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트 - 성두섭 장율 김지현 이원
원래는 sns나 개인 메모장에 공연 끝나자마자 쓴 이야기들을 묶어서 다듬어서 후기를 쓰는데 이 공연은 간만에 끝나고 마음 맞는 분이랑 얘기를 했더니 그렇게 하기에는 내용이 섞여서 간단하게 그냥 내가 했던 생각들 위주로 좀 정리를 다시 해서 올리려는 마음으로 다시 처음부터 쓰는 후기.
생생한 부분을 못 가져와서 간략하고 부실할 거라는 이야기를 이렇게도 또 하는ㅋㅋㅋ
프라이드 벌써 3연 째 올라오는 공연이고, 초연 때 한 번, 재연 때 세 번, 올해는 처음 봤는데 많이는 못 봤지만 극 자체가 좀 계속 어떤 식으로든 대사나 그런 게 안 좋은 얘기로 각색이 더 친절해지는 기분이 드는 와중에 재연 때 배수빈, 정동화, 이진희, 이원 페어의 세미막에서 '이것보다 더 프라이드가 좋을 날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극을 보냈었기에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과 원래 좋아하지만 초연 때 못 봤던 김지현 실비아를 보게 된다는 기대감에 비해 극 자체에는 큰 기대없이 본 것과 달리 재연 자체 레전날과 전혀 반대 급부로 좋은 감상을 느껴서 뿌듯한 관극이었다.
재연 자체 레전 날은, 그날의 배우들이 다들 감정 표출이 좋고, 같이 만들어낸 이야기에서 영혼의 윤회와 동일한 영혼이 시대를 거쳐가면서 아픔을 딛고 성숙해가는 과정과, 세월을 넘어 다시 재회하며 성숙해지는 인물들의 드라마를 통해 감동을 느꼈었다. 상대적으로 액팅 자체가 드라이한 양승리 멀티와 달리 이원 멀티가 좀 더 드라마틱 한 것도 있고, 눈이 크고 맑아서 그 외적인 이미지 자체가 그걸 서포트하기도 하는데 여튼 멀티도 중요하지만, 멀티도 멀티인 마당에, 배꽃진희는 감정을 건드리는 거에 강점이 있는 배우들인데 그 와중에 프라이드를 통해 전하는 이야기를 단단한 성장의 이야기로 잡아오니 내가 자라난 듯 위로받았었고, 참 고마웠던 날었어. 프라이드가 가질 수 있는 따뜻함의 부분을 가장 극대화한 조합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삼연 섭율지현은 극을 인물이 아닌 시대로 바라보게 해줬고, 아주 다른 차원으로 극을 보게 되니까 없던 기대가 좋은 식으로 배신당해서 결론적으로 굉장히 좋았네. 앞선 재연의 날이 따뜻함의 극대화라면, 삼연의 이 관극은 연출과 각색은 딱 이거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친절함이 맘에 안 드는 가운데 올리버와 실비아 역의 배우들이 자신들이 잡아놓은 인물로 냉소성이 극대화되고, 그와중에 필립은 다정하게 망가졌던 인물이 따뜻한 심성을 되찾는 시대적 대비를 보여주니 냉소성이 극대화되면서도 마음이 차게 끝나지 않아 행복했다.
섭필립을 빼면 인물들의 성격이 58과 2017의 갭이 굉장히 컸는데, 그 모습을 보는데, 같은 이름을 가졌고 아마도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을 사람들이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른 뒤 가지게 된 모습의 변화를 보는데 고통받는 그 인물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세상의 잔혹성에 방점을 찍고 보게 되었다고 해야하나. 이전 시대 세상의 잔혹함도, 그리고 지금의 상대적인 평화로움과 그럼에도 끝나지 않은 편견과 고통들을 겪고 있는 상황에 집중하게 되더라. 특히 후자, 그들이 여전히 완전히 편견이 사라지지 않은 세상 속을 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더 크게 느낀 부분이 정말 좋았다.
전자를 느끼게 한 계기는 1막 1장의 섭필립이었는데, 그동안 봐왔던 중에 가장 외부인같은 필립이었다. 실비아와 올리버가 벨리핀치 이야기를 할 때 그 둘을 바라보는 뒷모습이 너무 쓸쓸해서 그와 둘 사이에 정말 보이지 않는 장막이 세워진 느낌을 순간 받았다고 해야하나. 너무나 외부인인 필립을 보는 순간 그들을 지켜보는 관찰자로서 순간 극 안에서 빠져나와서 그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고,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극에서 순간순간 누가 한 명의 시선이 아닌 관찰자가 되는 순간이 많아지더라. 게다가 실비아가 어느 순간순간 행동이 서툰 필립을 대화에 끌어넣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은 기분을 주는데, 실비아와 필립이 초장부터 그렇게 위태로워 보이는 것도 처음이더라. 그런 와중에 후자를 느끼기 시작한 건 일단 1막 4장에서 마리오에게 가지 않고 올리버와 있어주기로 한 지현실비아가 올리버가 부엌에 들어간 뒤 필립 너무 상처주지 말라고 한 뒤 일어서서 거울 앞으로 다가가서 선 뒤, '결국 네가 선택해야 한다는 거야.'라고 말할 때! 조금의 눈물도 없이, 그 순간 뭔가 초월한 절대자같이 단호하고 냉정하게 그 말을 하는데 순간 아, 저 사람은 58년의 그 실비아와 정말 다른 사람이구나.라는 기분을 얻었고, 1958과 2017의 경계에 대해 강한 자극을 받았고, 그런 뒤 2막 1장에서 오르게이즘 편집장을 만나러 간 율리버가 편집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굉장히 냉하고 경멸이 섞인 태도를 취하는데 그게 그 장면이 의도해줬으면하고 바랐던 시니컬함을 너무 잘 보여줘서 그 두 순간이 연결되는데.. 내가 지이선 작가의 프라이드에서 이런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니ㅠㅠ하고 좀 감격했다.
미리 밝히자면 난 지탱 조합이 정말 서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각자가 다른 사람과 할 때는 그 둘을 어울리게 하는 부분때문에 거의 언제나 일정 부분의 찝찝함은 가지고 그들의 극을 보곤 한다.
그 중 지이선 작가가 선사하는 찝찝함은 너무 감성적이고 낭만적이고 화해적이라는 것?
사랑이 넘치는 것도 좋고 따뜻한 것도 좋은데 그게 과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프라이드 2막 1장에서 특히나 그걸 느껴왔었다. 프라이드 1막 2장 첫 현대씬에서 남자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음악을 틀고 자신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가는 장면,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부분 사회적으로 소수자인 게이들 사이에서 천대받는 직업인 콜보이라는 이유로(그런 종류의 직업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흠,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나 장치적으로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올리버가 그를 함부로 대했던 것에 대해 일갈하는 부분이지않나. 그 부분을 통해 극 속 인물은 물론 동성애자 그 자체에 대해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의 경종을 울리고, 프라이드의 그런 장치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극을 보다보면 이야기를 진행하는 주요 인물들에게 지나치게 긍정적이 될 수 있잖아. 그런 걸 방지하고 극이 이야기하려는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는 거리감을 확보하는 장치이기도 할텐데, 2막 1장 역시 그렇게 작용되어야하는 부분이 지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이 막아버린 부분이 있다고 여겨왔는데 올리버가 편집장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니 그게 없어지더라. 편집장... 난 그 사람을 좋은 사람처럼 그리는 라센 프라이드의 연출이 사실 좀 싫다. 내가 의도를 잘못 읽어오고 있는 걸 수 있지만, 난 편집장이 본질적으로 남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그저 가십으로만 소비하는 속물로 느껴졌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닌 게 싫었다. 그가 하는 죽은 해리 삼촌과 그의 연인 얘기는 감동적이지만, 나쁜 놈들에게도 한 줄기 진심은 있을 수 있고, 진짜 사기는 그런 한 줄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여기는데 그동안 라센에서는 '속물도<<<<속의 따뜻한 마음' 이런 식의 구도를 잡아놓은 게 영 그렇더라고.
1막 2장에서 비천한 직업을 가졌지만 인간의 존엄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물을 내놨다면, 2막 1장의 편집장은 괜찮은 지위의 인물이 속물이고 저질이고 시선이 편협한 게 두드러져야 세상이 아직 멀었고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변화는 이루어져야한다는 메시지에 합당한 잔혹함이 심기는 거 아닐까 했는데 그동안은 그게 아니었다고 느껴왔는데, 쓰레기같은 삶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그런 취급을 받는 줄도 몰랐던 17의 장율 올리버가 자신이 하는 익명의 섹스에 대해 핫하고 쿨하다는 인식을 주는 칼럼을 쓰라는 편집장의 말에 자극을 받고, 거기에 혐오감을 느껴하고, 그러다가 그런 사람이 말하는 (위선적이기도 한) 과거의 아픈 역사에 대한 이야기에 그 이야기가 가졌을 역사의 의미에 대해 동해하는 과정이 드러나는게 좋았다.
오히려 정말 편집장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것으로 그의 무례함과 속물성을 거북해하니까 그런 사람이 하는 이야기 속 역사의 진정한 가치가 떠오른달까. 그렇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놓고 계약금 얘기 칼같이 하며 끝나는게 결국 모든 건 비즈니스라는 감상을 줘서 좀 씁쓸하기도 한 것도 그렇고..
쓰다보니 2막 1장 얘기만 주야장천 길어졌네ㅋㅋ
2막 1장이 워낙 인상적이라 그랬는데 그런 식으로 극 전체에서 올리버가 쎄한 구석을 보이니 극의 물기가 빠져서 냉해지고 인물이 아닌 시대의 이야기로 오히려 이야기가 확장되어버리는 게 참 좋았어. 2막 1장이 가장 그랬지만 전체적으로 다 그랬고, 참 좋더라.
전반적으로 58과 17의 인물들이 대비를 이루고, 그를 통한 단절이 시대상에 집중하게 만든 건데 그게 너무너무 맘에 들었다. 원래 좋아하던 배우도, 새로 만난 배우도 영민한 배우가 극의 전체 이야기를 이렇게도 살리네 뿌듯했다.
지현실비아를 만나기 전에, 연약한 역할을 자주 하고, 잘하지만 부서지는 역할은 또 굉장히 심없이 부서지는 게 지현배우의 극 해석이기도 해서 내 맘대로 여리고 따뜻한 실비아일거라 생각했는데, 58년의 실비아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여리고, 예민하고, 텅 비었는데, 17년의 실비아는 그와 달리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음껏 자신의 시간과 애정을 쏟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단단하게 서있고, 타인에게 흔들리지 않고 세상과 남을 올곧이 보고 명확한 선을 긋는 단호한 사람이기도 해서 기대와 달라서 놀랐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1막 3장에서 필립과 이야기를 나누고, 홀로 거실에 남아 꿈 이야기를 할 때 그렇게 텅 비어있을 수가 없을 것 같던 사람이 2막에서 58년, 필립과 올리버의 관계를 확인한 뒤 자신이 진짜 혼자임을 배신의 슬픔을 무너진 바닥에 대신 깔고 밟고 올라서서 스스로를 위한 길을 가는 발판으로 삶고 가는 여정을 선사하는 듯한 '괜찮아.'를 말하는데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이렇게 고통과 슬픔을 딛고 일어선 수많은 실비아들이 2017을 만들어낸 걸거야.라고 혼자 마구 감격했다.
그리고 실비아와 비슷한 결을 준 장율 올리버. 처음 만난 배우인데 장율 올리버 정말 좋더라. 섭필립도 율리버도 둘 다 기존 캐스트들에 비해 어린데 어려서 강렬한 와중에 율리버 58년은 젊고 패기있으면서 강단있던 사람이었고 17년은 쾌활하고 사랑스럽게 막 나가다가 순간 순간 쎄하고 냉한 얼굴을 짓는 사람인 게 흥미로웠다. 장율 올리버의 2017년 올리버는 자신이 바로 서있지 않아서 정처없이 흔들리던 와중에 조금씩 영혼이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내는 단계가 굉장히 좋다.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나혼자 했던 생각은 관극 끝나고 한 대화가 공감대가 너무 높았던 터라 경계가 지나치게 희미해져서ㅠㅠ 영민하고 극 전체를 볼 줄 아는 젊은 배우를 만난 게 너무 기뻤다.로 급 마무리ㅋㅋ
차갑고 단호한 해석을 한 앞선 두 인물에 비해 섭필립은 좋은 사람이 자신의 성향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 등을 억누르다가 망가져버린 것 같던 58년 이후에 타고난 선함 그대로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2017년을 보여줬는데, 아마 이 날의 주요 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동일한 영혼의 윤회 느낌을 강하게 준 사람일텐데 인물 자체가 담백한 편이라 그게 나쁘지 않았다. 한 명쯤 윤회 느낌을 강하게 주니 다른 인물들은 새로 태어난 것 같아서 시대적 슬픔을 강조하는 마당에 누군가는 인물 단위로 지켜보게도 해주니 균형이 맞는 것도 같고ㅋㅋ 앞에 썼지만 오히려 1막 1장은 앞서 쓴 쓸쓸함이 배우가 어려서 그런가 서툰 쓸쓸함이라 더 거리를 벌렸던 게 그 자체로 다른 배우들의 베이스를 깔아준 기분이기도 했다.
이원멀티... 1막 2장 빼면 참 좋은 배우다. 1막 2장의 그의 대사톤 인물의 무게감 제 취향권과 멀어서ㅋㅋ 2막 1장은 좋아한다. 재연 때도 나쁜 놈 주제에 쓸데없이 눈이 맑은 듯해서 좋아했고ㅋㅋㅋ 일장일단이 개인적으로는 크다.
후기는 쓸수록 늘었으면 좋겠는데 쓰면서도 이거 뭔가 글이..싶은데 쓴 게 아까워서 부득불 올린다...ㅋㅋ..ㅋㅋㅋ
진짜 간력하게 줄이자면 프라이드 극을 좀 더 냉하게 만나고 싶다면, 섭율지현 이 조합을 추천한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사족) 재연에 아직 막은 안 올렸는데 지금 쓴 것 같은 느낌말고 따순 프라이드 원하시면 배수빈 정동화 이진희 강추. 셋 다 감정 이입 잘 시키는 와중에 배수빈, 이진희 연기가 담백한 편에 정동화 인물이 약간 강한 편이라 드라마가 강하면서 넘치지는 않아서 좋아. 개인적으로 2막 5장 마지막 퍼레이드에서 순간 58년으로 돌아가 필립과 올리버가 시대를 뛰어넘은 화해를 하는 느낌이 가장 울림있는 페어라고 감히 자평을 하고 싶고...ㅋㅋ 본 후기 페어가 너무 좋으니 급 반대 급부도 전 다시 보고 싶었터라 써봤는데 삼연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참고는 되셨으면 하는 맘에 써봤다ㅎㅎ
*트위터 단상
섭필립도 율리버도 너무 어리고 어려서 색다르고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잔인하고. 아직 보호막을 치는 게 서툴러서 쓸쓸함도 두려움도 상처도 너무 툭 불거져나와서 그게 참 마음이 아팠다. 지현실비아는 부서질 것 같은 58과 달리 17이 굉장히 단단한데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이긴 한데 뭐랄까... 내가 기대했던 위로의 방향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다정하지만 그렇게 단단해진 실비아를 만나고 있다는 게 기뻤다. 다행이야 실비야.. 프라이드는 여전히 프라이드고 뭔가 대사 몇 부분이 조금 더 친절해진 것 같은 거 빼면 연출 자체에서 큰 변화는 못 찾아냈는데 오늘 섭율지현 조합에서 느낀 감상이 꽤나 다르고 그 다름이 또 다르게 프라이드를 새롭게 만난 것 같아서 슬프면서도 감격스러웠다.
재연 배꽃진희를 정말 정말 좋아했는데 그때 느낀 건 세월을 따라 전해오고 이어지는 슬픔이었다. 인물 하나하나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가슴이 메였던 아픔이자 성장이었고, 상처이자 치유, 그럼에도 남아있는 아픔. 더 아름다워져야할 미래와 같은 울림이었고 그런 감정적인 울림은 쉽게 다시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라 사실 이번에 삼연 프라이드 섭율지현 꼭 보려고 처음부터 마음 먹었으면서도 다시 그렇게 좋을 수 있을 경험은 힘드니까-하고 내 맘대로 또 기대를 하면서 안 한 부분이 있었는데 다르게 참 좋았다. 이렇게 다르게 좋을 수도 있는데 미리 그렇게 좋은 건 힘들지 같은 생각을 하다니, 과거의 나를 지금이라도 반성해야지.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았냐면... 이렇게 사랑스러우면서 쓸쓸한 건 처음이었다고, 그렇게 정리하고 싶은데 정리를 할 수 있을까.
자평하길 공감을 참 잘하는 사람인데, 오늘 섭율지현을 보는데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상처받게 한 세상 그 자체가 보였다. 자신을 잃을 만큼 사랑하는 이들의 슬픔에 공감하는 실비아가 그 따뜻함으로 읽어낸 필립과 올리버의 아픔에 무너져 내리게 만드는 세상의 굴레, 참으로 실비아를 아끼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느낄 그녀에게만큼은 더더욱 절대 솔직해질 수 없게 망가져버린 필립, 그리고 그렇게 필립에게 침묵을 전염당해버리려고하는 올리버까지.. 올리버는 여전히 아프지만, 필립과 실비아는 그래도 자신의 존재를,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2017이 58년, 침묵 속에 텅 빈 자신을 외면하며 살지 않기 위해 온 세상과 자신이 무너져내리지 않기 위해 슬픔과 고통을 마주하고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남기고 길을 떠난 수많은 실비아들 그리고 그녀처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침묵을 선택하지 않고 맞서싸운 수많은 사람들의 승리라서 애틋하고, 그럼에도 2017의 올리버와 그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둘러싼 형태를 달리한 편견 등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폭력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듯 해서.. 17 율리버 굉장히 사랑스러운데 또 굉장히 냉소적인 얼굴 가지고 있어서 58필립 만큼이나 망가진 인물 같아서 당당해진 역사의 증명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고통의 증명이 올리버의 존재 그 자체 같아서 그 사랑스러운 웃음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침묵과 눈물이 너무 텅 비어있고 아파서 내 마음이 텅 비는 듯 아팠다. 58년의 섭필립. 벨리핀치 이야기를 할 때의 실비아와 올리버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그 순간, 가슴이 선뜩할만큼 말 못하게 쓸쓸한 등이라 나마저 그 세계에 끼어들지 못 하는 외부인이 된 것 같아서 오싹하면서 무섭고, 서럽기도하고, 슬펐는데.. 그렇게 평생 나는 누군가와 다르고 그걸 숨기고 침묵하며 살고 싶다 느낀 사람의 삶은 얼마나 슬펐을까,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게 만든 세상은 얼마나 잔인한가, 그런 생각을 공연을 보는 내내 했던 관극이었다. 58 섭필립, 17 율리버 둘다 자신의 감정에 어쩌지 못 하고 흔들리고, 두려워하고, 아파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어쩌지 못 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데.. 그들을 그렇게 나쁘게 망가진 사람으로, 길을 잃은 사람으로 만든 세상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58이 실비아도, 올리버도 모두를 무너트리고 상처주면서도 결국 올리버를 잊지 못 해서 자신이 그들과 같은 동성애자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너무나 사랑함에도 올리버의 영혼에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배신의 소리를 심게 만들었던 섭필립의 고통으로 그 시대의 역사를 풀어냈다면, 17은 처음으로 진짜 사랑을 받으면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하고, 그렇기에 정말 진심으로 필립을 사랑하기에 그를 보내볼 결심까지 하는 율리버의 모습으로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통, 그리고 잃지 말아야 할 프라이드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한 사람이 어떤 이유로든 그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이 씌우는 어떤 시선에 의해 그가 아닌 다른 것으로 평가받는 것의 잔인함을 시대에 걸쳐, 인물에 걸쳐 그 세상의 문제 그 자체로 와닿아서 만날 수 있어서 가치있었다. 특히 2막에 걸쳐서, 2막 1장 때 남자의 해리삼촌 이야기를 들을 때 율리버의 사교적인 가면을 쓴 냉소적인 표정 속에 담겨지는 이야기들, 분위기, 느낌, 그리고 그 뒤 실비아와의 대화 속에서 선언할 때의 번민, 퍼레이드에서 필립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이별을 선언하는 동안의 과정.. 스스로를 규정하는 세상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제대로 인식하면서 자신을 깨닫고, 또 그래서 자신을 가치있게 대한 사람들의 가치 또한 알게 되고, 그 모든 과정이 너무나 좋았다. 오늘의 프라이드는 잔혹하고도 잔혹한 58에도, 사랑스럽지만 여전히 슬픈 17 어느 쪽에서도 다른 의미로 성장을 담고 있었고, 그 자체가 역사여서 아름답고.. 가치있었다. 1막 때 지현 실비아, 58에는 깨지기 직전의 위태로웠던 사람이 17때 거울 앞에 섰을 때, 올리버에게 답을 스스로 찾아야한다 할 때, (1막 4장일까?) 유례없이 단호하고 단단한 실비아여서 그 강함이 이전과 굉장히 대조되어서 2017의 실비아는 바닥이 바로 선 인물인 게 좋기는 한데 낯설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2막에서 필립과 올리버의 관계를 직접 마주한 뒤 자신을 외롭게 하는 고통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를 사랑해 줄, 목소리를 찾아, 그래서 필립이 자신을 방패삼아 더욱 망가지기 전에 떠나는 58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흐름에서 그 연약함과 강함 사이를 잇는 다리가 너무 견고하고 그게 또 감동적이었다. 오늘 프라이드 생각할수록.. 웃길 때는 너무 웃기고... 메시지는 메시지대로 차가우면서 강렬하고.. 너무 좋았네 진짜ㅠ 웃긴 부분들은 정말 너무 쉴틈없이 계속 귀엽고 웃겼는데ㅋㅋㅋ 지현실비아 '우린 어른이니까~'같은 대사할 때 섭필립 소환한 것 같은 미친 싱크로율이라 진짜 아 너무 빵 터짐ㅋㅋㅋㅋㅋㅋㅋㅋ 율리버는 찡찡이 강아지 같아서 사랑스럽고 얄밉고 아 정말 귀여운데 지현실비아가 은근 데리고 노는 느낌이라 너무 귀여웠다 둘이.. 너무너무하트 모양 눈을 한 웃는 표정 그리고 섭필립... 참... 당연히 다정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58에서도 다정하기도 한 필립이라니, 다정한데 다정해서 상처주는 사람. 베어 섭젯 생각나서 잠시 속으로 광광 울다가 17 마지막 퍼레이드 때 너희 집 바닥에서 자도 되냐고 올리버가 말하는데 퍽이나 안 된다고 하겠다싶어서.... 95살 되었을 때 정신병원 보내야지 할 때 님이요?퍽이나하다가 같이!하는데 역시 그럼 그렇지... 막... 그래... 율리버는 행복할거야 같은 생각했다ㅋㅋㅋㅋ
이원멀티는... 난 전반적으로 이원멀티 좋아하는데, 1막 2장에서 퇴장할 때 톤은 늘 아쉬운 것 같다. 그래도 2막 1장에서 올리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여러 이야기를 하는 헤테로 장사꾼, 감동팔이꾼 느낌 내면서 또 해리 삼촌 자체에 대해서는 진실한 애정 가지고 있는 듯한 이율배반적인 느낌 내는 건 참 좋다. 눈 맑은 사기꾼 느낌. 진심이 있는 사기가 제일 위험하지..같은 생각 하게 하심. 재연 프 자체 레전 때도 이원 멀티였고, 오늘도 극 전체로는 또 나쁘지 않고 좋은 부분은 확실하게 좋으셔서 1막 2장만 어케... 이원나치도 사실 그 만의 매력일수도 있는 건데 이건 내 개취의 영역인 것 같다는 생각 쓰다보니 들기도 하네. 여튼.. 오늘 공연은 참으로, 참 좋았다. 매우. 프라이드는 여전히 사랑이구나. 오늘 공연의 느낌이 좋아서 여러 의미로 조금 더 싸하고 냉소적인 연출이 가미된 프라이드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한 관극이었다. 프라이드... 참 좋아해요 내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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