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트 : 김영민 전성우 유연수 한동규 정수영 이소희 빈혜경
공연장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송이 임신했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르네는 진짜 사랑을 알 수 있지도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만약일 뿐이지만.. 어쩌면.
성우송을 왼쪽에 가까운 위치에서 본 게 엄청 오랜만이라 새로운 부분이 많이 있었다. 남은 표 중에 왼쪽에 치우친 쪽이 많아서 다행이다. 1막 이후로 르네가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을 때 참 예쁘게 웃고 있었단 걸 이제야 알았다.
친동무의 첫 등장씬. 친동무의 등장의 당위를 설명한 뒤 이어진 르네의 독백 동안 르네를 바라보던 시선이 친과의 대화로 이어지자 싸늘하게 변해있었다. 그런 시선들이 르네의 환상 속과 실제 송의 간극의 넘나듬같아 좋았고 찡했다.
그 절절함에 깜짝 놀랐던 26일만큼은 아니지만, 르네를 처음 집에 들인 날부터 르네에게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건 변함없었고.. 실망과 기대를 반복하는 나할에서의 늘송은 여전히 좋다. 오늘은 르네에 대한 기대심보다 실망이 많이 느껴진 전보다 차갑게 시작한 3막이었는데, 3막 내도록 기대했다 실망했다 분노했다 흔들리는 감정의 울렁임이... 이걸 뭐라해야 할지. 좋다는 말은 맞는 말인데 가끔 너무 적은 감정만을 담는다. 진짜 삼연 본 거 중에 통틀어서 제일 차가운 송이었는데 이게 이용 노선이라기보다는 르네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아는 송이라 그런 것 같았다,
오늘의 송은 르네에게 맘을 준 순간부터 자신이 그의 진짜 사랑을 받았을 수도 있는 '여자'가 아니라는 게 슬프고, 여자가 아니라 그를 완전히 가질 수 없단 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진짜 여성인 헬가와 친동무에게 꽤나 노골적인 전의를 보였다.
헬가와 르네가 볼레박사 얘기를 할 때 아이 얘기에 집중하고, 병원에 가기 싫다는 르네의 자존심을 고양시키기보다 진짜 병원에 못 가게 하기 위해 설득하는 느낌. 아이를 구해달라는 요구에 강동지에게 직접 전하라고 거절의 뜻을 표한 친동무에게 분노를 느끼지만, 넌 여자다운 여자를 모른다며 그녀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이에 복수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여자가 될 수 없으면서도 여자로 르네를 붙잡고자 임신을 선언하고 아이를 구한 송의 선택은 정말 독이었는데, 오늘 영민르네는 평소와 다르게 조금, 단 한 순간이지만 인간적 성장이 가능했을 순간의 타이밍이 보였는데 그게 바로 내면의 핑커튼의 망령을 떨치고 송에게 처음부터...라며 진심을 고백하려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송을 거부했을지라도 진실 앞에서 르네가 진짜 사랑에 가까운 순수한 애정의 감정을 알 수 있었을 순간을. 그의 앞에서 진짜 송 릴링의 본질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단 1프로의 가능성이 있었을 순간을 서로에게 거짓되고 환상에 머물게 만들어버린 것 같아 오늘의 임신했어요..는 그 어느 때보다 비극적이었다.
송의 임신 선언 전, 르네는 이전까지 자신이 송에게 느끼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믿었으나 사실은 아니었다는 걸 송의 옷을 벗기려는 추악한 행동을 하는 자신의 더러운 감정 앞에서 어렴풋이 깨달았다. 송의 옷을 벗기려는 자신의 추악함을 절절히 깨닫고 진짜 숭고한 사랑인 수용을 (해냈을 지는 모르겠으나) 르네가 할 수도 있던 순간은 송의 임신 통보에 르네가 진실도 수용도 아닌 환상에 머물기로 택하면서 흩어져버렸다. 그게 아니었어도 자신의 앞에서 무력하게 옷을 벗기기를 기다리는 송에게 성숙한 연민을 느끼고 그대로 관계를 정리할 용기라도 얻었다면 르네는 자기밖에 모르는 유아기적 인간을 탈피할 수 있었을 텐데, 불행히도 그 순간은 오지 못했다.
송은 르네를 완벽히 가지기 위해 했던 선택으로 그렇게 영영 르네를 잃었고, 르네는 그렇게 평생 진짜 사랑도 모르고, 진짜 좋은 사람도 되지 못한 이기적인 사람의 자리에 머물러 살다 환상이 깨진 현실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생을 마감해버렸다. 서로 자초한 부분이 있지만... 각자 위선적이었어서 어떤 부분은 꽤나 차갑게 느껴졌지만 그 동안 본 이 페어의 공연 중 가장 회한이 가득 찬 날이었다는 건 그래도 오늘의 관극을 아쉽지 않게 해주는 부분이다.
오늘의 송은 르네의 환상 속에서 너무나 차가웠고 르네에게 등을 돌렸을 때와 자신을 깨닫게 해주겠다고 르네의 눈을 가리고 그에게 애원할 떄는 그 차가움과 대비 될만큼 애절한 표정을 지었다. 르네가 진짜 사랑을 줄 거라고 믿지도 않으면서 자꾸만 사랑을 기대하는 송이 참..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영민르네의 노선은 올곧다고 생각한다. 환상에 빠져버린 어린아이같은 이기적인 르네. 오늘은 혹시나 성숙함의 영역인 진짜 연민과 죄의식을 느낄 순간도 보였지만 그는 송의 임신 선언에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걸로 그렇게 멋진 여성의 사랑을 받는 남자 중의 남자라는 환상 속에 사는 길을 택하고 말았다, 삼르네 중에서 영민르네가 제일 고약하고 잔인한 사람이라는 감상은 아마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영민배우가 연기를 정말 잘하신다고 처음 본 날부터 계속 생각했고 몸도 참 잘 쓰신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따라 자신의 심리 상태의 자신감의 크기를 몸집으로 표현하는 디테일이 더 잘 보였다. 삼르네 모두 하는 디테일이지만 몸집이 작으셔서 오히려 그 갭이 더 와닿는다. 봐도봐도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 있고 캐릭터가 늘 단단하다.
오늘은 객석 분위기도 너무 어수선하고 산만하고 벨소리도 울려서 집중이 힘들었지만 성우송의 위악과 영민르네의 위선이 만나는 지점이 참 좋다. 아.. 이제 페어막 밖에 안 남다니 슬프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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