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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60726 연극 글로리아

by All's 2016. 8. 2.


캐스트 - 이승주 손지윤 임문희 정원조 오정택 공예지
공연장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노네임 극을 그래도 몇개 보신 분들에게 와닿을 간편 분류.
노네임 극의 계열을 편의상 2가지 계열로 나눠서 히보계(히보, 필맨)와 부족계로 놓았을 때(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 아주 완전히 부족계의 극이었다.
인종과 성별과 연령을 넘나들면서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을 토해서 굉장히 냉소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극인데 냉소성이 극악하고 배경이 오피스다보니 가족이라는 부족 트라이브즈 보면서 정서가 안 맞아서 서걱거리는 것도 힘들고, 인물들 날서있는게 신경증적인 것도 힘들었는데 이쪽도 그런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극 자체의 완성도는 각본과 연출 어느 쪽으로든 글로리아가 더 괜찮다고 생각함.

난 노네임이 좋은 극들을 잘 선별해서 올린다고 생각하고, 그 기준에서 이 극 또한 좋은 극이다.
그런데 좋은 극을 보고 왔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보는 동안 너무 힘들었어서 절대 자둘은 안 하고 싶다.
극을 보는 동안 극장 안 관객 중 대부분과 다른 심리상태에 놓여있기에 겉도는 기분으로 극 자체와도, 객석 분위기와도 내가 괴리되어있고, 극 안의 세상사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혐오적이라 많이 지치고 힘들었다.
결국 끝나고 인포데스크에서 소화제를 얻어먹었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반응하는 체질인데 흠.. 난 그 정도로 먹먹하고 답답하고 짜증스럽고 괴로웠다.

본격적인 얘기도 하기 전에 쿠션을 자꾸 깔자면, 나는 어떤 매체의 이야기를 만나고 극이 어떻게 흘러가건, 그 상황으로 인해서 힘들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가정을 하게 되면 마음이 많이 힘들고 불편하다.

이 극은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모든 것은 그저 모두의 야망과 욕망을 위해 소비되는 현실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담고 있고, 극의 제목이자 이 잡지사의 15년 근속사원 겸 왕따인 글로리아는 그 소재가 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 극에서 글로리아, 글로리아와 연관된 그 모든 것들은 차례차례 조롱당하다가 그런 상황 자체마저 조롱거리가 된다. 그런 끊임없는 비극이 순환되고 반복되는데, 누군가를 뒤에서 조롱하고 비웃고 놀리고 앞에서는 대충 깔깔거리고 그런 상황을 잠깐 보아도 속이 뒤틀리는 멘탈인데 그게 인터미션을 제외한 125분 동안 반복되니 너무 힘들었다.

비슷한 상황이 조금씩 변주되어 3번이나 반복되면서 메시지를 알려주는 적나라한 극이고, 전하는 메시지 자체도 현실적이고 통찰력도 나름 있는 참 좋은 메시지를 담은 극인데, 그걸 보여주는 방식마저 메시지처럼 소재가 되는 사람의 진짜 아픔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비극과 슬픔과 불쌍함마저 도구가 되어버리는 비극의 연속, 비극의 굴레이다보니, 극의 메시지이자 형식 자체 그 모든 게 극 중 인물에 과몰입을 잘하는 입장에서 좀 많이 힘들었다.

이 극에서는 사람들의 인생을 끝낼 비극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자기 삶을 돌아보는, 혹은 흥미를 끌어서 돈을 버는, 그것도 아니면 그저 잠깐 소비되고 소재나 그 비슷한 것이 되고 작금의 세상 그 자체이자 그래서 끔찍한 이 세상을 시간의 흐름, 공간의 변화, 인물의 교체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을 통해 보여여주고, 난 그게 너무 맘이 아프고 힘들었다.

다른 사람의 비극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입거리 가십이 되고, 내 삶이 아닌 나의 삶, 멀리서 보는 세상은 그저 희극이 될 뿐인 서글픔이 극 자체로 구현되어 있어서 극 자체는 웃을 타이밍이 많고 재밌는게 맞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극 내내 극장이 떠나갈듯 빵빵하게 웃음이 많이 터졌다. 그리고 그 중에 나처럼 간혹 그렇게 사람들이 웃게 되는 상황과 포인트 자체가 불쾌해서 팔짱끼고 인상쓰고 내면의 짜증을 티내지 않기 위해 묵언수행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웃는 것도, 그런 상황이 불편한 것도 모두 의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간 그렇게 다른 분들은 웃고 넘어가는 타이밍에 나도 그렇게 흐름을 타고 웃다 울다 먹먹해졌다가 생각할 거리를 담고 나오는! 그런 식으로 좀 롤러코스터를 타가면서 극의 메시지와 만났다면 극이 끝난 뒤 상쾌하게 나왔을텐데, 난 남들이 웃는 대부분의 상황이 웃는다는 것마저 속상해서 이 말 내내 반복하지만 보는 동안 많이 힘들었다.

너무 같은 말을 빙빙돌려서 반복한 것 같아서 간단하게 요약하면 '참 좋은 극이고 잘 만들어졌는데 굉장히 냉소적이라 저랑 비슷한 유형의 멘탈을 가진 분이시라면 마음의 준비를 조금 하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로 줄일 수 있다. 극 배경이 오피스다보니 현실적으로 이입이 되면서 울적할 부분도 좀 있고 혈압이 폭발할만큼 짜증 유발도 되는데 배우들이며 연출진이 직장인이라면 꼭 보러오세요.하는 거 보면 이 사람들이 직장생활을 안 해봐서 저런 소릴 하나 싶을만큼 극대화된 사무실 속 짜증상들이 늘어져있다. 뭐 그리고 그 중에 하나, 혹은 하나 이상은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할... 그렇다.

하여간 좋은 극이고 전체 기조는 유머가 굉장히 가득한데... 감정이입 능력 만렙인 분이 보실 마음이 있다면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셔야 할 것 같다.

난 본 거 자체에 후회는 없는데, 이 극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역할만 하는 사람이 딱 한명인데 그 사람을 빼면 백인 게이 남성, 백인 헤테로 남성, 흑인 엘리트 남성, 동양인 엘리트 여성, 성공한 러시아 여성, 성공한 백인 여성, 반복되는 업무를 수행하는 남녀, 젊고 예쁘고 능력도 있고 허세도 있는 백인 여성 등등을 3막에 걸쳐서 배우들이 1인 다역을 하면서 소화하는데, 그럴 때의 배우들의 연기 방식과 극 중 나타나는 각종 관계적 정서, 사무실 매너 등이 로컬라이징을 크게 하지 않아서 생소하게 와닿는 부분이 이건 극을 잘 살린 건지, 아니면 연기가 좀 동양인이 생각하는 인종의 차이가 좀 인종차별적으로도 느껴질 수 있게 과장된 건 아닐까 고민되는 부분이 없잖아 있는데 이 것 또한 내가 예민병자라 그렇고 이 극과 잘 어울린다.

극이 정말 대놓고 냉소적. 세글자로 그 특성을 요약할 수 있는 수준이라 내가 인간미 없고 냉소적이라 싫어하는 탱연출과 궁합이 굉장히 잘 맞는데 그래서 극, 그리고 그의 연출과 잘 맞으시는 분들은 여러 번, 여름에 괜찮은 연극 하나쯤 보고 싶은 분이라면 한 번쯤은 보기에 충분할만큼 완성도가 좋았다.

내가 앉은 자리가 3열 우측 약간 사이드였는데 나는 자리에도 만족했다.
1,2열은 의자 끌어다 갖다 놨는데 2열을 위해 1열 의자 다리가 굉장히 낮아서 2열도 불편하지 않을 것 같고, 3열은 단차가 생기는 기점이라 평균보다 허리가 긴 편인데 크게 가리는 거 없이 괜찮았다. 그리고 우측에서 주로 진행되는 장면들이 있는데 아주 극싸가 아니라면 제일 오른쪽 배우분의 뒤통수를 보게 되지는 않을 것 같고, 난 내가 자세히 보게 된 그 장면들이 굉장히 맘에 들기에 조금 뒤라도 가운데가 제일 좋겠지만 좌우 중 고르라면 우가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 공연장에 좀 일찍 들어가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극 중 잡지사 인턴인 마일즈가 공연 시작 전부터 꽤 일찍 나와서 사무실 정리하는 것으로 극이 시작하는데 굳이 안 봐도 될 부분이지만 성실하고 젊은 인턴의 이른 출근 쯤 한 번 봐서 나쁠 거 없다 싶고, 그거 자체가 극에서 보여주는 마일즈의 캐릭터성이기도 하니 여러가지로 좋을 것 같다. 인터미션 뒤 2막 시작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하니까 땡!!하기 전에 들어가지 말고 5-10분 정도 먼저 들어가서 미리 분위기에 젖는 거 나쁘지 않을 것 같고.

그런 의미로 기억 하는 동안 쓰는 러닝 타임.
1막 55분. 인터미션 15분. 2막 70분.

극 내용과 크게 관계없지만 이상한데 집착하는 세상 치졸한 관객의 트집잡기로 프리뷰 기간 이후에 보강되었으면 하는 디테일은 애니랑 딘이 출근하고 컴퓨터 켜는 척 했으면 좋겠다는 것.. 아니면 마일즈가 컴퓨터를 켜주는 모션을 미리 해주는 것. 극 중 사무실 데스크 위의 모니터가 일체형 컴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출근하자마자 전원 안 켜고 마우스랑 키보드 뚱땅거리니까 대단히 신경쓰임.
그리고 극  초반에 프린터기에 용지 없어서 갈아달라고 삑삑 댈 때 눈이 착각한 걸 수도 있지만 종이 한 장 나왔다............

최대한 스포를 안 쓰고 싶어서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았는데 좀 주의깊게 봐주면 좋을 것 같다 싶었던, 그리고 맘에 들었던 부분은 인공 화분의 의미.

여튼 괜찮은 극. 볼만한 극이다.
나같은 개복치 멘탈이고 현실적인 냉소 버거우면 멘탈 사수를 위해서 비추할 수도 있지만... 보고나서 돈은 안 아까울 것 같다.

인공화분의 의미와 함께 정말 좋았던 장면은 마지막. 글로리아의 재등장.
그 부분이 나한테는 글로리아가 죽었을 때나 죽지 않았을 때나, 달라질 건 없다는 것으로 느껴져서 어마어마하게 우울했다.
다시 헤드폰을 끼게 된 로린처럼, 그리고 그렇게 1막의 사무실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게 반복되는 사무실 풍경처럼..
한 사람,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불행을 겪었든 세상은 변하지 않고 그렇게 끔찍하게 흘러갈 뿐이라는 건 그 풍경에 글로리아를 심는 것으로 나타내는 거 잔혹하고 좋았다.

실제 생명은 없이 그저 띄용거리는 인공화분처럼 진짜 생사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거라는 걸 하나의 소품과 씬의 연출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 했다.
개인의 어떤 비극도 세상을 바꿀 순 없고 진짜 존재의 유무는 소용없다는....

보는 동안, 보고 나서도 계속 우울했는데 후기를 정리하는 동안도 우울했기에 이만 뚝 글을 줄여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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