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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60814 연극 단편소설집

by All's 2016. 8. 15.


캐스트 - 전국향 김소진
공연장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어떤 작품들은 보고나서 후기를 쓰는게 두려워지고는 한다. 아무래도 완벽할 수 없는 일반 관객인 나의 후기가 작품에 혹시 실례가 되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을 갖게 된달까. 굉장히 쭈구리같은 생각이지만 가끔 그런 극들이 있는데 이 극이 오랜만에 참 그렇다. 루스의 앞에서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두렵고 부끄럽던 시절의 리사의 마음이 이랬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ㅎㅎ 정말 좋았는데 이번 달 21일까지인가?밖에 안 한다는 서글픔이 있는 작품이니 이 작품이 궁금하신 분들이 혹시 서칭을 통해 이 후기를 누르셨다면 어서 꼭 보셨으면 좋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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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창작과 교수 루스 스타이너는 존경받는 단편 소설 작가다. 루스를 숭배하던 대학원생 리사 모리슨은 6년 동안 루스의 지도를 받으며 인정받는 작가로 성장한다. 단편소설집 출간 후 호평을 받은 리사는 ‘루스와 시인 델모어 슈워츠의 사적인 관계’를 담은 장편 소설을 발표한다. 자신의 인생이 제자의 소설 소재로 쓰이자 루스는 분노한다. 예술가가 했어야 하는 선택을 했다고 주장하는 리사를 용서할 수 없는 루스. 친밀한 사제지간이었던 루스와 리사, 그러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간다.

출처 - 플레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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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을 보기 전에 너무나 당연히 액자식 구성일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극장에 앉아있었는데, 1990년. 인정받는 소설가인 루스의 집에 소설 크리틱을 받기 위해 그녀를 선망하는 대학원생 리사가 찾아가는 것으로 극이 시작했다. 그리고 극의 시작, 고장이 나 안에서 열리지 않는 문 안으로 리사를 들이기 위해 고장난 창틀 밖으로 열쇠를 던지고 그것을 받아 루스의 집 안으로 들어왔던 리사의 모습과 마지막 사건이 일어나는 1996년 리사의 첫 장편소설의 낭독회 날. 집에서 리사의 책을 읽고 늘 걸어놓지 않았던 문의 안전고리를 거는 것이 주는 구조적 대비만으로도 충분히 본연의 메시지를 시각화한 극이지만, 그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주고받고 흘러가는 리사와 루스 사이의 감정과 이야기, 모습이 보여주는 관계의 형상이 섬세하고 아름답고, 그럼에도 잔인했다.

사실 난 이런 이야기에 굉장히 약하다. 극이 시작되고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하는 루스의 집에 와서 루스와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읽고 피드백을 해주는 그 모든 것이 감격스럽고 믿기지 않아 과장된 어조로 격양된 감정을 억누르지 못 하고 다 쏟아내는 리사의 바보같지만 사랑스러운 순간을 보면서 너무 좋은 사람들 앞에 있을 때 도저히 내 정신으로 있을 수 없어서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지나치게 인식되는데 그게 너무나 바보같아서 미칠 것 같은데 그걸 숨길 수 없음을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아서 행복과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모두 최대치로 터져버리는 그 미치도록 순수한 순간을 보는 동안 이미 모든 마음의 빗장이 풀려버리고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 루스가 그 광적인 애정을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나 루스는 리사의 그 반짝이는 눈빛과 타오르는 부끄러움 그 속에서 자신을 찾았을 것이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라고.

처음 만난 날 리사는 루스에게 부모는 글을 쓰는 자신의 행동을 시간낭비 취급한다면서 자기에게 재능이 있는 것 같냐고 루스에게 묻는다. 그때 루스는 결국에는 긍정적인 답을 해주지만 처음에는 6개월 쯤 뒤에 묻는 게 낫지 않겠냐 말한다. 하지만 루스가 리사에게 문학에 소질이 있는 지 알려주기에 조금 더 적합할 시점이라는 6개월의 시간이 지났을 때, 그녀의 조수가 되어있는 리사는 루스에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만큼 그만큼 더더욱 사랑받고 싶고, 그래서 하는 자신의 모든 행동에 자기 검열을 두고, 그럼에도 루스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이 두려워져서 자신의 모든 것이 부끄러워지다못해 비참해진 스스로를 견딜 수 없어 루스를 떠나려했지만, 루스는 그 순간 리사에게 그저 한번씩 문학이나 시를 쏟아냈던 과거의 누군가와 달리 리사에게 그녀가 도움이 되었고 자신에게 기쁨을 주었다고 하며 그녀를 붙잡았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했고, 리사가 탁자 정중앙에 놓았고, 자신이 끄트머리로 옮겼던 화병을 다시 탁자의 중앙에 놓으면서 그들의 진짜 관계는 시작되었고, 루스의 소설로 인해 자신이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던 리사가 진짜 루스이자 또다른 루스로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루스는 어리고 똑똑하고 아름다운 대학생이던 22살 어린 날, 천재였지만 쇄락한 44살의 시인 델모어에게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면서도 그에게 매료되어 그의 곁을 지켰던 1년의 과거가 있었다. 그의 수발을 들어주고 폭력적인 언사에 시달리면서도 가끔 시인으로서 쏟아내는 문학적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에게 그렇게 이용당하다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그를 떠났고, 그 과거를 소설로 쓰지 않고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우디 앨런과 순이 프레빈의 스캔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루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문학지에 보낸 리사의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하게 된 걸 뒤늦게 리사가 이야기하고 그걸로 감정이 상해 침묵하던 시간 사이에 루스의 숨겨놓은 그 사건을 알아차린 리사가 이야기를 해달라 조르면서 풀어놓게 된다.

난 사실 우디 앨런과 순이 프레빈의 스캔들에 대한 루스의 태도를 보면서 이전 루스의 관계가 현재의 리사와 루스에게 준 영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연결이 참 대비되면서 좋았다.

루스가 차마 글로 옮기고 싶지 않았던 22살 어린 시절 루스를 사로잡았던 44살의 시인 델모어와 달리, 루스는 가끔 문학을 쏟아내고 폭압했던 그와 다르게 리사가 주는 경애의 가치를 인정했고,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것 이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리사에게 주었다. 극의 말미에 리사에게 배신당한 루스는 너를 가장 아끼는 딸처럼 키웠는데 배반당했다고 하기 전에 아이를 낳을 걸 그랬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루스가 리사를 정말 딸처럼 아끼고 키웠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말을 하면서 루스 자신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 믿고. 그녀는 1991년의 봄. 리사에게서 22살의 루스를 보았고, 6년의 세월동안 그저 상처로 평하기에는 너무나 진정으로 순수했던 22살의 루스를 아끼는 마음으로 리사를 키워냈다. 자기 자신이었기에, 자기 같았기에 사랑했고, 아꼈고, 키워내고 싶었던 또다른 자신이 예전의 자신을 부정하는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루스가 딸이라고 칭한 순간은 또다른 나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상처받은 루스에게 루스를 너무나 사랑했고, 그렇기에 루스에게 사랑받으면서 더더욱 루스와 가까워진 리사가 선생님과 떨어졌어야만 했다고 하는 마음을 너무나 잘 알겠는데, 리사가 자신과 스승에게 가진 사랑이 루스에 대한 온전한 이해의 근간이 있지 않다는 것이, 그리고 그건 평생 이룰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럼에도 리사의 글들이 가치없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는 것이 이 극의 비극이면서도 피할 수 없는 진실인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

리사가 이루어낸 성취는 루스와 함께 만든 것이고 그녀에게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또 리사가 자신의 마음으로 움직였고, 루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순간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것을 이 극은 사건과 인물들의 형상과 변화, 관계의 역전을 통해 잔인하리만치 극명하게 보여준다. 리사의 첫 등단도, 조금 더 인정받기 위해 장편소설을 써낼 결심을 하는 순간도, 리사의 삶을 더 반짝이게 하는 모든 결심과 행동은 리사가 루스의 영향력, 생각에서 벗어났을 때 이루어진다. 그럴 때마다 루스는 묘한 상실감과 질투와 허탈감을 느끼고 그렇게 루스가 상처받으면서 리사에게 스승과 제자를 넘어서서 우정을 나누기를 원한다고 직접 입밖으로 내뱉기 시작하는 순간들로 관계의 역전을 가시화할때마다 루스가 리사를 키워낸만큼 오히려 더 멀어져간다는 게 정말 가슴이 아팠다.

아름답고 근사했던 루스가 점점 늙고 병들어가는 동안, 촌스럽고 미숙하던 리사는 진지하고 도발적인 모습으로 피어나고, 자신의 이상한 어투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리사가 루스가 말한대로 실수한 부분을 다시 고쳐내는 순간 등 한순간 한순간이 변화의 아픔과 그럼에도 그것이 가치있을 수 밖에 없는 시간의 변화, 세상의 변화를 이야기하는데 강박적이다 싶을 만큼 루스가 리사에게 한 모든 말과 행동이 전복되고 또한 전이되지만 그 모든 것이 낭비되는 것이 아니기에 정말 좋았고, 아마 다관람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지점들을 머릿속에서 맞춰가는 재미가 대단할 것 같다.

대사가 정말 많은 극이라 그런 지 루스역의 전국향배우가 대사를 씹는 부분이 종종 있으신데 난 개인적으로 거슬리지는 않았다. 6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분장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을 자신의 몸으로 표현해내는 걸 일궈내는 내공이 너무나 대단했어서 대사씹을 때 아, 했다가도 감탄하게 되어서. 

리사역의 소진배우ㅜㅜ 난 소진배우를 좋아한다. 목소리가 너무 좋다. 그녀의 실비아를 근사한 여캐의 이데아처럼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구적인 인물이라 좀 아쉬운 실비아와 달리 리사는 언제나 사랑했지만 그 모든 사랑이 이기적이었던, 하지만 그게 당연하기도, 그렇지만 정말 진심이었던 주체적인 인물인데 그걸 너무 잘 해내서 리사가 정말 좋았다.ㅠㅠ

이 극을 보고 생각난 소설이 2개 있는데 하나는 은교이고, 하나는 데미안이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 알을 깨는 것의 아픔, 진정한 사제 관계가 줄 수 있는 공허함과 박탈감, 그리고 사선으로 만났다가 점점 엇갈리는 관계의 아픔이 비교가 되기도하고, 대조가 되기도 하고.

리사의 시점에서 비교에 가까운 건 데미안이고, 대조를 이룬 건 은교인데 진정한 가르침은 스승의 입장에서는 필연적으로 나를 잃게 되고 소모된다는 점에서 아무것도 잃지 않았던 이적요와 정말 리사를 사랑하고 아꼈기에 외로운 루스의 차이, 그들의 갈등의 요소가 된 존재의 연령과 의미 등이 유의미한 대비점을 보여줄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은교는 이 극을 보고나니 안 좋은 의미로 다시 읽히는데 나름 재밌게 읽은 소설이었지만 이적요며 서지우가 얼마나 못난 인간들이었나 실감하게 된달까. 문학적 재능이 전혀 없는 서지우를 자신을 수발드는데 이용하다가 대나무숲이나 다름없게 자신이 쓴 소설을 그의 이름으로 출판하게하며 이용했던 이적요와(진짜 자신의 글을 쓰지 못 하고, 자신의 재능의 여부 또한 인정하지 못한 채 거기에 휘둘리고 명성에 취해 잘못된 길을 벗어나지 않는 서지우 역시 못났고.) 리사의 재능을 꽃피우게 하면서 자신의 세월을 소비하고 늙어가는 루스의 차이는 물론이고, 새롭게 나타난 젊은 이성이 관계를 파탄내게 만드는 은교와 과거의 플라토닉한 관계의 남성의 존재가 관계를 깊이 있게 만들었으나 또 배반의 씨앗이 된다는 것의 아이러니의 차이 등이 머릿 속에서 비교될수록 더욱 그렇다.

연극열전 2016년 라인업에 은교가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극으로 비교하며 봐도 좋을 것 같다.

아마 위에 자세하게 써서 더 티가 나겠지만 우디 앨런과 순이 프레빈에 대해 이야기할 때 1994년의 두 사람이 난 보는 내내, 그리고 극을 본 뒤에도 가장 슬펐는데, 우디 앨런에게 매료될 수 밖에 없었을 순이 프레빈의 사랑을 이해한 루스와, 우디 앨런의 한때의 부모로서의 무책임에 분노했던 리사의 차이가 리사가 루스의 마음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그때의 리사의 존재적, 상황적 한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리사는 루스가 델모어에게, 순이가 우디 앨런에게 느꼈을 강렬한 매혹을 자신이 루스에게 가지고 있다는 걸 동일시하지 못한 것 같은데, 루스를 열망했지만 애정이 좌절된 것이 아니라 루스에게 모든 걸 앗아갈 수 있을만큼 사랑받았기에 끝까지 몰랐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어쩌면 부모에게서 받지 못해 생겼던 분노와 애정결핍이 작가로서 태어나면서 루스에게 받은 무한한 애정으로 치유되었기에 자신의 삶에서 다시 매력적인 소재를 찾지 못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유태인의 삶, 스승과 제자 사이의 애증.

작가는 주변의 모든 의미있는 것들을 소설로 쓰게 되기에 잔인한 존재이고 선천적 결핍을 다 소모한 리사는 그 이야기들을 엮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겠지.라는 생각이 지금으로서는 자꾸 든다. 마지막 장에서 리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화가 날 수 있을 부분이 많은데, 리사가 너무 자기방어적이고 자기 멋대로 합리화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리사의 모든 말들 속에 진심과 진실이 녹아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점도 있어서 작가의 사랑이라는 건 뭘까라는 맘이 들었다. 여러의미로 작가란 정말 너무나 근사하지만 또한 폭력적이고 잔인한 존재인 것 같다.

내용 얘기만 너무 썼어서 그 외적인 부분도 간략하게.

무대는 루스의 방으로 꾸며져있고 무대 왼편에 보면대를 놓고 거기에 올라가 있는 물건들을 캠코더로 빔으로 시간이 흐를 때 장면 전환의 근거로 보여주거나, 뒤에 이어지는 리사의 낭독회 때 아예 객석을 비추는 식으로 쓰는데 나쁘지 않았고, 조명을 아주 정갈하게 쓰는데 그게 참 맘에 들었다.

현금으로만 구매가능한 프로그램북이 3천원인데 그 안에 미리 알고보면 좋을 내용이라고 타임즈 서평의 위엄이나 우디 앨런와 순이 프레빈의 스캔들, 리사가 등단한 계간지의 위엄 등이 실려 있는데 나처럼 배경 지식 없는 사람에게는 읽고 봐도 충분히 도움될 내용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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