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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70806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낮공

by All's 2020. 6. 19.

 

캐스트 - 최재림 이상이

 

 

 

 

피가 낭자한다는 건 걱정인데 후기들이 너무 좋아서 진짜 각오 단단히 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피나 이런저런 부분들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갔더니 견딜 수 있는 정도였고, 어지간하면 객석에 피가 튈 일도 없을 것 같다. 덕분에 피 튀기기 대비용 타월 담요 대용으로 잘 씀. 대명 라이프웨이홀의 냉방 정말 너무 대단해ㅋㅋㅋ

극보다 배우 얘기 먼저.. 이상이는 베어로 처음 보고 이제야 다시 보는 건데 그때 신인답지만 분위기는 좋구나 사진보다 못생겼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무난하게 나쁘지 않네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깜짝 놀랄 만큼 많이 늘어있고 몸매 관리도 잘했는지 프로필 사진 속 사람 무대에 있어서 그동안 비주얼 성장 쭉 베어 초연 플필 사진들처럼 사진빨일까 의심했는데 아니더라.. 비주얼 오해해서 너무 미안했고 열심히 하는 젊은 배우의 연기 성장에는 감탄했다.

나나흰도 그렇고 그동안 쭉 좋은 평 들어오던 거야 아니까 당연히 잘하고 있으니 그렇겠거니 생각은 했는데 첫 대사를 시작하는데 발성부터 너무 많이 늘어있어서 깜짝 놀랐고, 원래도 목소리는 참 좋은 목소리라고 기억했다만 본연의 좋은 소리를 더 잘 전달하고 이용하는 스킬이 확실히 생겨서 새삼 더 좋게 들리더라. 아름다움을 꿈꾸고 이야기하고 세상에 대한 무한의 상상력을 펼치는 바불의 천진함을 그대로 담은 목소리였어. 부드럽고 천진하고 그러면서 단단하고 또 여린. 눈빛이 맑은 젊은 배우가 그렇게 맑은 목소리로 꿈꾸는 아름다움과 호기심과 궁금증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는 참으로 힘들고, 극 안에서 그의 친구이며 형제같기도 한 휴마윤이 바불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도 그 목소리의 힘이 아닐까 싶게 할 만큼 좋았다.

최재림은 전에 넥으로 보고 이제야 두번째인데 게이브는 대사가 유별나게 적은 역이라 긴 대사를 쏟는 건 처음 듣게 되었는데 노래할 때랑 목소리가 좀 다른 느낌이라 신기하다는 기분으로 초반에는 보다가 극 중간 중간 웃음을 참는 듯한 타이밍이 있는데 저게 휴마윤이 그러는 건지 배우 최재림이 참는 건지 헷갈릴 때가 좀 있어서 뭐지.. 저건 좀 별로네 하고 있었는데 인물 자체는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잡아왔고 휴마윤 역할이 곧고 어른스러운 듯 하나 서툴러야하는 구석이 있는데 타고난 생김 자체의 길고 곧은 체격이 워낙 잘 어울리는데다가 몸의 유연함과 표정의 약간의 뻣뻣함과 상대적으로 어른스러운 목소리가 다 섞이니까 보는 동안 극에 점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끝에 나올 때는 나쁘지 않네 싶었다.

여튼 캐스팅은 맘에 들었다.


극을 딱 처음 보고 나왔을 때의 감상은 기대보다 아쉽고 기대와는 다르다였다.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길래 나는 아름다움의 근원이나 뭔가 미적인 순간에 대한 탐미적인 어떤 절절함을 이야기하는 극을 기대했는데 내가 본 극의 느낌은 좀 다르더라. 기대가 매우 컸는데 그게 내가 자체적으로 의도한 방향이 있다보니 그게 아니라 실망스러웠는데 공연장을 나서서 내 기대 젖히고 그냥 보고 나온 극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니 아 좋네, 좋은 극이네하고 느낌이 와서 감상 쓰다가 극에 대한 인상이 바뀌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극을 보고 일단 계속 맴돌았던 부분은 바불은 타지마할이 달보다 아름답다 했고, 휴마윤은 그렇지 않다고 했던 부분이었다. 그게 계속 머릿속을 맴돌더라. 정글 속 호수에 모여있던 분홍, 보라, 녹색의 새들과 그 새들의 비상을 바라보며 느꼈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었던 이를 잊지 못 하는 휴마윤의 눈빛도 같이 기억났고. 이 극에서 조금 더 능동적인 인물은 바불이고 주제를 던지고 이야기를 키워나가는 이도 바불인데 유별나게 난 휴마윤이 기억에 남아서 뭘까 했고 사실 그런 나의 감상이 옳은 방향의 감상일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일단 처음에 든 생각은 휴마윤은 타지마할을 세상을 뛰어넘는 극상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바불은 타지마할을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생각했기에 그들의 끝이 다를 수 밖에 없던 게 아닐까라는 거였다.

저 하늘에 떠있는 달과 몇년 전 바불과 함께 본 정글 속 풍경이 타지마할보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웠던 휴마윤에게는 그가 속한 세상의 타고난 것들이 결국에는 가장 아름답기에 그는 자신의 세상, 자신의 친구를 지키고 싶었던 거고, 바불은 언제나 더 먼 어딘가 새롭고 다른 세상을 꿈꾸었기에 오히려 타지마할을 달보다 아름답다 느꼈고, 어쩌면 그 아름다움을 넘는 것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임무를 수행했기에 아름다움을 죽였다고 괴로워한 게 아닐까. 바불은 더 아름답고 더 위대하고 더 새로운 것을 꿈꾸는 영혼을 가졌지만 그와 동시에 순간의 아름다움에 경도되어 더더욱 그 존재에 무섭도록 집착한 게 아닐까 싶은?

타지마할 건설에 참여한 2만 명의 4만 개의 손을 잘라내고 또 그 손을 지지는 시간을 보낸 뒤 그 현장을 치우면서 손 고정대 가죽을 닦는 휴마윤을 보며 바불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굳어버린 손에서 겨우 떼어낸 검에 손을 뻗다가 화들짝 놀라는데 그런 그를 보면서 느낀 섬뜩함이 있었다. 그가 그 순간 검에 손을 뻗은 게 같이 아름다움을 죽인 자에 대한 내면의 분노인지, 온 밤을 꼬박 세워 손을 자르며 갖게 된 반사적 반응인지, 아직 떨치지 못한 소유에의 충동인지 무섭더라. 그가 황제를 죽이고자 한 것은 아름다움을 홀로 소유하기 위해 아름다움을 죽인 황제에 대한 분노인지, 그리고 그 밤이 지나고 왕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경호하게 될 기회가 주어질거라고 하자 왕을 죽이자고 휴마윤에게 말하는 부분의 광기가 그마저 죽이고 타지마할이 새벽빛을 받으며 찬란하게 빛나는 첫 순간을 간직한 눈 안에 간직하고 그것을 소유할 이에 대한 질투는 혹시 아닐런지.. 그런 생각을 극을 보는 동안 계속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지점이 흥미로웠다.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보고 기대하며 들어갈 때의 마음은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일까였는데 '나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생각하는 가.', '어떤 것을 더 아름답게 생각하는 가.', '그것들이 사람을 어떻게 다르게 만드는가.'를 떠올리게 한다는 게. 기대했던 방향과는 다르지만 멋지고 잘 만든 극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순간, 바불과 휴마윤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던 그 순간에 내가 떠올렸던 풍경이 다시 떠올랐다.

그들이 눈물 흘리던 그 순간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사람이 만든 아름다움에 상상 이상으로 감격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인생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갔을 때였는데, 파리를 갔다가 유명한 곳이니까 가야지하고 베르사이유 궁전에 갔던 날. 기대보다 별로라는 생각을 하며 베르사이유 궁전 투어를 마치고 정원으로 나오며 눈 앞에 펼쳐진 정원의 풍경을 목도했던 순간이 너무 강렬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나라가 파산할 만큼의 돈이 들 수 밖에 없겠구나 생각했었다. 봄이었고, 날이 덥도록 밝았는데 밝은 오후의 햇살 아래 하얗게 빛나는 조각들과 그들을 감싼 푸른 잔디와 나무들, 그리고 그 앞에 반짝이던 파란 호수를 한눈에 보면서 진짜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느꼈던 순간의 감정이 머릿 속에 그려졌고, 거기까지 생각이 뻗어간 뒤에는 바불과 휴마윤이 타지마할을 목도한 뒤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처럼, 그 이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로 생각하다가 지금 쓴 여행 속 경험보다 더 무언가를 아름답다 느꼈고 또 그래서 서러웠던 날로 생각이 이동했는데 그 생각의 이동과 함께 이 극이 내 안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어줬다.

나는 작년 탄핵 요구 촛불 집회에 참여한 게 인생 두 번째 집회 참여였고, 첫 참여 집회는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였다. 그때 물대포를 쏘며 강경진압을 하고 있다고 인터넷에 올라오던 거의 첫날이었던 것 같다. 이 시대의 젊은이로서 그냥 집에만 있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밤에 집 근처 공원에서 사람들을 모아 집회장으로 픽업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준 친구와 함께 그 장소에 가서 차를 얻어탄 뒤 버스 차벽을 어떻게 돌고 돌아 집회에 갔고 그리고 그날 새벽에 물대포에 쫓겨 해산 당한 뒤 날이 밝아갈 때 집으로 돌아갔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처음 출발했던 공원이 집 근처라서 거기를 지나서 집으로 갔는데 새벽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공원의 나무와 호수가 그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서 서러웠었다.

그 풍경을 보기 전 바로 몇 시간 전에 쫓겼던 물대포는 티비에서 보던 것보다 너무 강했고, 그때 정통으로 맞지는 않고 머리 위를 조금 스쳤는데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가버렸고, 등을 맞은 친구는 피멍이 들었다. 무자비한 물줄기를 피해 그저 친구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달리고 달릴 수 밖에 없었던 어둠이었다. 밀고 들어오는 물대포가 무서웠고 해산시킨 사람들을 찾아 뛰어다니는 의경들도, 그들을 피해 도망가야하는 상황도 무서웠고, 그 두려움에 날이 밝고 첫 차가 다닐 때가 되니 다시 시위가 시작될 때 함께 할까를 고민하다가 집에 가버렸어. 친구한테 내가 먼저 집에 가자고 했던 것 같다. 사람이 비겁해서 그 순간이 온전히 기억 안 나는데 그랬던 게 맞을 거야. 그때 집에 가자고 한 거, 단순히 지쳐서가 아니라 새벽을 지나는 동안 누적된 어떤 공포감에 내가 그러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지만 외면했었다. 그래서 그 공포를 벗어나 돌아간 집, 집으로 가는 길의 동네의 아름다운 새벽이, 그 평화로움이 서럽고 부끄러웠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두려움과 유리된 일상과 보도가 무서워 그 이후 십년이 다 되어가도록 집회에 못 나갔던 부끄러움이 타지마할을 보고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하다가 떠오르면서 휴마윤이 마음에 남았던 이유를 알았다. 나는 그에게서 그날의 나를 보았던 거구나 깨달았다. 아름다움,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는 권능, 그 권능을 소유하는 힘과 권력을 유지하게 행해지는 폭압에 저항하고 나아갈 생각을 해보기라도 하는 이와 그 폭압에 두려움을 갖고 침묵하기를 선택하는 이 중에 나는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침묵하는 자였고, 휴마윤이 결국 친구를 밀고하는 결과를 낳은 것처럼 언젠가 내가 그런 선택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내가 외면하고 싶은 나였구나라는 깨달았다. 극 자체가 의도하는 메시지나 주제가 이런 종류의 이야기일까..라고 생각하기에는 아닐 수도 있다가 스스로도 더 맞다고 보지만, 이 극이 의도한 게 그게 아니라도 내가 외면하고 싶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게 너무나 중요하기에 이 자체만으로도 어떤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여러 방식으로 이 이야기로 나를 돌아보게 해준 게 이 극의 의미는 아닐까. 내 멋대로 나는 이 극이 이렇게 생각을 뻗어갈 수 있게 해주기에 좋은 극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지금 내가 그때와 지금까지 이어졌고 외면했던 내 비겁함을 인정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변하는 건 없겠지만, 난 지금 이 깨달음을 다시는 외면하지 않고 조금은 덜 부끄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이런 교조적인 감상을 쏟게 되었지만 극의 텍스트가 풍부하고 뻗어나갈 갈래가 많으면서 지저분하지 않은 극이라 관심가는 횐님들 계시다면 꼭 보셨으면 좋겠다.

진짜 좋았다.
극 중에 휴마윤이 허밍을 하며 바불의 몸의 피를 씻겨주고 환복을 도와주는 장면 등을 내가 원치않는 2차 덕질의 방식으로 소화되지 않을까 싶은 기분이 드는 게 유일한 걱정거리인 관극이었다.
2열은 두 근위병이 보초설 때랑 극 후반부 어떤 장면 기준 목이 많이 아프기에 나쁘지는 않지만 강추는 아니고 4~6열 정도 가능하면 가운데 추천추천.

휴마윤 보시려면 걔중에서는 좌, 바불은 굳이 따지면 우가 나을테지만 가능하면 가운데가 제일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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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터 단상

 

극은 객관적으로 괜찮은데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 그래도 생각보다 피나 이런저런 부분들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갔더니 견딜 수 있는 정도였고, 극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를 풀고 싶고... 극에 대해서는 머릿속으로 정리가 아직 안 끝났으니 배우 얘기 먼저.. 상이배우 베어로 처음 보고 이제야 다시 보는 건데 그때 신인답지만 분위기는 좋구나 내 취향은 아니지만 무난하게 나쁘지 않네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깜짝 놀랄 만큼 많이 늘어 계셔서 열심히 하는 젊은 배우의 성장에 감탄했다. 그동안 쭉 좋은 평 들어오셨던 거야 아니까 당연히 잘하고 있으니 그렇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생각하는 거랑 직접 느끼는 건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첫 대사를 말할 때 발성부터 너무 많이 늘어있어서 깜짝 놀랐고 원래도 좋은 목소리라고 기억했다만 좋은 소리를 더 잘 전달하고 이용하는 스킬이 확실히 생겨서 새삼 더 좋게 들렸다. 아름다움을 꿈꾸고 이야기하고 세상에 대한 무한의 상상력을 펼치는 바불의 천진함을 그대로 담은 목소리였다. 부드럽고 천진하고 그러면서 단단하고 또 여린. 눈빛이 맑은 젊은 배우가 그렇게 맑은 목소리로 꿈꾸는 아름다움과 호기심과 궁금증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는 참으로 힘들고, 극 안에서 그의 친구이며 형제같기도 한 휴마윤이 바불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도 그 목소리의 힘이 아닐까 싶게 했다. 

바불은 타지마할을 달보다 아름답다 했고, 휴마윤은 그렇지 않다고 했던 게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정글 속 호수에 모여있던 분홍, 보라, 녹색의 새들과 그 새들의 비상을 바라보며 느꼈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었던 이를 잊지 못 하는 휴마윤의 눈빛도. 이것이 옳은 방향의 감상일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휴마윤은 타지마할을 세상을 뛰어넘는 극상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바불은 타지마할을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생각했기에 그들의 끝이 다를 수 밖에 없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저 하늘에 떠있는 달과 그날 바불과 함께 본 정글 속 풍경이 가장 아름다웠던 휴마윤에게는 그가 속한 세상의 타고난 것들이 결국에는 가장 아름답기에 그는 자신의 세상, 자신의 친구를 지키고 싶었던 거고, 바불은 언제나 더 먼 어딘가 새롭고 다른 세상을 꿈꾸었기에 오히려 타지마할을 달보다 아름답다 느꼈고, 어쩌면 그 아름다움을 넘는 것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임무를 수행했기에 아름다움을 죽였다고 괴로워한 게 아닐까. 더 아름답고 더 위대하고 더 새로운 것을 꿈꾸는 영혼을 가졌지만 그와 동시에 순간의 아름다움에 경도되어 더더욱 그 존재에 무섭도록 집착한 게 아닐까 싶은... 손 고정대 가죽을 닦는 휴마윤을 보며 겨우 떼어낸 검에 손을 뻗다가 화들짝 놀라는 그를 보면서 느낀 섬뜩함이 같이 아름다움을 죽인 자에 대한 내면의 분노인지, 온 밤을 꼬박 세워 손을 자르며 갖게 된 반사적 반응인지, 아직 떨치지 못한 소유에의 충동인지... 그가 황제을 죽이자 한 것은 아름다움을 홀로 소유하고자하면서 아름다움을 죽인 황제에 대한 분노인지 그마저 죽이고 타지마할이 새벽빛을 받으며 찬란하게 빛나는 첫 순간을 간직한 눈 안에 간직하고 그것을 소유할 이에 대한 질투는 혹시 아닐런지.. 그런 생각을 극을 보는 동안 계속 했던 것 같다.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보고 기대하며 들어갈 때의 마음은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일까였는데 지금 나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생각하는 가, 어떤 것을 더 아름답게 생각하는 가, 그 것들이 사람을 어떻게 다르게 만드는가를 떠올리고 있다. 기대했던 방향과는 다르지만 멋지고 잘 만든 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 생각하게 해주니까. 그저 극 안을 맴도는 게 아니라 그래서 나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여기는 가에 대해 또 생각하게 해주어서도 그렇다. 바불과 휴마윤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던 그 순간같은 순간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눈물 흘리던 그 순간. 인생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갔을 때, 생각보다 별로라는 생각을 하며 베르사이유 궁전 투어를 마치고 정원으로 나오며 눈 앞에 펼쳐진 정원의 풍경을 목도했던 순간,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나라가 파산할 만큼의 돈이 들 수 밖에 없겠구나 생각했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밝은 오후의 햇살 아래 하얗게 빛나는 조각들과 그들을 감싼 푸른   잔디와 나무들, 그리고 그 앞에 반짝이던 파란 호수를 한눈에 보며 느꼈던 감동. 그 순간, 그 이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니.. 앞서 쓴 여행 속 경험보다 더 무언가를 아름답다 느꼈고 또 그래서 서러웠던 날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라는 스스로의 질문과도 함께. 작년 탄핵 요구 촛불 집회는 인생 두 번째 집회 참여였고, 첫 집회는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였다. 이 시대의 젊은이로서 그냥 집에만 있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밤에 집 근처 공원에서 사람들을 모아 집회장으로 픽업한다는 분 소식을 전해준 친구와 함께 집회에 갔고 그리고 그날 물대포를 맞으며 도망친 뒤 날이 밝아갈 때 지치고 힘들어 집으로 돌아가다가 새벽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바로 출발했던 그 공원의 아름다움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 공원이 너무 아름다워서 서러웠었다. 물대포는 티비에서 보던 것보다 너무 강했고, 머리 위를 조금 스쳤을 뿐인데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가버렸고 그저 친구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달리고 달릴 수 밖에 없었다. 밀고 들어오는 물대포가 무서웠고 해산시킨 사람들을 찾아 뛰어다니는 의경들도, 그들을 피해 도망가야하는 상황도 무서웠고, 그 두려움에 날이 밝고 첫 차가 다닐 때가 되니 다시 시위가 시작될 때 함께 할까를 고민하다가 집에 간 건데 단순히 지쳐서가 아니라 새벽을 지나는 동안 누적된 어떤 공포감에 내가 그러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지만 외면했고, 그 공포를 벗어나 돌아간 집, 집으로 가는 길의 동네의 아름다운 새벽이, 그 평화로움이 서럽고 부끄러웠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두려움과 유리된 일상과 보도가 무서워 그 이후 십년이 다 되어가도록 집회에 못 나갔던 부끄러움이 지금 결국 다시 떠올랐다. 왜이리 휴마윤이 마음에 남을까 싶었는데.. 나는 그에게서 그날의 나를 보았던 거구나 이제야 깨닫는다. 아름다움,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는 권능, 그 권능을 소유하는 힘과 권력을 유지하게 행해지는 폭압에 저항하고 나아갈 생각을 해보기라도 하는 이와 그 폭압에 두려움을 갖고 침묵하기를 선택하는 이중에 나는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침묵하는 자였고, 휴마윤이 결국 친구를 밀고하는 결과를 낳은 것처럼 언젠가 내가 그런 선택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게, 그게 내가 외면하고 싶은 나였구나라는 깨달음. 극 자체가 의도하는 메시지나 주제가 이런 종류의 이야기일까..라고 생각하기에는 답을 모르겠다. 그렇지만 외면하고 싶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것만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여러 방식으로 이 이야기로 나를 돌아보게 해준 게 이 극의 의미는 아닐까. 내 멋대로 지금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첫 시작은 분명히 기대했던 것보다는 아쉽다.라는 말이었지만 후기를 마무리하는 것에 가까워진 지금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누군가 꼭 봐주셨으면이라는 생각으로 정리가 되어간다. 아마 분명히 나와는 다른 방향이겠지만 이 극을 보고 이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다보면 누구든 어떤 의미와 이야기에 닿을 것 같다. 생각하게 하는 것, 고민하게 하는 것, 치열하게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다. 외면하지 않고 고민하게 하는 게 존재를 살아있게 하는 거니까. 오늘 본 배우분들 생각해보니 두분 다 자둘이었네. 재림배우는 전에 넥으로 보고 이제야 두번째인데 게이브는 대사가 유별나게 적은 역이라 긴 대사를 쏟는 건 처음 듣게 되었는데 노래할 때랑 목소리가 좀 다른 느낌이셔서 신기하다는 기분으로 초반에는 보다가 저 길고 곧은 체격이 그를 휴마윤으로 이끌었구나 보는 동안 이해했다. 극을 보고나니 지금 배역이 4분 모두에게 애초에 딱 어울렸을 것 같은데 왜 처음에 배역 확정 아니었을까 좀 신기한 기분이다. 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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