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트 - 아이비 이상이 지현준 김국희 원종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섬세하게 열심히 노력한 게 느껴지는 작품이라 마음이 따뜻했다. 결국 나 자신,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여자가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임을 말하고 인정받는 것이 어렵지만 소중하고 당연함을 말해줬다.
펜을 페니스로, 잉크를 정액의 은유로 말하며 문학이 남성의 전유물인 듯 대하는 세상에 대한 반기로 여성 작가들이 작가로서 문체적으로 걸었던 길에 대해 수업을 듣던 때가 재판장에서의 안나의 넘버에서 울렁였다. 티없는 세상의 얼룩이 되겠다는 넘버의 가사 그 자체가 감동이었고 투쟁이리라.
공연을 보기 전에 아무리 열심히 만들었대도 남성 작가가 써서, 개인적으로 성해방을 담론으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여자들을 추행하고 자유로운 성관념을 강요하는 것으로 여자들을 되레 착취하는 남성들에 대한 혐오감이 커서 보기도 전에 작품 자체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던 게 사실 있었는데 보는 내내 부끄러웠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하며 그것을 원치않는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매도하여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부분까지 섬세하게 다룬 작품을 보기도 전에 그런 단점이 있을 거라고 여긴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존슨이 안나에게 달려들 때 그의 성기를 터트리고 나와버리는 부분 같은 게 현실적으로 남녀 힘의 차이를 고려할 때 비현실적이기도 한 게 맞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리얼리즘을 보여야 할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안나처럼 차버리고 나와야지 여자인 니가 약해서 당하니 어쩌니 하는 사람들이 혹여나 있으면 평론 핑계로 그딴 추행이나 하려는 것들이 문제지라고 하는 게 맞는 것을. 자신이 자신일 수 있게 노력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당연한 일인지, 세상이 그걸 인정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세상이 당연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성실하게 착한 좋은 극이었고 극 안의 상황 등을 낭만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이 극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오늘 내가 반성과 행복을 얻은 것처럼 많은 분들이 이 극을 통해 위로와 행복을 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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