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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20220105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밤공

by All's 2022. 12. 5.



캐스트 - 규현 카이 이봄소리 서지영 이희정 김대종 이시목 박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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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앙 2018년에도 까랑까랑한 앙리였다고 기억은 있었는데 진짜 더 대쪽같아졌네 괴물로 다시 태어날 때의 본체의 십자가 문신이 주는 배덕함이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빅터의 어린 시절을 알고난 뒤 자기 대신 살아 실험을 완성하라는 말로 빅터를 살리면서 한 가여운 사람의 삶을 살리고 싶었는데 그걸 빅터는 그 맘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 생긴 친구마저 잃지 않겠다고 완전히 미쳐서 신에게 최후의 도전을 시작한 것처럼 되어서 씁쓸해졌다.. 빅터야 아니야 그거 아니야ㅠ

규카의 한잔술은ㅋㅋ 둘다 팔다리가 본체의 머리에만 귀속되어 있는 건 고무적인데 같이 추기 시작하면 서로 완전 다른 박자로 다리를 움직여서ㅋㅋㅋ 난 동작은 둘다 그만하면 괜찮다 싶은데 아니 그렇게 서로 다른 박자 타면서 너희끼리 신나니 싶으니 재밌긴 했다ㅋㅋㅋㅋ

규현 뮤에서 넘버 부를 때 넘버별로 호불호 타는 편인데 바이브레이션이 많아져서 더 그랬는데 연구를 많이 한 건지 저음 소화도 좋아지고 넘버 소화가 깔끔하고 단단한 쪽으로 많이 변해서 넘버가 기대 이상인ㅇㅇ 그의 빅터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직 좀 물음표인 부분이 있는데 2막까지 보는 걸로.

어린 시절 잘못된 세상의 저주에 엮여 제대로 살아가지 못 하는 친구를 위해 살인자의 오명까지 대신 뒤집어쓰고 그 친구를 제대로 살게 만들고 싶었는데, 그렇게 대신 준 목숨으로 하는 일이 태어난 생명을 책임지지 않는 거였고 폭력적인 세상에 버려두는 거였다면.. 설혹 기억을 찾았더라도 복수를 멈출 수 없는 거지. 삼연의 카앙괴를 무지막지 좋아했어서 그 인물이 이제 없다는 건 조금 아쉬운에 오늘 만난 4연의 카앙괴도 좋았다. 만들어진 피조물을 책임지지 않은 빅터를 비롯한 세상의 인물들을 반추하게 하는 방식이 여리고 어리며 순수한 존재의 고통을 보며 깨닫게 하던 것에서 어느 정도의 이지를 눈 떴을 때부터 가지고 있으나 그게 길들여지지 않아 세상이 자신을 대하는 대로 세상을 대하는데 그 세상이 폭력과 무책임으로 가득차 생명을 구하고, 싸움을 하고, 인사를 배우고, 손을 뻗어도 폭력만 쏟아지고 버려질 뿐이라면. 그리고 그 기억이 태어난 그 순간부터 계속 이어졌다면 처음 따뜻한 세상을 알려주고 그를 거두어 바른 세상을 보여줬어야하는 창조주에게 자신이 겪은 그대로의 고통과 함께 그가 얻은 삶의 자격을 뺏을 만 하지. 앙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걸 정말 조금도 티끌만치도 보이지 않아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역시 새로 태어난 느낌의 괴물인 걸까 생각했는데 북극에서 총에 맞아 정말 숨이 끊어지기 직전, 아무 것도 되돌릴 수 없을 때 이 지독한 진짜 외로움을 이제 알겠냐며 니가 살린 앙리를 너의 무책임으로 잃은 거라며 최후의 복수를 위해 앙리의 목소리를 꺼내놓는 게 이정도로 절망적이었구나 싶어서 슬펐고 그래서 좋았다.
 
규빅은 1막에 나한테 물음표 뜬 이유를 끝까지 보면서 납득함. 나한테 빅터는 누구로 봤어도 기본적으로 오만하고 종류가 다르게 비틀린 인간이었는데 규빅은 위악을 떨 뿐 비틀렸다기보다는 나약하고, 그리고 방식이 미친 거라 병증에 걸린 느낌이지 본질이 뒤틀린 타입이 아니라 나한테 너무 낯설어 워터루나 제네바 초반에 싸가지없고 신경질적인 모습은 그렇게 지위와 능력을 통해 오만하게 군림하고 윗사람들 비위를 맞추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돌파구를 그렇게 찾아서 그런 거고, 이별의 고통에서 제대로 치유받지 못 해서 헤어지지 않고 싶다는 욕망을 생명을 주관할 수 있게 하는 걸로 해결해내려고 하는 거라 연구에 집착한 건데,  의도는 또 나름 선량하다면 선량했는데 찾아낸 방법이 미친 방법인 거고, 미친 방법에 파고들다가 주객이 전도되어 죽은 목숨을 살려내는 것 만큼 새로 태어난 생명을 책임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잊고 룽게를 죽이는 앙리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다시 태어난 또다른 생명을 책임지지 않고 죽이려고 한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느낌이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앙리도 되살리지 못 했고, 앙리가 아닌 피조물은 제어하지도 못 한 상태로 사라졌고, 일이 제대로 안 풀려가니 신경증이 생겨서 실험일지를 찾아 모든 걸 되돌리겠다는 심사 같은데 이게 의지라기보다는 병에 가깝다고 해야하나 정신의 일부가 망가진 거 같았다. 괴물이 돌아와서 불안증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3년 동안 애써서 만들어낸 평범한 생활과 사람들을 망가뜨리기 시작하니까 그 광적인 상황때문에 도망치고 싶어 날 죽이라하지만 곁에 지킬 사람이 있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면 다시 잠깐 제정신의 불이 들어오는 걸 반복하지만 그 사이에도 자신이 괴물을 책임지지 않은 것이 불행의 시작이자 연장임을 알아차리지 못 해 줄리아를 잃은 뒤 자신에게 남은 건 괴물을 따라가 죽이는 걸로 결자해지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밖에 없다고 꾸역꾸역 마지막 길을 가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물의 행동으로 끝을 냈는데 그 끝이 사실 친구를 살리려고 했다는 오판의 확인 사살이었다는 게 인간 빅터 개인에게는 비극이겠지만 이야기적으로는 마땅한 벌로 다가왔고. 앙리를 부여잡고 절망하는 존재로 마무리되는 순간 잘못된 판단에 눈이 가려져서 진실을 보지 않은 죄를 가진 사람이구나 정리가 되어 다행이었다.

너무 주절주절 길게 썼는데, 그냥 흠.. 생명을 휘두르는 걸 삶을 행복하게 할 수단으로 생각 안 했으면 멀쩡히 살 수도 있었을 사람이 잘못된 판단에 매료되어 자기 인생을 망쳐가는 인물로 보였고,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이 제대로 행복해지길 바랐던 친구의 바람을 오판해 본인이 제대로 살아가면서 불행한 세상을 바꾸는 길이 아니라 그냥 자기 개인에게 소중한 사람을 안 잃는 것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생명 자체의 존귀함을 무시했다가 천벌받은 빅터로 보였다고 나름대로 좀 짧게 다시 정리를. 써놓고 보면 나쁘지는 않고 보는 동안도 크게 막 별로는 아니고 해석의 방향이 나쁜 건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는 동안 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는 지 선명하게 중간중간 잘 와닿는 느낌은 아니라 그 동안 서너개 정도의 작품에서 보는 동안 나쁘지 않거나 좋거나의 감상을 유지해온 거에 비해서 썩 맘에 잘 차지는 않았다.
 
어디가 안 맞아서 이번에는 인물 표현이 초반부터 오지 않은 건지 도통 알 수는 없는데 뭐 한 사람 필모 별로 보다보면 이런 일이야 왕왕 있는 거고, 그래도 그래서 싫은 정도 아니니 다행인 거다 싶은 정도니까 다음에 다른 작품에서 또 볼 일이 있을 때는 다시 무난 or 좋음이길 바라본다

저번에도 잘 보긴 했는데 오늘 봄솔 정말 정말 잘해서 너무 좋았다ㅎㅎ 목 컨디션도 저번보다 괜찮았고 인물이 줄리아 까뜨 양쪽으로 다 궤도에 올랐는데 그게 취향이야ㅎㅎ 저번에 볼 때 아버지한테 빅터 살려달라고 했더니 이런 식으로 살릴 줄이야하면서 슈테판의 행동에 놀라는 것 같던 거 또 봐도 착각이 아니었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거에 슈테판이 자기를 설득하는 거에 동조하는 순간 스스로가 앙리를 사지로 이끌었다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죄책감에 빠져드는 모습이 그대없이는에서 저주를 받아도 그대없이 살 수 없다던 부분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앙리의 죽음을 아버지에게 사주하지 않는 줄리아가 저주의 굴레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는 노선을 가려면 이래야지 싶었다. 또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까뜨린느가 괴물을 설득해서 같이 북극으로 도망치려는 마음도 가지고 괴물을 찾아갔지만, 사람 대우도 못 받는 처량한 삶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괴물이 존재하기 시작하고 처음 받았을 보살핌과 웃음을 주는 존재가 된 뒤 본인도 짧게 기뻤는데, 살고 싶어 자기처럼 불쌍한 존재를 배신하고 버려야 하는 자기 처지에 절망에 찬 살고 싶다는 절규를 할 때 너무 가슴이 아팠다. 자기가 인사를 나누고 함께 먼 곳에 갈 미래를 말했기에 괴물이 이제 더 불행할 것을 아는 자라 안타까웠다ㅠ

호불호가 섞인 관극이기는 했다만 그래서 아쉽지는 않은 건 이번 시즌에 투입된 뉴캐슷을 찾아서 보면서 원했던 부분이 충족된 게 있어서ㅇㅇ 많이 보던 배우로만 어느 정도 고정해서 보다보면 내가 느끼는 감상이 극이 기본적으로 의도하는 건지 배우 개인의 고유한 해석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서 갑갑해질 때가 있고 이번 프랑켄 계속 동은만 봤더니 내가 느끼는 게 4연 프랑켄인지 4연 동은의 프랑켄인지 답답해져가던 시점에 답답증이 딱 풀리는 시간이었다. 상연이 거듭될 때 당연히 고인물 많이 돌아올수록 덕후 맘에 좋아도 뉴 캐스트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확인했다고 해야하나

어떤 극이 돌아올 때 좋아했던 만큼 더 과거의 캐스팅이 그대로 돌아오길 바라게 되긴 한다만 극이 배우의 영향력을 떠나서 극 자체의 고유함을 보이기 위해 뉴캐스트를 포함시켜야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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