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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90619 연극 프라이드 밤공

by All's 2020. 6. 22.

 

캐스트 - 김주헌 이현욱 신정원 우찬

 

(+) 트위터 단상

주헌필립과 현욱올리버.. 58에서 정말 둘만이 자꾸만 통하는 것 같고.. 필립은 그걸 애써 외면하려고 점점 어색해지고 올리버는 그 감정에 점점 빠져들어가는 게 무섭고 잔인하고 인상깊다. 정원실비아 그들 사이에 유리된 섬 같아. 실비아가 오히려 다른 영혼 같은 58의 첫 장은 처음이네.

2008에서의 필립과 올리버의 느낌도 이와 또 다르지 않은데 디렉션이 그런 건지 아니면 배우들이 그렇게 자체적으로 그런 건지 웃음이나 경박함의 정도가 약간 높은 편인데 그 부분이 1막 3장 마지막의 폭력성을 낮춘 것과 합쳐지면(폭력성은 낮아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트라우마급이니까..) 극에서 다수가 소수자에게 또 그 소수자 속 강자가 상대적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성에 대한 자체적인 무게감이 더더욱 약해지는 부분은 상연을 거듭할 때마다 커지는 아쉬움인데 이번에는 그게 가장 크게 가는 것 같아서 역시 좀 아쉽다. 적어도 2008 올리버와 실비아가 그정도로 웃길 거면 나치 캐릭터의 텐션은 더 낮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장되지 않은 거라고 하기에는 연기이기에 더 과장되는 부분은 잡아 누르지 않으면 (아마도) 계속 그래져왔듯이 초연에 비해 무례하지 않거나, 위선적이지 않을 2막의 멀티 캐릭터들을 감안해볼 때 극이 자아비판하는 부분이 훅 떨어질텐데 어째 그럴 것 같다.

그렇지만 배우들이 무게를 잡고 가는 부분들은 다 좋다. 오늘 캐스팅 그냥 최대한 안 본 사람들을 목적으로 빠른 날을 고른 건데 참 잘한 것 같다. 통하지만 갈라지는 올리버와 필립, 그들에게서 유리된 실비아. 아주 좋다.

오늘 공연은 매우 좋았고 2막 프라이드 퍼레이드 실비아의 대사를 바꾼 것처럼 꾸준히 오르기 위한 공연이 되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 역시 유의미했다고 생각한다. 프라이드가 이야기하는 변화에 대한 믿음은 내 인생을 지탱하는 모토이기도 하다. 그 메시지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제 그 이야기를 프라이드로 전달받기에는 난 이제 이 극을 너무 많이 보았다는 걸 깨달았다. 핫올이 오지 않는 이상 오늘이 나의 마지막 프라이드가 될 것 같다. 그 마무리로 충분할 좋은 공연이고 연기였다. 그걸로 충분하다.

배우들이 잘했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은 거니 이 극이 이제 나에게 닿기에는 시의성이 다했다는 것과 오늘의 배우들이 못 했다로 내 후기가 잘못 쓰여질까봐 조금은 겁이 난다. 배우들은 모두 잘했다. 2014년의 나와 2019년의 내가 극을 만나는 거리가 다를 뿐.

1막에 썼던 58 필립과 올리버, 그리고 실비아 사이의 관계가 그대로 이어진 2막과 그렇게 다가온 1958년의 비극이 아팠다. 아프고 좋았다. 너무나 명백히 서로의 언어를 가졌기에 결국 실비아를 기만하는 필립과 올리버, 그리고 그들로 인해 망가져버린 실비아가 주는 침묵이라는 이름의 폭력의 잔혹함이 2008년, 그저 조금 더 착하지만 평범한 사람인 실비아와 58년 고통스러운 실비아의 대비로 크게 와닿았다. 투쟁하는 용사이자 한 줄기 빛 같던 이전의 실비아들 역시 좋아하지만 1958년에는 온전히 피해자이고, 2008년에는 그저 평범하고 조금 더 착한 사람인 정윤 실비아를 만난 특별함이 감사하다

프라이드를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오늘의 캐스팅으로 프라이드를 만나는 걸 추천하고 싶다. 극 자체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덜 피씨했고 더 자극적인만큼 냉소 또한 지니고 있어서 갖던 무게감이나 장점은 사라졌지만 이 극이 마지막 퍼레이드신 대사를 바꾼 노력 자체가 이 극이 아직 올라오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는 이유이다.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도 믿는다. 그 모든 역사, 그 모든 가능성에 대한 긍정이 세상을 아름다운 방향으로 이끄는 것에 대한 믿음을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누길 바란다.

주헌배우는 2017 엠 버터플라이와 세계 대전을 치루면서도 아 주헌르네 연기는 좋네라고 생각하게 하셨던 분인데 싸우지 않는 극에서 만나니 정말 좋았다. 1958의 필립도 자유로운 영혼이 잠재되어 있는데 억지로 누르고 모든 감정들을 그렇게 침묵해온 사람으로 표현하신 거 정말 좋았다.

현욱올리버는 1958이 정말 좋았다. 보아온 올리버들 중에 가장 내향적인 사람인데, 자기도 모르게 필립에게는 특이하고 다르게 집중하고 몰입하고 그에게 솔직해지고 강렬해지고 또 그만큼 처절하게 필립에게 상처받고 실비아에게 죄스러워하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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