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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50426 연극 M.Butterfly 밤공

by All's 2016. 3. 10.

 


캐스트 : 김영민 전성우 한동규 손진환 정수영 이소희 빈혜경
공연장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전성우가 연기하는 송릴링을 원래 좋아하지만, 오늘 만난 김영민-전성우 페어에서의 전성우송은, 전성우가 연기한 송릴링 중에 제일 새로운 느낌의 송이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진짜 정말 많이 안쓰럽고 처연했고, 그래서 매우 새로웠다,. 전성우는 승주르네와 할 때는 이용, 석준르네와 할 때는 사랑으로 노선이 좀 갈려있다고들 하는데, 이전 영민르네와의 공연의 후기가 이 둘의 중간적인 느낌이라 했는데, 오늘 영민르네에게 보여준 성우송의 사랑은 석르네와 함께 할 때랑 또 다르고 새로웠다. 한 남자에게 사랑에 빠진 사람의 느낌이지만, 아청과 비슷하다고 하기에는 그래도 감정의 교류가 있는 아청과 달리, 르네를 사랑하지 않고 이용하려는 연기에 능한 '예술가'를 연기하는 송이었고, 르네에게 송의 사랑이 짝사랑이자 외사랑이었다.


처음 르네를 만나고, 날이 밝자마자 그에게 전화를 했을 때까지는 사실 사랑보다는 이용으로 보였고, 철저하게 유혹하는 느낌이었는데, 친동무에게 도도하게 보고를 하다가 그녀의 일갈에 자세를 고쳐 앉는 순간부터 공산당원으로서 조심하고 겸손함을 보이기 위함이 아닌 르네에게 무심한 이를 연기하는 송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민르네의 르네는 헌신적인 동양여자를 사랑하고 지켜주고 그녀에게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 되는 '환상'을 꿈꾸지만, 그런 여자를 사랑하고 싶다는 순애보는 없는 나쁜 남자인데, 알 수 없게도 송은 그런 그에게 진짜 사랑을 느꼈고 그와의 관계와 그의 애정을 지키고 싶어했다.

그를 정말 사랑한다는 걸 스스로와 공산당에 속이고자 했지만, 소녀르네와 외도하다 오랜만에 찾아와 옷을 벗으라 하는 위기 때 '임신했어요'를 말하며 위기를 모면할 때, 그를 붙잡을 계기를 찾아서 기뻐하는 송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에게 진심이 있음을 스스로에게도 숨기고자 했지만, 르네가 떠나는 걸 원치 않아서 거짓 임신을 말할 만큼 그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마저 송이 알아차렸다. 그래서인지 친동무에게 '아이만 구하면 그가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는 말을 할 때 평소처럼 완벽한 첩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연기한다고 했지만, 그를 완전히 붙들고 싶은 진심이 흘러나오는 느낌이었고, 친동무는 그걸 알아차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후난 지역의 강제 노역 이후 송에게 더 치욕을 주기 위해 파리로 보낸 것이 아닐까 싶다. 감정적으로 송을 무너트리기 위해.

그렇게 송이 르네를 진심으로 사랑해서인지, 송은 르네가 자신을 진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단지 순종적인 동양여자 위에 군림하는 걸로 자신에게 부족한 남성성을 획득하고 싶어하는 르네의 환상이자 진심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중국에서 그와 헤어지게 된 뒤 다시 그를 만나면 거부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진짜 자신을 사랑한 게 아님을 알고 있었고, 그가 바라는 것은 환상이기에 르네와 다시 파리에서 만나면 그가 자신을 내칠 것이라고 송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후난 지역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 친동무가 다시 파리로 가서 첩보일을 하라고 할 때 한 톨의 기대도 없이 친동무에게 안될 거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데, 그때 정말 체념과 불안함이 느껴졌다. 파리에서 오갈 데 없는 난민이 될 걱정보다 그에게 거부 당하는 자신을 만나고 싶지 않은 순애보가 느껴졌다.

하지만 송의 걱정과 달리 정작 파리에서 르네는 송을 다시 받아줬고, 아마 조금은 그가 진짜 자신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이때부터 송은 기대했던 것 같다. 르네와 다시 만난 순간 나를 잊지 않았냐고 말하는 목소리에 떨림이 나에게는 감격과 놀라움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파리에서 르네와 재회하고 15년 간 다시 그와의 삶을 이어가는 동안, 사실 자신이 남자임을 알고 있을 르네가 그 긴 시간이 흐르고, 첩자일까지 시키는데도 가짜 자식을 부양하고, 현실을 외면하며 진짜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것에 대한 상처와 분노가 점점 쌓였던 것 같다, 재판장에서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흔들리고 원망과 분노가 찬 눈빛에서 그게 느껴졌는데, 그 부분에서 송이야말로 입으로는 아니라고, 르네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보았지만 눈으로는 그에게 마음을 기대하고 그를 사랑하는 게 보여서 아이러니를 느꼈다,

26일의 송은 정말 가여웠다, 특히 3막에서 진짜 자신을 보여주고 받아주기를 애원해도 끝까지 외면하는 르네에게 상처받는 건 오로지 송밖에 없는 것 같아서, 자존심도 버리고 그에게 매달리던 오늘의 송릴링은 전성우를 그 동안 재연과 삼연에서 수없이 보는 동안과 달리 처음으로 너무 많이 안쓰러워서 가슴이 매였다,

실제 송이 아니라 환상에 철저하게 매몰된다는 점에서 영민르네와 승주르네는 닮았고, 그래서 나에게 그 둘은 석르네보다 차갑고 잔인한 르네인데, 또 환상 속에 존재하는 꿈같은 여인에 대한 '사랑'에 집착하는 승주르네와 다르게 영민르네는 세 명의 르네 중에 그 누구보다 백인 악마, 지고한 남성성의 획득을 위해 완벽한 동양 여성의 사랑을 받는 '남자'인 자신이 그의 환상인 르네라 이런 관계가 나타난 것 같다.

그는 완벽한 여자에게 사랑 받는 완벽한 남성이 되는 자신에게 그 누구보다 집착했고, 그래서 그만큼 철저히 실제의 송을 외면했고, 송의 진심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을 잔인한 사람인데, 잔인함에 대한 반작용으로 송이 그를 갈망하게 된 것 마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가 곁에 있지만 한 순간도 진짜 사랑 받지 못하는 괴로움이 그를 사랑하게 했고, 사랑 받지 못해서 사랑하는 아이러니가 '임신했어요', '재판장' 쯤 르네에게 보이는 차가운 표정과 계산적인 말투 속에도 언뜻언뜻 비쳐서 오늘 늘송은 참 애처로웠다.

르네를 등지고 계단을 오르던 송이 르네를 다시 바라본 것과 달리 단 한 순간도 송에게 고개도 몸도 돌리지 않은 채 등돌려 소파에 앉아 송을 외면하는 영민르네와의 마지막 이별이 오늘 느낀 관계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고, 르네의 등을 바라보는 송. 자신의 아픔에 매몰된 르네. 가장 텍스트 그대로의 르네와 그렇지 못한 송의 조합이 정말 신선하고 극적이었다.

처음 시작 때 나비부인을 설명할 때 발코니 위의 송과 르네의 타이밍이 미묘하게 안 맞아서 합이 안 맞는 건가 싶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전체를 되돌아보니 그 엇갈림마저 오늘 공연 속 그들다웠던 것 같다. 극 속에서 그들은 한 번도 마주 본 적이 없으니까.

위악적이나 애절한 오늘 전성우의 송 릴링이 너무 좋아서 송 얘기만 한참 썼지만 전에 영민동화로 자첫하고, 오늘 두 번째로 만난 영민르네는 처음 본 날 텍스트에서 빠져 나온 르네 같아서 너무너무 좋았던 것 만큼 역시 좋았다.

자첫 때 긴가민가하다가 오늘 확실하게 느꼈는데, 영민르네는 진짜 관객에게 자신의 머릿속으로 매일 각색해본 희곡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누구보다 확고한 르네로, 그의 말들은 자조나 회상이 아닌 연극 속 독백 그 자체다,

한 명 한 명 객석에 눈을 맞추고, 감정이 뒤흔들리고 요동을 치면서도 3막 송과의 대치신을 제외한 모든 순간에 관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르네, 관객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기는 이 상황 속에 빠졌던 내가 이랬다고,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르네라 영민르네가 충실하게 연기할수록, 나는 철저히 관객이 되고, 또 그래서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었다. 희곡 속 르네가 텍스트 속에 가정된 관객인 진짜 관객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했다,.

그런 영민르네가 이야기하는 그의 이야기 속에는 완벽한 여인을 만나 당당한 한 남자가 되었다가 모든 걸 잃은 시간의 행복과 환희과 절망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너무나 행복했다가 절망에 빠졌기에 그의 외침은 애절하고 르네 자신은 너무나 억울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에게 매몰된 사람이기에 오히려 르네 자체에 대한 동정심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 누구보다 잔인하고 차가웠다.


그가 핑커튼을 이야기하면서 형편없는 남자일수록 아름다운 여자를 원한다고 할 때, 형편없는 남자라는 대사를 말하면서 자신의 가슴을 치는 게, 정말 형편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나쁜 사람이라는 걸 자기 자신도 아는 구나 싶을 정도. 그렇게 자기 자신과 자기 환상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인 극 속 르네의 지질함과 잔인함을 여지없이 보여주기 위해 영민르네가 혼신의 힘을 다해 동정의 여지를 거세하는 연기를 하는 게 좋았다, 르네에게 감정이 이입되거나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져서 한 순간이라도 그를 동정하는 걸 막기 위해 송이 자신을 두려워할 때 거들먹거리면서 테이블에 발을 올리는 등, 비열하게 구는 하나하나의 대사와 동작들이 치밀하고 대단했다.

영민르네가 정말 치밀하게 연기한다고 느낀 또 하나의 부분은 조명을 이용하는 점. 송에게 옷을 벗으라고 한 뒤 자기 안의 벌레를 고백할 때, 18일 자첫 때 보았던 그림자의 덮침을 오늘 또 만날 수 있었다, 그때는 우연인가 싶었는데 오늘로 우연이 아니라 의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닥 조명 앞에 앉아서 그림자가 벽에 길게 지도록 일부러 연기한 거였다는 걸. 그리고 3막에서 내 환상 속을 택하겠다고 울부짖을 때도 송의 방 쪽 바닥 조명 앞 가까이에 서서 절규하는 얼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조명 하나 허투로 넘기지 않는 그 치밀함에 (속으로 뱉었지만)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치밀하게 연구하고 섬세하게 연기하는 배우는 너무나 근사하다. 머리로 연구해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건 본능적으로 흘러나오는 연기보다 어떨 때는 더 감동적인데 영민르네가 바로 그런 배우같다. 엠나비 대사를 좀 바꿔서 말하자면 '아.. 어떻게 당신에게 감동받지 않을 수 있겠어요.'가 오늘의 영민르네의 연기를 보며 느낀 점.

정말 근사하고 대단한 배우고, 이 배우의 연기를 보게 되어서 기쁘다.

사랑노선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취향이 일억 이천 이용노선이라서 김영민-전성우 조합의 노선이 이용이 아니고 사랑이 좀 섞여있다는 이전 공연들 후기에 공연을 보기 전까지 안 맞을 까봐 걱정이 많았는데, 취향이 아니어도 이런 드라마라면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이 들만큼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 소소한 감상. 진환배우 뚤롱을 드디어 다시 만났다! 연수 배우 못 참을 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진환배우가 좋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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