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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50516 연극 M.Butterfly 저녁공연

by All's 2016. 3. 10.


캐스트 : 이석준 전성우 유연수 한동규 정수영 이소희 빈혜경
공연장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사랑밖에 모르던 한 남자의 비극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성우송의 온도가 차가웠는데 온통 송으로만 가득찬 석준르네와의 대비가 커서 르네때문에 마음이 정말 아팠다.
석르네에게는 정말 마음의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송을 만난 이후로 온통 송의 마음을 얻는 것만이 그의 단 하나가 되어서 슬펐다. 자신감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고 의욕도 없던 한 남자가 정말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는데, 한 남자로서 그 여인을 잡아둘 방법이 뭐가 있을까 전전긍긍하다가 서양에 열등감을, 서양남자에 두려움을 내비친 송의 한 자락에 희망을 갖고, 자신이 서양남자라는 걸 마지막 무기로 그녀의 사랑을 얻고자 온 힘을 다하는 느낌이었다. 정말 순진하게 느껴질만큼 올곧은 순애보라 안쓰러웠다. 집중도 잘 못하고 산만한 의욕없는 남자의 세상이 송을 만난 뒤로 변해버렸다.

아내와 같이 있어도 허공의 송 쪽으로 시선이 가고, 그녀의 앞에서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고, 자신의 버터플라이라는 그녀의 선언에 세상을 다 얻어서 기쁘고 행복한 한 남자. 르네에게 세상은 송 하나라, 송의 버터플라이 선언에 그는 세상을 얻은 듯 기쁜 게 아니라 세상을 얻어 기뻤던 걸로 느껴졌다.

석르네는 정말.... 너무 늦게 사랑을 찾았을 뿐인데 그 사랑이 사라져버린 사람이라 너무 많이 안쓰러웠다. 석르네는 다른 르네와 동선이나 대사가 조금씩 다른 점도 신기했지만 그 무엇보다 송에 대한 감정의 순수성이 정말 많이 달랐다. 권력도 남성성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 찾은 사랑이 너무 소중했는데 사랑이 깨진 세상에 머물 수 없었던 그런 사람. 가여운 르네. 너무 많이.

석르네에 너무 집중해서 낮공만큼 송을 많이 보지 못했다. 조금 아쉽다. 그래도 낮공과 다른 느낌과 기분을 받기는 했지만. 더 자세히 보았다면 좋았겠지만 오늘은 재연 이후 처음 만난 석르네가 너무 색달랐다. 밤공의 송은 르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여인'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사랑이 남자인 자신의 본질까지는 감싸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거 아닐까. 싶었다. 양복을 입은 송을 보고 절망하는 르네를 보며 역시 자신이 맞았음을 깨닫고 그를 더 가혹하게 몰아붙이던 송이 너무 잔인해서, 본질을 보지 못한 이는 르네인데, 르네처럼 아팠다. 하지만 '여자라고나 할까..'라고 말할 때 잠깐이지만 꿈꾸는 듯 미소 짓던 송의 표정에서 내가 여자였다면 그와 행복했을 거라는 송의 바람을 읽은 듯해 송도 가여웠다. 송도 르네를 사랑했지만 남자인 자신까지 그가 사랑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중국에서의 판단이 평생 행복할 수 있었을 둘 사이를 갈라놓은 것 같다.

오늘은 왼쪽 객석에 앉아서인지 헬가와 소녀르네가 다른 때보다 더 보였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건 너무 나간 것 같다는 르네의 말에 이전까지 반짝이던 눈빛을 거두고 나랑 놀지 않겠냐고 화제를 돌리던 소녀르네의 모습에서 색다르게 보였던 남자가 조금 시시해진 순간이 느껴졌다. 르네에게 소녀르네의 꼬맹이론이 헛소리이기 이전에 소녀르네에게 이미 르네는 특별한 사람이 될 기회를 잃었던 순간.

하지만 그녀는 지루했고, 적어도 자신에게 완전히 돌았다고 하지는 않을 사람을 만났으니 그와 잠시 놀 생각을 한 게 아닐까. 르네가 치욕을 당한 뒤 소녀르네에게는 당연히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그녀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 르네가 그녀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닌 심심풀이 '놀이'상대일 뿐이니까.

르네를 사랑해서 르네의 외도를 모른 척 했다는 수영배우의 인터뷰를 읽은 적 있지만, 그게 아니어도 헬가는 르네를 사랑하는 게 느껴져서 가엾다. 르네가 바라는 만큼이 아닐지언정 그녀는 르네에게 집중하고 그에게 치욕을 당할지언정 그의 곁에 있고 싶어서 이혼하자는 말에 자신의 몸도 수습 못 한 채 바닥을 닦을 만큼 그를 사랑한다. 외교관 부인이라는 허울 때문만은 아닌 그녀의 감정이 단지 승진을 위해 그녀와 결혼한 르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간 게 르네의 최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낮공에는 잠깐 들었다. 밤공은 그냥.. 마주봐주지 못해서 사랑한 이에게 저주를 퍼붓고 돌아서는 헬가도 가여웠고..ㅠㅠ

트친님 트윗에서 오늘 가장 좋았던 장면을 봤기에 기억 휘발되기 전에 좋았던 부분 적어놓기!!

3막. 르네가 송에게 손이 닿지 않기 위해 애쓰던 장면. 르네의 두 손을 움켜잡고 자신을 일깨우던 송.
1막. '내가 두려운 건 아니죠'라며 떨리는 손을 뻗던 르네와 그런 르네의 손길에 화들짝 놀라던 송. 그리고 잊지 못할 첫 시작. 손을 움찔거리며 너무나 조심스럽게 버터플라이를 외치던 르네.
1막. 송을 만난 첫 날 집에 돌아와 헬가와 이야기하며 내내 송의 집 쪽을 힐끔거리던 르네. 그와 대비되게 손톱손질을 끝낸 뒤 완전히 그에게 몸을 돌린 헬가.
3막. 다시 날 숭배해달라고 할 때 송의 그 눈빛.
3막. 여자라고나 할까..를 할 때 얼굴을 스치던 행복해서 가슴 아팠던 미소

그리고 오늘 밤송 성우송..... 정말정말 예뻤다. 내가 르네가 된 건가. 르네가 너무 사랑해서 사랑깍지가 씌었는지 낮공과 같은 늘송인데 유난히 더 예뻐서 새삼 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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