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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80113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낮공

by All's 2020. 6. 20.

 

 

캐스트 - 심현서 최명경 김영주 박정자 백두산 한우종 김요나

 

*트위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뮤지컬이기에 아름답고 가장 압도적으로 느껴졌던 장면은 드림 발레. 영화를 이미 보았지만 뮤는 보지 않은 상황에서 가능한 한 극에 대한 스포를 밟지 않기 위해 관련 영상은 단 하나도 보지 않았었는데 그렇게 만나게 된 드림발레의 아름다움만으로도 가치있는 관극이라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면서 생각했다. 나비처럼 사뿐히 오른 뒤 바람처럼 하늘을 가르며 춤을 추는 그 꿈만 같던 순간. 아름답다는 말이 모자란 것 같지만 그저 아름다웠다.

영화를 이미 봤고,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점이 관극에 나쁜 영향을 준 사람이었지만, 영화가 아니라 공연이기에 특별한 순간을 만났기 때문에 반대 순서로 봤다면 더 좋았겠다 싶었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관극도 의미있었다. 아무래도 영화랑 비교하면서 후기를 풀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공연이라는 매체 특성 중 모든 것이 무대 위에 펼쳐져있어서 다 한 번에 보인다는 점이 파업 중인 탄광촌의 잔혹함과 꿈이 빛나기 시작하는 한 반짝이는 아이의 삶의 대비를 더 극렬하게 보여줘서 예상치 못한 차가움에 많이 놀랐던 관극이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이기에 반짝이는 순간의 환상적인 면과 퍼포먼스가 오히려 더 극적인데 인물들의 감정을 투영하는 부분은 클로즈업으로 찍어주는 영화에 비해 드라이해서 환희는 약하고 절망은 그대로인데다가 특히나 희망을 말하는 듯한 가사와 달리 빛이 서서히 어둠 속에 점멸하며 밝은 빛의 세계에는 빌리 혼자 남아서 그 아이의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데... 사랑스러운 커튼콜에 박수치면서도 그 현실적이면서 냉담한 연출의 여운에 계속 마음이 아팠다. 영화에는 아마 없었던 게 맞을.. 모든 사람들이 댄서가 될 순 없잖아요라는 토니의 말 그 자체였던 끝이었고, 드림발레에서 춤과 꿈에 대한 빌리라는 아이의 순수하고 온전한 열망이자 사랑, 그리고 그 사랑만큼 빛나는 그 아이의 반짝이는 아름다움이 누구에게나 올 수 없는 특별함이고, 그렇기에 잔혹한 현실과 대비되고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빛나는 건 그 주위를 어둠이 감싸고 있다는 게 가슴을 아프게 눌렀다. 빌리가 윌킨슨 선생님의 집에 놀러간 장면으로 중산층 집안의 풍경 속 풍요로움 속에서 가족관계는 갈갈이 찢긴 공허함을 전하며 윌킨슨 선생님-발레-중산층 이상, 탄광-광부-노동자 계급의 대비를 보여줬던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계급 차이와 갈등을 그려냈고, 그 부분이 사실 취향에 맞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만들어낸 빛과 그림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운의 깊이가 이 시대 최고의 뮤지컬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당당히 걸 수 있게 만들었구나 생각했다. 하나의 공연 안에  가능성과 꿈과 미래와 승리를 가진 빛이자 별인 빌리와 영광은 과거일 뿐인 탄광, 실패한 파업, 올라갈 사다리 따위는 없는 끝없는 실패의 계급과 패배의 그림자가 한 몸처럼 붙어 각자를 더욱 빛내고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미래를 향해 걸어나가는 빌리와 폐광될 탄광 속에 파묻히는 마을 사람들, 그 아이를 잡을 수 없는 마이클로 마무리하는 결말의 무게감과 균형감이 그저 완벽하니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싶다, 봐야지 등의 생각과 기원을 하면서 늘 마음 한 구석 부채감으로 가지고 있던 게... 어린아이가 너무나 큰 책임을 지고 이끌어가야하는 극인데, 바로 그 사랑스러운 어림을 내가 어른의 욕심으로 잔인하게 소비하는 거 아닐까였는데. 정작 만나고나니 아, 이래야만 이 이야기가 완벽해지는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12살. 어림. 그렇기에 가지고 있는 가능성, 가능성이 펼쳐질 미래. 그 모든 것의 총체가 이 극에서 빌리이고 그렇기에 저렇게 작은 아이가 175분의 극에서 거의 대부분의 순간을 채워야만 하는 거구나라는 납득, 혹은 이해. 그런 어림을 연기해낼 수도 있지만, 그저 그 가능성 그 자체인 것을 어찌 이겨낼 수 있을까. 말로는 꺼져, 개새끼, 망했어!라는 서툰 단어를 토해내는 거 밖에 할 수 없는 아이가 온 몸을 흐르고, 혹은 넘치는 감정을 터트리며 앵그리 댄스를 추고 드림 발레를 날며 가슴 벅차는 전율을 노래할 때의 아름다움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특별해서고, 그 특별함은 그 작은 몸이 지금 빛내는 반짝임이 끝없이 뻗어갈 시작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드림 발레에서 느낀 압도적인 아름다움은 그 아이가 가진 빛이 그저 땅 위를 노니는 세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한의 가능성 그 자체임을 빌리의 날아오름으로 무대라는 한정적인 공간을 깨뜨려 무한대로 확장시키며 터져나왔다. 가능성이자 미래 그 자체를 터트리는 아이의 빛을 마주한 아버지가 감히 그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하고 말겠다 결심할 수 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은 바로 그걸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이이기에 가능했다.

오늘 만난 아이들이 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이 아이는 이래서 예뻤고 저 아이는 저래서 사랑스러웠고 마구마구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야기를 하자니 뭔가 조심스러운 기분이 든다. 그냥 이 극이 모두 그 자체로 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배우 단위로 잘라서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너무 없다. 돌고돌아 또 드림 발레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연출적으로 가장 감탄한 부분은 앵그리 댄스였다. 영화에서 온 마을을 누비며 치솟아오른 감정을 어쩌지 못해 춤을 추던 부분을 무대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어떻게 해낼 수 있지?싶었는데 세트, 조명, 동선, 안무 모든 게 완벽했달까. 그리고 그걸 해내는 현서빌리도 해냈으니 완벽한 거고... 갈등과 절망의 그림자 속에서 실제 뒤틀려있는 세상, 그리고 자신의 가족과 꿈, 스스로의 나약함에 자신의 세상이 뒤틀린 아이가 가지는 분노와 혼란과 좌절이 뒤섞이고 폭발하는 치열한 몸짓을 해냈다. 해내버리더라. 할머니에게서 케첩 뺐으려다가 실수로 우유 엎어놓고도 당황하지 않는 담대함이 귀여웁고 놀라웁네라는 사랑스러운 첫 느낌은 극이 진행되어 갈수록 감탄으로 이어지다 경탄으로 끝이 났다고 하면 오늘 내 감정의 선을 온전히 설명하는 게 될 수 있을까. 앞에도 썼지만... 오늘의 현서가 만들어낸 빌리 엘리어트를 만나고 왔기에 현서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만, 그 아이가 오늘의 빌리 엘리어트 극 자체이기도 해 극 자체의 힘과 배우의 힘을 불리해서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내 깜냥이 부족하여 말을 더 이을 수 없어 아쉽다. 좋은 점을 떠올리면 한없이 좋은 극이지만... 후기 쓰는 동안 탐라에 아쉬웠던 부분 이야기가 들어와서 쓰자면... 영화와 비교해서 불호라는 이야기를 취존을 넘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부분일텐데.. 극적 재미를 유발한 장치 중에 왜 이런 식으로..싶게 불쾌한 곳들이 있었다. 난 영미권 유머코드가 기본적으로 안 맞는 사람이라 어지간한 부분은 내 정서적 차이라고 넘기는 편이긴 한데, 왕립 발레 학교 오디션장에서 재키를 대하는 다른 부모님들 태도를 유머를 의도하며 연출한 부분이랑 윌킨슨이 레슨에서 아이들에게 살과 식욕 등을 지적하는 건 아무래도 옥의 티였다. 특히 전자는... 그냥 알아듣기 어려운 발레 얘기나 고급 어휘를 써서 의도치 않게 차별을 한 걸로 연출해도 충분하지 않나. 낯선 탄광촌 광부 집안의 사람들에게 호기심 충족이든 시혜적인 목적이든 친절하게 말을 건 건데 그거 자체가 계층의 차이를 절감하게 해 벽을 느끼게 한다면 좋았을 텐데.. 신시는 레플리카로 극을 올릴 때 레플리카답게 가능한 한 손을 안 대는 편이니 오리지널도 그럴 것 같은데, 언젠가라도 수정이 되어서 더 옥의 티 없이 더 완벽한 극이 되면 좋겠다. 극 자체가 가진 절묘한 균형감각이 불필요하게 무너지는 몇 안 되는 순간이라 그게 바뀌면 더 완벽해질 게 기대된다. 칭찬이니까.. 아무래도 꼭 하고 싶어서.. 뉴시즈로 처음 만났던 우종마이클 그때도 아이고 어린애가 기특하게 열심히하고 참 예뻐라했는데 연기가 너무 많이 늘어있어서 너무너무 기특하고 내가 뭐라고 너무 뿌듯했다ㅠ 아이들은 정말 너무 대단해. 예상치도 못 하게 자라있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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