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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50423 연극 M.Butterfly

by All's 2016. 3. 10.


캐스트 : 이승주 전성우 한동규 유연수 정수영 이소희 빈혜경
공연장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150423 엠버터플라이 이승주 전성우.

작년 5월 24일 이후로 거의 11개월 만에 다시 보게 된 승주르네 성우송의 버터플라이였다.

내 엄마오리이자 최애 페어인데 작년과 비슷하면서 조금 더 깊어져서 돌아와줘서 참 고마웠다. 늘송도 승주르네도 재연 때와 같은 그림을 그렸는데 색이 더 짙어졌고 깊이가 생겼다.

나만의 해석일 수 있지만, 승주르네는 어떤 르네보다도 송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지만, 그게 자기의 바람 속 환상 속의 송에게 쏟아부어지는 애정이라 그 누구보다도 실제의 송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혹은 할 수 없는 이로 느껴져서 참 잔인하고 나쁘지만 순정이 느껴져서 그 만큼 더 가련하게 느껴지는 르네다. 송을 처음 보고 그녀에게 반했을 때, 그녀를 안고 싶었고 보호하고 싶었다고 할 때 '보호하고 싶다.'는 말이 가장 와닿는 르네인데, 그런 순애보가 송에게 진짜 사랑을 하고픈 여지를 만들게 하고, 그러기 위해서 진짜 자신을 보여주고 싶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한결같은 순애보가 송에게 내가 연기하는 사랑스러운 동양 여자가 아니라 그걸 연기하는 실제 자신도 인정받고 싶게 만들었다는 점이 승주르네의 아이러니이자 비극. 자신의 사랑도, 환상도, 자기 자신마저 깨트리게 만든 원흉이 그 대단한 사랑이라는 게 참 모순적이고, 스스로 핀에 찔려버린 그야말로 참 가엾은 버터플라이.

23일의 늘송은 작년에 처음보고 덕통 당했던 것처럼 철저히 그를 이용하던 도도한 예술가였다.

르네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그를 굽어보고 그에게 철저하게 차갑던 늘송이 승주르네에게 인간적 감동, 혹은 감탄을 느낀 건 파리에서의 재회.

4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자신을 잊지 않은 자신의 순애보 넘치는 순종적인 팬에게 늘송은 감동을 느꼈고,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고, 사랑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순간부터는 진짜 그를 사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생긴 송으로 느껴졌다. 자기애도 강하고 나르시즘도 충만하며 배우이자 예술가인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과 달리 창녀의 몸을 빌어 태어난 불안정한 출신 성분을 가졌고, 현실에서도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를 연기하는 완전한 남자가 아니라는 게 멸종 속 늘송의 아이러니이자 치부랄까. 그런 송에게 승주르네의 순애보는 그가 하는 연기 속 허상을 사랑했듯 진짜 여자도 아닌 자신을 진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한 조각의 희망과 기대를 송은 품게했고, 국가반역죄가 들통나서 재판을 받게 될 때 오히려 송은 사실 그에게 자신을 보일 계기를 찾았기에 설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임신했다고 르네를 속일 때까지도 오로지 위기를 벗어날 생각 뿐이었고, 르네의 진심은 안중에도 없다가 3막에서 자신을 철저히 거부하는 르네에게 점점 더 실망하고 화가 나서 격렬하게 분노하는데, 그 감정의 파고가 마음 속에 콱콱 박혀서 정말 좋았다. 재판장에서 나와 르네에게 다가가기 시작할 때, 늘송의 '내 아기'라 말할 때의 심리는 그동안 그랬듯 르네를 들었다놨다 조롱하고 가지고 노는, 르네에 대한 놀림이 큰 비중인 심리상태. 하지만 진짜로 그 동안의 기다림이 끝났으니 니가 나를 인정한다면 진짜로 르네를 품으려던 마음도 있었는데, 자비롭게 르네를 받아주려는 자신의 기대와 예상과 달리 르네가 격렬하게 거부했다. 스스로가 연기한 여배우 송 릴링에 대해 긍지를 가지듯, 그 연기를 해낸 본인에 대한 자부심과 자기애가 넘치는 송은 진짜 자신을 향한 르네의 끝없고 완강한 거부에 타고난 예술가이고 사랑받아 마땅한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남자옷을 입은 자신마저 숭배할거라 생각한 자신이 르네에게 가졌던 믿음에 대한 배신에 한 예술가로서도, 진짜 사람 대 사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던 기대를 가졌던 한 사람으로서도 상처입었다.  멸종 속 송은 차갑고 잔인하고 나쁜 사람이지만 굳은 믿음이 부서져서 흔들리는 모습은 많이 안쓰럽다.

내 환상 속에 머무르겠다 선언한 뒤 소파에 앉은 르네와 계단 위를 오르던 송의 눈이 마주친 순간, 자결한 르네를 바라보며 차마 손을 뻗지 않고 송이 담배를 꽉 움켜쥐던 순간이 23일 멸종의 공연에서 가장 아프고 강렬하게 기억될 순간이었다. 누구보다 헌신적인 사랑을 한 사람인데 실재는 사랑한 적이 없는 이와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았는데 정작 실재는 사랑받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이승주 전성우 페어의 엠나비는 어느 조합보다 이데올로기가 확고하지만 그만큼 비극이고 그래서 슬펐고 그래서 참 좋았고 내가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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