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트 - 강기둥 김슬기 최대훈 문성일
공연장 - 대학로 자유극장
오늘 공연은 15 범생이 관극 중 가장 좋았다ㅠㅠ
며칠 전에 본 프로즌 프로그램북 문답에 광보연출님이 '연극의 주체는 배우다.'라고 쓴 걸 봤는데 오늘 공연은 그 말을 증명하는 공연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기둥명준은 오늘이 자둘인데 전에 그때 봤을 때는 괜찮기는 한데 약간 혼자 겉도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 사이에 다른 배우들과 합이 더 쫀쫀해지고, 기둥명준 자체의 캐릭터의 깊이가 더해져서 생생하고 강렬해졌다. 전에는 자기가 꿈꾸는 세상의 상징 같은 걸로 명준이가 민영이를 느끼는 건가 생각했는데 그 부분의 밀도가 강해져 민영이, 상위 3프로의 사회에 대한 명준이의 열망 또한 강렬하고 깊숙하게 전해졌다.
우상이 타락했을 때 그 대상에 대해 강렬하게 열망하고 숭배하는 추종자는 실망보다는 분노를 느끼고 사랑했던 만큼 그 우상을 조롱하고 멸시하게 된다. 친해지고 싶고 가까이 가고 싶던 다른 세상, 명준이의 마음 속에서 상위 3% 그 자체였던 서민영이 시험지를 사는 그렇고 그런 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기둥명준은 그래서 분노하고 숭배했던 만큼 강하게 민영이를 멸시하고 조롱했다.
민영이의 머리채를 붙잡고 공부하기가 힘들었냐고 앙다문 이 사이로 민영이를 비웃은 건 민영이의 우위에 선 기분을 느껴서가 아니라, 우월한 존재였던 민영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이고 순수한 분노이자 실망이기에 그 상황은 민영이에게 더 큰 모욕이 되었을 것이다. 민영이의 우월성 자체를 부정하는 거니까.
기둥명준이의 머릿속에 꿈꾸던 상위 3%는 뛰어나고 다르기에 선생처럼 약한 학생에게 촌지를 받지도, 그렇다고 누구에게 깔보이지도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기보다 못한 존재에게 온화한 존재이기도 했다. 병원장 아들이자 반장이지만 거들먹거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상냥한, 자신의 꿈 속 민영이같은 사람이었고, 명준이가 계속 종태를 끌고 가고 어른이 되어서도 웃는 낯으로 대하려는 건 최후의 보루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향 속 사람처럼 약자에게 자비로운 강자이고 싶은 놓지 못한 열망의 발현이기도 했다.
그런 기둥명준은 철저하게 민영이에게 실망했던 만큼 시험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민영이가 답안지를 훔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순간, 민영이에게 바싹 꼬리를 내리고 크게 덤벼들지 못하는 건 다시금 민영이에게서 그 압도적인 힘을 느껴서였다. 심지어 자신의 세계 속에서는 상상도 못한 0.3%의 차이를 말할 때 수환이와는 달리 분노가 아닌 패배감과 압도감에 그저 서서 지켜보는 모습에서 전해지는 무력감이 더 처절하고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입체적인 캐릭터의 구현을 가능하게 한 건 역시 한 달 사이에 더 깊어진 성일민영의 몫이 컸다.
15 범생이 자둘 때 성일민영보고 13년 때보다 더 깊어진 연기에 감탄했었지만 오늘 또 만난 성일민영이 더욱더 좋아져서 정말 너무 좋았다.
자신이 0.3%의 특별한 계층에 속한 선택받은 자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자비로워야 한다고 생각한 어떻게 보면 순수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고 싶었던 인물, 자신이 특권층임을 잘 알고 있기에 그 아이의 안에는 견고하고 촘촘하게 나뉜 계층의 벽이 있고, 돈을 뺐던 여상아이들과 그래도 자신과 같이 수업을 듣는 같은 클래스의 아이들은 다르게 대해주려던 비뚤어진 자비심이 있었다.
자신과 같이 학교에 다니는 존재이기에 지금 방황하고 있지만 그래도 구제해 줄 존재인 가엾은 어린 양들을 위해 민영이는 아버지의 대리인, 그리스도가 되어 아이들에게 시험과 심판을 내렸다. 자신에게 모욕감을 주었지만, 지금 성적의 탐욕 앞에 방황하는 어린 양들에게 이제라도 그만두면 넘어가주겠다던 심판자의 자비.
반 아이들에게 컨닝 사실을 흘리고 명준이 패거리를 곤경에 처하게 하면서 반 아이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는 선하지는 않은 시험.
그렇게 정의롭지 않은 금지된 물체인 담배를 입에 문 민영이는 그리스도이자 모세가 되어 노아의 방주에 탈 수 있을 선택 받은 자들을 기다렸지만, 아이들은 끝내 컨닝을 했고, 그 순간 명준이, 수환이, 종태는 물론 모든 반 아이들과 담임에게 열려있던 민영이의 방주의 문은 닫혔고 민영이는 잔인한 심판자가 되었다.
그래도 회개하는 어린 양이 있을 것이라고, 주님 앞에 떳떳한 세상에 속할 판도라의 상자 속 희망같은 존재가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그런 번거로운 시험을 내린 민영이의 세계 역시 그 순간 상처 입었다는 걸, 담배를 입에 문 순간부터 시험 내내 슬픈 얼굴을 하던 성일민영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도 계속 매달리고 애원하는 명준이가 민영이의 세계 속에서 점점 저 바닥의 존재로 떨어지는 것이 오늘의 드라마를 강렬하게 했다.
이런 명준이와 민영이 사이에 있으면서 서로 대립하는 수환이와 종태의 존재의 대비 또한 너무 좋았다. 진짜 오늘은 네 인물 모두다 쫀쫀하고 각자의 인물의 역할을 천퍼센트 이상해냈다고 생각한다.
규칙을 어기면 퇴출당하는 정직한 스포츠의 세계에서 강제로 떠밀려 어머니를 위해 모범생들의 세계에 꽂히고, 비겁한 방법이지만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래도 그 속에 속해보고 싶어 컨닝에 동참하려다 명준이와 수환이의 노력에 자신이 속했던 땀 흘리는 세계의 흔적을 찾아냈기에 감동받았던 대훈종태는 태어난 분수에 맞게살라는 민영이의 말에 박탈감보다는 후련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정직으로 승부할 수 있는 세계 속으로 그래서 종태는 그렇게 돌아간 것 같다는 생각도.
이런 종태와 달리 자아도취적이고 누구보다 자신이 중요한 수환이는 시험 보는 게 두려워서 자살하려고 한 명준이를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둘만한 존재에서 탈락시키고, 민영이에게 더 가까울 세상, 손이 노랗지만 정직한 농사꾼의 삶을 떠나 한 입으로 두 말하고 불필요한 건 잊는 정치인의 세상에 편입했다.
한 순간도 종태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지 않았던 수환이와 그런 정직할 마음의 싹을 없앤 수환이를 알고 있는 종태는 결혼식장에서 서로에게 날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서 양 쪽에게 웃는 낯을 보이는 명준이는 수환이에게는 이용할 가치가 있는, 종태에게는 정신 차릴 여지가 있을 지 모를, 한 명이지만 둘에게는 다른 존재였다.. 자신에게 무자비했던 민영이와 달리 낮은 이들에게도 상냥한 더 높은 자가 되고 싶은 명준이의 위선을 그런 위선이 없는 사람인 종태가 개심의 가능성으로 잘못 받아들였기에 생긴 오해.
반성문씬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는 명준이를 올곧게 한참을 바라보는 대훈종태의 시선과 너희가..(사실 명준이 하나였겠지) 결혼식장에 오지 않길 바랬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실망감과 체념이 마음 아팠다. 종태가 어떤 의미로든 기대라는 감정을, 진심을 열어둔 존재가 명준이었다는 걸 시각적으로 구현한 멋진 디테일이었다.
명준이를 때리려다 세면대에 비친 자신을 보고 수도꼭지를 트는 종태와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언제나 스스로의 멋짐에 도취되는 슬기수환이의 대비 역시 오늘 공연의 멋진 한 축이었어. 슬기배우 이야기가 따로 없는 건 예전에 되게 길게 슬기수환 엄청 좋다고 쓴 적 있는데 역시 오늘도 그때처럼 좋아서ㅠㅠ
웃고 있지만 누구보다 차갑도 냉정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잔인한 인물인 슬기수환은 옳습니다.
연기 진짜 얄미울 정도로 잘해ㅠㅠ
올해 범생이들 첫 안무도 산만하고 가면 너무 싫어! 자첫에 비해 강렬하지 않아.. 이러고 있었는데 오늘 공연으로 다시 처음 범생이 만났을 때처럼 강렬한 감동을 느꼈다. 진짜 오늘 공연 누구 하나 빠지지 않게 팽팽하게 이어진 멋진 공연이었다ㅠㅠ
감상은 다 풀었으니 소소하게 웃겼던 참사들..
자둘이 5월 24일 밤공이었는데 그 날은 락명준이 거울 떨구고, 넥타이 끊어먹더니 어째 가는 날마다 뭐가 부서진다ㅋㅋ
성일민영이 카세트 뚜겅 부숴먹어서 영어 테이프 못 빼고 이거 너희 다 가져하면서 헤드폰이랑 카세트 째로 여상아이들에게 넘김ㅋㅋㅋ
기둥명준 슬기수환은 나란히 대사 실수 했는데 슬기수환은 종태의 아이 얘기에 '애국자네.'라고 란 뒤 '돈 많이 벌어야겠어.'라고 해야 하는데 '효도해야겠다.' 한 뒤에 이어서 '돈 많이 벌어야겠어.'ㅋㅋ
기둥명준은 슬기수환이 동창회와 결혼식까지 얘기하기 전에 '저 위로올라가기만 하면!!!!!'을 외쳐버렸고ㅋㅋ
굉장히 좋아하는 흐름이라 못 들은 게 아쉽지만 자첫이었다면 몰랐을 만큼 쫀쫀하게 씬은 잘 진행되어서 그것도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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