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후기

20150627 연극 프로즌 낮공

by All's 2016. 3. 10.

 


캐스트 - 박호산 우현주 정수영
공연장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프로즌은 진짜 용서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용서받을 수 있는 죄와 아닌 죄. 용서받을 수 있는 자와 아닌 자. 그리고 용서라는 행위의 순수성, 혹은 진짜 의미에 대해.

저번에도 그랬지만, 자신에게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랄프의 호감을 얻어낸 뒤 그의 상처를 파고들어 끝내 고통을 체감시키는 낸시의 모습은 섬뜩하다. 잉그리트가 계속 그렇게 로나를 놓아주지 못하면 엄마가 망가질 것이라는 말은 어떤 예언같다.

랄프의 장례식에서 낸시가 하는 랄프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동안 자신은 힘들었으니 이제 웃고 즐기며 살겠다는 말과 랄프의 양어머니가 친엄마만큼 힘들지는 않을 거라는 말은 공감과 감정 없이 심판만을 내리려는 자 특유의 잔인함이 서려있어서 섬뜩한 한편,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하고 아그네샤가 강연에서 말한 정신적 학대로 뇌의 어떤 부분이 망가져버린 사람에 낸시가 겹쳐지게 한다.

랄프의 부모가 랄프를 망가트렸듯, 랄프의 범죄가 낸시를 망가트렸고, 그녀는 그렇게 용서라는 이름으로 랄프에게 복수를 하고 간접적으로 그를 살해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니 우리 모두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며 살자는 낭만적인 가치관은 없기에 낸시의 행동을 도덕률로 판단하고 싶진 않지만 랄프와 같은 괴물이 되어버린 낸시의 그 처지 자차에 대한 동정심은 든다. 분노에 집어삼켜져 자신과 스스로의 주변을 망가트리는 건 안타까운 일이니까.

아그네샤에 대해서 더 많이 보고 싶다고 단언을 하고 보러 갔지만 놓쳤던 대사와 시점 등을 통해 아그네샤가 원래 비행기 공포증이 있었다는 걸 안 것 이외에 새롭게 찾아낸 단서는 없어서 조금 아쉽다.

일부러 많이 보여주지 않는 인물에게서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건 지양해야 할 일이고, 극에 대한 감상이 흩어지지도 않지만 혹시 내가 못 봐서 놓친 게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 맘이다.

아그네샤에 대해서는 더 많이 오래 곱씹으며 생각해야겠다.

호산배우의 랄프는 석준배우의 랄프와 정말 많이 달랐다. 한 인물을 표현하는 두 배우의 결이 매우 다른데 극에서 한 메시지를 느끼게 한다는 건 늘 겪을 때마다 신기하다.

결벽증이나 강박증같은 신경증적인 징후를 많이 보여주는 석랄프와 달리 호산랄프는 일견 사회생활이 무리가 없을 듯 유려한 면이 있어서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분노와 짜증, 암전 상태일 때 낸시나 아그네샤를 바라볼 때 조금씩 비치는 미소가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석랄프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분노하는 듯했다면 호산랄프는 자신의 세계가 당연해 자신을 거스르는 것들에 대한 짜증을 자신에게는 유희일 범죄를 통해 풀고, 자신보다 약한 존재 위에 올라서는 기분을 즐기는 것 같았다.

데이비드의 음성을 들은 뒤 무너진 아그네샤를 대할 때 호산랄프는 아그네샤에게서 어린 여자애를 느낀 것보다 그녀 자체를 바라보며 범하는 듯해 그 장면이 굉장히 공포스러웠다. 교도관을 부른 뒤 테이블 앞으로 나온(다시 강연장이 된) 아그네샤의 등 뒤로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부분이 혐오와 동정심을 함께 느끼게 하는 석랄프의 테이블씬과 달리, 망가진 존재가 행하는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행하는 악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두 랄프가 각자 다른 느낌을 주면서도 랄프라는 인물이 가지는 메시지의 방향은 같다는 게 신기하고 멋졌다.

호산랄프이기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20년 전 로나를 벤에 태운 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랄프와 20년 후 편지를 쓰는 랄프의 너머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낸시의 대조. 둘의 전복된 관계를 극적으로 구현해낸 근사하고 섬뜩한 순간이었다.

자둘을 하면 보통 놓쳤던 부분을 보고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답을 찾는 편인데 프로즌은 극의 메시지가 와닿지 않는 건 아닌데 볼 수록 궁금증이 커진다.

랄프의 장례식에서 랄프를 용서한다는 말로 그를 죽음으로 내몬 뒤 스스로를 용서한 듯 이제 즐겁게 살겠다는 낸시와 데이비드에 대한 집착과 슬픔을 놓지 못한 채 자신의 과오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눈물짓는 아그네샤로 마무리 지어지는 극의 의미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싶어졌다.

아르코는 이제 자막이고, 아트원에서 한 번 더 볼 생각인데 그때는 조금 더 답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