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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80829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by All's 2020. 6. 20.

 

 

캐스트 - 김선영 박은태 정의욱 김민수 류수화 정가희 김현진 송영미



낯설고 당황스러웠던 부분 중 배우의 몫과 연출의 몫을 찾은 관극이었고 더 잘했고 못 했고의 문제보다는 나에게 무엇이 더 맞고의 문제였음을 확인했다. 아쉽게도 지나간 버전이 더 나에게 맞다는 게 단 하나 안타까움이네.

초연 때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가지고 있던 감정의 설렘과 완전함에 빠질 때 주변이 쏘아주는 것으로 관객에게 가하던 그들의 관계에 대한 냉함 혹은 두려움이 프란체스카에게서 들어갔다. 두려움이 들어간 자리만큼 프란의 확신이 줄었는데  소설부터 초연까지 이어진 명대사를 뺀 것과 함께  그들의 사랑이 운명이고 그들은 아주 특별한 면을 갖고 있고 그런 사람들끼리 영혼이 공명했다는 것보다 그저 평범한 한 사람 프란체스카가 자신을 잊고 있던 건 사랑을 통해 깨닫고 깨어진 이전의 휘둘리던 자신을 넘어 스스로 선택을 했다는 걸 의도한 변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 명은 그림, 한 명은 사진으로 어딘가에 온전히 속하기에는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 둘이 서로라는 자리를 찾아 그 어디를 떠돌아도 그 곳의 풍경들을 담으며 자유롭게 유영하는 걸 꿈꾸게 하던 초연을 사랑했던 입장에서는 초연을 더 아끼며 재연은 재연대로 좋은 이야기임을 인정하고 가야할 변화. 세상에 정답이라는 건 없고 난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모두 이 사랑이 운명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전의 선택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소중한 사람들을 두고 갈 수 없던 프란체스카를 그린 초연이 난 더 좋다. 결국은 프란의 이야기라는 건 같은데, 재연은 로버트가 너무 외로워 보여서.. 너무 아프네. 뭐 그래서.. 1막 마지막에 프란체스카의 손에 이끌려서 로버트가 가던 걸로 끝나던 것에서 둘이 키스하고 암전하는 걸로 바뀐 거랑 2막 아이스크림 가게 앞 연출 바뀐 것도 다 그냥 변화구나 할 수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디모인 이후 마지와 찰리의 대화가 변한 건 역시 싫다. 찰리의 그럼 내가 떠나야지가 그렇게 뒤에 나오고 마지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손가락질 하는데 떠날 거냐고 화내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초연에서 그 대화에서의 찰리의 뉘앙스가 마치 운명적 사랑이 온 아내를 어찌 원망하겠어같은 운명 긍정론같은? 불륜 옹호같은 뉘앙스를 강하게 줬다고 판단해서 그랬나 싶은데.. 당신이 그럴 이유가 있었겠지와 당신한테 그럴 일은 없어의 연결이 그저 마지가 늙어서 그럴 일이 없다는 느낌이 오히려 너무 강해졌다. 대화가 길고 농담이 커지니 나랑 당신이 사랑하는데 그럴 일이 어딨어가 오히려 약해졌다.

초연 옥프란은 로버트와 만나는 순간 끌림을 감지했으나 거부할 수 없이 휘말리는 감정 속에서 사랑을 같이 키워갔고, 재연 퀸프란은 끌림의 템포가 좀 늦은 대신에 끌림과 사랑이 커질 수록 두려움을 느껴가고, 차프란은 끌림이 처음부터 강렬한데 그래서 두려움과 거부의 강도 역시 처음부터 커서 감정의 파고가 큰데 그래서 프란체스카가 배우에 따라서 모두 다른 색으로, 그러나 특별한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역임을 또다시 확인했다. 극과 부딪친 부분에서 연출의 영역이 어딘지 확인했으니 이제 찬찬히 재연의 프란들 감상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재연 관극 2번 합쳐서 다시 쓰기]
두 번의 관극을 통해 재연을 처음 보고 낯설고 당황스러웠던 부분 중 배우의 몫과 연출의 몫을 찾게 되었고 어떤 연출이나 방향성이 더 잘했다 못 했다의 문제보다는 나에게 무엇이 더 맞고의 문제였음을 확인했다. 아쉽게도 지나간 버전이 더 나에게 맞다는 게 나라는 관객 개인에게 안타까운 현실인 듯. 지나간 건 다시 올 수 없으니까. 한 명은 그림, 한 명은 사진으로 어딘가에 온전히 속하기에는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 둘이 서로라는 자리를 찾아 그 어디를 떠돌아도 그 곳의 풍경들을 담으며 자유롭게 유영하는 걸 꿈꾸게 하던 초연을 사랑했던 입장에서는 초연을 더 아끼며 재연은 재연대로 좋은 이야기임을 인정하고 가야할 변화였다. 개취로는 아쉽지만 이것도 괜찮은 이야기임을 양심이 인정한다. 재연 자첫 때는 변한 부분들에 당황이 넘쳐서 미쳐 제대로 보지 못 했는데 이번 상연은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사랑이 아주 특별한 운명적인 사랑임을 덜어내고 4일 간의 사랑을 통해 잊고 지냈던 '자신'을 찾은 한 여자를 그려내는 걸로 이야기의 중심을 더 옮겨놨다. 자첫하면서 바뀐 부분과 안 변했는데 내가 다른 뉘앙스를 느낀 부분 등이 구별이 안 되어서 뉴캐스트 배우에 대한 불호인가 했는데 배우를 바꿔서 관극을 또 하니 배우 자체의 특성도 기인한 게 있지만 아예 내가 느꼈던 뉘앙스를 많이 없앴다는 걸 확인했고, 몇 명은 그거 기준 재평가를 했다. 배우의 영향도 있지만 연출 방향성이 달라진 크고 작은 변화가 궁극적으로 호불호를 결정지은 부분이었고, 영상 남은 거 살펴보고 기억을 되살려보고 등등을 통해 조합해본 결과 기준으로 초연이랑 대충 어떤 뉘앙스가 달라져서 재연 자첫 때 안 맞았는 지, 그렇지만 납득했는지 옮기려 한다.

기억력 자체가 좋은 편이 아니라 흐릿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초연 프콜 영상들을 보면서 달라진 부분을 확인 했는데, 사람들이 인식하는 큰 변화 중에 로버트의 대사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이 대사를 뺀 부분 말고는 소소하게 바뀐 부분들이 감상 변화에 기여하는 바가 더 컸다. 프란체스카가 한 가정 속 평범한 주부에 가깝게 느껴지게 하기 위한 변화라고 생각하는데 인식하고 나서 가장 '아'했던 부분은 '집을 짓다'에서 프란체스카 동선. 재연 자첫 전에 프레스콜 시청을 먼저 하면서 프란체스카가 마이클 얼굴 쓰다듬어 주고 캐롤린 바라보면서 웃는 거 다정하고 예뻐서 드로잉북을 싱크대에 넣는 거 보고 원래 저때 치웠나 의아했던 걸 잊고 다정함에 빠지고 말았는데 그 부분부터가 키였다. 초연 프레스콜 영상을 보니 앞치마를 두르기 거의 직전까지 프란체스카는 다른 인물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드로잉북을 소중히 껴안고 다녔다. 그림을 그리는 부분이 아주 소중한 인물인가봐를 생각보다 강렬하게 인식시켰던 장면이던 것 같다. 처음 로즈먼 다리에 프란이 로버트를 데려다 주고 그림을 그리며 로버트를 보고, 로버트는 다음날 촬영할 구도를 잡아가며 순간순간 프란체스카를 의식할 때 그들이 함께 한다면 가질 수 있는 행복한 삶의 모습이 저 모습이겠구나 직감했던 시작이 거기였고 그게 변한 거구나 재연에 와서야 찾았다. 나에게는 둘이 서로에게 끌릴 수밖에 없던 공통점을 발견하게 한 순간이었던 게 달라진 거였다. 프란은 그림, 로버트는 사진으로 머무르는 게 아니라 세상을 담아가며 살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여겼던 초연 사랑꾼이 키를 놓치고 가면서 재연 자첫 때 감상이 처음부터 삐끗해서 심란했던 거였다. 드로잉북을 아이들을 보다듬기 전에 부엌 싱크대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는 재연의 프란체스카는 초연보다 훨씬 일찍 자신의 젊은 시절 꿈을 가정과 가족을 위해 저 한 구석에 밀어놓은 존재라 그런 거였구나 뒤늦게 깨닫고 나니 재연을 재연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초연 프란체스카는 아직 자신이 삶을 살아가면서 가졌던 꿈을 인식도 기억도 하는데 꺼내볼 여유가 없는 사람이고, 재연의 프란체스카는 이제 그 꿈을 거의 완전히 잊고 산, 주부의 삶 속 서랍 한 구석에 두고 그걸 거의 잊어가는 사람임이 시작인데 첫 단추를 놓치고 흐름을 따르려 했던 거였다. 꿈마저 서랍 속에 넣어둔 사람이니 가정과 아이오와와의 연결이 깊어서 가정하고 겉도는 느낌이 약할 수밖에 없는데 대신 프란체스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한 사람에 훨씬 가까워졌고,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인 공감대는 오히려 높아지는 변화였다. 그리고 그런 시작과 뒤이은 감정선의 변화로 프란과 로버트와 닮은 사람이라기보다는 한 평범한 사람이 되었기에 영혼이 공명한 느낌을 주던 로버트와의 사랑이 프란이 스스로가 누구인지 어떤 꿈을 갖고 지금까지의 삶을 좌우할 선택을 했었는지 잊고 살았다는 것을 환기해주는 계기에 가깝게 변했다. 그 4일 간의 시간을 통해 프란체스카가 변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 사랑 자체를 중요하고 특별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 소설부터 영화 초연에 이르기까지 사랑받았던 로버트의 대사를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할지라도 빼버리는 과감한 결단도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대극장 감성 로맨스물이라길래 막연히 흥미를 가지고 있다가 이 대사가 영화의 명대사라는 걸 서칭을 통해 알게된 뒤 '와 나 이거 볼래.'하고 극 캐스팅 발표도 안 되었는데 결심하게 만든 대사기이도 해서 못 듣는 게 아쉽지만 재연에서는 이 대사를 뺄 수 밖에 없구나 29일에 납득했다. 

프레스콜에서 이어진 간담회에서 초연 때 불편함을 느꼈던 부분들을 수정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보고 '불편함 뭔데? 불륜이 덜 불륜으로 느끼게 하겠다는 거야 뭐야. 불륜이지만 그럼에도 사랑이고 그럼에도 가정을 지키는 책임에 대한 이야기잖아하고 불편하지 않은 게 가능은 해?'하고 생각했는데 연출가와 이야기를 나눠본 건 아니지만 거기서 말한 불편함은 초연 때 관객들이 불편하다 말한 이런저런 디테일들(앙상블들이 너무 째려봐서 무섭다, 남배의 상탈이 잦고 과하다, 키아라 관련 연출 및 대사 불쾌하다 등등)을 걷어내고 불륜 미화 부분을 만지는 걸로 한 것 같은데, 전자는 대부분 맘에 안 들거나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후자는 내가 생각한 거랑 다른 방식이지만 뭐 좋은 결과라면 결과 같고 그 부분이 희대의 명대사를 빼게 했다고 본다.

불륜 미화냐는 비판이 있으니 그들의 사랑이 불륜이 아니라고 납득시키는 것 같은 지점을 빼고 '네 형태는 불륜입니다.'해버렸다. 그리고 프란체스카는 특별한 사람이라서 역시 특별한 사람인 로버트와 만나면 아무리 가정이 있어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거라는 낭만을 빼고 로버트와의 관계에 대한 평가는 아예 극 중에서 지우고, 그 시간들을 통해 달라지고 새로워진, 그렇기에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은 프란체스카를 남기는 결단을 내렸다.

초연 때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감정의 시작점은 같고, 그들은 감정이 점점 커져서 그렇지 가지고 있던 감정의 설렘과 완전함에 빠진 순간 자체에는 남들을 크게 의식하지 못해도 앙상블의 시선으로 마을 사람들로 대표될 세상의 시선이 그들을 쏘아보고 관찰하고 그들의 관계가 부적절한 관계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관객에게 주지시키던 걸 앙상블의 쏘아봄의 빈도도 강도도 디모인 카페씬과 '혼자가 아냐' 넘버 정도 빼면 줄이고 그들의 관계에 대한 냉함과 인물들이 그다지 갖고 있지 않던 두려움이 프란체스카에게 들어갔고, 그 두려움이 들어간 자리만큼 감정에 대한 프란의 확신이 줄었다.
프란은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떠날 만큼 소중한 감정인지, 그리고 그러는 게 정말 자신을 위한 일인지 등에 확신이 적고, 확신이 없기에 가족이 모두 방에 들어갔고 마지가 들어오기 전 디모인에 갈 수 있는 그 찰나에도 머뭇거리다 결국 마지가 들어온 순간부터는 로버트에게 갈 수 없어졌기에 상황에 밀려 포기한다고 생각하며 선택을 유예하는 걸로 느껴지는데 그러다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가서야 로버트에게 이별을 진심으로 고하는 선택을 한다. 계속 날 데려가 달라고 하던 사람이 자의로 가족을 선택하기에 로버트를 안 따라가는 게 로버트가 좀 뭇 여성의 이상형 같은 사람이라 아쉬운 거지 '저런 가족을 더 사랑하는 걸까? 이 둘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맞지만 이게 그렇게까지 소중한 감정은 아니었나?' 한 구석 의문을 두고 헤어지게 한다. 프란은 로버트 없이도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 구나, 둘의 사랑에 아주 푹 빠지지 않은 관객에게는 스쳐가는 사랑인가 의문을 갖게 하는 진행이다.
그러다 '내게 남은 건 그대'으로 로버트의 순정은 재확인되고 평생 프란을 기다렸고 그렸던 로버트의 유품을 매만지고, 그의 편지를 읽으며 언제나 사랑했음을 프란이 고백하는 걸로 끝이 날 때 '아 프란체스카에도 평생 이 사랑이 아름답고 소중했구나.'하고 파이널 펀치를 날려준다. 이 구성 반전급은 아니지만 감정의 격정에는 반전급으로 강하고, 그래서 굉장히 애틋하고 마지막 장면까지도 프란체스카가 사실 진짜 엄청 사랑한 거야!하고 프란의 마음 속을 보여주는 거라 보고 나오면 이건 프란 원톱극인데 싶은 극에서 프란으로 결국 끝을 맺으면서 운명이라는 장치없이도 로버트와 프란의 사랑에 눈물도 나게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열심히 잘 노력해서 다듬은 거고 명대사를 뺀 것도 그렇기 때문에 메시지를 위해서 유의미해졌다. 원래도 그런 극을 진짜 더더욱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로 정돈했고 그 것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방향을 의도했고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정말 더더욱 프란의 이야기가 되어버려서 이미 사랑 자체에는 확신을 갖고 있지만 가족을 두고 로버트와 떠나는 게 옳은 선택일까를 고민했던 초연에 비해서 로버트가 굉장히 좀 가엾게 느껴져서 로버트를 생각하는 마음으로는 재연이 너무 슬펐다. 이미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가 되어버린 사람들이기에 곁에 머물 수는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서로의 자리에 있었을 것 같던 초연 때는 연락은 하고 있지 않아도 나흘 간의 시간 뒤 프란체스카도 그를 사랑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로버트의 기다림이 공허하게만은 안 느껴지는데, 계속 날 데려가 달라고 두려워하던 프란체스카도 마음에 담고 있던 재연의 로버트는 스스로의 사랑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겠지만 프란체스카 역시 그를 그가 프란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만큼 사랑할 거라 생각했을까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되고, 나라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팠다. 같이 사랑한 건데 너무 짝사랑에 가깝게 느껴져서 가족들과 함께 그래도 살아간 프란과 달리 로버트가 너무 가여웠다. 그래서 세상에 정답이라는 건 없고 어쩌면 보편적인 공감은 재연이 더 잘 이끌어낼 수 있다고도 보지만, 개인적으로는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모두 이 사랑이 운명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전의 선택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소중한 사람들을 두고 갈 수 없던 프란체스카를 그린 초연이 난 더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초연과 다른 부분 모두 불호는 아니다. 그냥 그림적으로 개취의 영역으로 느껴진 변화와는 대부분 타협했다. 대표적인 건 1막 마지막에 프란체스카의 손에 이끌려서 로버트가 가던 게 둘이 키스하고 암전하는 걸로 바뀐 거랑 2막 아이스크림 가게 연출이 가로등에서 조명으로 바뀐 거? 프란체스카가 핑크 드레스 입고 나온 뒤 마지에게 전화가 왔을 때 로버트가 야한 장난 치는 거랑, 1막 마지막 처리 등등 섹슈얼한 뉘앙스가 많이 풍길 부분들 줄인 건 둘의 사랑의 운명성을 지워버리고 불륜으로 보면서 찝찝해 할 여지가 큰데 둘이 하는 짓이 더 야하기까지 하면 '헐 불륜... 불륜이야..'하고 관객들이 너무 멀어질 수 있으니 섹슈얼 텐션을 가능한 한 낮춘 거다 싶었다. 초연 때 프란체스카가 로버트 앞에서 신발을 벗을 때 풍기던 섹슈얼한 느낌이 사라진 걸 아쉬워하는 입장인데.. 신발을 벗는 게 보인다는 건 맨발이 보인다는 거고, 다리도 보인다는 거고, 각선미 있는 여인의 벗은 발과 각선미가 보였고 그게 눈에 들어왔다는 걸 그날 처음 만난 여자에게 뒤에 이상한 농담으로 얼버부릴 만큼 능숙하게 묻지도 못 하면서 툭 내뱉게 되는 남자에게 어떻게 보였을지가 주는 두근거림을 좋아했어서 그랬다. 그래서 재연 자첫 때 프란이 신발 벗는 장면 느낌이 달라진 거에 놀랐는데 달라지게 한 것도 의도된 것 같다. '왜 이렇게 다른 느낌이 들지? 프란 배우 모두 다리 예쁘고 몸매 좋은데 뭔데 뭔데!!'했는데 29일에 자둘하면서 보니까 바로 그 예쁜 다리 자체가 신발 벗을 때 안 보인다는 걸 알았다. 프란체스카가 '집을 짓다' 다음에 원피스에서 펑퍼짐한 바지로 환복을 했으니 어떻게 다리가 보이겠나! 다음날 프란이 로즈먼 다리에서 사진 찍힐 때 원피스 입고 나오는 걸 커튼콜 이후 그림과 맞추기 위해서 저녁 식사 준비 전에 옷을 갈아입게까지 해야하고, 일단 집을 짓다 다음에 옷을 바꿔 입어야 하는 2번의 의상 변화가 추가됨에도 바꿀 만큼 의도가 있는 의상 변화고 그게 성적 긴장감을 줄이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난 초연 때 무드를 좋아했기에 아쉽지만 타협을 그럼에도 한 건, 관객들이 찝찝한 둘의 관계에서 불쾌함을 유예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걸로는 납득할 수 있어서.

여튼 취향과 다를 뿐 다른 건 거의 납득한다면서 납득 안 되고 싫은 것들도 풀자면... 디모인 이후 마지와 찰리의 대화가 변한 건 역시 싫다. 찰리가 마지가 내가 외간 남자랑 바람 피면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그럼 내가 떠나야지. 당신도 이유가 있겠지. 내 꼴을 보면.'으로 대답하는 게 대화 극 초반이 아니라 몇 번 말을 주고받은 뒤로 밀리고, 마지가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 하는데 날 두고 떠날 거냐고 화내는 장면을 지금처럼 필요 이상으로 길게 늘렸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초연에서 그 대화에서의 찰리의 뉘앙스가 마치 배우자의 바람은 본인의 부족함 때문이고, 운명적 사랑이 온 아내를 어찌 원망하겠어같은 운명 긍정론이자 불륜 옹호같은 뉘앙스를 강하게 줬다고 판단해서 그랬나 싶은데 서로 더 길게 투닥거린 뒤에 '당신이 그럴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하는 게 어떤 깨달음보다는 아 자꾸 대답하라니까 생각해보면 가겠지 어쩌겠어라는 느낌을 새롭게 주며 이어서 '당신한테 그럴 일은 없어.'와 연결될 때 그저 마지가 늙어서 그럴 일이 없다는 느낌이 너무 강해져서 그 부부의 평범하지만 깊은 사랑의 무게감이 오히려 줄어버렸다. 과장된 캐릭터인 마지의 행동도 길어지니 장면 자체의 웃음기가 커져 '나랑 당신이 사랑하는데 그럴 일이 어딨어.'의 뉘앙스가 오히려 약해졌고 그 부분 매우 맘에 안 든다. 혁주배우와 류수화배우의 마지 둘다 김희원배우의 마지보다 민수 찰리와 겉보기 나이차가 더 나는 면이 있어서 왜 자기보다 나이 그래도 젊은 아내 면박주냐는 느낌도 들고, 작품 전반에서는 불륜임에도 아름다운 사랑을 그릴 지언정 찰리와 마지로 특별한 만남 아니어도 서로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음을 짧지만 깊게 나타내던 게 얉아져서 싫다. 배우보다는 대사가 변한 탓이니 3연이 올 때는 이 부분만큼은 내 취향과 무관하기 초연처럼 바뀌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초연 때 관객들이 별로라 한 부분 고치려 한 거 중에 아니 고치라고 했다만 이렇게 고치라는 건 아니었는데 싶은 삐끗선들이 있는데, 2막 극 초반부터 로버트가 너무 헐벗고 있는 거 민망하니 셔츠 좀 입히라는 건 셔츠 단추를 조신하게 다 잠그라는 수준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너무 다 채웠다. 단추를 살뜰하게 다 차고 있으니까 프란과 로버트 둘이 잤다는 뉘앙스가 너무 약하다. 그리고 프란도 가운같은 걸 입어서 더 가린 게 아니라 여배우만 너무 헐벗은 듯 보이니 프란응 가운을 걸치고 로버트는 셔츠를 입고 있지만 단추는 다 풀어헤지는 걸로 3연에서는 중간 지점 찾아줬으면 좋겠다. 키아라 취급에 대한 불편함은 세상이 강요하는 정숙함같은 거 내던지고 남들이 손가락질하든 자기 욕망대로 사는 인물에게  남들도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의 여동생의 남편이랑 자식이 '창녀'라고 직간접적인 지칭을 한다는 것과 '춤추는 것보다 다리 벌리는 게 더 쉬운'같은 가사 등이 의도가 아무리 분명해도 불쾌한 부분이 근본적인 문제인데 그 부분은 안 건드리고 옷이나 바꾸는 건 고민의 깊이가 너무 얉아서 왜 헛짓거리하냐 싶다. 아빠는 이모 보고 막장 인생이라 하는데!라고 하는 식으로 1막 캐롤린 대사 만큼은 바꿔줬으면 좋겠다. 그런 말 하는 남편도 그걸 엄마 앞에서 하는 딸도 너무 무례하게 느껴져서 그 부분은 정말 볼 때마다 불쾌하다. 키아라 드레스를 바꿀 게 아니라.. 대사를 바꿔달라 제발.

그리고 초연 때 마리안이 로버트 전처라는 걸 모르는 경우도 있어서 가수 된 로버트 전처입니다.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또 다른 삶' 연출 바꾼 건 알겠는데 마리안이 아무리 용을 써도 주연 배우가 뭘 하고 있는데 무시하고 마리안만 보자니 찝찝하고, 가운데에서 노래 부르는 마리안에 집중하자니 프란이랑 로버트 하는 걸 못 보니 역시 찝찝하다. 게다가 마리안이 사진들고 옛 추억에 잠겨있다보니 로버트를 떠나는 시점이던 초연에 비해 떠난 뒤에도 미련이 많이 남아 로버트를 회상하는 걸로 보여 산뜻하게 제 갈 길 가지만 날 슬프게 한 남자이니 넌 나를 계속 신경쓰라며 기타를 두고 간 짖궂고도 찡한 그렇지만 산뜻한 사람이라는 마리안의 매력이 사라져서 아쉽다. 컴플레인 들어온 거 반영하려는 성실함은 높이 사는데 또 너무 모두 반영하는 건 아닌 것 같고, 할 거라면 흠 잡힐 구석없이 더 고민해서 3연에 반영되면 좋겠다.

극 얘기는 대충 끝났고, 배우 얘기로 가면, 난 프란은 초연 옥프란이 제일 좋은데 그건 배우의 실력이니 씽크로율이니 같은 걸 다 떠나서 초연 방향성과 옥프란 캐릭터와 배우 고유 분위기의 어우러짐이 더 취향인 거라는 걸 미리 밝힌다. 연출 방향과 거기에 어우러진 배우 특성이 전적으로 취향의 영역 기준 옥이 가장 좋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옥프란 쪽으로 뭔가 저울이 기울어 있을텐데, 배우 실력 비교는 아니다. 결국은 셋 다에게 장단점과 호의 영역도 찾았는데 누가 최고네 어쩌네 하는 걸로 오해받기 싫어서... 초연 옥프란은 로버트와 만나는 순간 끌림을 감지했으나 거부할 수 없이 휘말리는 감정 속에서 사랑을 같이 키워가는 인물이다. 후기 초반부터 주야장천 얘기했지만 재연 프란들과 달리 아직 본인의 꿈에 대한 아쉬움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고, 수더분한 마을 사람들과 달리 새침한 태도에 우아한 말투 등이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과 겉도는, 아직 완전히 아이오와에 정착하지 못한 외부인 느낌이 강했다. 프란체스카가 겉돌기 때문에 방랑자같은 로버트와 같은 종류의 사람임이 그냥 보여지는 걸로도 맞물려서 한 곳에 머물러 있지만 어우러지지 못해 외로운 사람과 어딘가에 머물 수 없어 외로운 사람이 서로의 닮은 색을 첫눈에 느끼고 함께 키워가는 느낌을 좋아했다. 로버트와 프란이 세상에 둘도 없을 소울메이트를 만난 느낌을 주는 게 최대 장점, 재연에서 강화한 세상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인물로서의 프란체스카의 느낌을 주는데는 그 유별난 면이 단점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그 자신으로 유일하고 환경에 따라서 평범과 특이함에 대한 평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야기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특성들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거라는 점에서 '사람은 누구나 고유함을 가지고 있고 영혼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어렵다.'라고 생각하면 옥프란의 이야기도 자신만의 삶과 특별함을 가정을 꾸리면서 잃었던 여자의 삶에 적용되기에 현실과 동떨어진 그냥 로맨스가 아니라 옥프란의 이야기도 세상 모든 여성의 이야기로 파생해서 난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다.라는 걸 알려주는 프란이었다고 본다.

그랬던 상황에서 이제 재연으로 넘어가면, 후기들을 찾아보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도 같다만 재연의 프란체스카들은 다들 (다른 로버트를 보지 않았기에 은버트 기준) 로버트랑 감정의 속도가 좀 다른데 그게 앙상블에서 프란체스카의 몫으로 넘어간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로 다르게 느껴진다.

여왕프란은 로버트에 대한 끌림의 템포가 좀 늦은 대신에 끌림과 사랑이 커질 수록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여왕으로 보면 로버트는 첫눈에 프란체스카한테 반하고 프란체스카는 좀 어.. 이거 뭐지 싶다가 나폴리  사진을 보여주는 것을 기점으로 마음을 여는 것 같아서 늘 로버트보다 더 늦어 로버트가 더 매달리는 것 같다. 리처드 존슨의 아내이자, 캐롤린과 마이클의 엄마이고, 아이오와의 한 시골 마을의 주부인 삶에 적응한 충실한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이 적응한 역할을 위해 만들어놓은 세계가 방어벽같이 로버트에 대해 끌리는 마음을 막고 있다가 점점 부서지고, '부서진 내 모습'은 그렇게 역할 수행을 위해 세워놓았던 방어막이 부서지는 과정이다. 젊은 시절 나폴리에서 살 때 키아라가 욕망이 끌리는 대로 살라고 하는 거에 막연한 동경이나 배덕감을 기반으로 한 흥미는 있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키아라의 삶을 신포도로 여기지는 않고 안젤로와 함께 꾸려갈 소박하면서도 따뜻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으로 여겼는데 전쟁으로 인해 그 꿈으로 그렸던 내면이 부서진 걸 버드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응급처치를 하고 다친 상처를 감추기 위해 세워놓았던 성이 부서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스스로 정말 그런 삶을 원한 건 아니기에 자신이 세우기는 했어도 프란체스카라는 사람을 잃게 했던 선택이 만든 회피로 만든 '나'는 로버트와의 만남을 통해 부서지기 시작해 자신의 의지로 로버트와의 이별을 선택하면 그때부터 본인이 바로 서게 되고, 그 이후에는 누구의 엄마와 아내인 상황을 선택해서 이끌어가는 프란체스카로서 '나'를 가진 채 자신으로서 잘 살아가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다 보고 웅성웅성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에 흥미롭다고는 생각하지만 딱 맞다고는 여기지 않던 '로버트 관념설'이 정설일 수도 있다 여기게 하는 프란체스카라 좋았다. 그래서 로맨스가 좀 줄지만 체격에서 오는 비주얼 케미가 러브신에서 절박함으로 표현되어 상쇄되는 면이 있다.

차프란은 로버트에 대한 끌림이 처음부터 강렬한데 그래서 두려움과 거부의 강도 역시 처음부터 크다. 차프란으로 보면 둘다 첫눈에 반하긴 하는데 차프란이 진짜 많이 반해있어서 훅훅 질러나가다가 식사 끝나고 설거지 돕지 말고 가달라고 할 때는 훅 철벽을 쳤다가 다음날 로버트를 만나면 또 너무 설레고, 속절없이 끌리는 자기 감정을 어쩌지 못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하는데 그래서 나이를 떠나서 프란들 중에 가장 소녀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프란체스카는 이렇게 열정적인 끌림이나 감정은 가져본 적 없고, 나폴리에서도 수줍은 마을 처녀였기에 아랫집 소년이랑 아기자기한 사랑 정도나 해봤기에 얌전한 삶을 뒤흔드는 모든 게 버겁고 자신의 감정인데도 그걸 어쩌지 못 해서 세상이 흔들린다. 그렇게 서투르고 혼란스러운 프란체스카를 감정이나 사람을 누르고 다루는 것에 능숙한 로버트가 달래고 이끌어가는 느낌을 준다. 워낙 소녀같기에 잊고 있던 인물 자체의 변화가 로버트와의 사랑을 통해 성숙해진다는 감상을 줘서 성장 서사의 느낌도 주는 게 매력이다. 전쟁으로 안젤로가 죽고 삶이 궁핍해진 트라우마를 묻어두고 그 소녀에서 성장하지 못 했던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에게 이끌려서 눌러왔던 자기를 점점 꺼내어가다 이제 가정과 로버트 사이에서 자신이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을 맞닥뜨린 뒤 버드를 따라 미국에 왔던 때와 달리, 그냥 회피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이 선택이 더 맞다고 생각해서. 로버트가 자신을 끌고 가지 않아서가 아니라 본인이 가정을 꾸린 책임감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진짜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로버트와 이별을 선택하면서 이제야 진짜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는 성장을 한 느낌을 준다. 그 이후에는 진짜 어른이 되었기에 캐롤린에게 하는 조언이 정말 맞는 말로, 세상을 겪고 알고 있는 사람의 무게감을 갖게 되는 게 그래서 인상 깊다. 1막 초반에 캐롤린을 달랠 때의 말들이 아이를 달래는 목적이지 현실성은 없게 느껴지던 것과 다르게 캐롤린에게 지금 결혼할 때 걱정이 안 되는 건 정말 진짜 짝을 만나서라고 할 때 듣는 캐롤린도 보는 나도 응 그래하고 프란체스카의 말에 동의하게 될 만큼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인물이 감정을 확실하게 보여줘서 2막이 굉장히 격정적이라 프란체스카에게 몰입해서 본다면 감정의 파고가 큰 만큼 드라마틱한 감상을 할 수 있을 사람이라 카타르시스가 클 수 있는데, 초연 질척쟁이가 자첫으로 보면서 극하고 반 보 이상 거리감 갖고 이거 뭐 이렇게 달라졌어 하고 보느라 그걸 못 해서 보는 동안 과하게 싸운 부분이 이제와서는 좀 미안하고 죄송하고, 그렇다. 근데 앞서 쓴 서투른 소녀라는 특징 자체가 좀, 히피 느낌도 바람둥이 느낌도 전혀 없는 은버트인데도 능숙한 도시 사람 로버트가 순진한 시골 아낙네를 꼬시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서.. 초연 콩깍지 벗고도 다시 봐도 그 부분이 좀 날 불편하게 할 것 같아서 나는 계속 안 맞을 것 같기는 하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개취지 프란들은 캐릭터 자기들에게 맞게 잘 짜왔고 잘했고 연기 잘하고 있고 좋다. 다들 자기만의 프란을 가져왔고 매력적이다.

그렇지만 화해못할 캐스팅도 있는데 그건 버드.. 콕 집어 황만익 버드다. 초연 때 선우버드가 표현한 츤데레 느낌의 속은 다정한데 말 참 틱틱거리고 섬세함이라고는 없지만 결국 프란과 가족을 사랑하는 진솔한 인물을 좋아했다. 재연은 버드가 딱히 되게 괜찮은 사람같아 보이지 않아서 당연히 로버트 따라가야하는 거 아니야?하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하는 것 또한 불륜 미화라 여길까봐 그런지 재연 버드들은 캐롤린 긴장 풀어주겠다고 장난도 많이 치고 프란체스카에게도 로버트처럼 아예 심리를 파악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다정하게 대하는 사람들인데 버드가 나쁜 사람도 아니지만 또 되게 괜찮은 사람은 아니라 평범한 보통 남자라 주부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신을 잃어가는 여성의 고독을 이해할 수 없는 이여서 가정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지만 그래도 그 위기를 지난 뒤 스스로가 부족했던 부분을 (평생 완벽해질 수 없었겠지만) 온 힘을 다해 이제는 프란과 함께 꾸려나가려고 했을 이 시대의 노력하는 평범한 가장의 느낌을 줘서 '나 떠나면' 때 버드의 마지막 퇴장 때 프란 못지 않게 힘들었던 사람이구나 그 등 뒤를 보면서 울컥하게 만들던 흐름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게 재연 버드들 중 황만익 버드에게는 유난히도 없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사람이 가벼워서 이게 프란체스카가 진짜 나폴리에서 너무 힘들어서 사람 잘못 보고 미국 갔다라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평소에 좀 팔랑팔랑해도 속 깊이 묵직한 구석도 있는 사람이었다면 안 그럴 텐데 그냥 사람이 가볍다.

이웃사람들하고도 잘 지내고 아이들한테 재미는 없지만 장난도 치고 나쁜 사람은 아닌데 시련이나 위기가 왔을 때 그걸 귀신같이 알아챌 눈치가 있는데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회피하면서 걍 우리 웃으면서 살자하고 지나갔을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그거 진짜 너무 안 맞는다. 아이스크림 사러 가기 전 트럭 주변에서 가족들끼리 대사 바뀌었다고 자첫 때 착각했는데 아이스크림을 다 같이 사러 가자고 하는 것도, 가족에게 이러면 안 되는데 아빠가 미안하다고 하는 것도 깊은 반성이나 후회보다는 상황 회피를 위해 일단 그 상황을 넘기자는 가벼운 제안과 영혼없는 사과로 느껴져서 그렇게 오해했던 거였다. 일단 면피를 위한 가벼운 사과와 위기 상황을 대충 웃어넘기는 식의 행동 양식을 가진 버드라 프란체스카가 가족이 사는 내내 이런 식으로 살았을 것 같으니 진짜 프란체스카 힘들었겠다 화가 난다. 그 결과 느껴져서 버드에게 동정심이 안 생기고 이입이 안 된다. 개인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해야지 끝까지 그걸 모르는 척하고 넘기려는 사람 정말 싫어하는데 너무 그러하고, 버드가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이별 뒤에도 계속 그런 스탠스로 삶을 살았을 것 같으니 프란이 남은 삶 동안 사느라 고생했겠다 싶고, '나 떠나면'에서 버드 죽는다는데 안 슬프고.. 앞에서 안 슬프니 장례식 이후에 전화 오기 전까지 냉한 상태로 있다가 감정을 끌어올려야하니 관객인 내 감정선이 끊겨서 당연히 극의 감동에 지장을 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같이 참을 수 없는 가벼운 회피러 싫어하는 사람은 황만익 버드 노선 정말 힘들 것 같다.

정의욱 버드도 초연 만큼의 느낌을 주는 건 아닌데 이 사람은 다정하고 듬직한데 섬세함이랄 게 애초에 없어서 사춘기 아이들의 심정도 본인이 살아보지 못한 여성의 아픔이나 심정이나 그런 건 이해 못해서 자기 딴에는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것들이 삐끗하는 그런 사람이라 걍 감수성이 없으니, 보고 듣고 살아온 게 아이오와나 해군으로 이태리 갔을 때 정도 이외에 없는 세계가 좁은 사람이라 그런 무심함은 어쩔 수 없는 투박함으로 납득이 되는 지점이 있다. 눈치 좋아서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면서 저렇게 딴 소리하네 하는 식의 빡침을 안 주고, '나 떠나면'에서 가벼운 사람 아니고 사는 동안 책임을 다하고 마지막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때는 구나 좀 뭉클하게도 해준다. 원래 취향은 호인 버드 안 좋아해도 감상에 지장을 주지 않고 틱틱대는 남편 극혐인 분들에게는 좋은 선택이기까지 할 것 같다. 체격이 좋아서 군복 입은 모습도 멋지다.

마지는 류수화 마지가 장례식 이후에 대사 치는 게 좀 더 좋기는 했는데, 혁주 마지도 나쁜 건 아니다. 재연 마지들이 초연 나윤마지에 비해서 아이들하고 좀 덜 친한 느낌을 주는 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데 그건 배우의 의도보다는 연출의 의도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연출이 굳이 의도한 게 아니라면 초연 마지가 프란체스카 자체를 좀 더 좋아하는 노선이었던 걸로 넘길 수준의 차이이니 호불호를 가리는 건 무의미하다고 본다.

초연 때 유리아배우가 원캐스트일 때 역이 생각보다 작아서 재연 때는 앙상블 중에서 좀 잘할 만한 배우로 써도 될 것 같다고 했지만서도, 둘다 보고 나니 노래도 연기도 좀 더 능숙한 유리아 배우 쪽이 더 좋긴 좋다. 근데 정가희씨가 그렇게 못 하는 것도 아니라 유리아 마리안 디테일이 더 좋지만 가희배우를 굳이 피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송영미 캐롤린, 김현진 마이클은 노래가 좀 더 는 것 같고, 정확히 어디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번 상연에서는 집이 싫어서 미치고 팔짝 뛰는 아이들의 모습이 조용하게 자유를 꿈꿨던 프란체스카의 기질을 아이들이 타고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아이들이 사춘기라고 엄마 너무 괴롭힌다 짜증이 난다 하던 게 쟤네도 답답해서 저러겠지 싶어져서 이제 좀 전보다 애들 행동에 화가 안 난다는 게 좋았다. 역시 초연부터 하신 원캐인 김민수 찰리는 계속 잘하고 계시고ㅇㅇ

전캐 찍을 생각도 없었지만 이제 재연 자막이라 볼 일 없는 강타 로버트 제외하고 초연부터 원 앤 온리 로버트가 된 은버트는 여전히 노래 잘하고, 초연보다 격정이 좀 줄어든 역할인데 여왕이랑 붙을 때는 적극적인 연하, 차언니랑 붙을 때는 젠틀한 매력남 느낌 나서 좋다. 머리도 지금 머리가 더 깔끔하고 멋짐. 애초에 히피 같은 사람 아닌 본연의 건실함을 더 살려주는 헤어가 보기에 깔끔하고 좋다. 박은태 배우 특유의 건실한 느낌이 굉장히 젠틀하고 그 시대답지 않게 열린 사고를 가진 로버트라는 인물에 어우러지는 건 초연 때부터도 그랬고 지금도 매력적이다.

프란체스카와 달리 옷들도 다 예쁘고 잘 어울리고(프란체스카 옷은 디모인 갈 때 입는 옷 말고는 다 미묘한... 그리고 왜 여왕은 그 옷 안 입고 나오는 지도 좀 궁금하지만 어디 물어볼 곳이 없는ㅠ) 프란체스카와의 사랑에 남은 온 생을 바친 순정남을 여전히 잘 보여주고 있어서 초연 때 좋았던 사람은 여전히 좋을 것 같고 그게 나고 은버트는 정말 좋다. 그리고 진짜 노래 너무 잘하시고... 뭐였을까도 단 한 번의 순간도 내게 남은 건 그대도 다 좋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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