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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70909 연극 M.Butterfly 밤공

by All's 2020. 6. 19.

캐스트 - 김주헌 장율 서민성 황만익 송영숙 김유진 강다윤

 

 

 

 

 

 

*트위터 단상

 

 

공연 제작진들에게 관객들은 멍청하지 않습니다 성토하기 대회를 해야하는 때가 정말 온 것 같다.
말을 길게 할 수 있을지 짧게 할지 알 수 없지만 이게 스포일까 아닐까 생각하며 쓸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절대 없는 후기를 주절주절 말하게 될 것 같습니다.
공연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거고 유일무이한 정답은 없죠. 같은 소재, 같은 극본, 심지어 같은 제작진이 참여하여 만들어도 동일한 텍스트의 극이 달라질 수 있으니 뭔가 하나가 최고고 완벽하고 그것만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호오와 장단과 완성도에 대한 어느 정도의 평가는 가능하다고 보는데 이번 연극열전의 2017년 연극 엠버터플라이는 동 컴퍼니에서 제작했던 이전의 버전 중 제가 관람한 재연과 삼연에 비교하였을 때 별로고 단일극 하나로 놓았을 때 메시지를 친절하게 잘 전달하겠다는 오판 아래 극 요소요소마다 가지고 있던 고유한 의미의 무게감이 현저히 얄팍해져 전체 극이 가지고 있던 깊이감이 소멸되고 의미가 좁아진 극이라는 게 저 개인의 감상입니다. 주인공 인물을 돋보이게 하겠다고 주변 인물들의 무게감을 죽여서 각 요소들이 조소하던 한 개인, 한 국가, 어떤 인종, 어떤 문화, 결국은 세상을 이루는 그 모든 것의 나약함과 지질함이 모여서 이루어지던 압도감은 사라졌고, 듣기 편하게? 혹은 말하기 편하게 하겠다며 바뀐 어미는 극이 가지던 고전과 현대 사이의 근대적 시대상이 암시되는 듯 다가오던 문학성을 흩트립니다. 모든 말들이 가지고 있던 은유 사이에 이건 이런 뜻입니다하고 해석과 주석을 달고 상상의 여지를 닫는 극이 상상 속에 갇힌 한 인간의 비겁함과 지질함을 이야기한다는 게 현재로서는 이 극 최고의 아이러니 같네요.

2017 엠나비를 보기로 마음 먹었을 때 스스로에게 하던 생각이 있었어요. 전 공연들을 너무 좋아했다는 이유로 현재의 버전을 그저 달라서 싫다고 하거나 별로라고 느끼면 안 되는데 그럴까봐 겁난다. 그런데 지금 저의 불호 감상은 제가 재연과 삼연을 보지 않았다면 덜했겠지만 이전 공연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극호였을 것 같지도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굳이 이런 걸 확인하게 되었다는 건 슬프네요. 다르게 괜찮은데 이전이 취향인 게 해피엔딩인데 말입니다. 본 게 있으니 비교할 기준이 더 명확하기는 하지만 보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 별로라고 할 부분들이 저에게 불호가 아닐리가 없는 것이 위에 두루뭉술하게 써놓은 이야기입니다. 엠버터플라이는 주인공 르네 갈리마르가 화자가 되어 자신의 지난 20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가장 메인이 되는 인물은 그래서 르네와 송릴링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등장인물들이 단순히 상황을 만드는 조연이 아니라 두 인물이 그러하듯이 모든 인물들끼리 그때그때의 상황과 이해관계, 혹은 인물들의 심리에 의해 관계의 우위가 전복되고 그런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권력과 힘을 갈구하나 갖지 못하거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나약하고 지질한 인간 개인의 열등감과 비겁함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그런 관계를 서양인의 머릿 속 동양과 서양의 차이라는 오리엔탈리즘을 가장 큰 소재로 끌고와서 비웃으면서 서양이라는 정복자의 환상 속의 동양이 실제와 어떻게 다른 지를 비웃고, 그 안에 내포된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한 남성의 시선을 비웃고, 그러면서 극본가가 중국계 서양인이라는 점에서 또 서양 제국주의를 비웃으면서 동양을 반대급부로 추켜올리는 듯한 느낌이 후반부에 나는 완전한 여자도 남자도 될 수 없기에 이 모든 것을 안다고 하는 미스터 송의 자조적인 변론 속에 시선의 전복과 정복자, 혹은 정복을 원하는 자를 조소하는 극을 쓰면서 인간의 지질함을 이야기하는 작가 자신도 완전히 면죄부가 있지는 않다는 것까지 이어지는 극인데 각 인물이 가진 무게감을 충분히 다루지 않으니 여기까지 이어졌어야하는 텍스트의 묵직함은 소멸되고, 남는 건 환상을 믿고 싶었던 한 남자와 예술가로서 그를 속이는 것으로 자신의 최고의 연기를 펼치다 결국 어떤 사랑까지 원했으나 그건 거부당한 다른 한 남자만 남아버렸고 세상과 한 개인을 모두 이야기하던 극은 남자는 비겁하고 나약하다.정도까지밖에 이야기를 펼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관객들이 문어체의 대사를 듣는 걸 지루하게 느낄 것을 의도했는지 대사의 어미는 '~다'에서 '~요'가 되었고, 대사들 사이사이에 주석도 달렸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가장 익숙한 예문인 '내 마음은 호수요'가 원래 대사였다면 '내 마음은 호수요. 내 마음이 맑고 투명하다는 뜻이지요.' 정도의 설명력이 곳곳에 심어져있고, 설명이 들어간 자리만큼 조연들의 비중이나 분위기는 가벼운 톤으로 잡혀있는데 이 부분이 미치도록 화가 나네요. 대사 사이 사이에 설명이 들어가서 늘어났을 러닝타임이 걱정된 건지 르네와 송도 말을 빨리하고 행동과 대사 사이에 호흡이 짧은데 조연들은 정말 특히 짧고, 그 짧아짐이 인물들이 가지고 있던 무게감과 의미를 작게는 축소 크게는 소거시킵니다. 가장 피해입은 인물은 소녀 르네와 친동무와 헬가, 가장 피해 덜 입었다면 덜 입은 캐릭터는 뚤룽 정도...하지만 르네의 친구인 마크부터 심지어 잡지 속 여자까지 모두 의미 절하 무게 상실 당했어서 이렇게 각각 캐릭터의 경중을 따지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수준. 인물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호흡을 잃으면서 그들이 르네와 송에게 권력상 우위에 있다는 시그널들이 상실됩니다. 잡지 속 여인의 적극적인 구애에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지 못하다는 거에 짓눌려서 성기가 서지 않아서 성인 잡지로 자위 하나 제대로 못 하는 남성인 르네의 나약함을 표현하던 장면은 '뭘 해줄까요? 다음 번엔.'이라는 대사가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르네의 고백 뒤에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뱉어지고 그녀가 직접 발코니를 걸어나가던 장면은 의자에서 섹시한 자세를 취하며 한꺼번에 다 뱉어진 뒤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르네의 말 뒤에 의자에 누워 섹시한 포즈를 하고 있는 잡지 속 여자가 암전으로 사라지는 연출로 바뀌는 것 등을 비롯하여 처음 송을 만나고 온 날 밤 헬가에게 자켓을 벗어서 걸어달라는 듯 건네지만 헬가가 무시하자 그냥 본인이 의자에 놓던 장면이 애초에 집에 오자마자 의자에 본인이 재킷을 걸어두고 넥타이를 푸르고 옷을 벗어가며 헬가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되면서 헬가가 언제나 르네보다 집안에서 우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고, 르네는 늘 그 관계의 전복을 꿈꾸지만 실패하고 있다는 은유가 소멸되면서 헬가의 인물성은 고이고이 사라지죠.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짚으면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뭐라할 수 있을 수준이고, 여기에 마크가 합세하여 당장 무대 위 관객이 보기에는 느믈거리는 헤프고 역겨운 중년 남자인 마크보다도 남성적인 서열이 아래였기에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최하위여서 힘을 갈구하고, 단돈 66센트에 팔려와서도 핑거튼에게 순종을 다하는 나비부인을 이상향으로 꿈꾸다 자신의 이상향과 다른 도전적인 성격을 지녔음에도 동양 여인이라는 것 하나에 송에게 끌리고 그녀를 정복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받겠다는 르네의 역겨움의 강도는 주변의 압박이 연약해서 그 강도 또한 약해지고... 이건 송에게도 적용되어서 무려 친동무가 송보다 완연히 아래 급의 사람처럼 무시받다가 문혁 이후에 친이 복수하는 느낌으로 가는데... 이거 구구절절히 써서 까야하는데 구구절절히 쓰기 위해 다시 회상하는 거가 너무 고통스럽네요.

이전 연출 버전의 엠버터플라이에서 친동무는 송 릴링의 수발이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명백히 송의 감시자로 기인합니다. 르네를 이용해서 송이 얻어내는 정보가 가치있어지는 동안 노동하지 않는 배우 나부랭이인 송이 자신이 얻어내는 정보라는 힘을 통해 예술을 폄하하는 친동무 우위에 서는 듯이 자신을 뽐내고 친을 무시하고 그녀를 이용하고 싶어하지만 언제나 우위에 선 것은 결국 친동무였죠. 남자만이 진짜 여자다운 여자가 뭔지 알 수 있다는 송의 도발이 무력함이 드러난 문혁 이후의 상황이 가지던 깊이감이 날아가버린 건 큰 현수막을 발코니에 걸어 내리면서 문화대혁명입니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어요!!하는 상황 연출이 유치한 만큼 서글프고 억울하기까지 하네요. 타고난 신체적인 성별은 남자이지만 여자를 연기하고 남자만이 진짜 여자다운 게 뭔지 안다고 했던 송이 신체적인 성별은 여자이지만 인민복을 입고 딱딱하고 각잡힌 군인같은 말투를 쓰며 일반적으로 여성성이라는 느낌의 행동과 분위기를 전혀 보이지 않던 친동무에게 자신이 공산당을 위해 예술가로서 행했다는 스파이 행각 속 동성애적 엽색 행각을 만인 앞에 고백하며 꿇어앉혀지고 눌리며 '내가 남자를 모른다고? 그럼 내가 어떻게 결혼을 했을까.'라는 말로 진짜가 아닌 자가 흉내내봤자 결국 껍데기라는 것을 비웃는 장면이 얼마나 근사한데 이번 버전의 친동무는 그저 무식한 중년 여성이 자신을 무시했던 송에게 개인적인 복수나 하는 것처럼 연출되어 있고... 내가 이렇게 글로 쓰는 것도 사실 내가 느낀 속상함과 상실을 속속들이 잘 쓴 것도 아닐 만큼의 부족한 필력이라는 게 너무 속상하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캐들이 한참이고... 이중에 내가 이 극에서 송 릴링 다음으로 좋아하고 어쩌면 이 극의 아이러니의 정수라고 생각했던 소녀 르네.... 소녀 르네 생각하니 또 속에서 천불이 나는 구나. 아.... 소녀 르네여..

소녀 르네라는 인물은 단순히 송과 대조되는 잡지모델 같은 몸매의 서양 여자가 아니라 르네 갈리마르의 찌질함을 반전시키는 인물이고 이 극의 메시지를 위트있게 전하는 또 하나의 키라고 여겼기에 소녀 르네의 의미에 대해서만 이렇게 글을 쓴 적도 있었다.

 

alljey.tistory.com/218

 

 

짧게 등장하지만 그 임팩트가 어마어마한 역할이고 남자 주인공인 르네와 이름은 같지만 성별이 반전된 인물이 바로 페니스=꼬맹이로 대표되는 남성성과 힘이 부족해서 허세를 부르는 남자들의 구질구질함과 그런 구질구질함으로 꾸려지는 세상의 더러움을 직접적으로 비웃는데 그게 교조적이고 설명충스럽지 않게 전달된다는 게 얼마나 근사했는데 이번 2017 엠버터플라이의 소녀 르네 그런 무게감 소멸되었다. 배우 개인의 역량도 그 긴 독백을 소화해낼만큼의 기본기가 부족하기도 한데, 그저 배우 연기력 문제가 아니다. 삼연 때는 보정배우, 혜경배우 다들 좋았지만 사실 재연 때 혜경배우의 연기력 삼연 때보다 못했지만 그렇다고 소녀 르네라는 인물의 의미가 남자 성기 똘똘이라고 하는 정숙한 송과 대비되는 시끄러운 서양 여자로 절대 안 느껴졌었다. 적어도 소녀 르네의 독백같은 종류의 대사와 장면은 그 중요성과 메시지 전달 연출이 호흡  끊고 넣는 조절만 시켜도 소리 볼륨이 작아서 안 들리거나 국어책 수준만 아니면 100은 몰라도 진짜 최소 50은 전달될만큼 그 내용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2017 엠나비는 소녀 르네와 르네의 만남부터 똘똘이론 제창까지의 시간 아주 LTE고ㅋㅋㅋㅋ 좀 들을만한 소리를 하는 남자같아서 얘기를 하다가 별 것도 아닌 것 같아서 하룻밤 노는 상대하겠냐며 소녀 르네가 관계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그렇게 섹스를 한 뒤 이중 외도를 했음에 도취될 남자 르네에게 소녀 르네가 지금 니가 가지고 있는 그 똘똘이라고 내가 말할 페니스의 우스움을 이야기하며 뭔가 남자로서 자신이 해냈다고 우쭐할 만한 남자 르네의 지질함을 깔아뭉개고, 부족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속없이 겉을 부풀리는 남자들의 역겨움을 비판하던 장면을 원래 의도가 느껴질 만큼 그 대사들을 곱씹을 틈없이 우다다다 쏟게해서 관객이 앞서 들은 이야기의 의미를 이해력없고 멍청한 남자 르네가 미친 소리라고 하는 것처럼 정말 웃고 흘리게 할 수 있을 만큼 후루륵 해버리는데.... ....내가 하다하다 어떤 생각까지 지금 들었냐면 남자들 별것도 아닌 것들이 그거 달린 거 가지고 난리치는 거 아주 못 봐주겠다고 비웃는 텍스트의 의미를 살리기에는 본인의 신체적 성별이 남자라서 그거 비웃기는 거 못 견디겠거나 무의식적으로 그거 거부감 느껴서 소녀 르네 이따위로 의미 축소시키는 연출한 거 아닐까같은 궁예를 하게 되는데 와 진짜 하다하다 내가 공연보다가 이런 생각까지 해야겠냐고. 그거 달린 거 가지고 난리 펴는 거 못 봐주겠다는 이야기를 남자인 작가가 썼는데 연출은 그걸 살릴 깜냥이 안 되는 거냐고.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그게 그렇게 싫더냐 싶어지는 거지.... 차라리 그 의미를 몰랐다고 생각하기에는 난 이번 상연의 연출가가 사실 그렇게 텍스트 이해력이 극악하게 없을 만큼 이해력이 후지다는 생각은 또 안 들어서 이런 궁예까지 하게 되는데 그 상황이 너무 화나고 짜증나고 역겹다고. 아주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지만 그걸 드러내는 방식이 힘의 상하 구조, 그 안에서도 동서양과 남녀의 대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인간계 최상층인 선진국 백인 남성을 가장 찌질하고 나약하고 못 나고 역겨운 부분을 발가벗겨서 제일 살기 편한 1세계 백인 남성으로 태어나도 그걸 오롯이 누릴 수 있는 남성성이 없다는 거에 열패감을 가지고 자신의 나약함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우위에 서려다 심지어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고 자신은 못나지 않았다는 환상 속에 살기 위해 진짜 자기 목숨을 버리는 나약함을 이야기하기 위해 남자 그따위 것이 뭐가 그리 잘났다고라고 말하기가 그렇게 싫냐고. 그 의미를 그냥 그 무게감 그대로 보여주기가 싫고, 그리고 거기에 풍부한 함의를 넣기 위해 은유적으로 쓰여진 대사들이 그대로 나가면 지금 이 극의 관람 연령가 기준인 만 16세, 우리나라 기준 고등학생 이상이 못 느낄 만큼 관객이 그렇게 멍청해 보이냐고. 오리엔탈리즘까지 끌어오느라 백인 남성이지만 르네 사고방식 자기 찌질한 거 인정하기 싫어서 여자고 사회고 온갖 것들 후려치는 현대의 한국 남자들하고 다를 바 없는 놈이라 걔가 이렇게 우습고 지질하고 못났다고 하는 부분들은 약하게 가고, 그러면서 텍스트는 또 혹시 이런 거 어려울거라고 지레짐작하는 듯 설명충이고. 내가 다른 극도 아니고 엠나비를 보면서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다니 진짜 짜증나서 미쳐버리겠다.

그리고 또 짜증나는 건 이렇게 대사가 설명충이 되면서 훅훅 극이 아주 막 달려나가는데 130분이 아니었다는 것. 끝나고 시계보니 8시 50분이었다는 거. 지연 시작 5분은 절대 안 넘었을 것 같은데 중간중간 곱씹어갈 여운도 없이 마구 짰는데도 140분 엠나비 2015년에 전 상연들보다 10분 늘어서도 120분이었는데 대사를 얼마나 풀어서 우겨넣었으면 거기서 20분이 늘었어. 그나마 호흡 좀 느껴지게 장면 사이에 적절한 시간 넣으면 150분 나오겠다 아주. 설명충적 대사 우겨넣기가 극을 얼마나 늘어지게 하는 지 러닝타임이 증명하고 있다. 진짜 연출이랑 컴퍼니는 프리뷰 기간 동안 생각 좀 깊이 했으면. 연출 기준으로 욕 퍼부었지만 난 오늘 공연으로 연극열전에도 실망 크게 했다. 아무리 극을 만드는데 연출을 믿어주는 게 중요해도 자기 브랜드 걸고 올리는 극이 가고 있는 방향성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그저 이전과 달라서가 아니라 별로라서 화나게 하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지. 처음 이 극의 텍스트가 가진 매력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올렸을 거면서 텍스트를 얄팍하게 하는 걸 이렇게 그냥 두다니.. 번역 누가 한 건지 이제야 들춰봤는데 박천휴구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 더 어이가 없네.

신경을 꺼야지 하고 있는데 보고 일주일이 다 지나가는 지금도 사실 아직 바뀜 엠나비에 대한 분노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내가 재삼연충이라 그런 걸거야. 잊자 잊어..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네. 알마니가 돌아왔고 임신했어요 3연타 사이의 두둥 북소리가 사라졌다 등의 바뀌어가는 디테일에 대해서 검색으로 알아가고는 있는데... 알마니가 들어가는 앞 르네의 대사가 그 옷은 또 뭐야. 기둥서방 같아 가지고..가 아니라 그 천박한 옷은 뭐야라는 데에서 왜 뺏냐고 욕 먹으니 넣기는 넣는데 애매하게 흉한 말을 거세해서 사람 빡치게 하던 이번 상연의 맥락은 그대로인 것 같아서 더 화가 난달까... 관극 당일 날에 대충 감은 잡았는데 곱씹을 수록 짜증났던 게 불쾌감을 지우겠다면서 바뀐 단어들이 애매하게 순한 척 하는 게 싫다는 거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봐라 이 병신아가 멍청아가 되는 거 정도는 병신이라는 단어 자체의 사용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지만, 꼬맹이가 똘똘이가 되는 거나 기생 오래비가 천박하다가 되는 건 그 느낌이 주는 뉘앙스가 불쾌하다. 전자는 번역으로라도 작다는 소리 하기가 그렇게 싫더냐 싶어지는 게 예전에 사겼던 소녀 르네의 남친이 꼬맹이도 밤톨 만한게라고 하는 거에 고구마 만큼은 된다고 했다는 게 똘똘이도 작은 게라는 거에 난 평균은 돼라고 하는 거에서 사이즈 비교도 부끄럽고 남자로서 번역가와 연출가야 쪽팔리고 싫더냐 아니면 애매하게 상스럽지 않은 척 하려고 크기에 대한 즉물적인 단어 사용을 빼는 거냐, 그것도 아니면 맨날 평균 타령하는 한남들 수준에 맞춰 로컬라이징하는 거냐 싶었던 건데 가장 좋게 해석하면 후자겠지만 내가 9일 날 공연 보면서 느꼈던 감상은 아무래도 그 꼬맹이 담론을 직시하는 걸 가능한한 힘 빼고 고개 돌리고 싶어서 이렇게 순화시켜놓은 것 같다는 게 제일 컸고... 그런 식으로 각종 순화가 이루어진 번역이라 극 전반에 뿌려져있던 조소가 약해진 마당에 알마니를 넣어봤자 무슨 임팩트가 사는 건데가 이어지는 짜증이랄까. 얼마 전 프레스콜 영상 살펴보았는데 동선과 무대 구조 자체야 이번 버전만의 연출적 의도가 있을 수 있으니 싫어도 최대한 말 아끼려고 한 거에서 지저분하게 이어진다 느껴지던 부분들 여전해서 고칠 건 안 고치고 욕 안 먹으려고 이것저것 넣고 뺀다 생각하니 화가 나네... 이번 버전에서 좋은 부분을 찾은 분들의 감상에서 좋다는 거랑 싫다는 거에서 싫은 부분을 그래도 이리저리 견주다 보면 나오는 건 호불호의 영역으로 갈릴 수도 있지만 이런 저런 효과음의 사용이나 극의 속도감, 대사 연결의 동어 반복적인 면에 대해서는 꾸준히 지적이 나오는 것 같은데 결국 극에 군더더기가 있다는 거니까 뭘 뺄지를 생각하지 거기에 뭘 또 붙이고 있냐... 진짜... 답답하다. 애매한 깨인 척이 지금 이번 버전의 가장 큰 문제라고. 각 인물의 성격이나 관련된 사건들이 가져야 하는 불쾌감을 애매하게 죽이다보니 생긴 인물과 사건의 무게 감소, 전체 극의 긴장감 축소, 그와 함께 축소된 메시지와 협소해진 해석의 범위... 고저는 낮고 좌우로 군더더기 붙은 거니 쌈빡하게 잡아 당겨야지 해결이 날 부분을 사포로 문지르고 디피 바꾼다고 해결 되겠냐구요.....아 속상해 진짜....


뚤룽, 마끄, 헬가, 친동무, 소녀 르네에 대한 배우평은 패스입니다. 전에 비해 현저히 무게감이 소멸되게 연출된 인물을 연기해야하는 배우들에게 더 깊이있게 다뤄진 캐릭터의 상황을 아는 관객이 평을 하는 거 옳지 못 하게 느껴집니다. 강다윤 소녀르네의 경우 연기력이 튀게 별로기는 한데 배우 탓보다 너무너무 연출탓이 큰 상황이라 배우에게 화살을 돌리기 싫네요. 김주헌 르네와 장율 송 릴링은 이전 연출 버전으로 보았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라고 하고 싶고요. 더 많은 의미와 매력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고 그걸 충분히 표현하셨을 배우들 같은데 아쉽습니다. 율송의 경우 3막 전까지 여장 상황일 때 목소리가 작아서 뒷줄이나 2층에는 전달이 잘 안 되겠다 싶은데 프리뷰 기간이니 피드백 받으셔서 가녀리지만 더 크게 내실 수 있게만 손보시고... 원래도 그다지 좋지는 않던 안무지만 더 구려진 부분이 있는데 춤을 많이 못 추시는 구나 싶으니 그 부분도 좀만 더 연습을... 첫날 둘공 기준으로 그런 부분 빼면 지금의 두 배우에게는 크게 아쉬운 점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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