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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21201 연극 빛나는 버러지

by All's 2022. 12. 13.



캐스트 - 송인성 배윤범 황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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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사인한 계약서라는 문장이 몇 년 만에 가장 선연하게 박혀오게 해준 공연

오로지 집 한 공간을 통해서 선량하던 보통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다 못 해 무참한 살육자가 되는 순간을 그리고 결국 그렇게 일군 공간에서 그들은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까지 이어지는 극을 만들어낸 극작가의 영민함도 그걸 빛과 색 만으로 그려낸 연출의 깔끔함도 기대했던 그대로 정말 너무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멋진 연극을 보면서 그런 극을 보는 만족감과 함께 그 극에서 질과 올리를 마냥 나랑 다르다 할 수 없는, 미스 디가 말하는 어린이들이 되지 않을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같이 와서 즐겁고도 괴로웠다.

질이 백화점에서 본 모든 것들을 열망하고, 이웃이 이사 오고, 카탈로그를 접하고,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다른 산모들을 만나며 여기서 끝이라던 욕망이 다시 충동질 당하는 순간들이 당장에 내가 물욕에 사로잡히는 순간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는 걸. 질과 올리의 꿈의 집의 그림이 되는 '꿈'을 새겨주는 건 무엇인가. 질과 올리가 벤자민에게 주고 싶었던 희망까지, 그 그림을 그려서 주입시키는 존재는 무엇인지 마냥 그걸 비판하기에는 그 꿈들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에 흔들리는 걸 정당화해주는 세상은 또 어떤가. 당장 나도 우리 부모님 집은 집값 안 떨어져서 나중에 부모님이 주택 연금으로 노후 자금 쓰시게 되어서 내가 부양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죽을 때까지 혼자 불안하지 않게 살 수 있게 해줄 집을 꿈꾸면서 대출 금리가 오르는 거에 숨막혀 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집값이 떨어지는 거에 한숨쉬던 것과 같은 이유로 집값이 올라감에 따라서 서울은 뜨고 싶지 않은데 나는 내 몸 하나 뉘일 내 집 살 수 있을까 한숨 쉬던 내 상태가 질과 올리버와 다를게 없어서 나는 저들과 다르지 않아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들처럼 당장 눈 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피는 묻히지 않았겠지만, 파업으로 지하철이 연착이 되거나 하는 거에 아 왜 하필 내가 이동할 때라고 짜증을 내는 그 순간, 난 이미 방식이 다를 뿐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일 알바를 한 뒤에 쿠팡에 진절머리를 내게 되면서 결국 쿠팡 불매를 하고 있지만 내 택배가 생각보다 늦게 오면 답답해하고 살던 동네에 중국인 이웃이 늘어나는 걸 무서워하고, 그리고 그런 내가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거라는 이야기들을 찾아보며 합리화를 하던 순간들이 극을 보는 동안, 그리고 지금 극을 곱씹는 동안 너무 선명하게 그려진다. 질과 올리가 그 모든 게 자신들이 아닌 벤자민의 미래를 위한 거였다고 합리화를 하게 되는 걸 현재의 불의를 나의 미래 세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말하는 이들을 은유하면서 질과 올리가 결국 극 말미에 벤자민과 그들의 태어날 아이 역시 그 착취에 동참할 새로운 이들로 당연스레 말하는 순간을 통해 결국 수단이 목적이 되어 미래는 핑계가 될 뿐인 걸 보여줄 때 그런 핑계는 옳지 않다고 자연스럽게 말해주는 것까지 소름끼쳤다.

그리고 미스디가 계약서를 흩날릴 때 새하얗게 빛나던 무대가 빨간 빛에 물드는 순간은 그냥.. 완벽했다. 어디서 이런 극을 또 찾아서 올렸네. 어이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내'가 좋은 집을 갖게 되고 그 집이 비싸게 팔리려면 다른 누군가는 집이 없거나 그런 집에서 전월세로 대여비를 내면서 피가 빨려야 하는데도 사람들이 타인의 욕망은 나쁘다 하면서 나는 그런 집 하나를 갖고 싶음에 눈 감는 상황을 진짜 죽은 자의 피를 통해 집이 바뀌는 걸로 그려내는 극작가도 그런 극을 들여와서 올리는 이들의 대범함과 안목도, 그걸 이렇게 내 맘이 불편하리만치 잘 빚어내어 보여주는 제작진과 배우들 모두에게 존경심을 보낸다.

석정배우야 매체로 알고야 있었지만 세분 다 무대로 처음 뵙는 분들이었는데 세분 다 다른 종류로 목소리가 너무 좋으셔서 귀가 황홀하고 평범함과 선량함과 잔혹함을 넘나드는 경계를 너무 유연하게 하면서 객석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게 그냥 진짜.. 대단했다. 조금 찾아보니 오늘 조합 리딩 공연을 올리셨던 극단 햇의 멤버들이시라는데 너무 대단했고ㅠ 각 배역의 더블캐스트는 세 분 보다 젊은 연령대인 이들로 꾸려진 게 캐스트로 세대적 대비를 만들지만 그럼에도 다 같은 메시지를 보이게 하는 거 그 자체로 어떤 그림을 만들어내는 거겠구나 싶어서 다른 조합도 너무 궁금해진다.

극 자체가 다 너무 현실적이었지만 케이가 이 집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며 기뻐하던 순간이 너무 현실에서 속을 치게 만드는 비극 그 자체라서 정말 괴로웠다. 화려하게 빛나는 세상의 어떤 존재들, 훌륭한 서비스, 빛나는  건축물, 국가적인 행사 무엇이든.. 그런 것들의 수행자나 재료가 된 이들은 그 존재들에 스스로를 빼앗기다 못 해 갈려 사라지는데 정작 그렇게 착취당한 이들은 내가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존재의 일부라며 행복해하나 그 아름다움들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것이고 누구도 그들을 다시는 떠올리지 않는다는 비극을 그 짧은 순간에 다 담아내서 보여줌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착취 당한 존재들이 차라리 자신들이 당하는 부당한 폭력을 알거나, 아니면 아예 모르는 것보다 더 가혹한 순간. 내가 그 빛남의 일부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세상의 눈속임이 성직자인 척하는 질과 올리로 인해 더더욱 극대화되었고 먹먹하고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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