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
오르페우스 - 조형균
헤르메스 - 강홍석
페르세포네 - 김선영
에우리디케 - 김수하
하데스 - 양준모
운명의 여신1 - 한보라
운명의 여신2 - 도율희
운명의 여신3 - 김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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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소개]
수천 년 전 신화의 새로운 변주
지금 여기,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슬픈 노래. 오래된 노래. 사랑 노래
머나먼 시절부터 내려온 이야기
젊은 몽상가 오르페우스, 그의 뮤즈 에우리디케
여르므이 태양을 환하게 만드는 페르세포네, 그리고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
믿음에 대한 의심과 사랑에 대한 두려움...
불완전하지만 아름다운 두 개의 신화
당신의 운명을 바꿀 노래가 있는 곳
하데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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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윗 감상
[인터미션]
에우리디케는 살아가는 게 고단한 민중이고, 오르페우스는 혁명가, 신들은 자본가이기도 하면서 사회 체제.. 알고 있고 보아왔던 하타이지만 삶의 고단함에 숨이 더더욱 막히는 2024년에 만나니 그 모든 게 하나하나 더 지독하게 다가온다. 에우리디케에게 오르페우스와의 사랑이 삶과 세상이 나아지고 바르게 흘러갈 수 있게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 그 자체라는 게 너무 절절하게 다가와. 그 희망으로 삶의 고단함을 잊고 조금은 삶에 여유가 생길 때는 한정없이 희망이 가득 차 행복하고 조금씩 삶이 버거워지기 시작해도 견디고 견디지만 정말 더는 버티기 힘들어지면 마음 속에는 그 희망을 영원히 사랑하고 간직하고 있음에도 살아남기 위해 혁명을 포기하고 돌아서게 되는 그 모든 순간들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와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정말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아. 수하에우리디케가 삶이 고단한 게 너무나 당연해서 경계하고 불안하고 날을 세우다가 오르페우스의 빛과 따스함에 마음을 열어가는 순간들이, 마침내 희망의 따스함 안에서 다가온 여름의 풍요로움에 환히 미소지을 때의 행복이 희망을 처음 만난 이들의 벅찬 행복이라 그 아이가 너무 온 세상의 '나'들 같아서 그리고 나같아서 그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아니 볼 수가 없어 그 순간들이 행복한 만큼 결국 살고 싶어 마음을 놓고 가는 그 순간의 고통마저 너무 선명하게 박혀와. 오르페우스가 특별한 아이라 신의 날개 아래 있음이, 혁명가들이 혁명을 꿈꾸기 위해 세상을 돌아볼 숨 쉴 여유는 있는 존재들인 것마저 너무 현실적이기도 해 굶어죽지 않아 고뇌할 여유가 있어 지상의 고통을 잠시 잊고 여름을 뺏어간 존재의 탐구에만 몰두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라는 게 너무 현실적이라 소름끼치고 원망스럽다가도 그렇지만 그렇기에 그는 그렇게 키워낸 신념으로 살기 위해 떠나간 이를 포기하지 않고 찾아 상상도 못 할 시련들을 뚫고 걸어가고 노래하는 거기에 또 다시 희망을 걸게 된다.
[공연 종료 후]
떠나기 전 그냥 가지 않고 하데스에게 허락을 구하고, 결국 그들이 제시한 시험에 응하고 말고, 그 결과에 따라 다시 오래된 노래의 초입에 다시 서는, 그리고 애초의 기회부터 위정자의 자비로 시작되는 하타의 이야기가 혁명의 이야기임에도 체제 순응적인 극이 아닌가 의심과 분노의 마음을 갖다가도, 다시 나타난 에우리디케의 주머니에서 꽃이 나타나고 특히 오늘처럼 에우리디케가 결국 지하세계를 걸어나와 오르페우스를 찾아 돌아온 것만 같은 순간을 맞이하면, 슬픈 끝이 변하지 않을 세상이 의심 되더라도 계속 노래하면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래하면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에 중독되게 된다. 이 극이 그렇게 희망이 있으니 버티고 일단 살아보라고 이 극을 만드는 자본가들이 세상의 다수이나 연약한 자들을 달래는 사탕일지라도 차라리 그 사탕을 물고 희망을 갖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으로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게 해. 그럼 된 거 아닐까. 그러다보면 가려진 눈이 밝혀진 이들이 벽의 틈을 완전히 부수는 날이 언젠가 올 수 있잖아. 적어도 희망도 없이 그 장벽의 틈을 메우는 것보다는 더 행복하니까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 오랜 노래를 찾아 인위적인 폭력이 아닌 자연적인 생을 위해 살아갈래.
빼앗고 성을 쌓는 이마저 그 무게에 눌려 진짜 행복 대신 장벽 자체가 되는 이 비정상적인 굴레를 바꾸고 무너뜨릴 수 있다는 희망에 취해, 내가 발 딛고 있는 지금의 세상이 정말 답도 없이 어둡게 보이지만 나는 영혼을 팔아도 생계를 이을 수 있을 미래는 있을까 두려운 지금을 모두가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순간을 노력하면 얻을 수 있다는 희망에 취해 살리라.
쌀올페의 순진하기에 강건한 신념과 주변이 아닌 위정자를 향했던 패착이 목적에만 매몰되어 주변을 살피지 못 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이 오히려 그들을 다시 이끌 수 있는 기회 앞에서 의심으로 흔들리는 연약함이 자신이 노래만 완성하면 모든 걸 바르게 돌릴 수 있다는 이전보다 오히려 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이 된다는 걸 오르페우스는 몰라도 나는 알기에 그의 불안마저 아름다웠다. 비록 이 이야기에서는 그가 뒤를 돌아보았기에 에우리디케의 앞에서 문이 닫혔지만,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은 혁명가는 자신의 등 뒤를 걸어와 언젠가 곁에 서고 마주 볼 이들의 진짜 고통을 알 수 없으니까. 오르페우스가 이번 노래로 얻은 게 그저 긁어모으고 쌓기만하다 어둠으로 처박힌 그릇된 자본의 빛의 세상 속에서 진짜 행복을 잊어 불행했던 하데스타운의 신들의 마음의 움직임이었다면, 자신이 노래하는 세상에서 겨울이 고단하고 버거운 이들이 희망을 사랑하다 무너지는 이유를 고민하고 노래하여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세상에 머물게 하기 위해 노래할 수 있는 건 다시 부를 노래 속에 있을 거야. 그런데 정말 의심하게 되었다는 게 진짜 성장이라는 게 좋다. 지상의 그는 헤르메스의 품 안에서 가난할지라도 굶주리고 춥지 않았지만 하데스타운으로 걸어가는 그 길 속에서 겪은 고난과 시련들로 그가 되돌리고자 하는 세상의 다른 이들의 고통을 진짜 알게 된거니까. 이제는 그를 뒤따르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마저 알게 되었기에 비록 그리하여 그 길의 성공에 대한 믿음을 흔들 의심이 생겼을지라도 그 이해와 간절함의 깊이는 이전과는 달라지는 거니까. 그게 없다면 빛 속에 있어도 따르고 기다리는 이들을 놓칠 수 밖에 없어. 에우리디케를 처음 놓친 그때처럼ㅠ
쌀수하가 너무 좋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조차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날들이 춥고 벅찼던 어린 수하디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어둡고 험난한 길을 헤치고 달려온 쌀르페의 그 포기하지 않는 진심으로 다시 기억과 이름을 찾았기에 비록 그와 함께 지상에 올라가지 못 했음에도 다시 걸어나온 에우리디케의 손에는 오르페우스에게 처음 건네받았던 희망의 꽃이 고스란히 쥐어져있다는 게, 이제는 마음에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존재가 되었으니 에우리 역시 희망을 건넬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쌀올페에게 웃어보일 수 있다는 게 너무 아름다워 벅찼다. 지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그리고 가장 연약하던 이가 여전히 춥고 배고파도 이제는 마음에 희망을 품고 살 수 있음이 쌀수하에 있어. 자신의 머리에 꽂았던 꽃이 하데스의 손 안에서 피어남에 놀랐던 그녀의 손에 쥐어진 그 꽃이 과한 기대로는 하데스에게서 건네받은 걸지도, 세상에 화해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황당무계한 가정까지 해보고 싶지만 그게 아니어도, 페르세포네가 품에 안고 온 꽃이 봄을 담은 꽃들이라는 것 만으로도 세상의 리듬이 제자리를 조금이라도 찾아감이기에 이제 쌀올페와 수하디케가 함께 노래를 만들겠지.
하데스타운이 위정자들의 세상을 지하로 설정한 것이 지배자-상류층-신을 아래에, 인간과 지상을 위에 놓는 구도를 취하는 것이 재밌다고만 생각했지 그 자체가 어떤 의미일까는 그저 어둠과 빛으로만 생각했는데 더 가진 자들일수록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서 있는 게 맞는 세상의 뒤집힘을 심화시키는 기이함일 뿐이라는 걸 장벽을 세우는 자가 지하에 있다는 걸로 표현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모든 자본이 한 곳에 모이고 사람들이 자아를 빼앗긴 채 착취당하고, 추울 때 춥지 않고 밤인데 어둡지 않은 자연의 섭리마저 거스르는 뒤집힌 세상의 주인과 그 곳에 추락하는 자연의 빛과 충만함이 하데스의 장벽과 페르세포네가 그에게 끌려가 머무르며 지쳐가는 겨울의 확장이었다는 것도. 퀸페르세포네 하데스가 자신이 사랑한 그 존재가 더는 아니라고 생각함에도 그가 자신에게 보이는 것이 무의미한 집착이라 여김에도 그를 떠날 수 없는, 한 번 손이 잡힌 뒤 돌이킬 수 없이 빛을 빼앗겨가고 대지의 신이 아닌 뒤집힌 세상의 여왕이 되어가는 절망 속에서 술과 약에 취해 망가져감에도 장벽의 균열의 틈새로 새어들어올 빛을 주시하는 집요함이 만드는 극의 깊이를 잘 묘사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아쉽다. 페르세포네가 민중을 사랑하나 자신의 근원을 버릴 수 없는 자본가라고 생각해왔는데 오늘의 퀸페르세포네는 착취당하는 자연이었어. 자연은 그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존재들도, 그 자연의 반짝임을 손에 쥐고자 하는 존재에게도 차별없이 손을 내밀지만 후자에 의해서는 점점 착취당하고 빛을 잃어감에도 그렇다고 소유하고자 하는 존재에게서 손을 거두지도 않는 그 모든 것 같았어. 그럼에도 다시 돌아오길 바라며 싹을 틔우는.
양데스 초연 때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보내줄지 말지 고민할 때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대해 묘사할 때 이미 흔들리고 연약해진 마음이 더 컸고, 그럼에도 자신의 왕국을 지켜야 하는 자로서 그렇게 마음을 따를 수 없음이 괴로운 것 같았는데 오늘은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그만 당해버렸다-의 느낌이 강하게 와서 마음 속에 페르세포네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어도 이미 너무나 많이 그가 만든 왕국 그 자체가 되어버린 건가 슬펐는데, 길을 떠나는 오르페우스와 악수를 하는 그 순간 비록 시험과 함정 사이의 금제를 주었음에도 양데스의 얼굴에 오르페우스가 이겨내길 바라는 진심이 엿보여서 뭉클했다. 이것이 시험이 되길 바라며 두려워하는 오르페우스에게 몇 번이고 이건 시험이란다를 다짐하는 홍르메스보다도 더 굳건히 이겨낼 것을 바라는 듯 했어. 그 순간이 있었기에 지상에 올라간 페르세포네를 외면하며 뒤돌아선 게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끝이 가능했던 거겠지. 이제는 진짜 봄 뿐만 아니라 가을도 올 것이라고 그 악수와, 그 발코니에 기대 선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지상으로 향하는 페르세포네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 맞이하러 다가가는 시간이 봄이고 가을일 거야.
오늘의 신들 뭐였을까 정말 삶의 흐름 그 자체인 운명의 여신들을 제외한 하데스, 헤르메스, 페르세포네가 각자 자본주의와 자연의 섭리,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그 층위의 위치와 범주의 변화가 다른 존재들로 다가왔다는 게 이렇게 또 새롭게 보이는 게 있다고?싶어서 기분좋게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인간을 사랑하고 연민할 지라도 결국 가혹한 신일 뿐이라는 게 초연 자첫 때의 감상이었고 그래서 밉기까지 했었고, 당연히 무너져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 폭동이 아니라 체제 순응적인 면모가 강한 스토리 속에서 안전하게 위치를 보장받는 신들이 자본주의는 무너지지 않고 착취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단언 속에 자본가들의 동정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혁명을 노래하는 건가 마음이 씁쓸한 때도 있었는데 참 신기하지. 지하세계 즉, 자본가이자 착취자의 층위에 포섭되었거나 거기에서 태어난 존재일지라도 온전히 노동자이자 민중과 분리되지 않은 결국 그들 모두의 마음 속을 관통할 사랑을 일깨울수만 있다면 서로 완전히 섞이는 건 할 수 없을 지라도 사이에 경계가 흐려지고 비정상적인 자원의 독식 또한 다시 그 흐려진 경계를 넘어 퍼트려질 수 있다는 일렁임을 보았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홍르메스가 있었다. 가끔 다른 신들도, 혹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도 이 오래 된 노래의 반복을 알고 있는 할 때도 있지만 헤르메스가 이를 알고 있음에도 다시 노래의 시작을 연다는 것은 정말 변하지 않는 불변의 룰일텐데, 즐거운 등장과 달리 진짜 시작이 쉽지는 않다는 듯 노래를 시작한 홍르메스가 사랑하는 아이들의 만남에 미소짓고, 이번에는 차라리 이 아이들이 혁명을 꿈꾸지 않고 자기들만의 아름다운 삶의 연명을 위한 준비를 하기라도 바라는 듯 애틋하게 바라보다, 결국 찾아온 폭풍. 간절한 경고에도 또다시 반복되는 오르페우스의 외면에 절망하고 이야기의 전승자이자 신들과 인간의 세계를 잇고 오가는 자로서 결국 에우리디케에게 하데스타운행 기차의 문을 열어준 뒤 경고를 무시하고 세상을 돌려놓겠다면서 그 세상 그 자체인 에우리디케를 외면하고 만 오르페우스가 자신의 분노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보임에 결국 그 아이에게 길을 알려주고,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기회 앞에서 두려워하는 오르페우스가 시험을 통과하길 바라며 힘을 주었어도 결국 이번에도 사랑하는 아이들이 함께 지상 위로 올라가지 못 했음에 그 역시 아팠으나 다시 걸어온 에우리디케의 미소와 여름이 아닌 봄을 가지고 온 페르세포네, 그리고 다시 걸어나온 오르페우스. 이 모든 것이 이제 다시 부를 노래는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슬픈 반복이 아닐 것이라는 희망을 가득 담고 밝에 웃으며 단추를 채우는 것으로 단추를 풀 때는 기쁨의 노래가 될 것임을 예감하는 암시를 주면서 이미 낮아지고 무뎌지는 벽과 경계가 되던 순간 눈 앞에 빛이 가득 찼어.
웨잇포미 전까지 수하디케가 바람 한 숨에도 춥고, 햇살 한 톨에도 웃다가 결국 스스로 하데스타운행을 결심하는 게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하게 다가와서 너무 맘이 아팠는데, 웨잇포미부터 극의 마지막에 이르는 순간에는 가득 쌓인 희망이 너무나 반짝여 이를 잃지 않는 숭고함을 품고만 싶어졌다. 초연이 올라온 역삼 엘지아트센터에 비해 샤롯데씨어터의 무대가 너무 좁아서 무대가 답답해보여서 극이 시작되고 특히나 웨잇포미의 조명 세트 때는 코러스들과 오르페우스, 조명이 다 조밀하게 붙어서 속상하기도 했는데 무대의 크기를 넘는 감동이 내 마음에 차서 그냥 다 괜찮았고 아직도 행복하다.
무대를 제외한 모든 게 완벽했다기에는 새로 만난 운명의 여신님들이 다들 노래가 좋긴한데 초연에 비해 음색 대비가 덜 되는 것도 솔직히 좀 아쉬웠고, 바이올린 핸드씽크를 좀더 섬세하게 해주면 좋았을텐데 생각도 했지만 객관적으로 못 했냐하면 또 그것도 아니라서 다행이었어ㅎㅎ
에우리디케가 나랑 결혼하고 싶어요?하면서 어깨 코트 슬쩍 젖혔다가 다시 입는 거 그때 쌀올페가 의미 알아차려서 놀라면서 부끄러워하는 거는 귀여움, 근데 에우리 삶이 너무 험난했겠구나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서 괴로움이 교차하던 지점이라 특히나 삶에 지쳐있는 게 큰 화니디케에게 잘 어울리는 액션이다 싶으면서도 양가 감정을 초래하던 부분이었는데 수하디케가 오늘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어리고 맑은 1막이 둘의 분위기와 어울려서 좋았다고 했는데 트친님이 이번 시즌에 빠졌다고 하셔서 역시 상연을 거듭하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뉘앙스는 좀 정리되는 구나 싶었다. 에우리디케가 삶이 팍팍하고 버거웠던 단면 중에 그 부분을 안 보여준다고해서 나중에 헤이, 리틀 송버드가 안 사는 것도 아니었고 작은 귀여움 포인트가 떠났지만 아쉽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그리고 사랑하는 부분은 그대로라서 괜찮기도 했다. 에우리디케가 페르세포네가 준 술을 마시고 대가 없는 친절을 받아본 적이 없어 오르페우스에게 받았던 꽃을 페르세포네에게 건네면 페르세포네가 그 꽃을 에우리에게 다시 주며 귀에 꽂아주는 거.. 정말 너무 사랑하는데 여전히 그대로더라고. 오르페우스가 함께 있어주겠다 하는 그 곳에서 에우리디케를 감싼 따스함들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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