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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00730 연극 와이프

by All's 2022. 11. 26.

 

캐스트 - 이주영 오용 김현 손지윤 백석광 송광일

 

 


(+) 트위터 단상

극에서 보여주는 부분에 대한 내 감상이 의도와 맞는 건지 아닌 건지 끝까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2막 끝의 끝까지 보아야 완성인 이야기. 피어올랐다가 사그라진 용기마저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받아들이고 싶다면 내가 너무 긍정하는 걸까.

시대의 변화에 따른 여성과 퀴어에 대한 시선에 대한 이야기라는 설명을 보고도 딱히 프라이드 생각을 하지 않았고 보는 동안도 굳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의 마지막씬이 열리는 순간과 끝,  2014년 프라이드를 처음 봤을 때가 다시 열렸다. 이제는 2020년을 달 수 없는 프라이드.

하지만 와이프는 2020년을 달 수 있고 그 너머까지를 이야기했다. 무언가가 변했다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듯한 막막함에 속이 터져갔는데 아니야 그렇지 않아라고 속삭여줬어.

1959년에도 1988년에도 2020년에도 그리고 또 20여년이 흐른 뒤에도 인형의 집이 올라가고 퀴어가 퀴어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세상을 바꾸고 싶다 생각하지만 좌절하고, 변모하고, 혹은 두려워했다 달려나가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억압하고 자신이 자신이길 포기할 수도 있지만 그냥 그게 끝이 아니라고. 그때는 무의미하고 과격하고 자신마저 부정할 시간마저 결국에는 어떤 흔적으로 남아 누군가의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먹먹하다.

요즘 모든 게 좀 버거웠다. 내가 너무 나이브한 것 같기도 혹은 너무 과격한 것 같기도 하고 변해갈 것이라는 믿음마저 멍청한 건가 싶고 나중에 결국 꼰대가 되어버릴텐데 하면서 그냥 무의미하고 부유하는 것 같았는데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어.

포기하고 도망치고 끝까지 싸우지 않은 사람들에게 너무 큰 면죄부를 주는 게 아닐까라고 읽힐 수 있는 이야기라고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데이지가 탬버린에 글을 써내린 순간, 그걸 들고 나와버렸지만 그걸 에릭에게 건낼 수 있었던 순간, 그리고 그렇기에 아이바와 데이지가 에릭과 클레어와 데이지에게, 그리고 결국 수잔나에게 이어진 순간들이 있기에 그 한 순간의 진심과 용기의 힘을 긍정해주는 게 나는 너무 고맙고 고맙다.

제가 늦게 들어가서 오피가 안 열린 줄 알았는데 짙은 회색 격자바닥이 오피석 있었을 구역이 무대로 확장되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6열에서 봤는데 크게 나쁘지 않았어요.

데이지가 에릭에게 탬버린을 준 것, 아이바가 어릴 때 미술관에 데려간 것,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어했던 것들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부모에게 부정당하는 피해자이기만 하다고 생각하던 아이바가 자신이 다른 방식으로 에릭을 억압하고 상처주는 모습에서 난 로버트를 보았다.

데이지가 아이바를 견디지 못한 부분은 아이바가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퀴어성을 말하는 것에 대한 질투보다는 그런 자신 외에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는 로버트적인 태도였을 거라고 난 생각해. 자신만의 옳음으로 상대를 옳아매는 것의 피해자로 평생을 살았고 같은 피해자로서 데이지와 에릭은 공명했고 그렇기에 데이지는 탬버린을 그 아이에게 주었겠지. 데이지의 비겁함과 무정함을 모두 끌어안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이바가 찻잔 속에서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는 말에 동의해주고 싶지는 않다. 데이지를 모르잖아 넌.

59년의 수잔나와 데이지. 1988년의 아이바와 에릭. 누군가에게는 당연해야만 하는 상황과 정당한 분노가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인 관계와 현실의 전복을 의도하는 거라고도 생각이 드는데 앞에 쓴 이유들로 그렇게 바라보기는 개인적으로는 힘들었다. 아이바에게서 난 로버트가 너무 많이 보였어.

하지만 에릭은 십수년 뒤에 결국 아이바와의 시간들로 용기를 냈고 그 것들이 이어지고 이어져왔다는 게 다가오지 않는 비극은 없었으니까 내가 아이바를 용서하지 못 하는 것 쯤은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를 변명하고 싶기도 하고. 2020년보다 88년의 아이바에 대한 나의 태도가 큰 숙제가 될 것 같다.

나는 아이바가 남성이라는 점에서 무섭다. 돈 많고 많이 배웠고 남성인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자신을 밀어붙이는 과정이 너무나 힘겨워. 아이바를 그렇게만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를 절박하게 만든 세상이 가장 나쁘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그의 태도가 무서워. 그래서, 이건 나의 숙제.

끝없이 데이지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아이바와 끝없이 에릭을 긍정하기 위해 매달리는 클레어. 극과 극 같지만 결국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증명하는데 집착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인물들. 곱씹을수록 떠오르는 게 많은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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