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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60818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by All's 2016. 9. 19.


캐스트 - 안재영 정동화
공연장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내가 이극에서 제일 좋았던 순간이기도 했고, 처음에 관극을 결심하게 된 건 커튼콜이었다.
연출적으로도 넘버로도.

스포는 밟기 싫고 넘버는 궁금하니 커튼콜이나 볼까~하고 서칭으로 본 커튼콜 영상 넘버가 취향이라서 갔는데 서글프게도 커튼콜이 제일 좋았다.
극 보고 나면 극의 연장선 느낌으로 받으면 이 장면이 극에서 제일 예쁘고 서사가 완벽하면서 함축적이라고 할까.
그러니까 결론은 전체 극이 커튼콜보다 별로라는 것.

재미없고, 지루하고, 별로였다.
열심히 만든 구석이 많이 보여서 구리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안타까움이 있는데 사실 별로였다ㅠㅠ
이렇게 저렇게 못 만들었어요라고 까는 재미로 보라고 할 만큼 망작이라고 할 만큼 엄청나게 망작이냐면 그건 아닌데 간단하게 그냥 노잼이고 노잼이고 노잼이었다.
노잼인데 넘버가 기깔나냐? 아니요. 넘버도 별로였다.

다시는 HJ컬쳐 극을 보지 않겠다는 마음의 각오를 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관극이었다.
여기랑 나는 안 맞는다는 걸 확인했다.

내용 자체가 슬럼프 빠진 라흐마니노프를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이 찾아가서 치료해주는 과정 딱 그거인데 같은 소재와 내용으로 뮤지컬이 아니라 음악극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계속 생각했다. 스토리가 너무 단순하고 사건도 지나치게 밋밋하고 대사는 그 와중에 너무 없다.


'더 많은 말이,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 극을 보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같은 제작사의 극 살리에르 초연으로 이 제작사의 극을 처음 만났을 때 대사와 가사가 너무 직설적이고 단순하며 설명이 부족하다.라고 생각했는데

1. 유명한 작곡가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2. 그들의 음악을 다수 차용한 곡들로 넘버가 꾸려져 있다.
3. 갈등에 집중하던 숨겨진 내면의 상처와 번뇌에 집중하는 것이든 한 가지 단선적인 결말을 위해 복잡하지 않은 장치들로 적당히 축약해서 스토리나 구성이 달려나간다.
4. 가사 및 대사가 너무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위의 4가지 점에서 두 극은 꽤 닮은 구석이 있고, 이게 이 제작사의 극의 제작진의 취향이나 이상향에서 파생될 수 밖에 없는 특징이라면 난 아무래도 이 제작사의 극의 퀄리티 자체에 극도의 호감을 느끼는 일은 안 생길 것 같다. 그리고 같은 극의 작곡가 겸 음악감독인 이진욱 작곡가의 음악을 극 전체 단위로 놓았을 때도 내 취향은 아닌 것 같고.

살리에르가 지킬 앤 하이드 열화카피였다면 이 극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열화 카피다.
근데 살리에르가 허접해서 문제라면 이 극은 재미가 없어서 문제.

지나치게 빙빙 돌려서 말하는 현학적인 가사 역시 좋아하지 않지만 뮤지컬 넘버일 때 너무 단순하고 직설적인 가사를 안 좋아하는데 살리도 그렇더니 이 극도 매우 그렇다. 작가가 같은 사람인가 찾아봤더니 작가는 다른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둘 다 가사가 함축적인 구석이 전혀 없고 있어보이지도 않는 걸까 생각하다가 그냥 이게 여기 취향일까라는 추정을 하게 되는 순간 이 제작사 극과 바이바이하자.라는 결심을 하게 될 수준. 꾸준히 이럴 거라면 꾸준히 안 볼거야.라는 마음.

뮤지컬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음악으로 감정과 스토리를 전달해야하니까 필연적으로 곡 하나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야하는데, 라흐마니노프의 넘버 대부분의 단어가 너무 단순하고 비슷한 다른 단어로 교차되는 것도 없이 반복된다. HJ컬쳐는 왜 예술가를 다루는 극을 만들면서 극 넘버 가사의 심미성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걸까라는 맘을 거둘 수가 없을 수준.

그리고 그 가사와 함게 들려주는 넘버가 참... 클래식 문외한인 내 기준, 누구의 어떤 곡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들어본 곡들로 이 극의 넘버들은 구성되어 있는데, 그렇게 이미 아는 노래로 극이 만들어지는 거 솔직히 이점이 아니지 않나? 말이 없는 걸로 이미 귀에 익은 곡에 가사가 입혀져 나올 때 이미 아는 노래라 신기하고 친숙한 것으로 호의 감정이 드는 건 오히려 힘들다. 아예 생짜 창작곡일 때는 가사와 멜로디가 처음부터 귀에 함께 들리지만, 이미 익숙하게 아는 멜로디에 가사가 입혀져서 색다르게 다가올 때는 그 가사가 일정 수준 이상이 아니라면 멜로디와 가사가 굉장히 따로 놀게 들릴 수 밖에 없는데 나에게는 이 극의 대부분의 넘버들이 그랬다. 이미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클래식 넘버들을 뮤지컬 넘버로 재탄생시키는 성의는 높이 사지만 그 퀄리티가 원래는 AAA한 극인데 이런 저런 부분을 바꿔서 AA'A로 바꾸었구나 라는 식으로 음악을 섬세하게 구분할 수 없는 일반 관객 중에서도 귀가 나쁜 사람인 나에게는 새로움과 친숙함을 같이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수준으로 와닿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넘버에게 느낀 감상은 극 전체의 감상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작곡한 교향곡이 대중과 평단의 외면을 받은 뒤 창작 슬럼프에 빠진 라흐마니노프의 심리 치료의 과정을 보여주는 극이었고, 그 과정을 지나면서 닿게 된 메시지 자체는 좋았어. 난 호 후기가 많길래 이 극을 봤는데 아마 호를 느낀 사람들은 그 메시지가 좋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괴로워서, 혹은 다른 것에 신경쓰다가 잊게 된 내 안의 순수한 동기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주는 감동이 분명히 있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냥 다른 것에 홀려서 잊게 되는 것이든, 아니면 그걸 다 감당하기에는 아픈 구석도 있어서 잊게 되는 것이든 내면의 동기나 순수함을 잊고 결과에만 매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럴 때 다시 진짜 나의 마음, 순수함을 찾아 '나'를 다시 찾자는 메시지 자체야 정말 좋았다. 그 감정과 그 따뜻한 시선 자체에는 나도 좋은 기분을 얻었고.

하지만 그걸 보여주는 방식인 이야기가 너무 단순하다. 예쁘고 따뜻하고 순수한 메시지인 것까지는 좋다. 메시지가 깔끔하고 그걸 보여주는데 있어서 이상하게 꼬아놓아서 괜히 복잡한 구석이 없는 것도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함이 지나쳐서 밋밋했다. 위에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열화 카피 같다고 했는데, 무대 구성이랑 인물을 쓰는 방식이나 그런 게 그렇게 느껴졌는데 뭐 그거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거 없는 세상에서 굳이 오리지널리티 만빵이고 창의력 대장인 뭔가를 바라지는 않고, 괜히 있어보이겠다고 이리저리 꼬느니 단순하고 앞 뒤 잘 맞게 깔끔한 게 더 낫다는게 나의 기본 스탠스이다. 이미 잘 짜여진 뭔가가 있다면 그걸 참고해서 망작이 아닌 걸 만들어내는 게 상업 예술에서 괜히 실험정신 발휘하다가 망하는 것보다야 낫다고 할까?

이야기가 지어지기 시작한 지가 셀 수 없을 시간이고, 뮤지컬도 만들어진지 몇 십년인 상황에서 현대의 모든 이야기들은 어떤 이야기이든 장르적인 클리셰를 가지고 있으니 열화 카피인 것 까지는 봐줄 수 있다. 좋게 생각해서 이런 스타일의 내용을 연출하기 위한 클리셰라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클리셰적인 이야기나 구조를 쓸 때 차별화를 해서 각 작품의 단위로 좋은 특징을 만들려면 전체 구조는 클리셰여도 사이사이를 채워넣는 디테일의 완성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 극은 스토리적인 면에서 그 완성도가 너무 아쉬웠다.

내가 창작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이렇게 고쳐라 저렇게 고쳐라까지는 생각할 깜냥이 없어서 무작정 별로라고만 하는 게 민망하기는 한데 뭔가 답을 써낼수는 없는데 하여간 단순하고 밋밋하다.

단적으로 이 극에서 처음 박사가 라흐마니노프를 찾아가기 전에 '당신의 편지들을 읽고 치료를 맡기기로 했다'라는 편지를 읽고 라흐마니노프를 찾아갔는데 정작 가서는 사촌형이 당신 치료해주라고 해서 왔어요라고 하고, 음악가의 꿈을 안고 모스크바 음악원에 진학한 라흐마니노프는 그냥 겉멋 들어서 음악한다고 온거냐며 자신을 무시하는 스승 니콜라이 쯔베레프에게 꼭 교향곡을 작곡해서 들려줄 사람이 있다라고 말해. 그 말을 한 라흐마니노프가 나중에 졸업 작품으로 작곡한 오페라로 황금 메달을 받은 뒤 헬레나라고 적힌 비석 옆에 앉아 그 비석에 메달을 보여준다.

니콜라이 달이 먼저 치료를 해보고 싶어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고, 라흐마니노프가 가족 중에 누군가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한다, 근데 왠지 죽은 사람일 것 같다.라는 느낌 너무 강하게 오지 않는가? 이것들이 나중에 반드시 회수되어야 하는 떡밥이고 90분의 러닝타임 안에서 빠르고 단순하게 회수된다. 친절하게 떡밥을 뿌리는 것 자체는 좋은데 문제는 지금 글만 봐도 느껴지듯이 굉장히 뻔한 떡밥이고 그 떡밥 회수 방식이 너무 단순하고, 그 단순한 구현 방식이 배우의 대사와 연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첫 번째 달박사 부분은 심지어 밖에 안 나가고 집에서 히키처럼 두문불출 한다던 라흐마니노프가 달박사랑 사이가 좀 좋아져서 기운이 생긴 뒤 다시 작곡해보려다가 잘못된 목적 의식으로 또 땅파는 중이라 한달인가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도 않았다는데, 뭔가 치료가 잘못 되어간다 싶었던 달 박사가 질문 방식을 바꿔보려고 왔을 때 신문에 '두문불출하는 음악가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하겠다고 니콜라이 달 박사가 치료 과정 연재를 하겠다고 여기저기에 제의함'이라고 실린 기사를 라흐마니노프가 읽게 되면서 밝혀진다. 방에 틀어박혀서 작곡 안 풀려서 난리 난 사람이 대체 왜 안 보던 신문은 찾아읽게 되는 건지 모를.

이 사건 뒤에 이어진 달 박사의 고백과 그 고백 속에 담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예전에 달박사에게 준 위안에 대한 솔직한 감상이 라흐마니노프에게 위로가 되어주었고, 자기 자신도 닫고 있던 마음을 열 열쇠가 되는 건 좋았는데, 문제는 그 사이의 대화가 너무 부족하다는 거고 이런 식의 성김이 계속 반복된다. 둘 사건 사이에 연결이 그렇게 대충 말로 다 끝나버린다. 서로의 구역에서 에라이하는 넘버 뒤에 떠나버리려던 달박사가 라흐마니노프방으로 가서 말로 고백하는 걸로 이어질 뿐인데 이게 전체적으로 계속 그렇다.

아무리 상담과 치료 과정을 펼쳐 보여주는 거라고해도 극 안의 사건들이 이런 식으로 너무 단순하게 넘어가서 그 진행이 재미가 없다. 시놉시스를 읽고 마음을 치유하는 내용이라고 나와있으니 한 사람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거겠구나라고 생각은 했는데 파고는 드는데 그 파고드는 과정이 진짜 말 뿐이고, 그 대사가 재미없고 넘버도 밋밋하니 받을 수 있을 감동이 없다. 이 극에서 니콜라이 달은 죽은 사람이 아니기에 엘빈과는 다르지만, 솜에서 앨빈이 송덕문 쓰려는 톰에게 튀어나와서 이거 생각해봐, 저거 생각해봐 하면서 둘의 옛 이야기들이 튀어나오는 것과 구성 자체는 비슷한데 솜이 예쁜 대사와 아기자기한 넘버들로 그때 그때 감정을 끌어오리고 뒤흔든 것과 달리 이 극에서는 그렇게 감정을 뒤흔들어야 할 넘버에서 조금 더 파볼 구석이 있는 서사와 곱씹어보게되는 심미성을 느낄 수가 없고, 대사 역시 그저 스토리 전개와 심경 전달의 역할까지만 하고 있다. 미리 추론해가면서 고민할 건덕지가 없으니 머리를 굴릴 구석이 없어서 지루할 수 밖에.

극 중에서 가장 유의미하고 미적으로도 아름다웠던 대사가 '닫혀있을 줄 알았는데, 열려있었네요.'였는데, 이게 엄청나게 극 초반에 달 박사가 라흐마니노프 처음 찾아갈 때 하는 말이라는 슬픔ㅋㅋㅋㅋ 이 대사를 접하고 '오 문화네 극인데 대사가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아!'하고 설렜던 마음은 그 뒤로 쭉 이어지는 지나친 무난함에 크게 사그라들고 말았다,

위의 스토리적 문제가 지나친데도 불구하고 차마 구리다고 톡 까놓고 말을 못한 이유는... 대사 유치하고 단순하고 넘버 별로지만 의외로 조명을 포함한 연출이 꽤 좋았기도 해서ㅠ

개인적으로 아주 극도로 사이드 쪽에 위치한 시야방해석이 아닐 때 관객이 본인의 자리에서 절대 볼 수 없을 자리에 배우를 놓는 동선을 만드는 걸 굉장히 매우 싫어한다. 이 극은 근데 마지막 장면에 달 박사가 무대 아래의 벽쪽의 기둥에 기대어 서서 무대 위의 라흐마니노프를 바라본다. 심지어 극 자체가 좀 지나치게 오른쪽에 치우쳐져서 진행되는 편이기도 해서 원래는 동선에 대해 불호를 마구 쏟아냈어야 하는데, 앞에 얘기한 무대 아래의 달 박사가 있는 동선으로 인해, 음악을 하려고 했던 이유를 비롯한 진정한 자신을 다시 만난 라흐마니노프가 새로운 곡을 작곡해낸 뒤 연미복을 입고 객석 앞에 서서, 다시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돌아간 달박사와 서로 마주보는 게 내 개취를 넘어서서 그 순간 온 극장이 극 속의 극장으로 확장되어 순간 극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해줬기에 차마 '아 구려!!'하고 혹평을 못 하겠다. 적어도 그 부분은 고민이 있고 유의미한 동선이니까.

그리고 전반적으로 조명을 열심히 쓰는데, 무대 후면의 스크린과 바닥에 흩뿌려지고 인물들을 비출 때 참으로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앉은 자리가 1층의 꽤 앞열이라 자세하게 모든 조명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달 박사가 유학 시절 호텔을 지나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고 위로를 얻었던 기억을 이야기할 때 무대 가운데에 서있는 달 박사가 밟고 선 무대 바닥에 조명으로 수많은 창이 있는 호텔을 단순화해서 표현하는 것도 좋았고, 정확히 어느 장면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죽은 누나 헬레네를 떠올린 뒤, 누나에게 닿으려면 평범한 곡으로는 어려우니 완벽한 곡이었어야했다고 울부짖던 라흐마니노프의 어깨를 달박사가 잡아주고 위로할 때, 원래 인물을 감싸던 조명은 사그라들고 무대 뒷면의 스크린이 노을이 지는 하늘로만 가득차는 것처럼 변하면서 온 무대가 헬레네가 사는 하늘이 되고, 그래서 그의 음악이 그녀에게 닿았을 것이라는 걸 시각화할 때는 아름답다.라고 속으로 되내기까지 할만큼 성의있는 조명이었다. 무대야말로 프레임에 종이 뿌려져있어서 더더욱 솜 카피 같지만 안 예쁘지 않고 무대 뒤쪽 좌측에는 피아노, 우측에는 현악기 세션들 놓고 라이브로 연주하는 구성도 재밌었다.

배우는... 난 원래 이 두 배우에게 일정도 이상의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90분 동안 거의 85분 동안 나오시는 것 같은 안재영 라흐마니노프께서 대사도 몇 번 씹고, 한 번은 거하게 틀리고, 중간중간 삑사리도 냈음. 정동화 니콜라이 달은 왠 넘버에서 플랫이 대단히 심했다. 그리고 둘다 엄청 열심히는 하는데 안재영은 너무 할 게 많은데 인물이 심심하고, 정동화는 너무 할 게 없었다. 한 명은 피곤할 것 같고 한 명은 심심할 것 같은데 이런 잡생각이 들만큼 극 자체가 기본적으로 만들어놓은 인물들의 완성도가 영 그랬다.

보통 극이 성길 때 배우보고 알아서 하드캐리하라고 많이들 말한다. 그런데 이 극은 텅텅 빈 게 아니라 너무 단순한 게 문제라 인물의 태생적 밋밋함에 뭔가를 끼얹으라고 하기도 뭐하다. 극의 메시지가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의 시선이나 압력을 떠나 '나' 자신을 찾자는 메시지를 건네는 것인데, 인물이 원래 없는 뭘 잔뜩 하면 엄청나게 거리감이 느껴질 것 같으니 배우로 빈 구석 채워넣게 하드케리하라고도 못하겠다.

뭐 실수를 했다고 해서 그렇다고 배우들이 못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닌데 인물 단위로 기깔나게 뭘 할 수도 없다는 그런 얘기..

더블 캐스트 포함해 4명의 배우들 모두 좋은 배우들이니 내가 본 사람들도, 나머지 둘도 열심히 각자의 몫은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배우와 나에게 나쁘지 않다는 감상을 준 연출에 비해 극본과 음악이 너무 별로다. 성의에 비해서 퀄리티가 떨어지는데 굉장히 열심히 만들었고, 또 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막막한 기분인데 이런 거 극 보면서 느끼기에 좋은 감상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게 결론.

잔잔하고 밋밋한 거 엄청 좋아하고, 클래식 곡들이 뮤지컬에서 연주되는 거 너무너무 궁금하고 그런 호기심 해결만으로도 난 시간과 돈을 지불하는 거에 조금도 아쉬움이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면 보셔도 되겠지만 그런 거 아니면 추천하기에는 어려울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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