위로도ㅠ

처음 뵌 분들이 많았는데 다들 잘하셔서 너무 좋았고ㅠ 그 와중에 막공주 전주인데도 또 과한 사람이 없어서 자첫러 앗!하게 하는 분 없는 것도 좋았다ㅎㅎ 아 근데 규현테드는... 무대 등장하자마자 와 너무 예민한 시인처럼 생겼어 싶었는데 실비아랑 마주치고 시 읽는 순간 목소리가 와.. 실비아야 제발 저 사연있는 목소리에 낚이지 마요 제발요 했는데.. 안 그럴 리가.. 시놉 자체가 그랬지만 당연히 그럴 수 없었으며ㅜ 첫 만남 실비아 테드 춤 장면은 괴로울 정도로 아름다워서 망한 헤테로의 짧은 행복을 깊이.. 열심히 누렸다고 합니다ㅠ 생생하고 활기 넘치는 수정실비아랑 건조하고 어두운 규현테드의 만남이 실비아의 시 속 이야기처럼 테드에게 실비아의 생기와 삶이 빨아먹혀가는 거 그 자체 같은 대비를 지녀서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이었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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