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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10818 연극 일리아드 낮공

by All's 2022. 12. 3.




캐스트 - 최재웅 (퍼커션 장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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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분노와 불행들이 제발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모든 걸 기억한다는 건 모든 게 계속 반복된다는 걸 잊을 수 없다는 고통이겠지. 망각의 동물인 인간이여 얼마나 더 잊은 척하며 계속 또 싸우고 파괴하고 분노하고 싸우고 파괴하고 아플 것인가.

원래는 밥 먹을 거 아니면 공연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는데 마음이 너무 허름해져서.
 공원에서 해 좀 쬐고 갈래



일리아드를 읽은 적이 없어서 내용 이해를 못 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내레이터가 서사시를 노래하기 때문에 그 걱정이 무색했고, 고전을 모르는 건 자랑이 아니지만 모르기 때문에 아킬레스와 프리아모스의 부분은 오히려 예상치 못 해서 눈물 짓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뜻밖음이 끝이 아님을 이미 그 이전의 장면에서 쉴새없이 토해낸 수많은 전쟁들, 전쟁들, 전쟁들로 말하였기에 잠깐의 눈물지음 뒤에는 결국 바로 그 토해냄 때 느낀 절망이 스미네.

그 부분을 명확하게 계속 짚어주는 친절한 공연이라 말로 꺼내지 않아도 신들의 대리 전쟁 끝없이 반복되는 싸움에서 소련과 미국,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직접 내레이터의 입으로 그 말이 나오는데 마음이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그냥 숨이 턱 막혔다. 저 높은 곳의 손가락 튕기기도, 그 아래 땅 위의 고통받는 절망도, 그 사이에 켜켜이 쌓이고 반복되는 분노도, 모든 게 반복되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 알고는 있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잠시 안타까워한 뒤 또 한동안은 잊었다가 다시 그 이야기와 불행이 수면 위로 오르면 잠시간 안타까움과 걱정을 쏟고 또 잊을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지금은 마음의 자리에 고개를 들고 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뭐가 있을까.

나약하고 게으르며 잠시 분노하고 쉽게 잊어버리는 나에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 고민하게 해준 것 만으로도 이 극은 충분히 가치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그렇게 하게 된 생각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찾는 걸텐데 지금은 막막하지만 찾을 수 있기를 작게라도 작게라도 할 수 있는 일을.

고대 그리스 서사시 속 이야기를 직접 본 기억을 통해 노래하는 내레이터를 보며 모든 걸 기억하고 모든 걸 간직하고 있는 아이 포스너를 떠올리지 않는 건 나에게 있어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모든 걸 기억하는 것의 무게와 그로 인해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던 아이와 씁쓸하게 이불 속에 누워 등을 돌리고 그저 마지막 노래이길 바라는 이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극의 극초반까지는 내레이터도 내레이터지만 퍼커션이 시시각각 상황을 그려내는 게 너무 신기한데 악기가 달라지면 대체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서 다른 캐슷으로 또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자둘각을 세우고 있었는데 지금 당장은 또 마음이 너무 허름해서... 극이 참 좋은데 좋은데... 또 볼 수 있을까.

단순한 세트와 단 한 명의 배우, 단 한 명의 악기 연주자가 절제된 연출 속에서 무한하게 확장된 세계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게 오히려 어지간한 극들보다 더 자극적이었다.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인데도 너무 좋았고 특히나 헥토르와 안드로마케가 함께 한 장면의 그림자 연출의 아름다움 너무 좋았어

코가 잘생기고 골격이 또렷한 배우의 실루엣이 완벽한 그림자를 보면서 사심적으로 그림자도 잘생겼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비치는 그림자마저 눈여겨보게 하는 연출력이 좋았고, 이어서 아킬레스와 파트로클로스의 대화씬에서는 아예 벽에 붙은 그림자를 넣었는데 어느 한 쪽이 완전히 누구라고 딱 정의할 수 없게 한 부분이 아킬레스의 무구를 쓰고 그인 척하게 될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스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같아서 그것도 좋았다.

일리아드 간만에 웅 보겠다는 사심 100퍼센트로 잡은 관극이고 그 마음 200퍼센트 채워주고도 넘치게 웅내레이터 너무너무너무너무 잘하고 좋았는데 그덕에 허름 맥스라 오히려 배우 연기 얘기를 못 하고 있고... 사과 예쁘게 잘 깎는 거부터 마지막에 등돌리고 이불 다시 덮는 모든 순간 좋았다고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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