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트 - 홍승안 이진희 박동욱 견민성 김세환 금보미 진초록 박수야 곽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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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나나의 손끝에 걸린 트리거, 어디를 향해 당길 것인가.
번번이 편성에 실패하는 한물간 40대 드라마 작가 나나는
소품창고에서 '99식 소총' 한 자루를 발견한 후
편성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자세로 집필을 시작한다.
하지만 돋보이는 주인공이 등장해야 한다거나,
편성을 위해 현실과 타협할 것인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장총과의 만남이 길어질수록 더 깊어져 간다.
평소처럼 장총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설득하던 어느 날,
나나는 그의 방아쇠가 일반적인 방아쇠가 아닌
다른 금속물을 가져다 붙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내 이야기를 들려 주면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
나나는 과연 거대한 상업 자본에 맞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장총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인가?
장총은 평생 꿈꿔 온 자신의 소원을 마침내 이룰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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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관 회차라고 예스24에서 표 찾을 때 이런 것도 줌 ㅇㅇ
(+) 트윗 감상
[인터미션]
술 취한 연기를 하는 이진희를 보면서 트와일라 지뢰 안 밟는 법을 모르는데... 그 뒤로 빗소리까지 들려서 진짜 심장 뽀개지는 줄 알았어ㅠㅠ
소재가 장총인 공연이니 각오를 했어야 하는데 총소리 들릴 때 너무 놀라서 하ㅠㅠ 문제적인 이 쫄보심ㅋㅋㅋ
하나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을 잡고 갈 수 없는 옴니버스 구성인 드라마이기에 편성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게 되는 소재의 연극이 장총을 인간화해서 하나의 중심 인물이자 주인공으로 끌고 갈 수 있어서 올라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내가 나나역 배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2막에는 다른 느낌일 수야 있긴한데 왜 1롤이 나나가 아니라 빵야인지 좀 의아하다. 극을 여는 인물이기도 하고 시놉시스 기준으로 명확한 욕망을 가지고 갈등을 하게 되는 인물인데 왜 나나가 주인공이 아니지?
[공연 끝]
원래라면 굉장히 좋아했을 법한 이야기인데 아주 아름다운 엔딩씬을 보면서 울컥하면서도 마음 속의 어떤 찝찝함이 사라지지가 않는다. 결과적으로 빵야가 악기가 된 음악회가 실제로 열렸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빵야의 결말도 나나의 결말도 소원과 열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서도 장총을 통해 새롭게 이야기를 쓰고 다시 인정받고 싶던 나나의 꿈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 건가, 나의 불은 붙지도 못 했고 터지지도 못 했다. 드라마 속 엔딩이 아니어도 나나가 따로 준비해준 빵야의 아름다운 장례식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듯이 8부까지의 대본과 9부에서 24부까지의 트리트먼트로 남아있고 편성되지 못 하고 떠돌다 결국 현재 미완으로 남아버린 '트리거'를 어딘가에 편성되지 않아도 나나가 빵야의 계속된 질문처럼 끝까지 홀로 쓰고 써서 마무리 지을 수도 있겠지. 근데 이야기라는 건 말이야.. 기억이라는 건.. 읽히지 않고 남겨지지 않으면 나나의 머리 속에서 미완으로 남겨진, 교회에서 이름도 떠올리지 못 했던 한 인물처럼 결국 사라져버리는 거거든. 고모인지 이모인지 헷갈렸어도 세상 밖으로 나온 이야기는 그래도 남겨지고 작가도 기억하지만, 마치지 못 한 이야기는 심지어 그걸 만들어내고 생각해내던 작가마저 그렇게 잊고 마는데 그래서 빵야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내 손으로 오롯이 그려주지 못 해서, 빵야를 쥐었던 수많은 이들의 슬픔을, 그걸 만들어낸 잔혹한 살상의 역사를 통해 생명을 품는 나무였고, 집을 지키는 철문이자 밥을 먹이는 식기이고, 세상의 바람을 불러들이던 악기이던 호른이던 모든 빵야가 죽고 죽이는 총이 되어버리고 만 가혹한 역사를 남기지 못 해서 처음에는 그저 다시 인정받고 싶었던 열망이 가장 컸던 나나의 마음이 결국에는 진짜 빵야를, 빵야 속에 담긴 역사를 그려내지 못 해서 슬퍼진 건데.. 지금의 엔딩은 결국 그 나나의 변화된 열망의 진짜 끝은 남겨주지 않아서 헛헛하다.
인터미션 전에 1막까지 보고 왜 1롤이 나나가 아닌가 의아했는데 정말 끝의 끝까지 보고 나니까 나나가 1롤이 아닌 게 맞고 근데 이런 구성이 생각보다 익숙하다는 현실이 들이쳐서 맘이 힘들다. 창작자인 여성인물이 처음에는 개인적인 욕망으로 글쓰기를 시작하나 사실 소재가 된 인물이나 사건에 감화되어 진심을 갖게 되는 이야기. 근데 그 진심을 얻은 창작자가 아니라 그 소재가 된 인물이나 사건이 결국 진짜 전면의 메시지가 되고 여성인물인 창작자는 '깨닫는 자'로, 혹은 '후회하는 자'로 남는 이야기들 말이다.
빵야 정말 아름다웠고 슬펐으며 열심히 만들어진 이야기였지만 인간화된 물성을 배우가 연기하는 게 공연에서 특별히 새로운 방식도 아니라는 점에서 사실 참신한 이야기나 구성은 아니잖아. 옴니버스로 이어지는 총의 주인들의 비극을 보여주는 것도 극 안에서 등장한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 등의 드라마에서 옴니버스는 아니어도 시대를 이어지는 비극을 보여준다는 거 자체만 생각해봐도 참신함이 없는데 어차피 그렇게 새롭지 않고 뻔할 거면 대놓고 더 뻔하고 작정하고 마무리 짓게 빵야가 계속 이야기한 편성이 되지 않아도 끝까지 이야기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여는 나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안 되는 거였을까? 내가 글로 쓰면서도 정말 촌스럽기 그지 없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 촌스러움일지라도 빵야의 마지막을 보며 그 존재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는 나나보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나나가 더 보고 싶었다는 걸 확인했다.
대학생 때 수업을 들었던 평론가 김미현 교수님의 추도사에서 교수님의 가르침인 그림자의 빛을 실천하는 문학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얼마 전에 읽었다. 평론이 문학의 빛과 그림자 한쪽에만 치우지지 않아야 할 뿐더러 궁극적으로 문학을 살리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걸 가치를 밝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걸 학부생의 수업에서도 느끼게 해주셨던 분 답구나 생각했고 내가 전문 평론가가 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보는 공연들의 그림자의 빛을 보는 사람이 되는 게 좋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그것도 의미없는 건 아닌데 요즘은, 오늘은 빛의 그림자에 집착하는 후기를 자꾸만 쓰고 있어 맘이 아프다.
[참고 - 강지희, 천서윤 [추도사] 사랑하는 김미현 선생님을 그리며 https://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71520]
사실 보는 동안에 재미가 없지도 감동을 받지 않은 것도 아닌데, 뻔한 내용인 부분이 없잖아 있다고 했지만 빵야의 총신을 이룬 부분이 나무이기에 원래 생명 그 자체이자 생명들을 길러내는 존재였던 나무가 살상의 대상인 총이 된 비극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철로 된 부분들의 철이 일본의 공출로 인해 원래 사람들의 삶 곳곳에 박혀있던 삶의 조각들이 모여서 그런 고통의 역사를 만드는 일부가 되었다는 걸로 빵야라는 총은 단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한 민족 그 자체의 비극임을 비유하는 거 정말 나의 부족한 생각으로 짐작도 못 했던 부분이었고 정말 너무 좋았는데 그런 살상의 역사의 살풀이를 결국에는 그 총에 대한 상상으로만 정리하지 말고, 그 비극을 끝내 탐구하다 발견하고 온전히 이해한 나나가 결국에는 그녀의 손으로 세상에 글로 피워냈다면..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더더 유치하게 연극 빵야를 암시하게 연극화 제안이 들어왔는데 공동 집필해볼 의향이 혹시 있냐는 그런 식으로라도, 나나가 나나의 방식인 글쓰기로 결국 끝을 냈다면 나는 정말 그게 더 행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아서 아름다움과 멋짐이 빛나고 슬픔이 아린 만큼 미련이 남는다.
전쟁의 시대가 끝났는데도 자본가들의 손으로 넘어가 영화와 드라마의 소품으로 쓰이며 가상일지라도 끊임없이 살상을 반복하고 소모되었던 빵야의 절망을 이해했기에 나나가 자기 역시 그저 빵야를 다른 방식일지라도 이용하며 소모하려던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오롯이 그 존재를 아무 것도 해치지 않는 음악의 한 순간을 만드는 악기 그 자체가 되어 소멸을 맞는 평화를 주게된 거라고 생각하면 나나가 성장을 이룬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텐데, 이번에는 난 나나가 너무 마음이 쓰여서 오히려 나나에게 내가 미련을 못 버리겠어. 기억나지 않는 미완의 작품 속 인물 하나까지도 미안해 한 이야기의 창조자가, 자신이 인정받지 못 해서 그 인물들과 세상들까지 세상에 나타나지 못 하고 흘러가버리고 완성되지 못 함에 미안해하는 그 사람이 난 너무 가여워ㅠ
빵야 역할이 쿼드 캐스트인데도 불구하고 올 남배인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하는 의견을 많이 봤고, 물건이 의인화 된 캐릭터이기에 여성 배우가 연기하여도 된다는 의견에 동의하나 굳이 남배로만 캐스트가 꾸려진 이유가 총이라는 존재와 총이 내포하는 폭력성을 남성에게 많이 비유하는 것 만이 아니라 나나와 빵야 사이의 멜로 드라마적인 관계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여성 vs 남성의 대비를 넣어둔 것이, 로맨스를 매우 좋아하고 내가 시스 젠더 헤테로 여성이라 헤테로 로맨스를 더 익숙해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 아 그걸 노려서 더 그렇구나가 느껴진 부분이 이게 남배의 티켓 파워를 노린 걸 넘어 시스 젠더 헤테로 로맨스의 강화를 위해서도 해놓은 부분이라는 것까지가 마음을 좀 심란하게 했다. 살상과 폭력의 역사를 남성의 역사,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여성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생명과 자연을 긍정의 여성성이자 여성의 역사의 부분으로 놓는 에코 페미니즘적 관점을 생각하면 빵야에서 장총인 빵야를 남성배우가 연기하고, 글로서 이야기와 인물을 창조하는 나나를 여성배우가 연기하는 거 자체가 굳이 성별 이분법적인 논리로만 주어졌다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만, 어째 이게 정말 빵야를 여성배우가 연기했어도 이 정도의 멜로를 보이게 했을까?생각하면 아닐 것 같고 그게 내가 헤테로 로맨스에 익숙하고 더 선호하는 걸 넘어서서 성별 이분법적인 부분을 해결할 생각을 애초에 고려하지 않고 이루어진 창작으로 의도된 부분 같다는 게 현실적인 캐스팅 결과를 떠나서 극 자체로 물체에서 젠더리스적이지 않음으로 다가와서 나나와 빵야의 관계에서 설렘을 느낄 때마다 맘을 더 무겁게 했다. 나의 이런 설렘이 이 세상에서 너무 당연한 것이기에 젠더리스 캐스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는 죄책감이 들었어..
이런 개인적인 아쉬움이 가득하긴 했어도 그래도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 속에서 매우 많은 분량을 가지고 극에서 내내 연기하는 이진희 나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한 시간이긴 했다. 터칭 더 보이드는 김선호 캐스팅이 보기 싫어서 패스했고, 클로저는 취향이 아닐 것 같아 그날들 빼고 진희배우 필모를 못 챙기고 있다는 게 아쉬웠는데 사랑스러우면서도 털털하고, 내 일상에 꼭 있을 것 같은 평범함으로 다가오다가도 특별하게 외유내강한 진희배우의 강점을 온전히 다 보여줄 수 있는 역으로 빛나는 걸 초연 때 놓친 걸 이제라도 봤다는 게 행복했어. 세트나 안무의 짜임 등이 아트원 1관 무대 사이즈에는 작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트원 의자에서 3시간을 앉아있었더니 허리가 뽀개질 것 같다는 걸 떠나서도 초연 때 못 본 게 아쉽긴 한데, 진희나나를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놓치는 불행을 겪지 않은 건 너무 다행이야.
작가와 소재가 된 존재의 교류를 통한 창작의 절망편이 마우스 피스라면 빵야는 희망편이겠지. 마우스 피스는 예술을 한다는 존재들이 인간의 삶을 함부로 소비하고 소재로 갈취된 인물들이 타자화 되는 것에 대해 창작자와 소비자 양쪽에 이게 옳냐고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이고, 빵야는 창작을 위해 빵야와 빵야가 간직하고 있었을 이야기들을 읽어내고 상상하고 또 장총인 빵야가 겪는 것 외에 알 수 없었던 역사적 배경까지 함께 공부해가면서 민족의 비극과 살상의 무가치함을 깨닫는 나나를 통해 관객에게도 같은 이해를 전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목적이 매우 다름에도 빵야를 보는 동안 계속 마우스 피스 생각이 났다. 연극-드라마로 장르가 조금 다를 지라도 대본이 쓰여져가는 과정, 그리고 소재가 된 존재의 마음을 열어가면서 이야기가 깊어지고 작가와 소재 간에 깊은 교감이 이루어지는 모든 게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마우스 피스가 그 무엇보다 차가웠다면 빵야는 더없이 따끈한 이야기이며, 마우스 피스는 관객에게 스스로의 위선을 돌아보라고 펜으로 가슴을 찌르는 이야기라면, 빵야는 총을 통해 겪지 않았던 시대에 대한 공감과 각성을 촉구하며 궁극적으로 마음을 끌어안길 바라는 이야기라는 게 굉장히 신기하네.
근데 커튼콜을 보는데 이게 배우가 겹쳐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히스토리 보이즈의 커튼콜 생각이 났는데, 같은 김태형 연출 작품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거긴 한데 연출가를 안 보고 들어온 거였는데 보는 동안 내내 아 근데 이건 너무 김태형 같아 너무너무 그래 싶던 게 맞아서 기분이 이상했어. 좋은 이상함은 아닌 게, 극을 보는 동안에 아 묘하게 김태형 연출 느낌이 나는데 이렇게까지 따뜻해졌다고? 싶어서 에이 설마 하던 게 커튼콜에서 이 정도면 아닐 수가 없다 싶었고 정말 그게 맞았던 건데, 입덕 초에는 사람이 너무 차가워서 당신의 연출, 허정해요 싶었던 게 점점 온도가 너무 올라가서 거리두기를 좀 더 해주고 인물에 과하게 마음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까지 어느 순간부터 들던 게 진짜 끝판왕이 이 극인가봐 싶을 만큼 따끈했는데 그게 극을 지루하게 만드는 지점이 분명히 있었기까지 해서 결국 응 이런 별자리 연출, 피아노 오브제를 비추는 방식,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주고받고 넘겨주고 넘겨받아 마음에 담는 마무리로 김태형 연출임을 확인받는 것 이외에 인물에 대한 적절한 냉소로 극을 보는 동안 한 번씩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던 예리함으로 관객으로서 내가 인물을 마냥 사랑하는 게 맞나 싶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생각하게 했던 연출가는 이제 어디에 있나 좀 헛헛하게 만든 이상함이라 그랬다.
이 극에 가득한 따스함이 위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인물들이 평면적인 악인인 기무라를 제외한 모두가 지나치게 따뜻하고 착하기에 다섯번째 주인인 신출이 이후부터 사실 난 패턴도 동일하고 인물들도 다 결국 착해서 밋밋함을 느꼈다. 총의 주인들이 서로가 서로를 겨눴거나 누군가를 죽이고 죽였을 수 있는 착하지 않은 부분도 있는 존재이기는 해도 기무라 정도를 제외하면 친일파와 매국노와 배신자와 자본가의 속성을 모두 가진 기무라에게 길게 보면 당한 존재로만 기능하고 나나와 빵야는 1부 작성을 시작한 시점부터는 서로 간에 갈등도 없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그저 나 하나를 위해서 쓰는 게 과연 옳은 가에 대한 고민을 나나의 마음 속에서만 이루어지고 나나는 제작자나 감독, 그에게 소비당하는 존재인 빵야와의 첨예한 갈등과 비난 없이 진리를 깨닫게 되는데 극 속 빵야의 주인들의 가혹한 삶이 이어져서 그렇지 나나에게 진짜 갈등과 이중성을 넣어주지는 않고 곁의 존재들은 결국 나나를 따스하게 안아주기만 했다는 것이, 그래서 객석에서도 그냥 아 안타깝다라는 생각만 하게 했다는 게 곱씹을 수록 아쉽다. 작가가 따스한 이야기로 진행을 하고 싶어했어도 연출가가 큰 틀을 보는 존재로서 극 안에 냉기를 넣어줄 부분을 같이 고민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전체 극본은 작가의 몫인데 연출 탓만 하는 걸로 보일까 싶어서 고민이 좀 되는데, 내가 김은성 작가의 작품을 이 극으로 처음 보는 거라 원래 작가가 어느 정도의 온도를 가졌는지 모르는 상황이라 색과 온도를 봐왔던 연출에게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이 맞긴 하다.
착한 인물들을 안 좋아하는 건 아닌데, 고민과 갈등이 첨예한 대립없이 이어지면 이제는 아주 온전히 극에 마음을 주게 되지는 않는 일이 많아 자꾸 이 잘 짜여진 극에 시비를 걸게 된다. 아예 못 만들었으면 와 구리다하고 말텐데, 이것도 참 나쁘다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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