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

정해나 - 요나단의 목소리

by All's 2022. 12. 13.


이런 운이 사라진 지 좀 된 사람이라 싸인본이 올 거라고 생각 안 했는데 앗 운이 남아있었네 싶었는데 갑자기 그냥 새벽에 질렀고 당일 배송으로 와서 읽었는데 연재하던 시절에 완결나면 몰아서 봐야지 하다가 그냥 애매한 게으름에 이제야 보게 된 게 아쉬운데 또 기쁘다

나는 아주 어릴 때 믿음이랄 게 없이 교회를 다니다가 그냥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부터 교회를 안 가게 된 사람이라 선우가 바라보는 세상을, 살았던 세상을, 살고 있는 세상을 아마 절대 마음 깊이 알 수는 없겠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게 살아온 세상이 나를 끌어안지 않는다는 게 나의 일부를, 혹은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고독한 절망일 지 모르면서도 알 것 같아서 가슴이 조였다. 아마 선우가 겪은 세상과는 다르지만 내가 살면서 나는 그럼에도 사랑한다 여겼던 세상이 나라는 존재를 절대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다 여겨서 절망한 바로 그 순간의 절망을 내가 선우에게 투영한 거겠지. 어릴 때 그냥 의미도 모르면서 마냥 느낌이 좋다고 데미안을 읽으면서 알을 깨야 한다라는 구절이 왜 그렇게 유명한 걸까 생각하다가 어 순간부터 알을 깨고 나가는 성장의 고통에 대해서 조금은 머리로도 이해하고 마음으로도 느끼게 되었다 여긴 순간들이 있었다.

믿음이 없어서 교회에 안 나갔으면서 스무살 때 들어간 대학이 미션스쿨이라서 1학년 필수 교양으로 들어야하는 기독교 수업에서 과제로 읽은 순교에 대한 소설에서 만난 신은 인간에게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는 거라는 문장이 아직까지도 나를 붙들고 대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과 시련이 뭔데 이겨내지 못 하면 그럼 그 존재는 뭐가 되는 건데 하고 화를 내게 하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데미안의 알을 깨야한다는 말의 의미가 조금씩 와닿은 것처럼 어쩌면 내가 이겨낼 수 있는 시련과 고통에 대해 알게 되는 날도, 온전히는 아니어도 한 조각이라도 이해하게 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부조리들과 영원히 2등 시민인 여성으로서 남성 중심으로 꾸려진 사회가 절대 나를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이 이야기 속 선우의 치열한 버팀에 투영하는 것 밖에 못 했지만, 언젠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혹은 꼭 그건 아니더라도 기독교를 믿는 이들이 자신들에게 숨과 같이 당연한 세계가 그들 자신을 부정할 때, 혹은 옳다 믿는 가치나 당연하다 믿는 것들을 부정할 때 겪는 혼란과 고통을 그냥 그 마음으로 작은 조각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의 곁을 내어줘서 고마웠다.

이야기는 오히려 그 세상에 조금도 닿아있지 않지만 담담하게 착하고 순수하게 선량한 의영이의 시선을 많이 보여줬고, 교인으로서 이렇게 힘든 이들의 마음을 반드시 알아달라하지 않고 이런 고민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진솔하게 보여줘서 살아온 세상과 갈등을 겪게 되고 그렇게 살아낸 이의 마음을 따라갔기에, 아주 깊은 한 인간의 고민이 오히려 보편적인 공감과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정말 이야기라는 게 줄 수 있는 순수한 공감을 줬는데 그게 너무 고마워서 나는 언젠가는 조금은 선우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진짜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 근처에 교회가 있고 무슨 교육관(?)이라는 것도 있는데 거기에 현수막으로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다 느낌의 문장이 쓰여있는 걸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기만 했고 그 문장을 거는 걸 당연히 여기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문장이 자신을 부정하는 이들의 아픔을, 그리고 그런 부정을 하는 세상이 이해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 세상이 그들의 세상인 이들의 고통도 떠올리지 않았다는 게 부끄러워졌다. 내가 겪은 고통을 투영해서 위로받을 수 있었던 이 이야기를 만난 고마움을, 이 이야기 속에 있으나 나는 모르는 슬픔을 알아가는데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걸로 보답해보고 싶다

뭉클한 이야기를 만난 감동이 너무 커서 이해와 고통 얘기를 계속 하긴 했는데 담담하게 사랑스럽고 재밌어서 보면서 속으로 계속 은은하게 웃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ㅎㅎ 선우 노래 짱팬 의영이같은 순간은 정말 모두 너무 귀여워서ㅎㅎ 그리고 의영이가 선우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을 때의 기억을 말하며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서 내 상상이나 꿈이 아닐까 싶다고 했을 때 같은 이야기를 할 때 내가 너무 사랑해서 그 순간을 왜곡해서 기억하는 건 아닐까 싶었던 꿈결같던 어느 덕질의 순간들이 떠오를 때는 그냥 울컥 해서, 원래 페이지를 훅훅 넘기며 읽는데 괜히 읽고 또 읽었다

1권 139p와 2권 296p가 같은 컷이라는 확인하고 마음이 너무 먹먹해졌다. 다윗이 없는 시간을 살아내며 하나님에게 나를 버티게 하라며 버텨가던 선우의 시간이었다는 게..

이런 순간들이 만화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장면으로 만나게 되었기에 더 먹먹해지는. 난 소설도 영화도 드라마도 연극도 뮤지컬도 다 좋아하지만 이게 그렇게 같은 순간이었구나 라는 걸 단 한 컷으로 보여줌에도 다가올 수 있는 건 이게 만화였기 때문이야.

'* > 4'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스통 르루 - 오페라의 유령  (0) 2022.12.14
타라 웨스트오버 - 배움의 발견  (0) 2022.12.14
정세랑 - 보건교사 안은영  (0) 2022.12.14
최은영 - 밝은 밤  (0) 2022.12.14
2016.08.02  (0) 2016.08.02
정승환 - 너였다면  (0) 2016.06.17
2016.03.29  (1) 2016.03.30
2016.03.13  (0) 2016.03.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