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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40703 연극 일리아드

by All's 2024. 7. 5.

2024년 7월 3일 연극 일리아드 캐스팅 보드

내레이터 - 황석정
뮤즈 - 고의석 기타리스트

 

 

캐스트

내레이터 - 황석정

뮤즈 - 고의석(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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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이 이야기는 출구를 찾지 못한 사람드롤부터 시작한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멈출 수 없는 내레이터와 뮤즈.
그들이 전하는 기원전 13세기, 치열했던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
영웅과 신, 죽어가는 병사들이 한 데 뒤섞이는 장렬한 순간을 노래한다.

이름 났고 이름 나지 않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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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윗 감상


석정 내레이터는 정말 신화 속 인물이 시간을 건너고 건너서 이야기를 건네주는 것만 같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스 로마 신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 너희는 진짜 이거 모르지하고 아 그런데 정말 알텐데하면서 지금까지를 이어온 혹은 현대의 것들을 불쑥 섞어낼 때 너무나 이 시대의 존재가 아닐 것 같던 이가 섞어내는 그 말과 단어들에 오히려 더욱 균열이 훅 치고 들어오면서 아 이거 현재에 관한 이야기구나 날카롭게 방심하고 있던 틈을 치고 들어와서 깊숙하게 아린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이야기 같냐고 이 지독한 복수의 연쇄가 반복되는 전쟁이 옳냐고 그렇게 보이냐고 마침내 전쟁들을 나열하기 전에 과거로부터 현재로 내 생각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 현재를 지금 석정 내래이터가 노래하는 이야기 속에 비추게 되었는데... 아프더라. 힘들었다. 복수와 복수가 이어지는 순간이 괴롭고 아가멤논과 늙은 사제와 아킬레우스와 프리아모스가 겹치다 아킬레우스가 분노를 잠재운 그 순간, 온 세상이 잠들 수 있었던 하룻밤이 아름다와 가슴이 벅찼다가 내레이터가 자세히 이야기하길 거부한 트로이 목마에 대해 그  언질들만으로도 절망하다가 이 끔찍한 노래를 정말 더는 부르지 않기를 일리아드의 이어짐이 제발 끝나는 날을 순간을 꿈꾸며 나왔다.

석정 내래이터는 정말 노래를 하기도 하는데 그게 대서사시를 읊는 시인과 같기도 한데 선율이 강렬한 기타를 연주하는 고의석 뮤즈와 악기를 매칭한 게 그래서일까 싶었고 중간중간 춤을 추면서 발을 구르는 소리는 타악기가 되어 섞일 때 상상 속 신화의 운명의 신의 아우라 같은 게 느껴져. 석정 내레이터가 전쟁을 이어말하다 마지막에 던진 제3차 세계대전이 신화 속 선지자의 예언처럼도 느껴져 섬뜩하기도 했다. 그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게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커튼콜 때 석정내레이터가 마지막으로 타로 한장을 뽑아 여러분에게 드리는 행운이라고 행운을 선물하며 관객을 배웅했는데 걸어나가는 길에 행운을 선물받은 이로서 너무나 긴 세월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 또다른 전쟁을 예언함에도 지금의 사람들에게 행운을 선물하는 시인이자 선지자가 정말 바라는, 그의 이야기 속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깨어져버린 꿈이 되지 않게 할 내가 해낼 몫은 뭘까.

일리아드같은 종류의 공연들이 그냥 있어보이는 키워드들 모아서 지적 허영심과 도덕적 우월감과 배우의 연기 차력쇼에 대한 즐거움을 채우는 공연으로 남는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잠시라도 비극의 연쇄를 막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라도 하게 해준다는 것만이라도 좋은 것으로 만드는 건.. 정말 엄밀히 따지면 이 공연을 보고 살아갈 관객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내가 3년 전에 느낀 부끄러움을 아직도 여전히 갖고 있다는 건 또 부끄러웠는데.. 솔직히 말하면 안전한 범위 내에서 자국과 타국의 전쟁과 반목과 불화의 종말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어렵다.

일리아드는 라이선스 극이고 원래도 내래이터와 뮤즈에게 자유도가 있는 극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극의 연출을 굳이 김달중 연출에게 맡긴 부분과 그걸 맡아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트레이스 유를 포함하여 일정한 틀을 두고 배우에게 자유도를 주나 또 절대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는 이런 공연들이 꽉 짜인 극들보다 더 자유로운 것일까 이게 더 매 공연마다 다르다는 공연의 현장성에 맞닿는 게 맞나라는 고민을 오히려 하게 된다. 짜여진 틀이 오히려 촘촘하지 않다면 달려가다가도 갑자기 돌아와야하는 때가 생기는데 그것이야말로 더 강력한 제약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나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일리아드와 같은 이야기에서는 온갖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다른 시간대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전쟁의 역사 그 자체를 보여주는 면이 있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그걸 다양한 내레이터를 보지 않으면 관객에게는 단 한 명의 내레이터의 세계만이 있는 거고, 그렇다면 이것이 자첫자막 관객에게 그런 다양한 변주 그 자체가 주는 의미까지 전달하는 건 결국 불가능해지는 거 아닌가? 그걸 특수성이라 해야할지 미완이라고 해야할지, 사실 이야기의 구전의 원형을 따라가보면 이야기꾼이 누굴지라도 결국 큰 줄기가 같다면, 혹은 지역따라 결말이 다르거나 하여도 결국 같은 이야기가 되는 구전설화나 판소리 등을 생각해봐도 하나의 세계만 보아도 충분하고 여럿을 접하면 풍성해지는 거야 딱 결론을 내려도 될 법한데 그걸 하지 못 하는 건, 일회성 관객의 유치보다 공연 매니아 관객들을 다회차 관람 회전 유도로 돈을 끌어내는 현재 상업 중소연뮤판에 대한 나의 지긋지긋함이 무언가를 다르게 간다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커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순수하게 메시지적인 전달을 위한 다양함의 배치보다 그게 가능한 극을 들여와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팔려는 거 아니야?같은 생각이 드는데, 또 이런 메시지의 극에 이런 의심을 품게 되는 것 자체가 또 참... 서글프게도 느껴진다. 나는 지금 공연 보는 걸 너무나 좋아하면서도 공연계를 불신하고 있는데 이런 마음으로 공연에서 행복과 의미를 얻겠다고 보고 다니는 구나 하며 극의 형식과 상업적인 연결성에서 또한 복잡한 마음이 든다.

앞선 부정적인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일리아드는 그럼에도 좋은 극이 맞다. 그리스로마 신화 중에서 가장 오랜 전쟁과 그 전쟁 속 인물들의 복수의 연쇄와 그로 인해 죽어간 이름조차 남지 못 하는 존재들에 대한 슬픔 등으로 분노와 싸움, 전쟁의 무용함을 현재와 연결시켜가며 찔러주는 이야기도 그걸 무대에서 퇴장없이 노래하는 내레이터와 뮤즈의 이야기의 장에서 완전한 암전없이 갈 때 배우의 숨을 돌릴 수 있는 틈이 되어주기도 하는 그리스 신전과 같은 2층 기둥 무대가 막을 대신하면서 대서사시의 배경으로 관객을 인도하는 것도 조명의 절제된 사용까지 참 잘 만들어졌어.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자기들의 흥미를 위해 그리스와 트로이의 사람들의 개죽음 자체에는 관심없이 한쪽에서 자기들의 힘을 불어넣고 싸움 구경을 하는 신들이 사실 무엇인지 알 수 밖에 없지 않나. 극 안에서 신이라 말하는 것들이 현대 사회에서는 권력자들이라는 것. 자기들은 안전한 곳에서 그들의 흥미와 이득, 혹은 자존심을 위해 세상을 부추기고 이용하며 분란을 일으키는 존재들. 그런 손길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을 뒤흔드는 분노를 삭이고, 헛된 자존심에 목메달지 않는다면, 끝이 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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