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후기

20240613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by All's 2024. 6. 14.

2024년 6월 13일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캐스팅 보드

에반 핸슨 - 김성규
하이디 핸슨 - 김선영
코너 머피 - 임지섭
조이 머피 - 홍서영
래리 머피 - 윤석원
신시아 머피 - 한유란
재러드 - 조용휘
알라나 - 염희진
스윙 - 장겨원
스윙 - 임민영
스윙 - 김강진
스윙 - 박찬양




캐스트 - 김성규 김선영 임지섭 홍서영 윤석원 한유란 조용휘 염희진


===============================================

시놉시스

디어 에반 핸슨
오늘은 멋진 하루가 될 거야! 왜나하면...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소심한 소년 '에반 핸슨'은
매일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며
나답게 행동할 수 있는 멋진 하루를 꿈꾼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코너'에게
자신에게 쓴 편지를 뺏긴 에반은
며칠 뒤 코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알게 된다.

유일한 소지품이었던 에반의 편지를
아들의 유서로 오해하고 찾아온 그의 부모님은
에반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이며
두 사람의 추억을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에반은 코너와 친구 사이가 아니었지만,
슬퍼하는 그의 가족들에게
차마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하는데...

과연 에반은 언제까지 비밀을 지킬 수 있을까?

===============================================

 

 

여왕 다이애나 좀 달라고 몇 년 째 염불 외우고 있었는데 충무에서 넥투노 반전 버전에서 여왕 댄을 하고 계셨네....

이 극 재미없지 않다.. 일단 음악이 미쳤음. 이건 절대 연강홀 사이즈다 싶지만 무대도 너무 좋고 연출도 너무 좋다. 그림자 속을 걷던 코너가 잊혀지지 않고 싶다며 그림자 밖으로 걸어나오는 순간 연출은 정말 특히나 소름이었고 모두가 등 돌렸던 첫 넘버와 1막 마지막의 모두가 에반을 향해 돌아섰고 환한 빛이 쏟아지며 에반의 꿈이 이루어진 순간은 그냥 개인적인 취향으로 너무 그림 자체가 아름답다. 하 그런데 정말 나는 이런 이야기가 너무 너무 힘들거든. 바로 그런 지점을 비판하기 위하여 하는 이야기라고 해도 사람들은 정말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해서 무언가를 그리는 게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위하여, 무언가를 위해 슬퍼할 줄 아는 자신을 즐기고 싶어서 자신을 사랑해서 타인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척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위해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그 거짓에 모두가 잡아먹히는 이야기. 사실 진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너무 원하던 그림이라 정말 진짜를 파고들기보다는 이야기를 듣는 이도 그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들도 그게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서 정말 진짜 그 존재의 사악함마저 알고 있기에 차마 그리워도 못 하던 사람마저 무너지는 그런 순간이, 그래서 치유받은 그들이 정말 진실을 목도하게 될 때를 예상하면 숨이 막히도록 괴로운 부분이 에반이 너무나 꿈꾸던 순간이라 찬란하게 빛나는 그게 너무 아름답고 끔찍해서 눈물이 나는 1막이었다.

1막 보는 내내 괴로울 수 밖에 없던 게 굳이 억지로 국내화 하려는 게 아니라 이거 아름다운 버전의 한강 의대생 실족사 사건이라는 식의 생각이 떠나지 않더라. 사람들이 그저 보고 싶은 대로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덧씌우면서 그들이 원하는 애틋함을 위해 진짜 그 사람을 지워버리는 거. 이 극 속에서 코너가 지워졌다는 사실 자체는 슬프지 않은데 세상을 가득 채우는 자위를 위한 추모들이 얼마나 추악한 지를 그리면서 끝내는 게 맞다면 보는 동안 너무 힘들고 괴로웠어도 그래도 좋은 극이었다고 나올 것 같은데 이게 만약 그럼에도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았던 외로운 소년의 성장 식으로 끝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코너를 회상하면서 우리를 망쳐버리고 너는 떠나버렸다고 차마 울지도 못 했던 래리의 무너짐이 절박해서... 그걸 책임지는 이야기면 좋겠다 제발 미국적으로 흘러가지 말아라 했는데, 슬프게도.. 제발 이런 쪽이 아니길 바랐던 바로 그 결말이더라.

1막을 보면서 좋아하는 책인 트레버와, 똑같이 거짓 위에 쌓았던 갈망을 담은 이야기였던 뮤지컬 팬레터가 교차되어 떠올랐었는데 2막을 보면서 내가 뮤지컬 팬레터 속 정세훈을 용서한 건 세훈이가 아직 어려서가 아니라, 그 아이의 거짓은 해진과 함께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걸 이 극을 통해 알았다. 이미 거짓임을 알지만 그 거짓을 기꺼이 끌어안기로 동조한 존재와 함께 만들어낸 환상과 나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으로 사실 그 사람에게 정말 힘이 되었대는.. 많이 다르더라.

극이 이야기하고 싶은 건 에반의 불안의 근원이 사실 하이디마저 떠날까봐 자신이 사랑받지 못 해서 홀로 남겨질까봐였다는 거고, 코너가 사라진 머피 가족에게서 자기까지 그 안에 들어가 완벽한 4인 가족의 그림 속에 속해 두렵지 않길 바랐던 에반에게 그가 그렸던 환상 속의 가족과 연인이 아니라 비록 홀로 아이를 키우느라 늘 바쁘고 자주 곁에 있어줄 수 없어도 '디어 에반 핸슨' 편지 속 에반의 절실한 외로움을 알아줄 진짜 가족인 엄마가 항상 곁에 있었고 그 사람은 평생 그 아이의 곁을 지키고 사랑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침내 아무도 진짜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을 떨치고 에반이 자기 스스로를 그대로 내보이게 되었다는 걸 보여주면서 완전한 정상 가족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있을 수 있다, 꼭 그게 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도 조이로 살짝 길 열어두고.. 그리고 그러니까 나를 그대로 내보이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나 자신으로 살아가면 언젠가는 나도 나를 진심으로 아끼며 나의 나무를 키워낼 수 있을 겁니다...더라고.

그런데 내 기준 그 과정 중에서 에반이 사실 거짓말을 꾸며낸 것이라는 걸 알게 된 머피 가족이 그 거짓 위로가 그들 부부에게는 필요하기도 했기에 넘어갔다고 끝내는 건 선 넘는 거인데 이 극이 그랬다. 그냥 그들이 보살이구나 거짓말이었어도 그런 가짜 코너가 세상에 남겨지는 게 그들에게는 견딜 수 있는 상징이었대로 끝나는 건 진짜 아니지 싶은 거지. 주인공인 에반의 아름다운 성장의 결말을 위해 그 아이의 지독한 기만을 그 기만으로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모두 겪은 머피 가족의 상황을 대충 넘겨버리는 걸로 끝내는 거 솔직히 많이 끔찍했다. 팬레터의 정세훈은 해진의 용서를 얻기 전까지 3연까지는 글과 영혼을 잃었고 4연에서는 안온한 삶도 버렸었는데 심지어 그럼에도 팬레터 정세훈에게 지나치게 상냥한 세계관이라 생각했는데 이 극에서는 생략되어 있는 시간 속에서 머피 가족은 여유있는 가정이면서 코너를 제대로 재활시키지 않았다는 비난과 직접적으로 생활에 끼치는 테러도 다 끌어안고 그저 견디고 에반은 무려 '이 모든 게 잠잠해질 때까지 너의 곁에 있을게'라는 헌신적인 보호자의 가호 아래 이제는 말을 더듬지 않게.. 불안 장애의 치료까지 이루어내고 가진 줄도 모르고 있던 행복 속에서 행복한 상태로 끝을 맞는다. 1막에는 이건 넥투노 댄 성별 반전인가 싶었던 하이디가 사실 같이 미쳐주기 까지는 하지 않고 곁을 절대 떠나지 않는 헨리였다는 걸로 하이디 핸슨은 정말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멋진 캐릭터구나 싶은 것과 별개로 그런 하이디의 가호 아래 사실 가호가 필요도 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평온을 찾았을 에반을 나는 머피 가족이 아니라 용서가 안 되어서.. 극의 메시지에는 박수를 쳐줄 수가 없더라.

코너가 죽은 진짜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 에반처럼 역시 외로운 존재였을 '진짜 코너'를 보듬지 못 했음에 대한 속죄로 극 속에서 머피 가족이 그들에게 향한 비난을 감내하고 그것으로도 나름의 치유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고 초월 해석을 하기에는 내가 굉장히 인과응보에 집착하는 종류의 사람이라 그걸 굳이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럼 에반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그렸어야 하냐고 할 수도 있는데, 하이디가 에반의 편지 속 에반의 외로움에 대한 이해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의 잘못을 작게라도 짚어주고 같이 속죄의 진창을 걸어가겠다 하는 게 내 기준 진짜 보호라서 이 극이 음악, 연출, 세트 모든 면에서 정말 잘 만들었다 싶고 나는 정말 나 너무 취향 아닌 결말이어도 당연히 감동을 받을 분들도 많을 수작이다 싶긴한데 나에게 와닿은 극은 현재의 나로서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평생이라는 단서를 달지 않는 건.. 또 어떤 세월 뒤의 내 마음의 이해의 폭과 종류는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에반에 대해서 머피 가족이 그냥 묻고 지나갔으니 당연히 재러드와 알라나도 그냥 그렇게 대충 지나가게 되는 거긴 한데.... 이야기 진행 자체가 그렇게 머피 가족에게 에반이 고백하는 게 위기이고, 엄마에게 힐링받는 게 절정이라지만 결말을 그렇게 뚝 내버려서 에반 말고 정말 모든 인물이 알아서 잘 살겠거니 하게 되는 거, 그 앞의 이야기들은 나름 촘촘하게 잘 맺어져 있는 것에 비하여 정말 과한 급 마무리이고, 가족의  이해와 사랑을 믿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세상을 솔직하게 살아가면 됩니다하고 끝내고 마는 거 좀 작가님 무책임하시네요라는 생각도 했다. 이 극을 보는 동안 펀홈도 생각났는데 펀홈도 마지막 결말에 그래서 아버지와 화해를 한 건데 만 건데 용서를 한 건데 만 건데 이거 그냥 비행기 태우고 끝이잖아 할 수도 있지만, 펀홈은 적어도 시작 자체가 어린 시절부터 20대를 지나 40대까지 삶을 살아낸 앨리슨이라는 생존자의 일대기라서 마지막에 개운하게 걸어나가는 앨리슨이 그 자체로 잘 살아내고 이겨냈습니다가 된다고 생각하고, 다른 인물들, 엄마와 형제들의 이야기까지는 뒷 이야기를 풀어주지 않아도 된다 싶다만, 디어 에반 핸슨은 다양한 사춘기 청소년의 고통을 중후반부까지도 끌고 갔는데 오로지 에반만으로 이야기를 정리해버린 게, 조이와 알라나와 재러드의 가정이 모두 하이디 핸슨 같은 보호자를 갖고 있는 게 아니고 그 아이들 모두 다 다르잖아요 하고 딴지를 걸게 만드네. 극 자체에 인물의 이름이 들어가는 원톱 뮤지컬이니 한 명이 마무리되면 되는 거나 해야할 수도 있는데.. 어째 그게 잘 안 된다.ㅠ 재러드와 알라나에 대한 나의 태도 차이도 그렇고.. 이 극의 주인공이 남자 고등학생이 아니라 여자 고등학생이면 지금 내가 훨씬 더 긍정적으로 봤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지금의 나는.. 남자 고등학생의 성장에 나와 세상의 대표성을 주고 싶지 않나봐ㅠ

그렇다고 극을 본 것을 후회하느냐 별로였느냐하면 그건 아니고, 보길 잘했다 싶긴 하다. 일단 처음 보는 뮤지컬이라는 거 자체가 좋기도 했고 이건 정말 지독하게 연강홀 꺼인데 싶긴 해도 전에 연극 한밤개 보면서 느낀 만큼의 극장 사이즈에 걸맞지 않아 빈다..싶은 정도의 위화감이 없이 궁금했던 극을 만나서 내가 덜 본 거 아닌가 싶은 찝찝함도 없고, 결말이 아마 내가 바라는 식이었다면 1막이 너무 괴로워요 나 누가 거짓 속에서 행복해하는 거 너무 힘듭니다 싶어도 끝에 공연 소개에 있는 힐링도 이루었겠지 싶게 어느 정도까지는 이야기도 좋았다. 그리고 궁금했거나 좋아하는 배우들의 멋짐도 충분히 볼 수 있었고. 김선영 윤석원은 이제 다음 시즌에는 정말 다이애나랑 댄 좀 해주시면 좋겠는데요.... 같은 거. 나는 홍서영을 사랑합니다 같은.

이 극에서 인상 깊은 건 머피 가족.. 코너까지 포함해서 문제있는 중산층 미국 4인 가정이라서 그런가, 보면서 넥투노 생각이 계속 났다. 만약에 게이브가 코너같은 존재였다면 래리와 신시아는 다이애나와 댄의 성별 반전 같은 방식으로 코너를 대하며 집안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같은. 코너를 지긋지긋해 하면서 그럼에도 코너가 에반을 밀쳤을 때 다가가서 코너 대신 사과하던 조이의 모습에서 특히나 다이애나의 불안함을 본 헨리에게 쏟아내던 나탈리가 떠올랐다. 자기 방문을 두드리며 그 애를 괴롭히던 코너임에도 그 애를 애도하지 않겠다는 말로 사실 코너를 버리지 못 했음을 보이던 모습까지.. 하필 코너가 에반의 또다른 자아로서 등장해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 거 같아. 그렇게 생각해보면 엄마-아빠-첫째 아들-둘째 딸 로 그려지는 부유층 4인 가족에 대한 미국의 환상이란 대체 어느 정도의 원형인 건가 싶기도 하다. 내가 미국인이 아닐 바에야 절대 알 수 없을 정말 공고한 프레임이겠지.

이제 배우 얘기~ *자세히 언급하지 않은 사람은 나무랄데없이 좋아서.

성규에반... 내가 그를 뮤에서 본 게 킹키 찰리였다는 것과 이어서 생각해보면 정말 이게 뭔 소린가 싶을텐데 그는 너무 동정이 가지 않게 극본 그대로 인물을 구현해서 잘하는데, 잘해서 보기가 너무 괴로웠어ㅠ 킹키부츠 찰리도 정말 미숙한 존재이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고 공장 식구들을 위한 거라 해도 진짜 진짜 각성과 반성 전까지 결국 자기 아집과 이기심에 주변 사람을 제대로 돌보지 못 하는 인물인 걸 굉장히 적나라하게 보여줬었는데 이 극에서도 에반이 내면의 이야기마저 '코너'를 불러내서 속삭일 정도로 깊은 자기 혐오를 가졌고 스스로에게도 진실할 수 없기에 머피 가족과 세상을 속이는 게 진짜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자기합리화 하는 걸 정말 가감없이 보여줘서... 배우로서 굉장히 좋은 태도이고 자기 인물 너무 사랑해서 오히려 필요 이상의 동정거리 얹는 것보다 훨씬 좋아하는데 그래서 보는 동안 너무 힘이 들었다ㅠ 언젠가는 좀 호감가는 인물을 연기하는 걸 보고 싶네. 잘하는데 자꾸 보고 있으면 힘든 역으로만 보게 되어서 만들어낸 퀄리티 말고 심정적 괴로움을 기억으로 안게 되어서 미안함. 레드북 할 때 봤어야 하는데.. 이번에 하데스 타운 오르페우스였으면 좋았을텐데 같은 생각을 했다.

서영조이..ㅠㅠ 서영배우를 데뷔작인 도리안 그레이에서 만난 뒤에 필모를 잘 챙겨보기 보다는 찬찬히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만나고 있는데 데뷔 때부터도 그렇고 만날 때마다 점점 더 늘어있어서 어쩜 이래?하고 감격한다. 조이가 코너에게 가지는 애증의 감정과 그걸 극복해가는 과정이 에반의 배신에 대한 대처와 반응, 그리고 극복에까지 옮겨가는 걸, 에반의 진실 고백 이후부터 마지막 재회와 정리 사이의 얄팍한 이야기적 공간에서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게 잘 보여줘서 너무 멋졌어. 노래도 정말 갈수록 너무 잘하고ㅠㅠ 정말 너무 좋아. 우리나라보다 PC함이 더 정착되어있다고 해야하나, 그래도 더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있다고 하면 될까, 아주 예전에 창작된 극이 아닌 2016년 오리지널이 초연한 극이니 라센 기준으로 최신에 가까운 공연인데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남자 청소년의 이야기와 성장은 꼼꼼하고 상냥하게 그려지고 극 안에서 아픔을 겪고 성장을 이룬다는 점은 같지만 그 남자 주인공의 트로피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인물의 가족의 상실과 연인의 배신 등의 고통의 극복은 역시 축소되어서 다루어지는 구나. 아무리 주인공이 아니라고 해도 슬프네라는 생각이 들게 된 지점이 있는 캐릭터인 조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어진 적은 이야기적 공간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이라는 인물의 근사함을 한껏 보여준 배우의 멋짐에 감탄하지 않는 것도 아쉬운 거니까. 서영조이가 진짜 너무 잘해서 좋았다고 다시 한 번 쓴다. 서영조이가 너무 잘하고 정말 좋았어ㅠㅠ
 
처음 만난 배우 중에 지섭코너는 처음에 극 초반 학교에서의 대사톤 같은 게 어 연기 좀.. 아쉽다 이랬는데 죽고 난 이후에 에반의 환상 속 코너로서 보여지는 순간들이 느낌이 굉장히 좋아서 중간 인상이 첫 느낌과 다르게 좋았고 머피 가에서 홀로 서 있는 에반을 바라보며 그림자 속으로 사라질 때인 마지막까지도 느낌이 좋았다. 좋은 의미로 넥투노 게이브 생각이 나게 했는데 그 환상 속 환상의 느낌, 누군가에게는 축복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악몽이기도 한 그 오싹함이 배우 본연의 분위기에서도 나고, 본인이 또 그걸 잘 이용하시더라. 그리고 서영조이랑 예쁘면서 반항적인 분위기가 닮아서 그것도 좋았다. 그렇게 가족 배역인 배우들끼리 이미지가 겹치는 부분이 극의 많은 걸 해결해주는 게 있어서 좋은 캐스팅이네 했다.

용휘재러드와 희진알라나는 에반과 함께 교내에 있을 법한 아웃사이더, 우리말로 은따, 혹은 찐따이기도 한 인기 없고 소외된 아이들의 전형을 정말 잘 연기해서 에반과 함께 각기 다른 방식으로 친구들 사이에 섞이지도 못 하고 그렇지만 또 인기없는 애들끼리 친구한다는 얘기도 듣고 싶지 않아서 에반이 말을 걸어오면 그 관심에 꼬박꼬박 반응하면서도 그 애를 밀어내다가 자기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코너 프로젝트를 통해 모자랐던 관심에 다른 식으로 매달리는 걸 선명하게 잘 보여주셨다.

초반에 재러드가 자꾸 성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아니 근데 중학생도 아니고 고등학교 3학년 쯤 되는 애도 저렇게 성적인 얘기에 집착하나 싶기도 했는데 재러드가 반복적으로 내뱉는 자위라는 단어가 신체적 자위 말고 에반이 머피 가족에게 행하는 행위들이 에반의 심리적 자위 행위라는 걸 짚어주는 거라는 게 어느 순간 깨달아질 만큼 그게 불쾌하게 느껴지도록 잘 전달하고 있는 거구나 싶게 인물의 역할을 명확하게 잘 수행하셔서 보는 동안 괴롭긴 했지만 성규에반과 마찬가지로 잘 와닿아서 괴로웠고 그래서 좋았음.

희진알라나는 첫 등장에 방학 때 얼마나 많은 대단하고 멋진 일들을 했는 지 자랑하면서 등장하는데 거기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마저 애써 무시하고 과장되게 밝게 행동하는 모습이 작년에 많이 사랑했던 극인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의 루치우스를 떠올리게 했는데, 사랑과 관심이 필요해서 모범생으로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 하다가 코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받고 에반이 머피 가족에게 받는 관심에 매몰된다면, 알라나는 세상의 관심에 고무되어 코너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자기 자신을 위해 달려나가는 걸 외부적으로 그림을 만들어가는 형태를 통해 밖으로 외로움이 향하는 아이를 보여줘서 다양한 형태의 청소년의 그릇된 관심에 대한 갈망을 잘 보여줘서 좋더라. 코너 프로젝트에 대한  알라나의 열심이 야심찬 스펙 쌓기를 위한 것보다 발버둥쳐도 얻지 못 하던 관심을 얻어낼 수 있는 구원책이라는 걸 그래서 에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으면서도 정말 코너를 위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주객전도의 행동들을 통해 자신의 자존감을 채워가는 모자람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미숙한 존재임을 선명하게 연기하는데, 나란 인간이 바로 그 관심을 받고 싶어서 착하게 굴던 쪽의 사람이라 알라나도 에반만큼이나 나빴는데 희진알라나를 보는데 이쪽에는 자기혐오적 측면으로 반감이 크게 들면서도 또 공감도 갔다. 참 인간이란 이 모양이지... 성숙하게 세상을 큰 시야로 봐야한다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같은 잘못은 수용하고 싶은 나의 한계를 깨닫게 해주셨어.

아 근데... 알라나는 설정 상 흑인인 것 같은데 (스크린에 띄워주는 메신저 상 아바타가 흑인이기도 했고) 인종을 다양하게 설정하는 거 자체야 그럴 수 있지 싶고, 미국 배경의 학교 이야기에서 안경 쓴 모범생 아웃사이더 여성 인물이 동양인이 아닌 건 또 신기하다 싶었는데 그런 인종적인 부분을 굳이 배우의 피부색을 어둡게 칠한 분장을 통해 나타내는게 맞는 표현법인가에 대해서 누가 나에게 답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20년의 베어 때 타냐 배우를 톤다운 메이크업 했던 걸 봤을 때 이게 맞나? 백인 역할 더 밝게 화장 안 하잖아 싶던 거와 같은 찝찝함인데 그거에 대한 답을 어디에 묻고 어디에 받을 수 있는 지 모르겠어서 좀.. 심란하네.

연출가 얘기 조금. 초기작 중에 초기작인 여신님이 보고 계셔 초연을 보았고 그 뒤 작품들도 전부는 아니어도 어쩌다보니 꽤 꾸준히 챙겨보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박소영 연출의 스타일이 어떻다는 것에 대해서 머리 속으로 정의를 내리지 못 하고 있는데, 오늘 디어 에반 핸슨을 보는데 국내 연출이 누군지 모르고 보고 있었음에도 어- 소영연출이 국내 연출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맞더라.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그런 걸 느꼈는 지는 정말 불현듯 깨달은 거라 모르겠는데, 중소극장에서 대극장 연출 다 잘하고 있고, 또 원래 중극장 규모의 극을 대극장에 맞추어 올리는데도 딱히 유격이 맞지 않는다는 감상없이 극 자체도, 극의 흐름도 항상 유기적으로 만들어내면서 연출가의 자아가 지나치게 극에서 표출되지 않는, 부대끼지 않는 연출을 어느 극이든 어느 규모든 하고 있구나. 2013년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에서 처음 만났던 한 예쁜 극의 연출가가 정말 굉장한 사람이 되었구나.라는 것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소영연출의 행보가 앞으로도 기대된다.


더보기

 


(+) 트윗 감상

[인터미션]

여왕 다이애나 좀 달라고 몇 년 째 염불 외우고 있었는데 충무에서 넥투노 반전 버전에서 여왕 댄을 하고 계셨네....

이 극이 재미없지 않음.. 음악이 미쳤음. 이건 절대 연강홀 사이즈다 싶지만 무대도 너무 좋고  연출도 너무 좋음. 그림자 속을 걷던 코너가 잊혀지지 않고 싶다며 그림자 밖으로 걸어나오는 순간 연출은 정말 특히나 소름이었고 모두가 등 돌렸던 첫 넘버와 1막 마지막의 모두가 에반을 향해 돌아섰고 환한 빛이 쏟아지며 에반의 꿈이 이루어진 순간은 그냥 개인적인 취향으로 너무 그림 자체가 아름다움. 하 그런데 정말 나는 이런 이야기가 너무 너무 힘들거든. 바로 그런 지점을 비판하기 위하여 하는 이야기라고 해도 사람들은 정말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해서 무언가를 그리는 게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위하여, 무언가를 위해 슬퍼할 줄 아는 자신을 즐기고 싶어서 자신을 사랑해서 타인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척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위해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그 거짓에 모두가 잡아먹히는 이야기. 사실 진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너무 원하던 그림이라 정말 진짜를 파고들기보다는 이야기를 듣는 이도 그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들도 그게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서 정말 진짜 그 존재의 사악함마저 알고 있기에 차마 그리워도 못 하던 사람마저 무너지는 그런 순간이, 그래서 치유받은 그들이 정말 진실을 목도하게 될 때를 예상하면 숨이 막히도록 괴로운 부분이 에반이 너무나 꿈꾸던 순간이라 찬란하게 빛나는 그게 너무 아름답고 끔찍해서 눈물이 났다..

굳이 억지로 국내화 하려는 게 아니라 이거 아름다운 버전의 한강 의대생 실족사 사건이잖아.. 사람들이 그저 보고 싶은 대로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덧씌우면서 그들이 원하는 애틋함을 위해 진짜 그 사람을 지워버리는 거. 이 극 속에서 코너가 지워졌다는 사실 자체는 슬프지 않은데 세상을 가득 채우는 자위를 위한 추모들이 얼마나 추악한 지를 그리면서 끝내는 게 맞다면 보는 동안 너무 힘들고 괴로웠어도 그래도 좋은 극이었다고 나올 것 같은데 이게 만약 그럼에도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았던 외로운 소년의 성장 식으로 끝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우리를 망쳐버리고 너는 떠나버렸다고 차마 울지도 못 했던 래리의 무너짐이 절박해서... 그걸 책임지는 이야기면 좋겠는데 이 미국적임이 어떻게 흘러갈 지 두렵네.

[공연 종료 후]

슬프게도.. 제발 이런 쪽이 아니길 바랐던 바로 그 결말. 1막을 보면서 좋아하는 책인 트레버와, 똑같이 거짓 위에 쌓았던 갈망을 담은 이야기였던 팬레터가 교차되어 떠올랐었는데 2막을 보면서 내가 뮤지컬 팬레터 속 정세훈을 용서한 건 세훈이가 아직 어려서가 아니라, 그 아이의 거짓은 해진과 함께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네. 이미 거짓임을 알지만 그 거짓을 기꺼이 끌어안기로 동조한 존재와 함께 만들어낸 환상과 나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으로 사실 그 사람에게 정말 힘이 되었대는.. 많이 다르네. 극이 이야기하고 싶은 건 에반의 불안의 근원이 사실 하이디마저 떠날까봐 자신이 사랑받지 못 해서 홀로 남겨질까봐였다는 거고, 자기까지 그 안에 들어가 완벽한 4인 가족의 그림 속에 속해 두렵지 않길 바랐던 에반에게 그가 그렸던 환상 속의 가족과 연인이 아니라 비록 홀로 아이를 키우느라 늘 바쁘고 자주 곁에 있어줄 수 없어도 '디어 에반 핸슨' 편지 속 에반의 절실한 외로움을 알아줄 진짜 가족인 엄마가 항상 곁에 있었고 그 사람은 평생 그 아이의 곁을 지키고 사랑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마침내 아무도 진짜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을 떨치고 에반이 자기 스스로를 그대로 내보이게 되었다는 걸 보여주면서 완전한 정상 가족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있을 수 있다, 꼭 그게 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도 조이로 살짝 길 열어두고.. 그리고 그러니까 나를 그대로 내보이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나 자신으로 살아가면 언젠가는 나도 나를 진심으로 아끼며 나의 나무를 키워낼 수 있을 겁니다...라는 이야기인데 그 과정 중에서 에반이 사실 거짓말을 꾸며낸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코너 가족이 그 거짓 위로가 그들 부부에게는 필요하기도 했기에 넘어갔다고 끝내는 건 선 넘는 거지. 그냥 그들이 보살이구나 거짓말이었어도 그런 가짜 코너가 세상에 남겨지는 게 그들에게는 견딜 수 있는 상징이었대로 끝나는 건 진짜 아니지. 주인공인 에반의 아름다운 성장의 결말을 위해 그 아이의 지독한 기만을 그 기만으로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모두 겪은 머피 가족의 상황을 대충 넘겨버리는 걸로 끝내는 거 솔직히 많이 끔찍하다. 팬레터의 정세훈은 해진의 용서를 얻기 전까지 3연까지는 글과 영혼을 잃었고 4연에서는 안온한 삶도 버렸었는데 심지어 그럼에도 팬레터 정세훈에게 지나치게 상냥한 세계관이라 생각했는데 이 극에서는 생략되어 있는 시간 속에서 머피 가족은 여유있는 가정이면서 코너를 제대로 재활시키지 않았다는 비난과 직접적으로 생활에 끼치는 테러도 다 끌어안고 그저 견디고 에반은 무려 '이 모든 게 잠잠해질 때까지 너의 곁에 있을게'라는 헌신적인 보호자의 가호 아래 이제는 말을 더듬지 않게.. 불안 장애의 치료까지 이루어내고 가진 줄도 모르고 있던 행복 속에서 행복하네. 1막에는 이건 넥투노 댄 성별 반전인가 싶었던 하이디가 사실 같이 미쳐주기 까지는 하지 않고 곁을 절대 떠나지 않는 헨리였다는 걸로 하이디 핸슨은 정말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멋진 캐릭터구나 싶은 것과 별개로 그런 하이디의 가호 아래 사실 가호가 필요도 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평온을 찾았을 에반을 나는 머피 가족이 아니라 용서가 안 되어서.. 극의 메시지에는 박수를 쳐줄 수가 없었다.

코너가 죽은 진짜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 에반처럼 역시 외로운 존재였을 '진짜 코너'를 보듬지 못 했음에 대한 속죄로 극 속에서 머피 가족이 그들에게 향한 비난을 감내하고 그것으로도 나름의 치유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고 초월해석을 하기에는 내가 굉장히 인과응보에 집착하는 종류의 사람이라 그걸 굳이 하고 싶지가 않다. 그럼 에반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그렸어야 하냐고 할 수도 있는데, 하이디가 에반의 편지 속 에반의 외로움에 대한 이해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의 잘못을 작게라도 짚어주고 같이 속죄의 진창을 걸어가겠다 하는 게 내 기준 진짜 보호라서 이 극이 음악, 연출, 세트 모든 면에서 정말 잘 만들었다 싶고 나는 정말 나 너무 취향 아닌 결말이어도 당연히 감동을 받을 분들도 많을 수작이다 싶긴한데 나에게 와닿은 극은 현재의 나로서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평생이라는 단서를 달지 않는 건.. 또 어떤 세월 뒤의 내 마음의 이해의 폭과 종류는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게 지금은 아님.

그렇다고 극을 본 것을 후회하느냐 별로였느냐하면 그건 아니고, 보길 잘했다 싶긴 하다. 일단 처음 보는 뮤지컬이라는 거 자체가 좋기도 했고 이건 정말 지독하게 연강홀 꺼인데 싶긴 해도 전에 연극 한밤개 보면서 느낀 만큼의 극장 사이즈에 걸맞지 않아 빈다..싶은 정도의 위화감이 없이 궁금했던 극을 만나서 내가 덜 본 거 아닌가 싶은 찝찝함도 없고, 결말이 아마 내가 바라는 식이었다면 1막이 너무 괴로워요 나 누가 거짓 속에서 행복해하는 거 너무 힘듭니다 싶어도 끝에 공연 소개에 있는 힐링도 이루었겠지 싶게 어느 정도까지는 이야기도 좋았음. 그리고 궁금했거나 좋아하는 배우들의 멋짐도 충분히 볼 수 있었고 ㅇㅇ 김선영 윤석원은 이제 다음 시즌에는 정말 다이애나랑 댄 좀 해주시면 좋겠는데요.... 같은 거. 나는 홍서영을 사랑합니다 같은ㅇㅇ

성규에반... 내가 그를 뮤에서 본 게 킹키 찰리였다는 것과 이어서 생각해보면 정말 이게 뭔 소린가 싶을텐데 그는 너무 동정이 가지 않게 극본 그대로 인물을 구현해서 잘하는데, 잘해서 보기가 너무 괴로움ㅠ 킹키부츠 찰리도 정말 미숙한 존재이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고 공장 식구들을 위한 거라 해도 진짜 진짜 각성과 반성 전까지 결국 자기 아집과 이기심에 주변 사람을 제대로 돌보지 못  하는 인물인 걸 굉장히 적나라하게 보여줬었는데 이 극에서도 에반이 내면의 이야기마저 '코너'를 불러내서 속삭일 정도로 깊은 자기 혐오를 가졌고 스스로에게도 진실할 수 없기에 머피 가족과 세상을 속이는 게 진짜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자기합리화 하는 걸 정말 가감없이 보여줘서... 배우로서 굉장히 좋은 태도이고 자기 인물 너무 사랑해서 오히려 필요 이상의 동정거리 얹는 것보다 훨씬 좋아하는데 그래서 보는 동안 너무 힘이 들었다ㅠ 언젠가는 좀 호감가는 인물을 연기하는 걸 보고 싶어ㅠ 잘하는데 자꾸 보고 있으면 힘든 역으로만 보게 되어서 만들어낸 퀄리티 말고 심정적 괴로움을 기억으로 안게 되어서 미안하네ㅠㅠ 하 레드북 할 때 봤어야 하는데.. 이런 마음ㅠ

머피 가족.. 코너까지 포함해서 문제있는 중산층 미국 4인 가정이라서 그런가, 보면서 넥투노 생각이 계속 났다. 만약에 게이브가 코너같은 존재였다면 래리와 신시아는 다이애나와 댄의 성별 반전 같은 방식으로 코너를 대하며 집안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같은. 코너를 지긋지긋해 하면서 그럼에도 코너가 에반을 밀쳤을 때 다가가서 코너 대신 사과하던 조이의 모습에서 특히나 다이애나의 불안함을 본 헨리에게 쏟아내던 나탈리가 떠올랐다. 자기 방문을 두드리며 그 애를 괴롭히던 코너임에도 그 애를 애도하지 않겠다는 말로 사실 코너를 버리지 못 했음을 보이던 모습까지.. 하필 코너가 에반의 또다른 자아로서 등장해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 거 같아. 그렇게 생각해보면 엄마-아빠-첫째 아들-둘째 딸 로 그려지는 부유층 4인 가족에 대한 미국의 환상이란 대체 어느 정도의 원형인 건가 싶기도 하다. 내가 미국인이 아닐 바에야 절대 알 수 없을 정말 공고한 프레임이겠지.
 
초기작 중에 초기작인 여신님이 보고 계셔 초연을 보았고 그 뒤 작품들도 전부는 아니어도 어쩌다보니 꽤 꾸준히 챙겨보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박소영 연출의 스타일이 어떻다는 것에 대해서 머리 속으로 정의를 내리지 못 하고 있는데, 오늘 디어 에반 핸슨을 보는데 국내 연출이 누군지 모르고 보고 있었음에도 어- 소영연출이 국내 연출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맞더라.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그런 걸 느꼈는 지는 정말 불현듯 깨달음이라 모르겠는데, 중소극장에서 대극장, 또 원래 중극장 규모의 극을 대극장에 맞추어 올리는데도 딱히 유격이 맞지 않는다는 감상없이 극 자체도, 극의 흐름도 항상 유기적이면서 연출가의 자아가 지나치게 극에서 표출되지 않는, 부대끼지 않는 연출을 어느 극이든 어느 규모든 하고 있구나. 2013년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에서 처음 만났던 한 예쁜 극의 연출가가 정말 굉장한 사람이 되었구나.라는 것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처음 만난 배우 중에 지섭코너는 처음에 극 초반 학교에서의 대사톤 같은 게 어 연기 좀.. 아쉽다 이랬는데 죽고 난 이후에 에반의 환상 속 코너로서 보여지는 순간들이 느낌이 굉장히 좋아서 중간 인상이 첫 느낌과 다르게 좋았고 머피 가에서 홀로 서 있는 에반을 바라보며 그림자 속으로 사라질 때인 마지막까지도 느낌이 좋았다. 좋은 의미로 넥투노 게이브 생각이 나게 했는데 그 환상 속 환상의 느낌, 누군가에게는 축복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악몽이기도 한 그 오싹함이 배우 본연의 분위기에서도 나고, 본인이 또 그걸 잘 이용하시더라. 그리고 서영조이랑 예쁘면서 반항적인 분위기가 닮아서 그것도 좋았다. 그렇게 가족 배역인 배우들끼리 이미지가 겹치는 부분이 극의 많은 걸 해결해주는 게 있어서 좋은 캐스팅이네 했다.

서영조이..ㅠㅠ 서영배우를 데뷔작인 도리안 그레이에서 만난 뒤에 필모를 잘 챙겨보기 보다는 찬찬히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만나고 있는데 데뷔 때부터도 그렇고 만날 때마다 점점 더 늘어있어서 어쩜 이래?하고 감격하게 된다ㅠ 조이가 코너에게 가지는 애증의 감정과 그걸 극복해가는 과정이 에반의 배신에 대한 대처와 반응, 그리고 극복에까지 옮겨가는 걸, 에반의 진실 고백 이후부터 마지막 재회와 정리 사이의 얄팍한 이야기적 공간에서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게 잘 보여줘서 너무 멋지다하고 감격했다ㅠㅠ 노래도 정말 갈수록 너무 잘하고ㅠㅠ 정말 너무 좋았어ㅠㅠ 우리나라보다 PC함이 더 정착되어있다고 해야하나, 그래도 더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있다고 하면 될까, 아주 예전에 창작된 극이 아닌 2016년 오리지널이 초연한 라센 들어오는 극 기준으로 최신에 가까운 공연인데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남자 청소년의 이야기와 성장은 꼼꼼하고 상냥하게 그려지고 극 안에서 아픔을 겪고 성장을 이룬다는 점은 같지만 그 남자 주인공의 트로피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인물의 가족의 상실과 연인의 배신 등의 고통의 극복은 역시 축소되어서 다루어지는 구나. 아무리 주인공이 아니라고 해도 슬프네라는 생각이 들게 된 지점이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어진 적은 이야기적 공간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이라는 인물의 근사함을 한껏 보여준 배우의 멋짐에 감탄하지 않는 것도 아쉬운 거니까. 서영조이가 진짜 너무 잘해서 좋았다고 다시 한 번 쓴다. 서영조이가 너무 잘하고 정말 좋았어ㅠㅠ

용휘재러드와 희진알라나는 에반과 함께 교내에 있을 법한 아웃사이더, 우리말로 은따, 혹은 찐따이기도 한 인기 없고 소외된 아이들의 전형을 정말 잘 연기해서 에반과 함께 각기 다른 방식으로 친구들 사이에 섞이지도 못 하고 그렇지만 또 인기없는 애들끼리 친구한다는 얘기도 듣고 싶지 않아서 에반이 말을 걸어오면 그 관심에 꼬박꼬박 반응하면서도 그 애를 밀어내다가 자기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코너 프로젝트를 통해 모자랐던 관심에 다른 식으로 매달리는 걸 선명하게 잘 보여주셔서 좋았다. 초반에 재러드가 자꾸 성적인 이야기를 할 때 아니 근데 중학생도 아니고 고등학교 3학년 쯤 되는 애도 저렇게 성적인 얘기에 집착하나 싶기도 했는데 재러드가 반복적으로 내뱉는 자위라는 단어가 신체적 자위 말고 에반이 머피 가족에게 행하는 행위들이 에반의 심리적 자위 행위라는 걸 짚어주는 거라는 게 어느 순간 깨달아질만큼 그게 불쾌하게 느껴지도록 잘 전달하고 있는 거구나 싶게 인물의 역할을 명확하게 잘 수행하셔서 보는 동안 괴롭긴 했지만 성규에반과 마찬가지로 잘 와닿아서 괴로웠고 그래서 좋았다.

희진알라나는 첫 등장에 방학 때 얼마나 많은 대단하고 멋진 일들을 했는지 자랑하면서 등장하는데 거기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마저 애써 무시하고 과장되게 밝게 행동하는 모습이 작년에 많이 사랑했던 극인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의 루치우스를 떠올리게 했는데, 사랑과 관심이 필요해서 모범생으로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 하다가 코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받고 에반이 머피 가족에게 받는 관심에 매몰된다면, 알라나는 세상의 관심에 고무되어 코너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자기 자신을 위해 달려나가는 걸 외부적으로 그림을 만들어가는 형태를 통해 밖으로 외로움이 향하는 아이를 보여줘서 다양한 형태의 청소년의 그릇된 관심에 대한 갈망을 잘 보여줘서 좋더라. 코너 프로젝트에 대한  알라나의 열심이 야심찬 스펙 쌓기를 위한 것보다 발버둥쳐도 얻지 못 하던 관심을 얻어낼 수 있는 구원책이라는 걸 그래서 에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으면서도 정말 코너를 위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주객전도의 행동들을 통해 자신의 자존감을 채워가는 모자람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미숙한 존재임을 선명하게 그려내셨는데, 나란 인간이 바로 그 관심을 받고 싶어서 착하게 굴던 쪽의 사람이라 알라나도 에반만큼이나 나빴는데 희진알라나를 보는데 이쪽에는 자기혐오적 측면으로 반감이 크게 들면서도 또 공감도 갔다. 참 인간이란 이 모양이지... 성숙하게 세상을 큰 시야로 봐야한다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같은 잘못은 수용하고 싶은 나의 한계를 깨닫게 해주셨어.

아 근데... 알라나는 설정 상 흑인인 것 같은데 (스크린의 아바타가 흑인이기도 했고) 인종을 다양하게 설정하는 거 자체야 그럴 수 있지 싶고, 미국 배경의 학교 이야기에서 안경 쓴 모범생 아웃사이더 여성 인물이 동양인이 아닌 건 또 신기하다 싶었는데 그런 인종적인 부분을 굳이 배우의 피부색을 어둡게 칠한 분장을 통해 나타내는게 맞는 표현법인가에 대해서 누가 나에게 답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두 시즌 베어는 보지 않아서 모르겠고 2020년의 베어 때 타냐 배우를 톤다운 메이크업 했던 걸 봤을 때 이게 맞나? 백인 역할 더 밝게 화장 안 하잖아 싶던 거와 같은 찝찝함인데 그거에 대한 답을 어디에 묻고 어디에 받을 수 있는 지 모르겠어서 좀.. 심란하다.

에반에 대해서 머피 가족이 그냥 묻고 지나갔으니 당연히 재러드와 알라나도 그냥 그렇게 대충 지나가게 되는 거긴 한데.... 이야기 진행 자체가 그렇게 머피 가족에게 에반이 고백하는 게 위기이고, 엄마에게 힐링받는 게 절정이라지만 결말을 그렇게 뚝 내버려서 에반 말고 정말 모든 인물이 알아서 잘 살겠거니 하게 되는 거, 그 앞의 이야기들은 나름 촘촘하게 잘 맺어져 있는 것에 비하여 정말 과한 급 마무리이고, 가족의  이해와 사랑을 믿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세상을 솔직하게 살아가면 됩니다하고 끝내고 마는 거 좀 작가님 무책임하시네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극을 보는 동안 펀홈도 생각났는데 펀홈도 마지막 결말에 그래서 아버지와 화해를 한 건데 만 건데 용서를 한 건데 만 건데 이거 그냥 비행기 태우고 끝이잖아 할 수도 있지만, 펀홈은 적어도 시작 자체가 어린 시절부터 20대를 지나 40대까지 삶을 살아낸 앨리슨이라는 생존자의 일대기라서 마지막에 개운하게 걸어나가는 앨리슨이 그 자체로 잘 살아내고 이겨냈습니다가 된다고 생각하고, 다른 인물들, 엄마와 형제들의 이야기까지는 뒷 이야기를 풀어주지 않아도 된다 싶다만, 디어 에반 핸슨은 다양한 사춘기 청소년의 고통을 중후반부까지도 끌고 갔는데 오로지 에반만으로 이야기를 정리해버린 게, 조이와 알라나와 재러드의 가정이 모두 하이디 핸슨 같은 보호자를 갖고 있는 게 아니고 그 아이들 모두 다 다르잖아요 하고 딴지를 걸게 만든다. 극 자체에 인물의  이름이 들어가는 원톱 뮤지컬이니 한 명이 마무리되면 되는 거나 해야할 수도  있는데.. 어째 그게 잘 안 되네ㅠ 재러드와 알라나에 대한 나의 태도 차이도 그렇고.. 이 극의 주인공이 남자 고등학생이 아니라 여자 고등학생이면 지금 내가 훨씬 더 긍정적으로 봤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지금의 나는.. 남자 고등학생의 성장에 나와 세상의 대표성을 주고 싶지 않아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