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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50606 연극 M.Butterfly 낮공

by All's 2016. 3. 10.

 



캐스트 : 김영민 전성우 손진환 정수영 이소희 유성주 김보정
공연장 : 두산 아트센터 연강홀



4월 26일 처음 만났던 날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페어막이었다.
처음 본 날 너무 좋았는데도 기립을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오늘 기립하는 걸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만큼 역시 멋진 공연으로 끝내줘서 영민르네와 성우송 모두에게 고마웠다.
김영민 전성우 페어의 엠버터플라이는 나에게 텍스트 속에 가장 가까운 르네와, 희곡 속 차가운 송과 사랑에 가까운 감정을 가졌을 실재(實在)할 송의 사이를 줄타기하는 듯한 송의 조합이었고, 그래서 공연을 보면서 텍스트를 그대로 느끼는 것 같으면서도 감정의 깊이에 가슴이 일렁여서 삼연 엠버터플라이를 만난 뒤 가장 사랑했던 조합이었다.
너무나 사랑했던 그림을 멋진 공연으로 보여주며 그들의 공연을 마무리 해줘서 역시 멋지고 좋다라는 감상으로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고 행복했다.

오늘의 르네는 중국에서는 송으로 인해 권력과 사랑을 다 가진 완벽한 남자가 될 수 있었던 너무나 행복한 남자였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예측 실패로 중국에서 파리로 다시 전근을 가게 되는 권력을 가진 남자로서의 실패를 맛본 뒤, 파리에 온 송으로 인해 자신에게 하나 남은 완벽한 여인의 사랑을 받은 환상이 더욱 간절해진 르네였다. 그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인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 환상에라도 붙들려 있길 원했고, 송이 사실 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그 환상마저 깨지자 다시는 행복해 질 수 없기에 남자인 송도, 그렇게 다시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된 자신의 삶도 어느 것 하나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자결하게 되었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를 넘어 한심한 사람이라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까지 받는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못 되었던, 여러가지 의미로 참 작은 사람인 르네였다.

영민르네와 함께 할 때는 거의 언제나 사랑이 보였지만, 오늘의 송은 르네를 처음 만난 날, 자신에게 한 눈에 반한 한 남자가 귀여웠고, 자신을 사랑한다 말하는 그의 말에 점점 사랑을 느꼈던 것 같았다.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속이고자 하는 위악이 보이기에는 처음 느낀 사랑의 감정에 흔들리는 순진하고 어린 송이 보였다. 그는 비록 자신을 여자로 알고 있을 지라도, 그동안 완전한 여자도 그렇다고 남자도 아니기에 사랑을 한다는 가정을 하지 못한 채 살았던 송에게 당신을 사랑한다 부딪쳐오는 르네의 고백과 애정에 감화되어 송의 사랑은 시작되었고, 송은 그와 함께 있는 사랑받는 시간 속에서 행복했고, 그 시간이 참으로 소중했었다,
그렇게 완벽한 연기로 르네를 속여서 도취감에 젖는 숭배받는 기분이 아니라 한 남자에게 사랑받는 자신에게 푹 빠진 송은 그의 여자, 진짜 사랑이 되길 바랐지만, 그 만큼이나 르네가 실재는 남자인 자신을 떠날까 사랑이 커질 수록 점점 불안하고 걱정하던 어린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송의 옷이 주는 의미가 다르게 느껴졌다.
처음 르네를 집에 초대한 날. 서양인을 두려워하는 송을 연기해 르네를 자극하고자 서양드레스를 입은 게 아니라 그저 르네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서 서양드레스를 챙겨입은 것처럼 송이 느껴졌다.
재판장에서 표현한 분노만큼 서양을 격렬히 경멸하면서도, 서양과 서양 여자 모두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송이 보였다.
여자를 연기하며 사는 동양 남자라는 정체성의 아이러니에 빠져 서양인과 여성 모두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는 송에게 서양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진짜 강자는 서양 여자가 아니었을까.
동양 여자에게 가지는 환상 때문에 르네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송은 자신도 모르게 가장 아름답게 차려입기 위해 무의식 속 열등감과 상반되는 완전한 강자인 서양 여자처럼 서양 드레스를 입게 된 것 같았다.
그런 송에게는 르네의 '드레스가 아름답다'는 말과 '프랑스에서는 남녀가 함께 있는 게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말은 서양과 여성에게 가지고 있는 자신의 마음 속 들키고 싶지 않은 열등감이 들킨 것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고조시켰고, 평정심을 잃은 송은 르네를 머무르게 할 수 없었기에 르네에게 이만 가달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적어도 르네의 앞에서는 그를 휘두르고 이용하려던 송이 르네에게 휘둘리기 시작한 순간이었고, 그 순간 송이 참으로 가녀려보였다.

이렇게 서양드레스를 입는 걸로 르네와 오래 함께 있을 수 있는 서양 여자이고픈 송의 진심이 드러났다면, 3막에서 입은 양복은 근사한 남자로 보이고 싶은 마지막 몸부림 같았다.
자신의 본질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르네에게 진짜 남자인 자신도 받아들이고 사랑해달라는 마지막 매달림으로 서양인의 사고방식에서 남성성의 상징인 서양 남자와 같은 옷을 입은 것 같았다.
송의 양복 자켓을 던지며 옷도 기생 오래비 같은 것을 입었다며 힐난하는 르네에게 '이건 당신들이 즐겨입는 알마니예요.'라고 한 뒤 '난 당신이 숭배해주는 환상에 푹 빠져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자라고나 할까...'라고 대사를 치는 동안 씁씁할게 양복 자켓을 만지는 송의 손길에서 마지막 몸부림마저 허투로 돌아간 허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실망하고 나서도, 자신을 붙잡아 달라는 마지막 시도로 '난 다시는 기모노를 입지 않을 거에요. 당신, 후회할걸요.'라고 말한 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르네를 계단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다 결국 '후회스럽습니다. 내 버터플라이만큼.'이라고 말한 뒤 오열하는 르네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뻗어보려다 더는 미련을 갖지 말자는 듯 뒤돌아서서 빠르게 걸음을 옯기는 순간. 그 순간 송은 환상 속의 송이 아니라 아픈 실연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실제 인물이었을 송이 튀어나온 듯 안쓰러웠다.

4월 26일날 처음 만났던 김영민 전성우 페어에서의 성우송은 아주 나쁘고 이기적인 남자에게 우연히 사랑에 빠져버리고, 크게 상처를 받았다는 것에서는 오늘의 송과 같았지만, 그렇게 크게 상처를 받았으니 이제 이어지는 다음의 생은 씁쓸해하면서도 잘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주 많이 아픈 성장통을 겪고 지나간 듯 했다면, 오늘의 성우송은 첫사랑의 그림자를 평생 마음에 담고 아파하며 살아갈 것 같았다.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해줄지도, 혹은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이 끝내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았고, 그렇게 첫 설렘도 첫 떨림도 첫 사랑이 아무 의미없는 껍데기가 되어버린 게 너무나 허탈해 다시는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받아두길 누군가에게 간청할 엄두도 내지 못할 지도 모르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질하고 못난, 우리네들과 꼭같지만 그 누구보다 비겁하고 이기적이었던 르네와 그런 못난 남자를 사랑했던 어린 사람이었던 송이 마지막 공연을 끝냈다.
멋진 공연으로 끝을 맺어줘서 감사했고, 지금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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