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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161206 뮤지컬 팬텀

by All's 2016. 12. 19.

 

캐스트 - 전동석 이지혜 이희정 신영숙 이창희 이상준 황혜민 엄재용 이윤우

공연장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결론부터 말해서 어제 공연히 좋았고, 그래서 너무너무 다행이다.

옷을 3겹을 껴입고 갔는데도 감기 걸려서 목이 너무 아픈데 공연 별로였으면 진짜 너무 슬펐을 거야ㅠ

이게 다 아직도 공사가 안 끝난 블루스퀘어의 괴상한 구조에서 북카페 가서 커피 찾는다고 고생해, 객석 3층 간다고 또 야외 계단 뺑뺑이 돌아서 그런 거 아닐까 싶어서 화딱지가 나지만 푸념은 이쯤에서 관두고 후기 푸는 걸로.

 

팬텀은 초연은 못 봤는데 줄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는 상태였는데, 자주 다니는 사이트의 후기들을 보기도 했고, 그때 스터디용으로 어느 분이 올려준 오페라 디바의 삶을 정리한 네이버 캐스트 내용도 읽었는데, 특히 후자가 카를롯타와 무슈 숄레의 관계와 오페라 하우스 운영에 대한 이해에 너무너무너무 도움이 되었다.

 

해당 링크는 이것 '소프라노는 언제부터 ‘여신’으로 군림했나'(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212199&cid=51078&categoryId=51078)

 

일단 너무 좋으니까 사자후부터ㅠㅠ 지혜크리ㅠㅠㅠㅠ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엽고ㅠㅠ 너무 좋다ㅠㅠㅠㅠ

자꾸 나오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광대가 올라가서 막 얼굴이 아프고ㅠㅠㅠㅠ 내가 좋아할 것 같긴 했는데 진짜 너무 좋았다ㅠㅠㅠㅠ

지혜크리 맑고 사랑스럽고 아 정말 너무 좋았다ㅠㅠ

누군가의 빛이라는 게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서로 다른 루시이지만 지혜가 하는 루시(드라큘라)를 못 봤는데 지혜 루시 마네뜨(두 도시)를 보고 싶다는 묻어둔 소망이 꾸역꾸역 올라올 만큼 너무 좋았다.

지혜배우 너무 좋고 사랑하는데 동석배우 좋아하는지라 지혜배우 앓이를 제대로 안 할까 봐 일단 초장에 미리 질러놓기ㅠㅠ

이지혜 크리스틴 빵싯 웃는 건 너무 예쁘고 상큼하고 노래가 스위니 토드 때보다 더 들었다. 너무 좋아ㅠㅠ

오래오래 노래하고 무대해주셨으면 좋겠다 꼭.

 

사자후 질렀으니 이제 극 얘기로!!ㅎㅎ

 

앞에 써놨지만 난 이 공연에 대한 감상이 좋지만 일단 아쉬운 점은 있었다. 지하 무덤이 많이 나온다고 하지만 화려한 오페라 하우스이기도 한 무대가 보는 맛이 아쉬웁게 심심했다. 극 전체 기조도 그렇고, 주 무대도 그렇고 어두울 수밖에 없긴 하다만 너무 많이 어둡다. 그리고 기본이 어두우면 화려할 때는 또 확 화려해야 하는데 팬텀-크리의 레슨씬과 카를롯타의 오페라가 대비될 때, 비스트로씬 등에서 이전의 어둠들과 대조될 만큼의 화사한 시각적인 즐거움이 없는 게 많이 아쉬웠다. 그리고 무대 디자이너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이엠케이 대표님은 장미 무늬 성애자인가요?ㅋㅋㅋㅋㅋ 마타하리 때는 프레임 위쪽에만 박아놓아져있던 장미 무늬가 이번에는 프레임 좌우에 그것도 엄청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는데 난 장미 무늬 자체는 안 싫어하는 편이다만 예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의상... 의상... 난 의상에 큰 관심 없고 후한 편인데 팬텀 옷에 이상한 프릴 달린 거랑, 크리스틴의 비스트로 드레스가 안 예쁜 건 아쉬웠다ㅠㅠ 크리스틴 티타니아 역할 할 때의 의상도 예쁘지 않고... 색 자체는 지혜배우한테 잘 어울렸는데 그래도 뭔가 아쉬운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파리의 멜로디 파란 드레스에 대한 얘기가 초연에 많았던 것 같은데 극을 보고 나니 그 옷이 제일 예뻐서 왜 많은지 이해했다. 파란 드레스 입고 까르르 까르르하는 지혜크리 너무 예뻤고, 해맑게 웃으면 악보 파는 데 사람들이 예쁘다고 귀여워하며 악보 사주는 거 롯데 생각도 나서 적당히 추억도 되살리며 좋다가 뒤의 옷들이 너무 안 예뻐서 상대적으로 더 서글펐다ㅠㅠ

 

무대랑 의상은 그냥 아쉽고 개선되었으면 하는 거고, 또 별로인 건 에릭과 카리에르 사이의 서사, 그리고 카리에르라는 인물 자체였는데 이건 줄거리상 수정이 뒤의 농담 따먹기 말고 안 될 것 같아서 싫은데 어쩔 수 없을 부분이라 거참, 어참, 하참 싶다.ㅠㅠ 카리에르가 내가 아주 싫어하는 스타일의 비겁함과 무책임함을 공기처럼 두르고 있어서 꽤 즐겁게 2막까지 보고 있다가 짜증이 말미에 휘몰아쳤는데, 스토리 전개상 그럴 수밖에 없는... 아 여튼 너무 싫다 카리에르.

 

나는 웬만하면 자첫 전에 후기를 피하는데, 내가 다른 후기에 영향을 받아서 인물의 해석에 대한 편견이 생길 수 있을 만큼 귀가 얇아서다.

그래서 자첫 전에 후기를 읽은 이 극에서 내가 예전에 읽은 후기들로 인해 감상에 영향을 받을까 걱정했는데 팬텀의 인물들, 특히 카리에리는 그럴 필요가 없이 그냥 잘 정리되어있고 오역의 여지가 매우 적은 못난 인물이었다. 감정선과 캐릭터가 내 기준에 꼼꼼하고 아귀가 안 맞는 부분이 전혀 없으므로 내가 읽어내지 못한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인 감정으로 카리에르라는 캐릭터를 싫어하면 끝날 일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ㅋㅋㅋ

 

난 이해하기로 작정만 하면 어지간한 캐릭터의 심정은 다 이해할 수 있고, 너도 참 그건 슬펐겠다 할 수 있는 이입 능력 만렙이라 카리에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닌데 굳이 내 안의 이해력으로 감싸주고 싶지 않다. 카리에르라는 인물이 무책임하고 비겁해서 망쳐놓은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냐고. 사랑했기 때문에 행복을 연장하고 싶어서 벨라도바에게 자신이 유부남임을 밝히지 않았고, 언젠가 그 애를 버리면 더 상처받을 거라는 핑계로 에릭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척, 그 애의 얼굴도, 그 애의 인생도 지하 무덤에 묻어둔 채 누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못난 자신의 비겁함을 숨기고 살고, 끝에 가서는 에릭의 부탁이라는 핑계로 결국 그를 죽인다.

 

에릭이 죽는 걸 원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에릭이 사람들에게 얼굴이 까발려지느니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에릭을 키워낸 것 자체가 카리에르라는 게 너무 끔직했다. 아.. 진짜 싫어. ㅠㅠ

 

난 에릭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결벽성이 카리에르에게서 물려받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 시련과 고통을 직면하지 못하는 자신의 비겁함과 못남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벨라도바와 에릭을 가두고, 상처 주고, 아프게 하고, 그들을 지켰다는 핑계로 끝까지 그들을 숨겨진 삶으로 생을 마감하게 한 점이 참으로 혐오스러웠다. 젊은 사랑의 열정에 휩싸인 벨라도바와 누구도 자신을 모르고, 기댈 이 없는 어둠 속에 파묻힌 에릭에게는 카리에리는 차마 원망으로 맺지 못할 소중한 사람이었겠지만, 바로 그에게서 사랑받았기에 아픈 끝을 맺은 그들이 너무나도 가여웠다.

 

그리고 카리에르를 연기한 희정배우는.. 다른 극의 후기에서 난 사실 희정배우 나이에 비해 열심히 사시는 거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노래도 연기도 별로 안 좋아한다고 쓴 적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그래도 혼자 부를 때 아니면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는데 솔로 넘버 있으시고…. 지혜배우랑 같이 있으니 가뜩이나 지킬 생각 나는데 대사톤 너무 어터슨씨같고.. 별로인 사람 좋아지기는 역시 힘들구나 싶지만 뭐 누구를 가려보고 싶을 만큼 애착이 가는 인물도 아니라 굳이 가리고 싶지는 않다는 게 다행일까? 다음 관극 때는 철호카리에리로 보는데 어지간하면 철호카리에르가 더 좋을 것 같다.

 

싫은 점은 미리 풀었으니 이제 주인공 이야기.

 

난 한 인물을 가여워할 지언정 인물의 도덕적인 결함을 감싸 안는 성격은 못되어서[ex) 레베카 - 막심, 쓰릴미의 두 주인공, 서편제 - 유봉 그 외 기타 등등] 에릭이라는 인물이 참으로 가엾지만 두려움과 사랑 그 모든 이유로 일어난 그의 살인마저 감쌀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그가 참 가엾고 안쓰러웠다. 에릭맘이 된 기분이긴 한데 그래도 감옥에는 가야지!랄까!ㅎㅎ

 

뭐 하여튼 그런 도덕적인 결벽증을 젖히고 그 인물의 인생을 생각하면, 어둠에 둘러싸여 태어나, 한없이 따뜻한 빛을 그리는 얼굴을 잃은 새 같아서 안타까웠다. 난 뻔하다 할지라도, 어딘가에 갇힌 인물을 새장에 갇힌, 혹은 날지 못 하는 새에 비유하는 걸 꽤 좋아하는 편인데, 동에릭이 보여준 인물이 갇혀버린 아픔을 아는 상처받은 새 같아서 참 좋았다.

 

어릴 때의 기억으로만, 목소리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온전한 사랑의 온기를 닮은 목소리의 주인에게 한눈에 사랑에 빠져 그녀가 그 소리를 마음껏 펼쳐 더 빛날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하는 사랑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그녀와 함께 하는 미래를 원하지만, 어둠 속에 묻힌 채 사는 아픔을 너무나 잘 알기에 크리스틴을 자신의 어둠 속에 가두고 싶지 않아 언제나 그녀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는 건 가엾지만, 또 기특했고. 그녀를 아끼기에 크리스틴에 대한 모든 게 조심스럽고, 그녀로 인해 지극히 행복하면서 그만큼 아팠던 동팬텀이 참... 참으로 애달팠고, 안쓰러웠다.

 

앞서 말한 도덕적 결벽같은 나의 고질적 성향 때문에 크리스틴을 만나기 전 이미 조셉을 죽인 살인자이기에, 그가 죗값을 치르지 않고 그냥 몰래 행복하면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은 차마 못 하겠는데, 또 그 살인이 카를롯타의 의상 보조 자리를 비게 해 크리스틴을 에릭이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아이러니가 비극을 깔고 가는 장치인 부분은 이야기의 구조상 의미 있게 좋아서 줄거리에 트집은 안 잡고 싶기도 했다.

 

크리스틴을 만나지 못했다면, 카리에르도 떠나버린 극장에서 뭐로 먹고 살았으려나 싶은 에릭이(소설에서는 극장에서 유령을 위해 일정한 수익금을 떼어줬던 것 같아서-중학생 때 읽어서 기억이 흐릿하지만- 에릭도 그 비스름하게 카리에르가 유령 핑계로 떼놓거나 그냥 자기 돈에서 돈 빼서 줬겠지 싶었는데, 그래서 카리에르 떠나고 죽으면 쟤는 뭐 먹고 사나 걱정되었다.) 극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꿈과 행복에 다가간 듯해 흘러나온 크리스틴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비참한 인생과는 다르게 크리스틴이라는 쉽게 빛을 보지 못했을 한 새가 세상에서 아름답게 지저귈 수 있게 한 인도자가 되고, 스스로 받고 싶지만 받지 못했던 누군가를 위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 카리에르가 벨라도바와 에릭에게 반복했던 비겁한 사랑과는 다른 사랑을 하게 하고, 그랬기에 또 결국에는 사랑을 받으면서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한 계기가 바로 그 살인이었다는 게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카를롯타한테 들볶이고, 얼굴 봤다는 이유로 죽게 된 조셉은 너무 안 되었는데, 누군가의 죽음이 한 사람이 평생을 꿈꾸던 행복을 잠시라도 느껴보는 계기가 되고, 그런데도 그 누군가가 죄를 사함당하지 않고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고 서글프지만 나쁘지 않은 구성이었고, 마음에 꽤나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동안 내가 본 동배우의 인물을 다 합쳐도 그랭구아르, 토드, 빅터, 모차르트, 에릭 이렇게 다섯 개 밖에 없는데 그랭구아르는 배우로서 뭔가를 제대로 했다고 치기에 미숙하다고 생각했고(정말 그냥 충실한 노래봇이었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인물 자체에 대한 감상이 아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 팬텀 보기 전까지 본 인물 중에는 내 맘대로 토드를 가장 좋아하고 가여워했는데(후회, 엇갈림, 외사랑.. 그런 거 정말 너무 좋아하는 악취미 소유자라ㅎㅎ) 바로 그 동톧보다 지금 기분으로는 동에릭이 더 가엾고 짠하게 느껴질 만큼 동에릭이 좋았다.

 

레슨 씬부터 피크닉 씬까지, 너무나 사랑하는 이의 곁을 언제나 보낼 준비를 하며 맴도는 데 정말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그렇게나 닿고 싶고, 만지고 싶어 하면서도 교습의 의도가 아니라 애정이 손끝에서 나올 때면 차마 닿지 못하고 한결같이 손을 거두는 게 가슴이 찡했다. 지혜크리가 굉장히 올곧고 직설적으로 마에스트로에 대한 호감과 이성적인 끌림을 보여줘서 더 그랬다. 약간 딴소리지만 가면으로 얼굴을 숨기는 건, 자신의 유부남인 걸 벨라도바에게 밝히지 않은 카리에르와 다를 바 없지만, 자신의 욕심껏 크리스틴을 탐내지 않는다는 건 아들이 아비보다 훨씬 낫네 싶었다. (지치지 않는 카리에르에 대한 악감정) 동에릭에게 크리스틴과의 레슨은 행복한 시간이자 그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과정이라 슬프기도 한 시간이었던 걸로 보였는데, 애초에 크리스틴의 목소리가 완전해지면 그녀를 떠나보낼 작정이었던 것 같았고, 그래서 레슨이 완성되었을 때는 이제 자신이 욕심냈던 행복이 끝났다는 걸 알기에 크리스틴의 비스트로 오디션, 샹동과의 행복한 시간, 크리스틴의 데뷔 무대까지는 그녀가 자랑스러운 만큼 멀어지는 것이기에 슬퍼하는 게 맘이 아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스트로에서 눈물 찔끔한 게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던 지혜배우가 너무 잘해서 감격스러웠다는 얘기를 퇴길에서 했다는 걸 보고 좀 식었다... 난 에릭이 감동받아서 슬픈 줄 알았는데... 이래서 퇴근길이 위험하다. 하지만 감상은 이걸 젖히고 계속 쓰는 걸로ㅠ)

 

그래서 카를로타의 계략으로 무대를 망친 크리스틴을 지하 무덤, 자신의 세계로 데려가던 그 순간.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자신의 빛인 그녀를 세상에서 빛나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있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추악하다는 핑계로 잠시나마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두어도 될 것이라는 꿈을 꾸어보는 게, 크리스틴의 절망이 그의 기쁨이 된다는 건 또 아이러니하고, 잠시나마 희망을 품어보는 에릭이 참 슬펐다. 하지만 그 태도를 계속 유지해서 평생 크리스틴 가둬놓고 같이 살거야!했으면 에릭이 싫어졌을 사람이 나이기에, 다른 에릭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다행히 시간이 흐르자 또다시 크리스틴을 떠나보낼 결심을 한 것 같아서 안 싫어질 수 있었다. 에릭이 크리스틴에게 지하 무덤 집이 아늑하다고 하거나, 피크닉을 가자고 하는 것 등은 정말 크리스틴을 꼬여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같이 있는 행복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보고 싶고, 추억 하나 더 남기고 싶어서 이별의 때를 미루는 느낌이 컸는데, 그렇게 결국 사라질 희망이었기에 샹들리에를 타고 내려와 크리스틴을 납치하며 가졌던 잠깐의 어설픈 희망이 가여울 수 있었다.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 게, 동에릭의 사랑이 아가페적인 면모가 강한 게 마음이 아팠다.

아주 어릴 때, 아가페적인 사랑의 의미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난 그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바보 이반이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이야기 너무 잔혹하고 슬프지 않은가. 착하고 헌신적으로 타인을 아끼는 그들의 골수를 그렇게 빼먹어가는 사람들에게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역겨움을 느껴서가 아니라, 주기만 하고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아름답다 하는 게 난 싫다.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이 물론 있다. 그렇지만 난 그게 결국에는 어떤 형태로든, 꼭 그때 애정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 혹은 세상 전체에서라도 그 사랑을 준 사람이 자신의 따뜻함으로 보상받지 못하고 끝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너무나 아프다. 그래서 헌신적인, 아낌없이 주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등의 아가페 속 함의가, 바라지 않기에 숭고하다 해도 그 숭고함만큼 나에게는 참 가슴 아프게 다가왔기에 아주 오랜만에 만난 아가페적인 사랑을 하는 이가 참 가엾었다.

 

사람을 둘이나 죽인 살인자지만 적어도 크리스틴에 대해서는, (그 애가 그 사람의 비겁함을 용서해주었기에) 카리에르까지 합쳐서 그 둘에게만은 에릭은 소위 말하는 마리아적인 성녀캐라 그 순순함이 어릴 때부터 슬퍼하던 지점을 자극했고, 그래서 인물 자체가 나에게 오래 아플 것 같다.

 

제대로 사랑받으며 살지 못한 사람이 그저 주고 또 주며 행복해하면서 아파하다니.. 동어반복 너무 심하지만, 진짜 안쓰럽고 너무나 마음에 남는다. 자신을 아프게 하기도 했음에도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그저 사랑하는 게 스케일 차이 너무 나지만 왠지 두 도시 이야기 시드니 생각도 나서 지혜루시 동드니 보고 싶은데 두 도시 없죠... 슬퍼지네ㅠㅠ 두 도시 없는 슬픔은 일단 미뤄놓고… 이루기 어려울 상플을 다시 하게 될 수밖에 없게 탄탄하고 빈 구석 없는 인물을 하여튼 동에릭이 표현해내서 배우 팬인 입장으로 참 좋았다. 노래도 기대가 컸는데 그 컸던 기대만큼 좋다는 게 참 좋고ㅎㅎ

 

팬텀 넘버 자체는 자극적인 거 좋아하는 내 취향에 자첫에 꽂히기에는 그냥 무난하게 괜찮은 느낌인데, 넘버랑 노래 스타일이 동배우에게 진짜 잘 맞는구나 처음 듣는 순간 딱 그 생각이 들었다. 정말 뭔가 너무 잘 맞고, 그래서 듣기에 너무나 편안하고, 그건 지혜크리도 그랬고ㅠ 그래서 공연 보는 동안 귀가 너무 편하고 행복했다.

 

나는 모차르트 5연 연출을 공연 보는 기간 내내 깠는데, 까면서도 넘버가 좋고, 동배우가 주는 청각적 즐거움이 너무 좋았어서 자둘로 끝내겠다는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생각보다 여러 번 봤었는데, 내가 지금 개인적으로 관극 자체 중인 상태가 아니었으면 그때보다 더 머리 풀고 동졔, 동졔 울면서 표 잡으러 다녔을 것 같다ㅋㅋㅋ 여튼.. 동팬텀 참 좋다.

 

가면을 써서 연기 못 하는 게 가려진다는 얘기도 있던데 난 나의 애정이 만들어주는 애정 필터를 빼고 생각하면 동배우 사실 지금도 연기 자체가 좋다는 건 모르겠다. 이목구비의 존재감이 확고해서, 얼굴을 조금만 구겨도 티가 잘 난다는 게 대극장에서 장점으로 작용해서 부족한 연기 스킬을 까방해주면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오히려 들었다.

 

그렇지만 삼연 엘리부터, 프랑켄, 모차 5연, 그리고 지금의 팬텀까지 극 속의 인물을 원래 극본이나 연출이 의도하는 선에서 왜곡하는 일 없이, 그렇다고 모자람도 없게 전달해내는 평균치가 조금씩 더 발전한 것 같아 내가 동배우를 애정배우라고 인정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했던 걱정이 덜어져서 기뻤다. 동배우를 오래 좋아하고 싶은데 그게 될까하고 걱정한 부분이 연기 스킬보다 인물 해석이었는데, 특출난 구석은 없지만, 자신이 맡은 인물이 어떤 의도로 창작되었고,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이해력은 이제 확실히 생긴 것 같다는 확신을 내맘대로 했다. 참 다행이다. 그랭구와르 때 인상에 전혀 남지 않아서 기억에서 소거되었다는 게 배우를 인식한 뒤에 굉장히 충격적이었기에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걱정인데 이번 에릭으로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관극 전 했던 기대와 걱정이, 하나는 채워졌고 하나는 덜어져서 가뿐하고 좋다.

 

뭔가 극본에서 기본적으로 의도된 것보다 하나 더 파고 들어가는 깊이 있는 인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동석이라는 배우를 추천할 수는 없겠지만 (성숙한 연기 스킬을 원하는 사람에게도 아직 추천 못하겠고ㅎㅎ) 그래도 연기 못해서 극 메시지 망칠 일 없는 기반은 잡힌 것 같으니 무난하게 극 만나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노래 잘해서 듣기에 좋아요.하고 추천하기에는 민망하지 않을 배우가 된 게 기쁘다.

 

이제 지혜크리스틴 얘기 써야지.. 아무리 사람이 애정 도에 따라서 이야기 풀어내는 분량이 달라질 수밖에 없대도.... 사실 어제 관극이 즐겁고 행복했던 건 동팬텀보다 지혜크리의 역할이 더 컸는데 빠심이 뭐라고 분량 차이 쓰기 전에도 느껴지는 게 슬프구나. 글도 체력인데 내 글 체력 한계가 오고 있다...

그래도 지혜크리 너무 좋았으니까 더 조금이라도 더 풀어봐야지ㅠ

 

지혜배우를 처음 본 건 14 지킬이었고, 난 정말 그때 진짜 한 눈과 한 귀에 뭐야 너무 귀여워하고 반했었는데 지혜엠마가 좋았던 건지, 이지혜라는 배우가 좋았던 건지 그때 궁금했는데 뮤지컬 배우 이지혜도, 지혜가 자기 매력과 장점을 잘 살려내서 구현하는 인물들도 좋은 거로 어제 관극으로 자체 결론 내렸다ㅎㅎ

 

동배우에 이어 이지혜도 미인이고, 젊고, 노래를 잘해서 필모가 계속 좋은 거지 사실 연기력이 참 좋다고 애정 깍지 없이 말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굉장히 평이 안 좋았다는 2013 베르테르와, 드라큘라 초연 첫 공을 못 봐서 그때를 젖히면, 지혜배우는 기본적인 연기의 능력치는 아주 좋지는 않지만 또 역시나 연기하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 없게 앞뒤 잘 맞고 극의 서사에 걸맞은 인물을 구현해내는 배우이고, 난 그게 전에는 '감상에는 무해해.'하고 넘어갔다면 요즘은 좀 고맙기까지 하고 그렇다. 연기력이 미천한데 이상한 해석을 해서 전체 서사를 망가트리느니 자신의 능력치를 겸허히 인정하고 할 수 있는 만큼 극에서 요구하는 만큼 하는 거 얼마나 좋은 지ㅠㅠ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인물들이 엠마, 롯데, 조안나, 오늘의 크리스틴까지 넷인데 스위니 자체의 특성상 기괴하고 망가진 구석이 있어서 그 사랑스러움만큼 섬뜩한 조안나를 제외하면 정작 이름이 루시였던 건 드큘이었지만, 달덩이처럼 생겨서 태양계로 화사한 이지혜라는 인물 고유의 매력과 특성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인물들을 연기해서 미숙한 연기라도 개인의 매력으로 여백이 채워지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영리한 선택이라고 여겨져 좋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말하고 해석하는 걸 좋아하지만, 사실 관찰력이 좋고 감각이 타고나게 예민한 사람이 되지 못해서 배우들의 노선이나 디테일이 내 기준 기본 서사와 엇나가면 보는 중간에 한 번씩 몰입이 깨지는 일을 가끔 겪기도 하는데, 지혜배우로 공연을 보면 그런 일이 없다. 특출난 것도 없지만 엇나가지는 않고, 노래는 신기할 정도로 더 많이, 연기는 느리지만 꾸준히 늘고 있어서 지켜보는 게 참으로 행복하다.

 

그런 이유로 난 늘 지혜 배우에게 지불하는 표값이 아깝지 않았지만, 이번 팬텀은 정말 더없이 좋았다ㅠㅠ

극본 자체가 글러먹어서 인물이 구멍 투성이만 아니면 극복에서 하라는 거에 충실하면 크게 머리 안 굴려도 인물이 머릿속에 쑥 들어오는데 그런 면에서 지혜크리는 아주 명료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스럽다.

 

길에서 악보를 팔 때는 음악과 함께 해서 좋고, 그리고 그곳이 꿈의 도시인 파리인 게 좋은 행복하게 노래하는 재능 있는 여인의 반짝임에 샹동이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이끌어주고 싶다는 마음까지 갖게 하는 데에 어색함이 없다. 삶이 그렇게 평탄하지는 않지만, 구김살도 없고, 긍정적이며,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아직 세상은 잘 모르는 젊은 아가씨. 너무 단순하다 싶은 인물일 수 있지만 난 그 복잡할 것 없는 단순함과 깨끗함을 가진 크리스틴이 참 좋았고, 그걸 그렇게 연기해낸 지혜크리도 그래서 좋았다.

 

그게 가장 좋았던 지점은 크리스틴이 에릭에게 느끼는 감정이었는데, 그 감정의 색이 모성애 쪽이 아니라 이성에게 느끼는 연애 감정이었다는 게 너무나 맘에 들었다. 크리스틴이 에릭에게 가지는 마음에는 스승에 대한 감사함, 그 가엾은 처지에 대한 동정심, 상처를 주었다는 죄책감 등 여러 감정이 혼재되어 있기야 하겠지만, 일단 크리스틴은 젊은 아가씨이지 않은가. 여자는 모성애를 타고났기에 어쩌고 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질리게 들어왔지만 그 모성애 진짜 애를 낳아서 키우거나, 애완동물이라도 길러서 유사 양육이라고 해보지 않았을 바에야 젊은 아가씨가 이성을 대할 때 가장 지배적으로 나타날 수가 없는 감정인데, 불쌍한 처지의 남성 인물을 아껴주는 여성 인물의 감정의 근원을 모성애에서 찾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지혜크리는 그런 부분이 없었다.

 

자신의 노래를 음악적으로 더 성숙하게 이끌어주는 마에스트로가 자신의 목소리는 물론, 크리스틴이라 여인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고, 함께 음악과 시간과 비밀을 나누는 사람이 성인 남자이기에 그가 자신에게 주는 헌신적인 애정에 연애 감정에 기반한 사랑을 느끼는 게 굉장히 설득력 있다.

 

동에릭이 비록 엄마의 목소리를 닮았기에 크리스틴을 사랑하게 된 게 시작이라도, 엄마 껍데기를 찾은 게 아니라 크리스틴이라는 여인을 사랑한 건데, 크리스틴도 에릭이 그녀 자체를 사랑했던 마음을 오롯이 느끼고, 고마운 스승에게 가지는 감사함, 가엾은 인생을 살아온 이에 대한 동정심보다 나를 사랑하는 한 남자가 주는 순정에 끌린 여인으로서 에릭을 대하는 게 감정의 종류와 온도가 같다는 게 극이 끝날 즈음 내 마음속에서 큰 위로가 되었다.

 

에릭은 얼굴에 쓴 가면보다 타고난 얼굴이라는 가면이 그 사람의 모든 걸 가리고 숨기게 된 인물인데, 그 사람의 얼굴을 넘어서 극 중에서 에릭 그 자체를  봐준 유일한 사람이 크리스틴이었고,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에릭뿐 아니라 나에게도 위로가 되었다고나 할까.

 

처음에 가면 벗은 거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도망치는 건... 뭐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서ㅋㅋㅋㅋ

가면 써서 그렇지 키도 크고, 몸매도 늘씬하고, 목소리도 멀쩡한 사람이 진짜 바다괴물같이 생겼으면 아무리 각오했어도 충격이 클 수 있지!!! 그때 안 도망가면 인간미가 없지!!! 이렇게 이해되는 정도였다ㅋㅋ 그리고 도망갔다가 바로 에릭 찾으려는 게 어디냐 싶고ㅠ 에릭에게 상처를 준 스스로를 책망하며 어디 틀어박혀있었으면 인물이 아쉬웠을 수도 있는데 딱 납득이 가는 수준의 놀람이었고, 빠른 반성이었다.

 

두 남녀 주인공의 합은, 생각보다 목소리가 서로 아주 잘 묻는 느낌은 아닌데 동배우 목소리는 보들보들하고 지혜배우 목소리는 그보다는 맑고 쨍한 느낌이라 합쳐지니 좋은 순간이 있었다. 배우 개인의 성량 조절 미스였는지 음향팀의 볼륨 조절 미스였는지 듀엣곡 중간에 에릭이 크리스틴 목소리 잠깐 묻어버린 순간이 있었는데ㅋㅋ 한번 잠깐 그런 거고 그 뒤에는 안 그랬다ㅎㅎ

둘 다 연기 스킬이 좋은 편은 못 되어서 함께 발연기하는 느낌이 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둘 다 무난하게 연기해내셨고, 함께 있을 때 20대의 연애 느낌 나서 행복한 순간에는 까르르 웃음짓는 모습들이 귀엽고 풋풋하고 좋았다. 얼굴이 주는 비쥬얼 케미는 안타깝게도 알 수 없지만 체격 차는 충분히 좋았고 레슨씬에서 그래서 굉장히 보기가 좋기도 했다.

 

다른 인물들은, 신영숙 카를롯타는 인물 너무 재미지고 무슈 숄레와 노는 것도 정말 귀여웠다. 노래 못 하는 척하는데, 정말 척이구나 싶게 성량이 너무 짱짱해서 더 웃겼던 듯ㅋㅋㅋㅋ 그리고 내가 후기 쓰는 내내 에릭맘인 거 티 냈지만 카를롯타와 무슈 숄레에게 에릭 새끼 너무 개민폐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써서 내 맘대로 극 올리겠다는 게 뭐가 나빠!! 돈 모아서 극장 사놓지 못 하고 계속 극장 감독만 한 네 아비를 원망할 것이지!! 카를롯타는 크리스틴에게 약 먹인 거 빼면 솔직히 나쁜 짓 한 거 없다고 본다. 둘이 그래도 행복하게 노후 설계하며 자기 돈 버려가며 살겠다는데 극장 밑에서 불법 거주하는 엄한 놈한테 테러나 당하고 너무 불쌍하고... 불쌍했다ㅠ

 

이창희 샹동은... 넘버 스타일이 본인에게 안 맞는 것 같았다. 모차르트 5연에서 쉬카네더 하실 때 너무 잘하셨기에 호감이었는데 그의 샹동은 여인을 대할 때 너무 껄렁거리는 느낌의 바람둥이 분위기가 컸고, 그런 분위기가 크리스틴에게도 큰 대비 없이 이어져서 바람둥이 백작의 첫사랑 같은 로맨틱함이 크게 다가오지 않아서 아쉬웠다ㅠㅠ

 

발레.. 발레 크... 너무 예쁘고..

공연 보는 내내 감기 기운 때문에 코는 좀 훌쩍여도 눈물은 안 났는데 발레씬 너무 슬프고 정말 아름답고 좋았다ㅠㅠ

3층에서 보는 거니까 춤을 보려면 망원경을 들면 안 되고, 망원경을 안 쓰자니 표정이 안 보이고, 근데 몸짓과 표정이 둘 다 좋은데 한꺼번에 볼 수 없는 게 통탄스러울 만큼 참 좋았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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