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트 - 전성우 김주연 곽다인 송나영 김치영 이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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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치매셨는데, 어느 날, 엄마가 할머니한테 아빠를 가리키며 누군지 알겠냐고 할 때 그럼요 우리 바깥 사람이잖소 하고 참 예쁘게 말하신 적이 있었다고 이야기해주신 적이 있었다. 그래서, 톰이 자신의 55번 째 생일 날 재킷과 넥타이를 챙겨준 뒤 돌아나가던 이에게 이사벨라라고 말하고, 그이가 '소피에요'라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톰은 자신의 기억 속을 헤매고 나는 할머니의 기억 속 또한 이러했을까를 헤매고 말았다.
할머니의 머리 속도 이러했을까? 낙상으로 고관절 수술을 하신 뒤에는 몸도 쉬이 움직일 수 없어 마냥 누워계셔야하는 머리 속에서 저런 회오리가 몰아치는 날이 계셨을까. 아니면 혹은 매일 매 순간이 그러셨을까. 요양원에서 배변 실수를 하실 만큼 일상 능력이 떨어지셨는데 근데 그 기저귀를 침대 프레임 사이에 숨기시는 부끄러움도 남아계셨으니까, 입어야 하는 옷을 제대로 기억할 수도, 재킷에 팔을 넣는 법이 떠오르지도, 한쪽 재킷에만 팔이 들어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 하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옷을 나 스스로 입고 싶은 톰처럼 잃어가는 부분이 있어도 남아있는 것들로 그 안에서는 폭풍우가 치셨겠지. 회오리 바람이 불었겠지. 그러다가 어느 날은, 그럼에도 자신에게 초에 불을 붙인 케이크를 들고 다가온 이에게 '소피'라고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현재에서 행복하시기도 하셨을까 그런 순간이 계셨으면 좋았을텐데 싶어서 근데 알 수가 없으니까 자꾸 눈물이 난다.
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떠오른 행복한 기억과 그 기억 속 이사벨라와, 건강하고 똑똑한 자신을 붙들고 싶고 그 속에서 계속 머물고 싶어도, 그들의 아이인 소피는 자라서 이젠 톰의 곁을 지키겠지만 교통사고로 떠나버린 이사벨라는 돌아올 수 없듯이.. 붙들고 싶어 기억 속 조각을 다시 맞추고 시계 태엽을 돌리고 또 돌려도 흩어져 가는 기억과 그 시간 속 순간과 사람들을 붙잡을 수 없어 한없이 괴로워하면서도 그 조각들이 맞추어져있던 순간의 아름다운 추억들 속에서 온 마음을 다해 행복해하고 또 그렇기에 그 기억을 포기할 수 없어 노력하고, 그런 조각들이 떨어져나가 작아지는 나를 조금이라도 덜 잃기 위해 현재의 나 또한 남기고 싶어 온 힘을 다해 온 헹거의 옷을 다 헤집다 마침내 소피의 이름을 붙들어낸 톰과, 톰의 기억 속 순간들이 너무 생생하게 아름다워서 고마웠다.
움직임 언어를 굉장히 못 읽어내는 편이라 보기 전에 걱정도 했는데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공연이었다. 그냥 정말 너무 잘 보여주고 아름답고.. 아트원이 음향 울림이 아름답지 못 한 극장이라 우란 극장에서 올릴 때 못 본 게 아일랜드 때보다 덜 아름다운 퍼커션 음향 때문에 초반에 못내 아쉬웁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게 하나도 신경쓰이지 않더라. 그냥 톰의 기억 속에서 달리고 춤추고 쓰러지고 웃고 울다가 다 흘러갔다. 나처럼 몸짓 언어를 잘 못 읽어내는 쪽이라 피지컬 씨어터라는 형식에 혹시 걱정하시는 분 계시다면 아무 걱정없이 가셔도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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