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트 - 박성훈, 김슬기, 최대훈, 문성일
공연장 - 대학로 자유극장
저번 주에 기둥-지휘-대훈-정우로 15 범생이들 자첫하고 많이 아쉬웠었는데 오늘은 2013년 보고 반했던 모범생들을 다시 만난 기분을 느꼈다.
오늘 캐슷은 성훈-슬기-대훈-성일인데 네 배우 각자의 드라마도 그들의 합도 확실해서 쫀쫀하게 극이 완성되었고 정말 좋았다.
여전히 가면은 싫은데 그래도 한 번 봤다고 익숙해져서 스루할 만 했다는 게 다행이었고, 전체적인 합이 좋으니 전에는 산만하게 보였던 바뀐 동선도 설득력이 부여되었다. 암전 뒤 씨발.이라고 할 때 더 가까이에서 변화하던 예전 동선의 임팩트가 좋긴 하지만 모의고사 때 시험을 망친 명준이의 책상이 뒤로 밀려나는 게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는 걸 비쥬얼적으로 구현한거라는 것도 와닿았다.
공연 전에 기대했던 대로 좋았던 배우는 슬기수환 성일민영, 저번에도 좋고 오늘도 좋았던 건 대훈종태. 기대 이상은 성훈명준.
성훈명준은 첫 등장 때 웃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너무 잘생겨서 고등학생 명준이 때 몰입이 되려나 싶었는데 아버지와 똑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명준이의 불안과 두려움이 시시각각 묻어나서 좋았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거지 스스로 우월한 인간이라 생각지 않는 자존감 낮은 명준이의 결을 잘 보여줬다. 종태를 이용하고 버린 비열한 인간이라는 건 수환이와 같지만, 수환이처럼 나쁜 사람이고 싶지만은 않은 위선까지 다 보여줬는데 그게 과하지 않고 설득력이 있었다. 배우의 외모때문에 역할 몰입 안 될까봐 걱정했다가 극을 보면서 괜히 걱정했다 생각했던 전적이 엠나비 때 르네들이었는데 오늘 성훈명준이 다시 그 기분좋은 민망함을 줘서 기뻤다.
슬기수환은 저번 지휘수환이 너무 안 맞았았어서 제발 잘 맞기를 고대했는데 다행히 기대처럼 좋았어.
흘리듯 말했을지언정 컨닝을 처음 제안한 것도, 종태의 반성문을 직접 작성한 사람이라는 점에서도 사실 수환이는 명준이나 종태보다는 민영이와 결이 같은 살벌한 인물인데 웃음 속에 감춰진 수환이의 차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들을 비웃은 민영이를 보며 주먹을 꽉 쥐는 화장실씬에서 훗날의 수환이를 있게 만든 독기의 원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프로필 사진에서는 좀 순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무대에서 보니 싸한 분위기도 있고, 안경을 꼈을 때와 끼지 않았을 때 소품의 유무 뿐 아니라 표정과 무드로 인물의 변화를 잘 드러내서 굉장히 좋았다. 오늘 명준이 방에서 문제 풀어주는 장면에서 성훈명준이 정석을 수환이 책상에 놓다가 거울이 떨어지는 참사(ㅋㅋㅋ)가 있었는데 그런 돌발상황에도 웃음의 흐름에 휘둘리지않고 극을 스무스하게 이끌어가는 유연함도 굿굿. 고등학생 시설이 대부분인 작품이지만 연륜이 있는 배우들이 모범생들을 하는 게 더 강렬한 이유는 노련함과 깊이가 쉬이 얻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들게 한 오늘 관극을 좋게 만들어준 일등공신.
같은 생각을 이어지게 만드는 배우는 저번 주 공연에서도 유일하게 날 울렸던 대훈종태!
그때보다 더 좋고 말고를 말할 이유는 없는 게 그때도 좋고 지금도 좋았다. 대훈종태 모지리에 웃기는 형이라는 평 많지만 난 진짜 좋아했던 운동을 못하게 된 뒤 성격에도 맞지않는 외고를 어머니를 위해 억지로 다니고, 속에 차있는 울분과 에너지를 그냥 좋게좋게 넘기면서 참고 살려는 종태의 깊은 속내를 대훈종태가 정말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만만하게 보이는 걸 알면서도 시비걸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만만하게 행동하는 느낌이고 단순하게만 보일 수 있는 종태의 속내를 진짜 섬세하게 잘 표현해내서 정말 좋다. 종태가 운동을 했던 아이라는 걸 참 와닿게 잘 표현하는 게, 룰을 어기면 퇴장을 당하게 되고(뭐 스포츠도 부정부패 비리 만만하지만 경기 속에서 컨닝을 할 순 없으니) 만인의 앞에서 과정과 결과를 정직하게 승부해야했던 운동의 세계에서 정직하게 몸으로 승부하던 종태가 더럽고 무서운 세상을 만나게 될 때의 허탈함과 어이없음, 혹은 두려움 등을 툭툭 던지는 대사와 표정 속에서 내려놓듯 묵직하게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13 모범생들을 좋아했던 건 본진이기도 한 성일배우가 연기한 민영이가 굉장히 취향이었어서도 있는데 오늘 2년 만에 다시 본 성일민영 연기가 깊어져서 만족도가 높았다. 성일배우는 쓸 때부터 봤고 그때부터 좋아는 했다만 리차드랑 번점 재일이는 잘 어울렸던 거고 연기력이 좋다는 생각은 못했었는데 13 범생이 때 연기가 진짜 확 좋아져서 다시 보였고 애정과 본진 사이에서 본진이 되었었다. 그래서 오히려 성일민영을 다시 만나는 건 기대도 되지만 걱정도 되었었다. 13 때랑 비슷한 정도의 연기여도 아쉬울거고, 못하다 느끼면 실망스우니까.
그렇지만 오늘 민영이는 인물이 전보다 더 섬세하고 탄탄해졌고, 그래서 공연의 에너지가 더 커져서 기뻤다.
자신에게 평생 받지 못했던 치욕을 준 아이들을 굽어보며 단죄를 한다는 건 13때와 같지만, 그들을 내려보는 시선이 더 오만하고 더 차가워졌는데 반항하지 않는 백성들에게는 상냥하고 다정하지만 그들의 질서를 해치는 폭도에게는 자신들에게 그들이 무가치한만큼 무자비한 처단을 내리는 상류층의 잔혹함을 느낄 수 있었다. 범생이 인터뷰에서 이번 민영이들 중에 연기 제일 잘하는 민영이가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던 걸 읽었었는데 지금 민영이 셋 중에 제일 잘하는 건 몰라도 13년 핫민영보다는 15년 성일민영이 더 잘하고 더 좋다. 특히 화장실 씬에서 교문 밖 세상이 만만한 줄 아냐고 호통칠 때 진짜 좋았다.
모범생들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건 명준, 무드를 뒤엎는 건 민영, 비극성을 강조하는 게 종태라면 극의 뉘앙스와 무게감을 조율하는 인물은 수환이라고 생각하는데 오늘 캐스팅이 내가 생각하는 그 무게감과 역할을 다들 정말 잘 소화한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인하종태, 승리종태, 영석민영을 못봐서 이제 최상이다라고는 단언 못하지만 오늘 조합 진짜 좋았고 특히 슬기수환-대훈종태 강력 추천.
극의 무게감을 잡아주는 연륜이 진짜 좋았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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