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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21221 연극 맥베스 레퀴엠

by All's 2022. 12. 23.

 

캐스트 - 류정한 안유진 정원조 김도완 박동욱 이상홍 이찬렬 정다예 홍철희 김수종

 



맥베스가 아니라 맥베스 레퀴엠이니 개작이 당연히 들어갈 수 있는 거지만 이 극이 다르게 만들어낸 요소들이 그다지 좋아하는 방식과 방향이 아니라 즐거운 관극은 아니었다.

예언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찌르는 칼날과 같은 욕망에 휩싸인 맥베스의 세상을 상징하는 듯한 창살 형태의 무대나 눈이 굉장히 흡족한 의상, 맥더프와 맬컴이 맬컴의 왕위 수복을 위해 설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테이블을 통해 체스판 위의 말을 옮기듯이 서로의 진짜 속내를 읽어내고 자신들이 바라는 의지가 있는 가 알아보는 연출처럼 맘에 드는 부분도 있기는 했고 진심으로 전 배우의 연기가 매우 흡족했지만 중요한 이야기가 취향이 아니었음.

그리고 이야기 이전에 배우 구성이... 맥베스 부인과 맥더프 부인에게 올리비아랑 애너벨이라고 이름을 준 거까지는 좋은데 올리비아 제외한 여성 인물 연기를 모두 한 명이 멀티로 하게 하느니 그냥 여배우를 몇 명 더 썼으면 좋았을텐데.. 숫자적인 PC함을 생각 안 하기에는 내용적으로 굳이 멀티로 해야할 당위성을 못 찾았다. 예언을 가장한 저주를 퍼붓는 세 마녀를 굳이 성별을 지우고 목소리로 표현할 거면 명칭이 다르던가 옆에 스크린 보니 뻔히 마녀들이라고 나오는데 무대 위의 여배우는 그런 장면에서 섞여 나오지 않는 올리비아 빼고 정다예 배우 한 명이고 다예 배우가 올리비아 제외한 모든 여캐를 혼자 다 하는 걸 잘하네 기특하네 의의를 찾고 싶지는 않고 그럴 바에 배우를 몇 명 더 써라 싶었다.

극 올릴 때 이거저거 빼고 줄이는 거 자체에는 길수록 내 몸도 피곤하니 너무 무리수만 아니면 줄여주는 거 좋아하고 그래서 1막 1장 던컨이 맥베스랑 뱅쿠오 승전보 전해듣는 장은 생략한 거 깔끔하게 훅 자르네 했는데 로스가 맥더프 성에 가서 애너벨이랑 캘런한테 위험할 수 있으니까 몸 피하라고 하는 부분은 굳이 왜 뺐나 싶다. 로스가 진짜 누구 편일지 모호하게 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겠다만 지금은 정말 말 전하면서 너무 지켜만 보다가 마지막에 이길 쪽에 붙는 것처럼 보이는 여지가 있어서 굳이 왜 그래야하나 싶었다. 로스가 위험할 수 있으니 피하라고 하는 거에 맥더프가 자기들 생각 했으면 이렇게 소식도 없이 이럴 수 없다고 생각해서 애너벨이 아들한테 이야기하는 사이에 습격 당하는 흐름이 나을 것 같다ㅠ

희곡에서 점점 정신착란이 심해지고 외적으로 격렬하게 무너지는 맥베스와 달리 올리비아가 맥베스의 앞에서 강건해보였으나 결국 맥베스와 똑같이 야망에 취해 손을 더럽힌 자이기에 결국 몽유병에 걸려서 피폐해지고 손에 묻은 피로 상징되는 죄악감에 눌려가는 것을 그런 단독 연기 자랑씬을 유진 배우가 하고 있다는 건 좋은데 맥베스와 똑같은 환청을 들으며 맥베스의 앞에서 하는 건 별로 맘에 안 들었다. 그리고 맥더프의 아들인 캘런이 나의 아버지는 반역자가 아니라고 맞서다 죽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맥베스가 자신은 여자의 몸에서 낳은 자에게는 죽지 않는다는 예언에 기고만장하여 덤벼들다가 맥더프가 나는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나온 자라고 한 뒤 맥베스가 그의 손에 죽는 것 등에서 그냥 길거리 사람들의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갔다면 걸려들지 않았을 야망에 취해서 자기 손으로 살인하여 반역자가 되고, 친우와 그의 자식을 죽이고, 스스로를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비겁하고 저열한 인간의 멸망이 고고한 자들과 대비되는 게 좋았는데 이 개작은 내가 좋게 본 그 포인트들을 귀신같이 없앴네ㅠ 결국 결말이 확 바뀌어서 맥더프가 망가진 맥베스에게 사랑하는 이가 없는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라고 하고 맥베스는 절망 속에서 자살하고 끝이 나는 터라 맥베스가 불행하긴 해도 최후까지 망가지지는 않는 종류의 엔딩인 게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끝에서 맥베스가 맥더프 손에 죽음을 맞거나 아니면 미치광이가 되어 떠돌다가 끝나거나 했으면 또 다른 기분이었을까 싶은데 앞에도 썼지만 맥베스가 자기 손으로 스스로의 생을 끝내서... 너무 끝이 고고하게 느껴졌다. 자기를 믿고 사랑한 이들을 자기 욕망에 미쳐서 모두 죽이거나 자기랑 똑같은 욕망에 물들여서 망친 존재인데 그에 합당한 구질구질한 끝을 맞지 않는 건 단순하고 권선징악 좋아하는 내 취향에 전혀 맞지 않았다. 원작 희곡 맥베스의 자기 그릇에도 맞지 않는 자리를 욕망하다가 그 자리에 오른 뒤 세상도 자신도 망치는 부분이 현시국하고도 맞물리는 지점이 있어서 구질구질한 인간의 처참한 패망을 기대했던 소기의 목적이 있어서 더 기대와 어긋나기도 했다.

그리고... 레퀴엠이라고 제목에 추가된 부분에 걸맞게 이건 연극이 아니라 음악극이라고 나와야 할 정도 아닌가 싶게 음악이 많이 나오는데 두세가지 테마가 반복일 때 우리말이 아닌 가사를 가진 테마들이 있던데 스크린에는 자막으로 뜻이 나오더라. 극에서 불리는 노래 속에서는 뜻 설명을 안 하는데 애초에 뜻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자막에서도 한글 음차만 나오게 하던가 뜻을 알리는 게 필요했으면 그냥 극 안에서 외국어/우리말로 번갈아 부르면서 스크린 안 봐도 뜻을 알게 해야하는 거 아닐까 싶었다. 뭔 생트집이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그런 거 진짜 안 좋아해서 별로였다. 자막을 관극 보조 수단으로 써야지 그걸로 의미 전달을 하면 극 보는 동안 배우들 딕션이 나쁘지 않아서 일부러 고개 돌릴 필요도 없다 싶어서 안 본 사람들은 뜻을 알고 보세요 하는 걸 놓치게 되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 보통은 한국에서 올리는 극인데 라센/창작 가릴 거 없이 영어 좀 작작 써라하고 화내는 편이니 그냥.. 외국어도 쓰고 싶고 뜻도 전하고 싶으면 스크린 보조로 쓰지 말고 극 속에 녹여주길 바라본다. 그리고 음악 자체가.. 음악 사용이야 할 수 있는데 빈도수나 비중이 생각 이상으로 많은데 나는 연극은 말 맛을 느끼고 싶어서 가는 건데 음악 사용이 굉장히 많고 맨 마지막 장면은 대사가 아니라 코러스들의 노래로 소리적 끝을 맺으며 이야기를 전하니까 좀 주객 전도처럼 느껴졌다. 이왕 그럴 거 말이 아쉬운 대신 음악들이 맘에 들었다면 이 정도로 잘 뽑았다면 써야지 싶을텐데 그렇게 확 좋지도 않고 적은 테마가 단순하게 반복되는 쪽이라 음악이 맘에 꽉 차지도 않는 애매한 정도라 좀 이 극은 이래저래 내 취향하고는 안 맞았다. 

너무 나쁜 말만 쓴 거 같다만... 하필 안 좋아하는 부분으로 취향에서 빗긴 구석들이 너무 확고하게 있어서 보는 동안 좋았던 부분에 대한 감격을 토로하기에는 좀 아무래도 그랬다ㅠ

그렇지만 출연하는 배우분들의 연기가 다 매우 좋고 장면적으로 대부분의 배우들에게서 와-싶게 좋은 게 있어서 출연배우 좋아하시는 분들이면 한 번 쯤은 보시는 거에 아쉬움은 없으실 것 같다. 나도 원래 좋아하던 배우 보는 맛은 좋았고 무난한 배우도 괜찮게 온 부분이 있었으며 처음 본 사람들도 맘에 들었어서. 로스랑 맥더프 부인인 애너벨 캐릭터 빼면 희곡보다 손해보는 인물은 없다 싶었고 다들 제가 보기에는 잘 하셔서 만족스러웠다.

특히 유진올리비아의 마지막 씬이나 파티 장면에서의 원조뱅쿠오의 환영 연기나 정한맥베스의 던컨 살해 씬, 도완 맥더프와 찬렬 맬컴의 대치신은 와-싶게 좋았다.
다른 후기에서 유진 올리비아랑 정한 맥베스가 각자 소극장 뮤지컬/대극장 뮤지컬 연기를 해서 대극장 연극 문법의 연기와 겉도는 게 있다는 얘기를 봤는데 공감이 가는 얘기인데 나는 거슬리지는 않았어요. 어느 방식이든 저한테는 다 봐오던 거라서 뭐 각자 잘하기만 하면 되기도 하고 두분이 케미가 굉장히 좋아서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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