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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00827 뮤지컬 펀홈

by All's 2022. 11. 26.



캐스트 - 방진의 이지수 유시현 최재웅 이아름솔 한우종 이윤서 이경미 이주순

 

 


(+) 트위터 단상

배우들이 좋은 배우이고 잘하고 하는 거랑 공연이 와닿는 거랑 꼭 같이 가는 건 아닌데 내가 펀 홈 속에서 내 삶의 한 캡션을 잡아느끼려면 진의앨리슨과 시현 앨리슨, 그리고 재웅 브루스였어야 했구나.. 고민 많았지만 오늘 오길 정말 잘했다 잘했다 보는 내내 생각했다

앨리슨과 나를, 아빠와 브루스를, 엄마와 헬렌을 같게 느낀 건 아니다. 그저 펀 홈 속 앨리슨의 회상과 고민들 속에서 내 삶, 우리 가족과 겹쳐지는 순간들을 다시금 발견했고 비슷했던 고민의 순간을 살짝 느끼고, 그리고 달랐던 생각의 방향과 선택들과 그로 인한, 너무나 멋진 43세의 앨리슨의 깨달음과 앎을 보면서 '아 저렇게 살아낸 사람이, 삶이 있구나. 그게 가능한 거구나. 멋지다 부럽다 대단하다. 내가 가능하다 믿는 건 아닌데 그렇게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리거 그런 생각이라도 해볼 수 있게 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앨리슨은 조앤에게 아빠는 자신과 다르다고 말한다. 고급스럽고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온 아빠.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다고 할 때마다 그건 안 된다고 억압하는 존재인데 또 머리가 굵어질수록 좁은 동네에서는 유일하게 뭔가 말이 통해서 인정받고 싶던.. 대학교에 가기 전까지 그렇게 다르지만 좋아했던 존재가 어느 순간 자신과 뗄 수 없는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것으로 세계의 전복을 겪는다. 그렇게 그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동질감으로 묶게 되는 순간 보란듯이 떠나버려서 어찌 해결하지 못 하고 다른 존재에서 같은 존재로 갑자기 뒤집혔던 아빠를 그가 세상을 떠난 43세가 되어서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렇게 완전히 같지는 않았음을 그렇다고 또 완전히 다르지도 않았음을 깨달아가며 브루스처럼 생각하지도 그를 완벽히 알 필요도 하지만 완전히 부정하지 않아도 되며 그저 같은 부분도 다른 부분도 하나하나 그 자체로 그저 알며 나는 나인 삶을 살면 되는 거구나 알고 인정하고 이해했다. 토대가 되어주기도 했던 메이플 에비뉴의 우리집과 가족, 브루스는 그렇게 발을 딛었다가 그들 위를 날아 이제 다른 나의 세상을 살면 된다고 묶일 필요도 또 없앨 필요도 없다고 스스로의 속박을 풀어냈다.

아빠는 게이였고 나는 게이 아빠를 둔 레즈비언이고 내 세계의 진실을 위해서는 갑자기 떠나버린 게이 아빠를 이해해야만 한다는 미뤄둔 집착을 해결하기 위해 만화를 그려가던 43세의 진의 앨리슨이 그래, 그와 나는 달랐어라며 세계지도를 그리는 과제를 하던 날 브루스와의 갈등 속에서 깨닫기 시작하는 순간이, 그런 뒤 ring of keys에서 자신이 부치를 꿈꾸며 또 그 영혼을 가졌음을 알고 브루스에게 당당하게 고개를 들며 넘버를 마무리하는 시현앨리슨에게 양 팔을 곧게 뻗어 과거 자신이 가진 첫 깨달음을 치하하는 순간이, 그런 순간들이... 정말 너무 아름답고 멋졌다.

진의앨리슨이 마치 책을 읽는 독자, 극을 보는 관객처럼 유심히 주의깊에 무대 위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들여다볼 때 그 시선을 따라 무대 위 삶 속에 나를 집어넣었고 그렇게 같은 눈으로 보다가 나와는 다르게 앨리슨의 용기에 달라지는 순간들로 어떤 용기와 깨달음이 필요했던 건지 느꼈다. 좋은 게 너무 많았는데 진의앨리슨이 너무 고마워서 자꾸 진의앨리슨 생각만 튀어나와. 무대 위 이야기를 또 다른 세상이 아닌 나의 삶에 비추어볼 수 있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매일 또 매일에서 아름솔 헬렌이 너는 그렇게 살면 안 되며 네 자신으로 살아야한다고 19앨에게 말할 때 배움의 발견에서 타라가 엄마의 이메일을 읽었던 순간이 겹쳐졌다. 엄마라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듣고 싶고 또 들어야만 했던 이야기를 듣고 타라가 치유받았던 순간. 책 속 그 순간은 기만이었고 펀홈 속 19앨은 그 당시에 그 말의 온전한 무게를 이해하지 못해 아빠인 브루스와의 대화에 더 신경이 쏠려있었지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 순간을 다시 본 43세 앨리슨은 그 이야기의 진실함과 브루스와 가정을 견디고 지탱하느라 온전히 엄마로서 앨리슨만을 위해주지는 못 했던 헬렌이 엄마이자 동지로서 건넨 그 말의 사랑과 진실함을 알았고, 그 것 또한 앨리슨이 오롯이 자신이 자신임을 알게 되는 하나의 열쇠가 되었다는 게 너무 다가왔다.

아름솔헬렌이 브루스를 정말 아직도 사랑해서 괴로워한다는 점이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하지만 또 앨리슨을 자신과 분리해서 앨리슨 자신의 삶을 존중한다는 건 우리 엄마와 매우 다르다면 웅브루스는 너무 우리 아빠를 떠올리게 해서 괴로운데 또 그래서 극에 연결이 된다.

브루스는 동성애, 우리 아빠는 술. 브루스는 정상의 외형에 집착, 아빠는 책임의 회피라는 것 등은 다르지만, 아이들을 정말로 사랑하는데 자기 삶을 어찌 못 하는 부분들로 가족을 괴롭히는 부분이 너무 닮아서 어떤 장면들은 미칠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아빠가 참 술 때문에 가족들 돌게 만드는 분이었는데 딸들이 공부를 좀 잘하니까 애들 뒷바라지는 제대로 해주고 싶어서 열심히 돈 벌기를 한 그런 사람이라서.. 그게 날 미치게 하는 때가 있다. 사랑만 하자니 밉고 미워만 하자니 고마워서.

실제 앨리슨 벡델도 극 중 앨리슨 벡델도 자신의 길을 찾았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까지 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인데 반해 나란 사람은 아직도 직업의 안정성을 찾지 못 한 대한민국 30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라 또 그런 엄마아빠의 사랑과 헌신에 마땅한 결과를 내지 못 했다는 게 내 고통인데 진의앨리슨과 웅브루스의 서사가 그래서 나한테 와닿는 거구나 오늘 알았다.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한 순간이 몇 번이나 있나 의심스러운 부모로 고통받고 있으며 그에 대한 분노가 아픈 사람에게는 유하섭의 이야기가 더 와닿겠지 싶고.

여튼 그래서... 오늘 공연이 내 마음을 건드려줘서 너무.. 너무 좋았어요. 임의배정으로 원래 자리보다 내 기준 꽤 뒤로 가서 표 확인하고는 아 안 올 걸 그랬나 자리 집착러라서 후회 잠시 했는데 지금은 그 후회를 후회한다. 오늘 보길 정말 정말 잘했다.

웅브루스와 나의 아빠가 겹쳐진 건.. 사실 브루스가 앨리슨에게 일반적으로 여성적이다라고 일컬어지는 걸, 그럴싸하다고 말해지는 걸 강요하지만 사실 그 아이가 퀴어한 부분들을 보며 자신과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까지도. 애들이 공부를 잘해서 뒷바라지 잘해주고 싶다며 드디어 양육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진 아빠의 순간이 집이 가난해서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는데 뭐하나 제대로 지원받지 못했던 자신을 겹쳐보지 않았을 리 없다고 내가 생각하기 때문도 있다. 너무 셀털인 걸 알지만 그런 관객 개인의 삶을 꺼내보게 만드는 배우들의 해석과 연기가 좋았음을 말하려니 자꾸만 그런 게 튀어나와. 하지만 엄마도 아빠도 자식에게 대리달성 혹은 만족을 바라는 우리 가정과 달리, 펀홈에서 앨리슨은 헬렌에게도 브루스에게도 브루스와 닮은 아이였고, 그래서 브루스의 아이이기에 헬렌이 앨리슨을 조금은 멀리 대하는 듯 묘사되다가 매일 또 매일에서 드디어 헬렌이 앨리슨에게 앨리슨을 위해 말해주는 부분이 앨리슨에게 치유의 순간이 된다는 게 오늘 계속 곱씹을수록 뭉클하다. 가족이란 게 그렇지 않나. 너무 가까우면 나를 뭉개고 너무 멀면 나를 고독하게 해서 아픈 존재들. 엔딩은 브루스와의 평행을 말하지만 결국 과정 속에서 헬렌과는 가까워지고 브루스와는 멀어지며 내 삶의 균형을 찾게 되는 게 보였고 그로 인해 상처입고 비어있던 앨리슨이 채워지는 걸 느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아서 나를 지킬 수 있고 그들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고 서로를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거리, 그런 균형.

지수배우 너무 오랜만에 봤는데 여전히 잘해서 내가 뭐라고 뿌듯했네. 재연 프랑켄 때 지수배우 참 좋아했던 게 줄리아를 살짝 고장난 집착을 가진 듯한 결을 넣어왔던 부분인데 오늘의 19앨리슨은 오히려 아직 자신을 온전히 세우지 못 해 전공송에서마저 주눅 든 눈빛을 비칠 때 아렸다. 사춘기와 성인기에 걸친 성숙과 미성숙, 고민과 확신 사이의 어떤 경계가 느껴졌어

진의앨로 펀홈을 만나면 작가인 앨리슨이 만화를 그리면서 자신의 기억들을 파헤치고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9세 앨리슨의 순간으로 완전히 다가와서 괴롭다 못 해 속절없이 아픈 씬이 있는데 바로 즐거운 레인 코트.

명확하게 깨달은 건 아니어도 사실 화목을 가장하고 있는 집을 무의식적으로 느껴서 행복한 가족이 나오는 티비쇼를 좋아하던 9세 앨리슨이 엄마아빠의 싸움을 외면하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티비를 보고, 그 아이가 꿈꾸는 행복한 가족의 환상이 쇼로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서 얼마나 간절하게 그 모습을 그리는 지 무대 위에서 형상화되면 엄마 아빠가 싸우거나 냉전 중일 때 자는 척 하거나, 티비를 보는 척하거나 하는 식으로 모른 척 해야했던 순간의 나로 돌아간다. 가정의 불행을 외면하려고 하지만 상처받고 있는 아이의 상황을 그렇게 즐거움의 형태인 쇼로 슬프게 표현한 거 너무 대단해.

시현앨리슨이 나한테 더 다가오는 건 배우로서는 솔직히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재능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연기력과 노래 실력과 끼를 가지고 있지만 캐릭터가 너무 낯설지는 않은 보통의 아이같이 느껴지는 부분이 잘 맞아서. 가은앨리슨은 뭔가 초인같은 분위기를 타고난 게 있다. 역시 마틸다랄까.

우종 크리스찬.... 마이클로 만나고 3년 만인가. 검색해보니 2017년에 11살이었다고 나오니 이제 14살. 무대에 등장할 때 키 보고 세상에 저렇게 많이 컸어!하고 놀랐는데 더 놀란 건 목소리. 딱 변성기 오기 전 남자 아이들 특유의 몸이 크고 목이 길어져서 중성적으로 느껴지는 고운 소리로 말하고 노래하는데 그 순간 세월을 너무 실감해서 사실 컴 투 더 펀 홈 때까지 살짝 집중 못 했다ㅠ 변성기 즈음에는 목 관리 하느라 쉬었다 활동하는 일 많던데 혹시 곧 그렇게 하려나 크리에잇까지 그 짧은 순간에 하면서 울컥하느라ㅠ 그래도 과한 크리에잇 끝낸 뒤에는 여전히 잘하네 뿌듯해하며 봄ㅠ

준용 크리스찬이 능청스럽게 동기들을 챙기는 다정함을 지녔다면 우종 크리스찬은 보들보들하게 다정한 아이여서 웅루스와 참 닮게 느껴졌다. 섭루스는 섬세하고 날카로운 사람이라 섭루스 일 때는 다정함이 헬렌의 특징으로 이동하게 되지만, 웅루스일 때는 세심한 다정함이 브루스의 흔적이 된다.

신문사러 간다고 나가기 전에 앨리슨 재우려고 노래 불러준 뒤에 잠들었는지 확인하면서 얼굴 쓸어보는 손길이 얼마나 다정하던지... 웅루스는 아이들을 정말 사랑한다. 사랑하는데 자기 삶을 교정하려는 욕구로 가족도 쥐어짜다가 고통을 남긴 게 참... 슬프지.

뭔가 후기를 쓰다보니 섭루스 유하앨 가은앨 별로였다고 읽힐까봐 급 걱정이. 뻥 아니고 (이제야) 전캐 찍었지만 싫은 배우 없었으며 다 각자 좋은 점이 있었어요. 후기에 따로 언급 한 적 없는 모든 배우들 전부 다. 자셋자막 공연이 너무 나랑 맞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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